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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라이터 님의 서재입니다.

선협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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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라이터
작품등록일 :
2022.08.07 18:09
최근연재일 :
2022.12.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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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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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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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제68화 헬 난이도, 포위망

DUMMY

"이건 뭐 최씨성이 아니라, 안시성이네."

나는 도화곡 근처에 도착해 멀리서 바라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세가 너무 험요했다.

남 모르게 들어갈 방법은 거의 없을 듯.


산마루가 둥그렇게 어울러지고, 그 가운데가 움푹하게 파인 것을 두고 산곡(山谷), 혹은 골짜기라고 부른다.

역사책에 나오는 안시성이 바로 그러한 골짜기에 위치한 성이었다.

높은 산마루가 병풍처럼 골짜기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산마루에 성곽을 축조해 외세의 침입을 막고.

사람들은 움푹한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며 유사시에 성곽에 올라가 싸웠던 것.

내가 지금 보는 도화곡이 바로 안시성을 수십 배 축소한 그것과 비슷했다.

.

지면에서 백여미터 솟아오른 산마루를 따라 돌로 된 성곽을 쌓고.

그 안의 골짜기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길목에 견고한 관문을 만들어 출입을 통제하고, 무기를 든 최씨 가문의 사병들이 어슬렁 거리며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수색을 받지 않고 드나드는 방법은 전혀 없을 듯.

관문을 피해, 산비탈을 따라 기어 오르다가 성곽을 뛰어넘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그 이유는 바로 ... 산비탈에 수천, 수만 그루도 넘는 복숭아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

겨울인데도 잎사귀가 파릇파릇하고, 보라색 아지랑이가 솟아올라 나무들을 안개처럼 감싸고 있었다.


"쯧쯧, 옥황상제의 반도원도 아니고, 어디서 이렇게 많은 영목의 종자를 구해 심었지?"

나는 그 복숭아 수림을 바라보며 머리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복숭아 수림에 슬며시 다가가 살펴봤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고작 수백 명의 병사를 풀어 전체 산비탈을 뒤덮은 복수아 수림을 전부 살피는 것은 거의 미션 임포서블이었고, 병사들도 전혀 그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보라색 아지랑이에 싸여있는 한 그루 복숭아에 다가가 손을 뻗어 보니, 그 아지랑이가 손을 맴돌며 피부 속으로 쑥 스며드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느껴지는 피로감과 마비감.

몸이 뻣뻣해 나며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나는 화룡초의 흡성술을 이용해 운기조식하며,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 독기를 흡수해 한 가닥의 진기로 전환해 버렸다.

아주 적은 양이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 처치해 버렸지만, 수림 속에 깊이 들어가며 아지랑이를 너무 많이 마시면 목행의 흡성술을 가지고 있어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백년도화장(桃花瘴)이군. 대운종의 도법진으로 그 특성을 강화시켰을 지도 모르고."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복숭아 수림을 노려봤다.

이런 복병에 막히다니.


도화곡의 산비탈에 심은 복숭아 나무들은 일반 나무가 아니라, 천지영기를 듬뿍 흡수하며 변이한 영기 깃든 영목이었다.

그것도 일반 영목이 아니라 독기를 품은 독복숭아.

나무들을 휘감싸고 있는 보라색 아지랑이가 바로 도화장이라고 부르는 독기 깃든 안개인데.

그것을 마시면 몸이 뻣뻣해 나며 사지가 마비되어 쓰러지게 된다.

산소통을 쓰거나 숨을 죽여도 쓸모 없다.

독기가 살갗이나 옷을 뚫고 몸 속으로 직접 스며들 수도 있으니.

최씨 가무은 도화곡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독복숭아 영목을 구해 도화곡 주변에 심고.

대운종의 도법진까지 포설해 통제하는 모양이다.

최부자의 조카와 손자가 모두 대운종의 내문제자라고 했었지.

대운종과 아주 친한 모양이다.


"독복숭아들을 심은 산비탈을 뚫고, 성곽에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관문을 통과해 도화곡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나 고안해 볼까?

위장만 잘하면 ...

아니, 하마트면 깜빡할 뻔 했네. 마지막 방법이 하나 더 있지."

남몰래 산비탈을 통해 들어가려던 계획을 버리려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내가 독섬영금에 깃든 독기를 흡수해 진기로 전환시키던 것처럼.

목행의 흡성술을 쓰면, 복숭아 나무에서 나오는 독기도 흡수해 전환시킬 수 있다.

그게 결국 목행의 영기니까.

문제는 그 전환 속도에 있었다.

불가살이의 영을 흡수하며 얻은 흡성 능력은 아주 뛰어나 소방관들의 고무 호수에서 뿜어 나오는 물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독기를 진기로 전환시킬 수 있다.

하지만 화룡초의 영을 흡수해 얻은 목행의 흡성 능력은 쓸 수는 있지만 강하지 못해, 가정용 수도 꼭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처럼 느린 속도로만 독기를 전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기는 아주 굵직한 물줄기처럼 들어오는데, 흡성.전환 속도는 가느다란 실개천에 불과해 미처 다 전환시키기 전에 너무 많은 독기를 흡수하며 쓰러지는 것.

그렇다면 ... 독기를 흡수.전환하는 속도를 수십 배 빠르게 해주면 될 것 아닌가?

다른 수행자들이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마침 좋은 보물을 하나 갖고 있다.

바로 태고화룡초에게 얻은 화룡주.

나는 급히 그 구슬을 꺼내들었다.


화룡주를 손에 들고 도술을 시전하니.

복숭아의 독기를 흡수.전환하는 속도가 수십 배 빨라지며, 들어오는 속도와 전환하는 속도가 거의 비슷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준이라면 독복숭아 수림을 직접 뚫고 들어가도 괜찮을 듯.


나는 마침내 보라색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복숭아 수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

수림에 들어가 두 번째 문제는 멀리 내다볼 수 없다는 것.

짙은 안개 속에 들어간 것처럼 시야가 막혀 고작 세 보, 네 보 밖만 내다볼 수 있다.

특히 영각의 능력도 아지랑이에 막혀, 제대로 감지할 수 없는 것.

이대로 가면 귀신에 홀린 것처럼 수림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몇 시간이고 같은 자리에서 맴돌 수도 있다.


나는 곧 혜안금정술을 써봤다.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며 짙은 안개를 뚫고 내다봤다.

최소 백 미터는 내다볼 수 있었다.

그래, 시력 하나는 자신이 있다고.


나는 그제야 방향을 잡으며, 산마루 위의 성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다행히도 성곽을 순찰하는 병사들은 없었다.

모두 산기슭의 관문만 지키고 있는 듯.

나한테 있어서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몸을 날려 5미터도 넘는 성곽을 훌쩍 뛰어넘고, 마침내 도화곡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이제 슬슬 최부자의 넷째 첩을 찾아가 볼까?

조씨라고 했던가?

물어볼 것들이 많은데."

나는 강집사를 핍박해 그린 지형도에 근거해 위치를 잡아보고, 넷째 첩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도 도화곡의 건물들 위치는 은평성 안에 있는 최부자 집과 거의 비슷했다.

같은 설계사가 설계한 것인지.

덕분에 보다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일류 고수의 실력을 발휘해 최씨 가문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넷째 첩이 사는 곳으로 조용히 찾아갔다.

일반인 병사들이나 감응경 수행자들도 별로 마음에 두지 않는다.

하지만 선천화경의 심령술사가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것.

가능하면 조심스럽게 행동하자.


그리고 마침내 넷째 첩이 사는 정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첩이지만 2층짜리 집 두 채, 다른 수십 칸의 방도 있는 큰 정원에 살고 있었던 것.

십팔.

부자가 되면 좋기는 좋구나.


나무와 벽의 그림자에 몸을 숨겨 살펴보니.

넷째 첩이 예닐곱 명이나 되는 하녀들을 거느리고 주방으로 쓰는 부엌간에 드나들며 뭔가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었다.


"아홉째 도련님은 비싼 음식보다는 정갈한 것을 좋아하셔.

모든 식재료는 여섯 번 이상 씻고 다듬을 것."

넷째 첩이 직접 소매를 걷어 붙이고 요리를 하며, 일손을 돕는 하녀들에 주의를 줬다.

"네, 마님."

하녀들이 일제히 대답한다.


"그리고 도련님의 두 분 사제에 드리는 음식도 허투루 하지 말아야 한다.

그쪽에서 불평을 부리면 도련님 처지만 난처해 지니까.

반드시 가장 좋은 것으로 알뜰하게 만들어야 한다."

"알겠어요."


음,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것인가?

그들 자신이 먹을 것도 아니고, 최부자가 먹을 것도 아니고, 대운종 제자라는 아홉째 손자의 음식을.

그런데 ... ?

속으로 잠깐 의문스러워 하고 있는데, 내 의문을 대신 묻는 하녀가 있었다.


"음식을 정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어요. 근데 ..."

"근데 뭐라고?"

"근데 왜 아홉째 도련님이 먹는 음식을 우리 넷째 방에서 만들어야 하는가요? 다른 방에서 쉬쉬하는 소리도 조금 ..."

찰싹!

넷째 첩이 채 듣지도 않고, 하녀의 뺨을 호되게 갈겼다.

"이 년이 어디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냐?

오냐오냐하며 키워 줬더니, 내 흉을 보려고?"


"아니, 잘못했습니다, 마님.

죽을 죄를 지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하녀가 그제야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몇 번이고 절을 했다.

"죄송합니다, 마님. 화를 푸셔요."

다른 하녀들도 급히 무릎을 꿇으며, 넷째 첩에 잘못했다고 빌었다.

한참이나 지난 후.

화가 조금 풀린 듯, 넷째 첩이 마침내 머리를 끄덕이며 하녀들에 바닥에서 일어나라고 말했다.

"됐어, 다들 일어나. 아직 일도 끝나지 않았는데.

그리고 내가 이참에 단단히 말해두는 건데,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과 어울려 험담을 하지 말라고.

평소에는 괜찮지만 지금같이 위험한 시각에는 살신지화를 부를 수도 있다고."


"감사합니다, 마님."

하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전보다 한결 더 분주하게 돌아 다녔다.

그녀들을 노려보던 조씨가 굳었던 기색을 풀며 한 마디 더 당부했다.

"아홉째 도련님의 음식을 내가 책임지게 된 것은 그분이 나를 가장 믿기 때문이야.

그리고 대감 마님께서도 이에 동의하셨고.

이것을 영광이며 기회로 생각하라고. 이후에 이 가문을 책임지실 분은 결국 수행자인 아홉째 도련님이 아니겠느냐?

지금 같은 때 잘해주면, 너희들도 이후에 보다 편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하녀들이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

작은 불협화음은 이렇게 끝나고, 넷째 첩 조씨와 하녀들은 계속 요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약 반 시간 쯤.

나는 속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강집사에 했던 것처럼, 조씨를 추포해 취조했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많으면 그것을 하기 어렵다.

쓰러뜨리는 것은 쉽지만 누군가 기회를 잡고 소리라도 지르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십팔.

조씨가 혼자 남을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 웬 놈의 요리 시간이 이렇게 길단 말인가!


다행히도 종말까지 영원히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조씨가 마침내 요리를 끝내고, 좋은 목함을 세 개 꺼내, 그 안에 그릇들을 차곡차곡 넣었다.

그리고 하녀 몇 명을 불러 목함을 들게 하며,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


나는 잠깐 생각해 보다가, 그녀들을 따라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씨와 하녀들이 목함을 들고 도착한 곳은 한적해 보이는 정원이었다.

푸른 돌로 쌓은 담장 밖에 두 명의 사내가 서서 대문을 지키고 있고.

몇 그루 복숭아를 심은 정원 안에는 아지랑이가 자욱히 끼고.

그 사이로 아담한 기와집이 언뜻어뜻 보였다.


최부자의 아홉째 손자가 머무르는 곳인가?

근데 ... 나는 정원 밖에서 문을 지키고 있던 두 사내의 정체를 알아봤다.

모두 어깨에 검을 메고.

소맷자락과 어깨에 구름 무늬를 수놓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대운종의 제자였다.

그것도 감응경의 고수들.

한 명은 일류, 다른 한 명은 그보다도 훨씬 강한 네임드급.

쯧쯧. 일류와 네임드급 고수를 문지기로 쓰다니.

아홉째 손자가 대운종에서의 위세도 대단한 모양이네.


수행자들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훨씬 더 경계하며 은둔술을 써서 몸의 기운을 감췄다.


"부인님, 오셨네요."

두 수행자가 포권을 하며 조씨에 인사를 했다.

첩이라고 해도 사형의 조부의 첩.

단연 어느 정도의 예의는 갖춰야 할 듯.


"호호, 두 분 오늘도 수고하시네요. 자, 받아요, 오늘 점심 식사예요."

조씨가 살갑게 인사하며 가지고 온 목함 중 두 개를 건네줬다.

그리고 묻는다.

"도련님은 오늘도 폐관수련을 하시는가요? 그럼 들어가지 말고, 그전처럼 문 밖에 놓아야 하겠네요."


"그러시죠."

두 수행자가 머리를 끄덕이며 뒤로 한 발작씩 물러섰다.

조씨는 정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음식이 담긴 목함을 열린 대문 밖에 놓고, 안에 대고 높이 외쳤다.

"도련님, 음식을 가져 왔어요. 요리를 드시고 수련을 하라고요."


잠깐동안 응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기와집의 창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기로 된 거대한 손이 불쑥 날아나와 지면으로 사뿐 내려 앉더니.

음식이 담긴 목함을 잡아쥐고, 다시 솟구치며 창문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음, 이건 ...!

나는 갑자기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기로 만든 손은 "선천일기장"의 도술.

감응경의 수행자라도 대충 부릴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도술이다.

하지만 이렇듯 자유자재로 쓰고, 무거운 목함도 쉽게 들 수 있다는 것은 ... 도술을 쓴 수행자가 최소 선천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 최부자의 아홉째 손자가 선천화경의 고수란 말인가?

설마!

강집사는 분명 감응경이라고 말했는데.

말도 안돼.


머리카락이 쭈뼛 올라섰다.

*

조씨는 문을 지키는 두 수행자가 몇 마디 인사말을 더하고, 정원 안 2층 집을 향해 여자들이 하는 만복의 예를 올린 뒤에 돌아가 버렸다.

두 수행자는 정원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의자와 상을 놓고 앉아 음식들을 먹었고.

나는 잠깐 망설였다.

조씨를 계속 미행해야 할까, 아니면 정원 안에 들어가 조금 더 확인해 봐야 할까?


자칫하며 화경의 심령술사를 만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것은 확인해 봐야지.

선천일기장을 쓴 고수가 반드시 심령술사라는 법은 없다.

최부자의 손자가 평소에 힘을 숨긴 찐따 화경일 수도 있고.

은평성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 그래도 확실히 확인은 하고 백의위에 보고해야 하지 않겠는가.

*

나는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두 명의 수행자를 피해, 정원의 반대 쪽으로 갔다.

그리고 먼저 은둔술의 기종자가 들어있는 사리주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전에 장유기의 산신묘에 접근하기 위해 반쯤 써버렸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한 번 쯤은 쓸 수 있을 듯.

그런 뒤에 몸을 날려 높지도 않은 담벽을 가볍게 뛰어넘고.

기와집에 가까이 다가갔다.


고대에는 유리가 없어 현대식 유리 창문을 쓰지 않고.

가난한 집들은 나무로 짠 덮개를 쓰고.

부자 집에서만 창살을 대고, 종이를 바르는 법이다.

나는 기와집의 반대쪽 창가에 다가가 손가락에 침을 묻혀 적시고, 그 손으로 창호지를 살짝 뚫은 뒤에 그 안의 정경을 살펴봤다.


그리고 ... 그 안에 펼쳐진 정경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기괴함 그 자체였다.

*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쪽 벽에 세워둔 실물 크기의 신상이었다.

흰 연꽃 위에 올라탄 여신.

살아 숨쉬는 것처럼 디테일한데, 얼굴 만은 반듯하고 평평하다.

바로 백련성모였다.

그 앞에 놓여진 향로, 촛불, 각종 제물이 놓여진 제물상.

제물이란 이름모를 뼈, 내장, 피, 가죽, 그런 것들이었다.

특이한 기운을 뿜고 있는 것이 범상한 물품은 아닐 듯.


나는 백련성모에 제물을 공양하는 제례의식의 정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방 안의 중앙에 위치해 꿈틀거리는 붉은 핏덩어리 같은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기괴"라고 묘사한 이유였다.

얼핏 보면 거죽이 붉은 악마, 혹은 괴물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팔 다리가 달리고.

꿈틀거리며.

한 손에 작은 칼을 쥐고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쥐고 있는 얇슬하고 넓은 것.

가죽이었다.


나는 약 10초 동안이나 보고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은 인간이되, 손에 작은 칼을 쥐고,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붙은 가죽을 벗기고 있는 인간.

얼굴, 가슴, 복부와 사지의 가죽의 거의 다 벗기고.

엉덩이 쪽의 가죽을 열심히 들어내고 있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헉헉 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신도 고통을 느끼는 듯.


스스로 자신의 가죽을 벗기다니.

인간이 고안해낸 고문 중에도 이보다 더한 고문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자의, 그 수행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달았다.

지구에서라면 단순한 사이비 종교의 기이한 의식이겠지만.

이세계 수행자의 시점에서 본다면, 본명 보패를 제련하고 있는 것이다.


본명 보패는 다른 보패와 달리, 수행자의 전투력을 증강시켜 줄 뿐만 아니라, 수행의 속도와 경지를 높이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보물이다.

이름은 보패지만, 실제 수행자들의 신체 부위의 일부나 다름없다.

때문에 위력 보다는 보패와 수행자 간의 친화력이 가장 중요한 법.

이러한 이유로 본명 보패를 제련할 때.

수행자들은 자신의 피와 살을 섞어 넣으며 보패와 수행자 간 친화력을 높이고자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특히 암흑 계열의 수행자들은 자신의 팔 다리를 잘라, 보패에 넣을 정도로 극성이라고 한다.


중국 춘추 시대의 명검인 막야와 간장을 제련할 때.

대장장이가 자신의 아내를 끓는 철물에 집어넣어 보검을 만들었다는 전설도 있지 않은가!


최부자의 아홉째 손자로 추정되는 수행자는 자신의 가죽을 스스로 벗기고, 백련성모의 신력을 빌려 본명 보패를 제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 이제 ...


내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방 안의 핏덩어리 같은 붉은 형체가 갑자기 머리를 치켜들며 나를 향해 웃었다.

흰 이빨이 촛불 속에서 유난히 빛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한 손님이 오셨군.

모르는체 하면 예의도 아니지.

한 번 들어와 얘기라도 나누시지!"


아차!

그 순간, 후회가 막심했다.

방 안의 고수가 제례의식을 거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그 기괴함에 끌려 십 수 초나 구경하고 있었다니.

용서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급히 창문에서 물러나며 몸을 뒤로 날렸다.

방 안의 고수가 날린 장풍이 창문 틀과 격돌하며 굉음이 일어나고.

돌과 나뭇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그 여파를 못이겨 지면에서 몇 바퀴나 데굴데굴 뒹굴다가 간신히 멈추며 주변을 살펴봤다.


스스로 가죽을 벗긴 고수가 한 손에는 거의 다 벗긴 사람 가죽을 들고.

한 손에는 작은 칼을 든 채로 집 밖으로 뛰어나와.

간신히 몸을 가누는 나를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디서 온 놈이지? 어서 땅에 엎드려 포승줄을 받지 못할꺼냐!"


대문 밖에서도 두 인영이 뛰어 들어왔다.

문을 지키던 두 수행자였다.

"어찌된 일이십 ... 십팔, 어디선지 자객이 들어왔네.

사형, 저희한테 맡기십시오.

저놈을 잡아 어떻게 온 것인지 취조하겠습니다."


두 녀석이 검을 빼들며 나를 노려본다.


허허, 독안에 든 쥐라고 할까!

선천화경의 고수에 대운종의 잘 나가는 제자들에, 겹겹이 포위되었군.

나는 왜 헬 난이도의 게임만 하는 것이지?!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허리춤에 찼던 보물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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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제69화 백련성모의 공격 +5 22.12.10 627 24 15쪽
» 제68화 헬 난이도, 포위망 +4 22.12.08 680 24 19쪽
67 제67화 최씨 가문의 가병들 +4 22.12.06 711 16 18쪽
66 제66화 금강석 귀걸이, 마지막 단서 +4 22.12.04 724 22 23쪽
65 제65화 백련성모와 제물 공양 +4 22.12.02 660 23 20쪽
64 제64화 최부자 댁의 강집사 +3 22.11.29 702 22 17쪽
63 제63화 공손세가의 학 요왕 +4 22.11.27 756 24 16쪽
62 제62화 천마해체대법과 보패 제련술 +5 22.11.23 744 22 22쪽
61 제61화 팔백 마리의 화룡초 +4 22.11.21 747 27 19쪽
60 제60화 남산선자와 흑풍자, 화경대전 +4 22.11.20 727 22 18쪽
59 제59화 약삭바른 점쟁이 +3 22.11.19 748 25 18쪽
58 제58화 반전에 반전, 계중계중계중계 +3 22.11.18 730 24 16쪽
57 제57화 흑관압정과 천살고성 +5 22.11.15 860 21 22쪽
56 제56화 한수아의 의뢰 +3 22.11.13 837 24 18쪽
55 제55화 혈전, 최부자네 도화곡 +3 22.11.09 828 28 18쪽
54 제54화 백년생 산삼, 백련교의 함정 +4 22.11.07 887 23 19쪽
53 제53화 역용환, 백보루의 소공자 +4 22.11.05 871 26 16쪽
52 제52화 청족오와 검환 +4 22.11.04 871 27 18쪽
51 제51화 정두칠전서의 저주술 +4 22.11.02 886 26 17쪽
50 제50화 핵폭탄 맞게 된 은평성 +5 22.10.31 926 31 22쪽
49 제49화 금선좌망비, 잃어버린 정글도 +4 22.10.29 949 29 20쪽
48 제48화 마침내 나타난 심령술사 +7 22.10.27 980 28 21쪽
47 제47화 태고화룡주와 화룡술 +4 22.10.25 954 36 19쪽
46 제46화 삼매화룡패와 혈둔술 +4 22.10.23 977 3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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