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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여기는 행성함 M-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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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25 19:26
최근연재일 :
2023.11.08 21:2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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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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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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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03. 시작의 날

DUMMY

【인류의 순수성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그런 어중간하기 그지없는 훈시가 새겨진 액자 아래.

고풍스러운 방에 앉아있는 대머리 교장.

케인 중령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는 훈련소에 찾아온, 그의 아득한 윗선이 건네준 한 아이 때문이다.


고아인 탓에 기록이 애매해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모르지만, 기껏해야 대여섯 살로 보이는 한 꼬마.

그는 이 훈련소는 일곱 살부터 아이를 키운다고 알려주며 거절하려 했지만, 이 건에 대해서는 이사회의 허가를 받았다며 밀어붙이니, 그가 이 훈련소의 법이며 대장이라 한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에게 있어, 훈련병의 나이는 중요치 않다.

이 훈련소의 목적은 그저 기업의 요구에 맞춰 훈련된 아이를 뽑아내는 것일 뿐이고, 그 기준만 통과된다면, 아이의 나이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제 취미를 위해, 특정 나이대와 특정 성별, 특정 피부색과 특정 유전자 보유 등을 요구하는 때도 있지만, 그런 맞춤형 병사는 이런 어중간한 크기의 훈련소에서는 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케인 중령의 한숨은 무엇에서 나왔는가.


‘이미 기수가 시작되어서, 편제도 다 짜였고, 훈시 목적으로 애도 하나 죽인 상황인데, 이 타이밍에 하나를 집어넣으라고?’

요약해보자면, 제 계획이 어긋난다.

단적으로 말해, 귀찮다라는 의미.


초등사관학교나, 초등부사관학교, 초등기술학교면 모를까, 초등훈련소는 이미 출셋길에서 어긋난 자리.

바꿔 말하면, 그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제 할 일만 다 한다면 해당 교육기관의 왕으로서 행동할 수 있다는 의미.

그렇게 오랜 시간 아이들의 왕으로서 군림해온 케인 중령에게 있어, 이사회까지 연관된 명령은 짜증 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그냥 키우라고 하는 명령이면 모를까.’

이른 시기에 ‘불운한 사고’를 위장하면 될 테니 말이다.

실제 이사회의 명령서에는 반드시 살려두라고 하는 내용은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기준치를 넘는 병사로 만들어 보낼 것이라는 내용만 있을 뿐.

그렇지만, 그 남자가 떠나면서 말한 마지막 한마디가 케인 대령을 옭아매고 있다.


‘그대의 교육방침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되도록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말게나. 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했다.

훈련 중에 죽는 건 뭐라 하지 않겠지만, 후일 수상한 정황이 발각되었을 경우, 각오하라는 것.


‘차라리 아예 죽이지 말라고 하던지, 저 어중간한 말은 대체 뭐야.’

그런 명령서는 그도 몇 번 받아본 적 있다.

유전자 조합을 만들어낸 인간 혹은 높으신 분들의 사생아.

그런 이들을 의도적인 선전용 영웅으로 키워내기 위한 밑 작업.

고아로 자란 이가, 제 어려운 시작점을 넘어서 위대한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혹하기 충분하니.


그렇지만, 이런 애매한 명령은 그에게도 처음이나 마찬가지.

평범한 훈련 중 하나로서, 편제에 따라 아이들을 반으로 나눈 후, 실총을 쥐여주고 서로를 향해 싸우게 했건만, 그 아이가 총에 맞아 죽었을 경우.

과연, 이후 찾아올 이들은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고민 속에서, 케인 중령의 근심이 깊어질 때쯤.



케인 중령이 교장으로 있는 초등훈련소의 병영.

유라나 라피스가 있던 고아원보다는 멀쩡하지만, 평균적인 삶의 기준으로 보면 열약하기 짝이 없는 병영에서.

유라가 마침내 눈을 떴다.

여기로 보내지기 위해, 강제로 약을 투여 당한 탓인지.

침대 프레임이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유라는 허리를 곧추세운 후에도 계속해서 몽롱한 상태를 유지하였으나.

곧 유라는 자신이 있는 장소가 고아원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는지, 침대에서 뛰쳐나오며 생각했다.


‘라피스는? 여긴 어디지?’

유라의 그런 의문은, 본디 유라의 이불 위에 있었던, 허공을 흩날리는 종잇조각 하나를 찾아냄으로써 해소되었다.

거기 적힌 내용은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여기는 훈련소이며, 라피스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훌륭히 성장해보아라. 라는 내용.

굉장히 딱딱하게 적힌 문장이었지만, 그것을 읽은 유라의 내면에 목표가 자리했다.

다시 라피스를 만날 수 있다는 목표.


유라 본인은 현재 스스로가 어떤 상황에 부닥쳐있는지, 자신이 어떤 장소에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라피스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이 희망을 품었다.

아득히 먼, 정말 이뤄질 수 없는 꿈임을 유라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확약 되지 않은, 단순한 이야기임을.

입에 발린 말로 일을 시킨 뒤,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잡아떼는 것처럼.

가볍기 그지없는, 입에 발린 말임을.

유라는 알고 있다.

이 세계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의 균형이 뒤틀린 지 오래된 세계이니.


그렇지만, 유라에게 있어, 마음을 다잡는 것은, 저런 문장만으로도 충분했다.

설령, 그것이 끝없는 암흑의 저편에 있다 한들.

설령, 그것이 무한한 거짓 안에 가라앉아 있다 한들.

유라는, 하늘의 별을 향해 손을 뻗는 아이니까.

공허한 어둠 속에서는 일어나지 못할지라도.

한 줄기 빛이 있다면, 그것에 의심을 품지 않고, 나아갈 아이니까.

그것이, 유라가 가진 심성.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른들을 향해 몸을 던진 것 또한, 그와 연관되어 있으리라.

그렇게 유라가 새로이 마음을 먹고, 이 훈련소라는 장소를 살펴보기 위해 아무도 없이 차가운 건물을 거닐려는 순간.


“일어났군.”

끼릭.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기묘한 형태를 지닌 인간이 유라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등에 짊어진 거대한 기계 탓에, 꼽추처럼 허리가 굽었으며.

왼 눈알을 대신하여 박혀있는 불길한 붉은 빛을 뿜어내는 렌즈.

입 대신 박혀있는 철제 스피커.


자신의 소실된 부위를 기계로 바꾸는 것은 행성함에서 흔한 일이지만, 외곽부에서 살았던 유라조차 저런 흉한 몰골의 남성은 본적이 거의 없다.

싸구려 의족을 끼운 탓에 고름을 잔뜩 쏟아내는 인간이라면 외곽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유라의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싸구려 의족이나, 고름, 흘러나오는 기름과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이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기계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에 들러붙은 듯한 모양새.

그의 몸을 차지한 기계 부품들은 누가 보아도 고급품이라 하겠지만, 기계의 가치는 그자의 흉함을 가리지 못하였다.


“공포에 굳어버렸나? 상관없지. 소리치지 않아 다행이군. 성대 마비약을 쓸 수고를 덜었어.”

어둠에서 나타난 기계 인간이 그리 말했지만.

유라는 공포에 질린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고 있을 뿐.


“좋아. 좋아. 거기 가만히. 움직이지 말고. 움직이면 어딘가가 뜯겨나갈 테니.”

어떤 이유에서건, 유라가 가만히 있는 것이 기계 인간에게 있어서는 만족스러운 일.

그렇기에, 스피커의 고음한계를 돌파하여, 지직거리는 소음으로 변해버린 웃음을 내뱉으며 유라에게 가까워졌고.

기계 인간의 외형이 아닌, 찢어지는 소음에 놀란 유라가 귀를 틀어막고자 움찔거린 순간.


철컥. 철컥. 철컥.

기계 인간의 등에 붙어있던 금속에서 수많은 기계 손이 뻗어 나와 유라를 붙들었다.

그 손길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그저 구속만을 고려하는 기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인공 근육이 만드는 열로서 미지근하게 달궈진 기계 손은 유라의 살과 근육, 그리고 관절 부위를 압박하여 강한 고통을 가했고.

“윽···.”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한 유라는 처음으로 비명을 내뱉었다.


“아픔에 내성이 있나 보군. 억제 임플란트라도 박았나?”

그 말을 들은 순간.

아픔으로 가득한 유라의 머릿속에, 고아원에서 들었던 괴담이 떠돌았다.

몸에 돈이 될만한 기계가 있다면, 그것을 뜯어가는 강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오히려 그런 족속들은 생체 부품에 관심이 없기에, 필사적으로 자신이 생몸임을 어필하라고.

그에 유라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입을 열었다.

설령 그로 인해 피부가 벗겨지고, 고통이 인다고 해도.


“···없어···요.”

“처음으로 목소리를 듣는군. 그런데, 뭐가 없단 말이지? 간단하게, 필요한 것만 말하도록.”

유라의 목소리를 들은 기계 인간은 눈썹을 치켜들고, 얼굴을 비틀었다. 정말, 시간 낭비하기 싫다는 감정을 표출하며.

“몸···아무것도 없어요···. 생몸··· 그대로···.”

가까스로 유라가 그리 말하자. 약간이나마 구속이 느슨해졌다.

“호오. 그 말은 추가 장기나, 임플란트, 유전자 조작, 나나이트 삽입이 없다는 뜻인가?”

기계 인간에게 있어, 구속을 약하게 한 것은 단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듣기 위함.

“예···. 전혀 없···.”

그렇게, 유라가 모든 힘을 짜내 말을 꺼낸 순간.


푹.

유라의 목덜미를 붙잡은 손에서, 작은 소리가 울렸다.

“그래, 부디 그 말이 진실이면 좋겠군.”

그런 기계 인간의 목소리가 유라의 귓가에 울림과 동시에.

유라는 미지근한 무언가가 제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대량의 액체가 몸 안으로 밀려들며, 피를 역류시킴으로 얻어내는 막대한 고통도.

세상을 인지했을 때부터 폭력과 부조리에 시달렸기에, 고통을 참아내는 법을 익혔던 유라라 한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비관하게 만드는 고통에는 반항하지 못해. 비명을 내지르려 했으나.


“억. 억. 어거걱. 억···.”

유라의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비명이 아닌 단순한 날숨뿐.

약간의 소리를 가졌으나, 타인의 신경을 거스르게 하기에는 아득히 모자란 자극.

이는 당연한 것이다.

유라의 경동맥을 통해 주입된 약물은, 실험체의 생체 상태를 확인하고자 하는 용도의 기성품에, 기계 인간이 개조를 가한 것.

액체 금속을 기반으로 혈관을 내달린 후, 함유된 나나이트를 사용하여 상대방의 몸 상태를 전달받는 특제품.

기반이 된 약물은 수많은 기업이 평범하게 사용하는 덕에, 그 성능만큼은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하겠지만.


눈앞의 남자가 사용하는 약물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존재한다.

피를 역류시키는 무겁기 그지없는 금속이 혈관을 내달린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고통을 유발한다.

비록, 그 안에 든 나나이트를 통해 대상자의 순환계가 망가지는 것을 방지한다고 하지만, 이는 순환계가 찢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찢어지는 것을 빠르게 봉합함으로써 겉보기에 문제가 없게 만드는 것.

그렇기에, 기성품에는 대상자가 고통으로 미쳐 날뜀으로써 실험이 엉망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대량의 마취제와 합성마약을 칵테일해두지만.

유라의 몸속에 들어간 것은, 성대 부분만을 마취시키게 되어있다.


이것엔 그리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린 시절부터 마약 절임을 만들면 사용하기 힘들다는 이유가 있어 마약이 빠졌다는 이유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과거의 기계 인간이 상대방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일 뿐.

한때 기계 인간은 수많은 훈련병에게 이것을 박아넣음으로써, 아이들의 정신을 파괴하고, 권위에 무릎 꿇게 하며 즐거워했지만, 지금의 그에게 있어 아이의 고통은 어떠한 자극도 유발하지 못한다.

그저, 과거부터 사용했기에 지금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유라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사이에도.


“키 98cm.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군. 성장 호르몬 투여 요망.”

“체중 15kg. 하, 요즘 모집관 놈들은 기본조차 안 지키는 건가?”

“특수 시술 흔적 없음. 생몸은 맞군.”

기계 인간은 유라의 상태에 아무 관심 없이, 전해지는 데이터만을 받아들였다.

유일하게 보인 반응은, 유라가 마비로 인한 호흡곤란 상태에 들어서자, 호흡관을 입에 처박은 것뿐.


“순혈···은 아니군. 4% 정도 잡종이 섞였나. 출신지는···. 특유의 디자인이 보이는 것을 보니, 유전자 복제 계획의 실패작인가.”

그렇게 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도중에도.

유라는 고통과 호흡곤란.

그리고 긴 시간 이어진 구속으로 인해 어떠한 정보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기나긴 신체검사는.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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