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야에 갇힌 지옥
늦은 새벽. 저녁부터 시작된 보슬비가 어느새 살이 올라 굵은 줄기로 쏟았고, 당장 포클레인으로 찍어 내려도 상관없을 허름한 다세대 빌라 지하로 빗물이 흘러들었다. 곳곳에 음산한 기운이 쌓여가는 그때, 허공에서 거구의 주먹만 한 빛 덩어리가 거친 속도로 빗물을 쫓아 지하로 들어갔다
암막을 친 듯 깜깜한 방안이 열린 문틈으로 스며든 빛 덩어리로 대낮같이 밝아지면서 매트리스 위에 등을 보이고 앉은 주희의 모습이 드러났다. 주희는 푸른 색 원피스에 누렇게 탈색된 상투를 묶은 채 수면제를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 키고 있었다. 스물 셋. 똥칠을 해도 예쁠 나이인 주희는 방금 목이 잘린 생선눈알로 눈물을 쏟으며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주희가 입 밖으로 넘치는 수면제를 억지로 쑤셔 넣는 사이, 또 다른 빛 덩어리가 들어오자 창문 앞에 떠 있던 빛 덩어리가 등신대로 늘어지더니 온몸이 빛으로 휘감긴 채 젊고 선한 얼굴을 드러냈다. 빛은 영혼의 안내자 정원이다.
“ 내가 데려가는데.”
“ 알아. 난, 배속에 아기.”
방문 앞에 멈춰서 얼굴을 드러낸 빛은 영혼의 안내자 영신이다. 두 안내자는 인간의 눈에는 담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을 발했다.
“ 아기가 있었구나...”
자신의 배를 감싸는 주희를 보며 정원이 혼잣말을 했고, 영신도 주희의 배에 시선을 꼽고 심장이 멈추길 기다렸다. 안타까운 마음에 눈빛으로 주희를 토닥이던 정원이 입을 열었다.
“ 이게 끝이 아닌 걸 안다면... 선택은, 달랐을까?”
“ 우리와 같은 처지가 되겠지. ”
영신은 정원이 무색할 만큼 마른 감정으로 대답했다.
“ 우리 처지? ”
“ 아마, 우리가 받는 이 벌을, 저 여자도 받게 될 거야.”
“ 벌? 지금 벌이라 그랬어? 우리가 벌 받고 있다고? 왜? 왜 내가 벌을 받아? 우린 안내자야. 영혼의 안내자. 영혼을 사후의 바다로 안내하는 안내자. 벌을 받는 게 아니야.”
정원은 영신의 황당한 말에 욱하고 마음이 튀어 할 수만 있다면 딱 밤이라도 먹이고 싶었다.
“ 전생을 기억해?”
영신은 여전히 배에 붙은 주희의 손에 시선을 박고 서늘하게 물었다.
“ 아니.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
“ 전생의 기억은 한 조각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신해? 끝도 없이 죽음과 마주하는 거... 최악이야.”
영신의 눈빛이 두려움에 떨렸고, 그 눈을 읽어 버린 정원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 언젠가 눈을 떴는데, 도로 한 복판에 종이처럼 구겨진 자동차 앞에 내가 서 있었어. 어그러진 차 안에 사지가 절단된 채 피범벅이 된 남자가 보였어. 끔직했어. 구역질이나 도망치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지금처럼...”
영신이 제 기억에 빠져 힘들어 하는 사이, 정원 역시 자신의 처음을 떠올렸다.
지금처럼 비가 쏟아졌던 날 새벽. 아파트 1층 화단으로 추락사 한 여중생이 정원의 시작이었다. 정원은 피 칠갑의 시체보다, 눈부신 빛을 발하는 자신의 몸이 신기했고, 혼란스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숙련된 기술자처럼 안내자의 역할 실행하는 스스로가 소름끼치게 놀라웠었다.
두 안내자가 서로의 처음을 헤집는 사이, 죽어가는 주희의 배속에서 푸른빛의 아기영혼이 빠져나왔다. 아기영혼의 등장과 함께 빛으로 둘러싸인 영신의 손바닥에 작고 투명한 유리구슬이 나타나 아기 영혼을 담았다. 푸른빛으로 변한 구슬을 내려다보는 영신은 체념한 뜻 짧은 숨을 토했다.
“ 무뎌지지도 않아. 지옥이야. 백야에 갇힌 지옥.”
영신은 말이 끝나자마자 스위치를 꺼버린 듯 사라 졌고, 남겨진 정원은 주희의 주검이 새롭게 두려워져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정원이 조급한 마음에 빛에 쌓인 손바닥을 내려다보자 이내 유리구슬이 생겨났고, 주희의 영혼이 구슬로 스며들었다. 정원이 사라지고 다시 암흑 된 방안은 쏟아지는 빗소리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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