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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 가문은 마법 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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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4.29 22:42
최근연재일 :
2020.05.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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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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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과 폭로(3)

DUMMY

케쉬그는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저었다. 날씨가 쌀쌀한 덕인지 코에서 김이 확 뿜어져 나왔다.


“그래, 제베에게서 말을 들었다. 제베는 너희들 말은 못하지만 머리가 둔하지는 않아. 그런 중요한 정보를 그에게 먼저 말하다니, 자네는 인간치고도 조심성이 없군.”


계속되는 하대에 오기가 생긴 헤르반은 무모한 것임을 알면서도 대들다시피 말했다.


“최대한 빨리 알리는 게 좋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제가 틀렸던 겁니까?”


오히려 당당히 나가는 헤르반의 모습에, 케쉬그는 약간 감명받은 듯 오만하게 깔던 목소리를 약간 낮혔다. 냉혹한 지성이 담긴 눈이 헤르반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중대사는 나나 수베타이 족장에게 먼저 상의해 주었으면 한다. 켄타우로스 카간국이 멸망한 이후, 한 군데 모여살던 부족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유대는 약화되었고 카젤누 초원, 지금 우리가 발굽을 디디고 있는 초원에서는 대칸의 혈통을 주장하는 온갖 잡놈들이 설치고 있지.”


“스파이일 수도 있다는 거군요. 몰랐습니다. 당신들이 우리 왕국에 쳐들어 올 때는 움직임이 아주 단합되어 있었습니다만.”


“전쟁에 참가했었나?”


“후방 서기관이었습니다. 실제로 전투는 못 봤죠. 못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 땅을 침략해 땅을 발굽으로 짓밟고 마을과 성곽을 불태웠습니까, 헤르반의 두 눈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항상 야영지에 머물고 있는 몸이었었지만, 피난민들이나 병사들로부터 전쟁의 참혹함은 질릴 정도로 전해들었었다.


어떻게 한 마을이, 남녀노소 관계없이 단 한사람까지 몰살당했는지, 술에 취한 켄타우로스 전사들이 포로들에게 말못할 정도로 끔찍한 짓을 했는지. 만약 이 부족이 켄타우로스 전쟁과 연관되어 있다면, 헤르반은 한스 나리의 계획에 참여하는 일을,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하리라.


“만약 참가했다고 말하면, 너는 무엇을 할 수 있지, 인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죠. 하지만 제게 있어서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증명할 수 있죠. 전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요.”


케쉬그는 헤르반의 말을 소화하는 듯 멈칫하다가, 천막 안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웃어제꼈다. 헤르반은 맹세코 천막 안의 서까래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고 증언할 수 있었다.


“아아, 이렇게 크게 웃어보기로는 오랜만이군. 헤르반, 이라고 했나? 너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머리 회전도 나쁘지 않고, 겁이 없지도 않군. 그렇다면, 하나만 물어보자. 나와 손을 잡아 반역을 일으킬 생각, 없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죠. 저는 한스 영주님을 배신할 계획도,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요. 한스 영주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흥미진진한 자리에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요.”


긴장이 되자 저절로 말투가 본래대로 돌아와버렸다. 외교적 결례겠지만 저쪽이 먼저 예의고 뭐고 차리지 않은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반응을 떠보려는 건가?


케쉬그는 콧김을 내뿜더니 첨언했다.


“너는 항상 그 인간의 그림자로 살게 될 거다. 그럴 바에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


“다른 인간이 말했더라면 찬성했을 테지만, 비인간인 댁이 말하니 확 와닿지가 않네요. 다리 한 쌍을 줄이고 오면 봐줄지도요.”


케쉬그는 눈 깜짝 안하고 대꾸했다. 헤르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서 내가 죽는구나.


“그리고 꼬리도 잘라야겠지. 우리의 자랑스러운 꼬리도.”


“네, 네? 맞습니다요. 꼬리도요. 그리고 발굽도 좀 깎아서 발가락처럼 보이게 하고요. 살도 400킬로그램 빼시면 되겠네요.”


헤르반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온갖 스트레스로 인한 반작용이었다. 케쉬그는 그런 그를 보더니, 발굽을 질질 끌어 나가면서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키 차이가 40센티미터는 나서 말 하체를 제외하면 어른이 아이를 격려하는 것처럼 보이리라고 헤르반은 생각했다.


“오늘은 여기서 묵도록. 너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족장님도 내일 돌아오실 테니 그때가 되면 논의해보도록 하지.”


케쉬그가 나가자 알리사와 발드릭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알리사는 갑작스레 헤르반을 와락 껴안았다. 헤르반은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이 올라오다가 도중에 막혀버렸다.


“걱정했잖아요, 아저씨. 하도 안 나와서 산채로 잡아먹나 걱정했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여기 족장이 내일까지는 돌아온다고 하니까, 그때 되서 결정하자는데. 그리고 한스 영주님을 배신해라, 그런 이야기도 하고. 이상한 말놈이었어.”


발드릭은 배신이라는 단어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스라치게 놀라 펄쩍 뛰었다. 중키에 뚱뚱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도약력이었다. 50센티미터는 뛰어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배, 배, 배신이라고요? 설마···”


“안 해! 안 한다니까! 난 아직 안 미쳤어!”


발드릭은 무릎에 힘이 풀렸는지 풀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날이 추운데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럼 다행이지만요. 순간 식겁했잖아요. 영주님한테 홀랑 속아서 여기 오면 안 되는 거였는데. 하지만 부탁도 있었고···”


“오호, 그 고고하신 한스 나리께서 부탁을? 말해보게. 나야말로 한스 나리의 오른팔. 우리가 이 고생을 하게 된 계기를 들어야 하지 않겠나?”


헤르반과 알리사의 시선을 졸지에 받게 된 발드릭은 우물쭈물하다가 켄타우로스가 준 털복숭이 짐승, 호저돼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능한 한 켄타우로스 가축 전문가를 찾아가서 이 ‘호저돼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까지도.


“호저돼지라. 역시 그 딱딱한 에미흐다운 재미없는 이름이군. 나라면 호저돼지 따위가 아니라 ‘털보돼지’ 같은 보다 친근감 있는 이름을 붙일텐데. 역시 그 놈은 유머가 부족하다니까.”


알리사는 불안한 표정으로 천막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보니 냄새가 고약했다. 똥 냄새랑 동물 냄새랑 기타 상상도 하기 싫은 무언가의 냄새가 났다. 초원이라 물이 없어서 청결에 신경 따위 안쓰는 건가?


“···아저씨, 정말로 여기서 하룻밤 묵는 거야? 이 풀밭에서? 나한테 가까이 오기만 해봐. 머리털 다 뽑아버릴 거야.”


“왜 나한테만 그러는지 모르겠네. 여기 발드릭 씨도 있잖아.”


헤르반은 그녀의 말에 불평했다. 그러나 알리사는 꿈쩍하지 않고 대꾸했다.


“발드릭 씨는 자식이 있는 몸이잖아요, 아저씨는 아니고. 차이야 맑은 해처럼 분명하지. 분명하고말고요.”


“···약간 분하기도 하네. 내 가치가 그 정도였다니.”


헤르반이 과장스레 땅에 주먹을 쾅쾅 치자 어쩔 줄 몰라하는 발드릭이 그를 말렸다.


“아··· 저기. 그렇게 분해하실 필요는··· 어차피 저는 그저 사냥꾼 겸 가축사육가에 불과한데···”


헤르반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보기에 발드릭은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하고 있었다.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자기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지요. 저랑은 다르게 말입니다. 자, 그럼 어떻게든 잠자리를 좋게 꾸며보도록 하죠.”



아바네리 사트카와 그녀의 병사들이 영지에 들어옴에 따라, 한스의 일상 업무는 에미흐에게 밀려났다. 한스는 이제 한 영지의 관리자가 아닌, 한 영지의 주인이 되어 손님인 아바네리 사트카 백작부인을 모시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있었다.


천 명의 완전무장한 병사들도 한스의 동분서주에 한 몫 했다. 체인메일을 입고 창과 방패를 든 보병 500명, 기병 100명, 그리고 장궁을 든 궁수 400명이었다. 역시 백작가라도 물소의 뿔을 잘라 만드는 합성궁을 대량으로 구하기란 힘든 일이겠지. 그들이 한스의 제안대로 마을과 500미터 떨어진 엘베 강 하류 쪽에 진을 쳤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바네리 사트카는 호기심이 왕성한 여인이었다. 한스의 영지가 별 것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자, 그녀는 말을 타고 나가 켄타우로스 초원, 카젤누 초원 위를 말에 타 달린 최초의 사트카 가문이 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마을 주위 요새화를 진행하는 사트카 가문 병사들은, 붉은 드레스가 휘날릴 때면 평소보다 두 배는 열심히 일했다.


한스는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따라나섰다. 손님이 가는데 주인이 같이 가면 무엇이 되겠느냐는 논리로 승낙을 받아냈다. 경쾌한 말발굽의 고동과 귓가에 스쳐지나가는 푸른 바람에 절로 기분이 상쾌해졌다.


“어머, 생각보다 말을 잘 타시네요, 귄베르크 남작.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지만요. 어서 더 빨리 달리세요. 드레스를 입은 여자보다 말을 못 몰아서야 되겠어요?”


“말이 지칩니다. 벌써 1시간 가까이 달렸습니다. 이제 물과 풀을 먹일 때입니다. 정말 성질이 불 같으시군요.”


“이 붉은 드레스도 승마에 맡게 디자인했어요. 겉으로느 사교계에 잔뜩 있는 얼빠진 년들이나 입을 옷이지만, 제 특별 주문으로 승마용으로 개조했지요. 저를 가십이나 남자만 쫓는 얼빠진 년들로만 보아주지는 않으면 좋겠네요.”


“설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당신의 아름다움에 탄복했을 뿐입니다. 아름다운 붉은 드레스와 그에 걸맞는 정열적인 성격. 어떠한 필부의 인상에 남는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어머, 그렇다면 당신이 바로 필부라는 말인가요?’


“필부라면 바로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겠지요. 사트카 부인께서는 필부의 남자를 가까이 하십니까? 포부가 있는 자를 가까이 하셔야지요.”


아바네리 사트카는 말을 멈추고 날렵한 몸동작으로 말등에서 내렸다. 한스도 등자에서 내려 풀밭에 발을 디뎠다. 아바네리 사트카는 붉은 드레스를 빙그르르 돌리며 한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한스 경, 아니 한스 씨라고 부를게요. 여기는 우리 말고는 없으니까요. 당신은 어떤 포부를 가지고 있죠? 세상이라는 흙더미에서 어떤 보물을 파헤쳐 올릴 생각이죠?”


“어려운 질문이군요. 저를 시험하실 생각이신가요?”


“당신의 그릇이 어떤 수준인지 보려는 것뿐이에요. 고작 이런 간단한 질문도 답하지 못할 만큼 당신의 그릇이 작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한스는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바라보았다. 자기 자신을 믿고 맡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족하고모자란 사람인데도 기꺼이 신뢰와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스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여유만만하게 팔짱을 끼고 기다리는 아바네리 사트카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는 제 손아귀에 닿는 사람들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고 행동하는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그러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제 제가 묻겠습니다. 아바네리 사트카, 고드윈 사트카 윈체스터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아바네리 사트카의 얼굴에 한 순간 순수한 경악의 표정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고혹적인 얼굴에 깊은 수심에 휩싸였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항상 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


“···그러면 당신도 제 숙부님을 보셨겠군요. 그 분은 사트카 가문 최대 최악의 오명. 위치를 추적할 수도 없어 당분간 포기하고 있었는데···”


“숙부님? 왜 그런 분께서 왕도에···?”


“저희도 모릅니다. 저희 사트카 가문은 켄타우로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날로 번영하는 가문이었습니다. 제 선조께서는 과거 다섯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백작가와 영지를 하사받으셨죠. 당시에는 엘베 강의 서쪽도 아직 미개척지여서, 제 선조께서는 맨손으로 농민들과 같이 밭을 일구고 돼지를 치고 과일을 땄습니다. 그렇게 일궈온 영지인데··· 그 야수들이···. 야수들이··· 배신을 했습니다.”


아바네리 사트카의 눈에서 반짝거리는 눈물방울이 굴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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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배신과 폭로(1) 20.05.21 24 0 14쪽
30 마음 풀기(5) 20.05.20 33 0 12쪽
29 마음 풀기(4) +2 20.05.19 8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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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마음 풀기(2) +2 20.05.17 31 1 13쪽
26 마음 풀기(1) 20.05.16 28 0 14쪽
25 멧돼지와 백조와 영주와 모험가(7) 20.05.15 49 0 13쪽
24 멧돼지와 백조와 영주와 모험가(7) 20.05.14 38 0 15쪽
23 멧돼지와 백조와 영주와 모험가(6) 20.05.13 29 1 14쪽
22 멧돼지와 백조와 영주와 모험가(5) +2 20.05.12 42 1 12쪽
21 멧돼지와 백조와 영주와 모험가(4) 20.05.11 61 0 15쪽
20 멧돼지와 백조와 영주와 모험가 (3) 20.05.10 58 1 11쪽
19 멧돼지와 백조와 영주와 모험가(2) 20.05.09 50 0 12쪽
18 멧돼지와 백조와 영주와 모험가 (1) 20.05.09 80 0 14쪽
17 서막 20.05.08 64 0 12쪽
16 막간, 쉬어가는 나날들 +2 20.05.07 84 3 15쪽
15 검의 끝에 놓인 길 (7) 20.05.06 118 0 15쪽
14 검의 끝에 놓인 길 (6) 20.05.05 91 0 15쪽
13 검의 끝에 놓인 길 (5) 20.05.04 105 1 18쪽
12 검의 끝에 놓인 길 (4) 20.05.03 124 0 16쪽
11 검의 끝에 놓인 길 (3) 20.05.03 111 1 15쪽
10 검의 끝에 놓인 길 (2) 20.05.02 133 1 13쪽
9 검의 끝에 놓인 길 (1) 20.05.01 144 1 13쪽
8 피체르지 공화국의 비단경매 (2) 20.05.01 139 2 17쪽
7 피체르지 공화국의 비단경매 (1) 20.05.01 17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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