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파종인류의 달과 나날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일반소설

머플로
그림/삽화
염현수
작품등록일 :
2019.08.16 17:37
최근연재일 :
2019.10.30 18:28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3,458
추천수 :
45
글자수 :
358,395

작성
19.09.25 20:31
조회
31
추천
0
글자
13쪽

불안한 협상,2

DUMMY

그는 대답을 바라지 않았지만, 이란우로오는 재깍 대답했다. “알라이파 온엘은 전부터 집단 비 확장파의 목소리 가운데 한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신념은 언제나 집단으로 향해있었습니다.”


“그럼 이건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거겠지. 이토소나, 요격함에서 메시지가 본함을 향해 직접 들어온 것이 맞나?”

“그렇습니다.”

“그럼 계속 그렇게 하게. 요격함이 당했다는 사실은 나머지 함대에게 비밀로 유지하게.”

이란우로오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들어보게. 난 귀족 카스트가 아니지만, 집단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알고 있네. 왜 집단의 지배층이 이런 막대한 확장을 감내하는 줄 아는가? 물론 확고한 사상이 뒷받침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집단의 기술과 생산력이 다른 파종인류 국가들을 따위 취급할 정도이기 때문이라네. 하지만 저 미지의 배를 보게. 우리의 가장 발달한 센서체계를 간단히 무시하고 있네. 단순한 스텔스 성능으로 기술발달을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어느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우위에 있네. 그렇다면, 만약 이 미지의 국가가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모든 파종인류 국가에게 이 스텔스 기능을 나누어준다면 어떨까?”


“확장은 계속되겠지만, 그 속도는 훨씬 저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확장을 중단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역습을 당할 수도 있지요.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지. 거기다 알라이파 온엘은 집단의 반 확장파벌의 일원이었지 않나. 그리고 알라이파 온엘은 네라이파 황제폐하의 증손녀고. 이제 이 소식이 집단에 가져올 후폭풍을 생각해보게.”


그는 잠시 부하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위대한 집단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분열되어 있었다. 확장파가 실권을 장악해 네라이파 황제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황제는 그들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알라이파 문제까지 더해지면 황제의 기반 자체가 위태롭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집단에 충성하는 군인으로써, 알라코소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 스텔스함의 분사열을 추적할 수 있나? 우주선이라면 마땅히 분사염이 있어야하지 않겠나. 광도측정기와 열 렌즈의 감도를 최대로 올리게.”


“그게... 또 이상합니다.” 이란우로오가 망설였다. “반물질 엔진을 쓰든 돌멩이를 던져서 그 추력을 이용하든 간에 보통이라면 어떻게든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배는 마치 유령 같습니다.”


만약 다른 상황이라면 알라코소는 부하의 군사 카스트답지 않음을 질책했을 터였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금 더 여유를 주기로 했다. 군사 카스트는 미신적인 마음을 최대한으로 배제하고 전투에 임해야했다. 하지만 집단의 센서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우회하다니, 헤미르나 트브리슈가 이 기술을 입수한다면 성가심 이상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배를 확보해야만했다.


“그 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다른 방법이 있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해보게.”


이란우로오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확실한 방법은 아닙니다만, 소거법을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가장 좋은 센서도 미지의 선박 주위에 일종의 역장이 있는 것 밖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역장의 존재도 2차, 3차 효과를 추적해 빅데이터로 분석한 것에서 도출한 겁니다만. 그러니 직접적인 접근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겠지요. 분석에 따르면 미지의 역장은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어떠한 형태의 신호도 모조리 차단하고 있습니다. 모든 주파수의 전자파, 빛, 중력파, 심지어 힉스장도 마찬가집니다. 방금 포착된 것은 미지의 선박이 우리 센서의 다중변조 주파수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운이 좋았죠. 하지만 이제는 적응한 모양입니다.”


이토소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이란우로오의 설명을 입을 약간 벌린 채 경청하고 있었다. 멍청해 보인다고 자주 지적받던 버릇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3만 척이 넘는 군함이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우리 하위집단 소속이니 조율하기도 그만큼 쉽겠죠. 그 배의 진로를 분석해보니, 우리 뒤쪽의 워프 가능 구역을 노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메티시니로 가는 최단경로를 말입니다.”


그는 메티시니로 그 배를 보내는 쪽이 훨씬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항성 2개를 채굴해서 건설한 메티시니는 집단의 나머지 다이슨 스피어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무거웠고, 그만큼 방비도 철통처럼 되어있었다. 항성계 주위를 얇은 베일처럼 감싸는 감지베일은 어떠한 빛의 주파수나 장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물리적인 접촉만으로 들어오는 배들을 식별했다. 여려 겹인데다가 항성계의 외곽 전체를 덮을 정도로 넓고 얇다보니, 물질이나 기타 특수한 소립자로 이루어진 존재라도 이 탐지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메티시니는 집단의 탄생지이자 이백조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었다. 집단 외 파종인류 인구의 다섯 배가 넘는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삶을 보내는 장소, 아니 신성한 성역인 곳이었다. 그런 곳에 미지의 우주선을 보낸다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이란우로오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센서 집합체들의 경로를 수정하고, 요격함들과 순찰함들을 불러들여서 경로를 강제할 계획입니다.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전송해드리겠습니다.”


알라코소는 때때로 군사 카스트의 처리능력이 귀족 카스트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에 의문을 품고는 했다. 군사 카스트는 전장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흡수하며 즉각적인 판단을 내려야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집단의 중추이자 외교관인 귀족 카스트들이 그런 기능을 가지지 않은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힘의 균형을 위해서일까? 그는 머리를 흔들어서 생각을 털어냈다. 군사 카스트답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자주 군사 카스트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수고했네, 이란우로오. 이토소나, 이것에 맞게 각 함에 명령을 하달하게.” 이토소나는 두말없이 작업에 착수했다. 이란우로오는 방대한 갑각으로 뒤덮인 등을 쭉 펴고 잠시 스트레칭을 하다가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는지 의자를 돌려 말했다.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그 스텔스선이 최근에 감지된 속도를 계속 유지한다고 추측해보았을 때, 앞으로 2시간 안에 전열의 후방에 당도할 것이라 예측됩니다. 거기엔 다른 하위집단들의 함장들이 대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긴, 우리 지휘체계에 있기는 하지만 영 성가신 존재들이 아닐 수 없어. 이토소나, 자네 장기를 써서 달콤한 말로 그들을 꼬드기게. 적 함대를 먼저 공격할 지휘를 줄 테니 위치를 함대 앞으로 조정하라고 말이네. 그리고 이란우로오, 다시 한 번 수고했다는 말을 해야겠네. 순찰함대를 늘려서 그 틈 사이로 빠져나가게 해, 예상 현위치를 포착한다니, 머리 좀 썼군. 물론 시간을 한참 들여서 우회한다면 아무 소용없겠지만, 집단군의 한복판으로 곧잘 들어가는 대범함을 감안해 보았을 때, 그럴 것 같지는 않군. 수고했네.”


“과찬이십니다. 예상 위치에 요격함대를 보내서 가로막을까요?”


“아니.” 그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에 몸을 펴자 등의 3중 갑각이 맞물리며 불쾌한 꾸드득 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쩌면 온 함대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만약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좋지 않아. 그러면 따뜻하게 맞아들일 수밖에 없잖나. 메티시니로 긴급통신을 보내고 미지의 선박 예상 경로를 따라 광범위 레이저통신을 보내게. 그리고 우리 선박을 그 예상경로 바로 옆에 위치시키게. 경로가 확실하다면 바로 우리 배 옆을 지나게 될 테니 말이네. 그럼 지금부터 통신을

입력하겠네. 만약 답장이 들어온다면 바로 실시간으로 전환하게나.”


이토소나가 주저하는 모습이 뻔히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외교는 귀족 카스트의 소관이었으니까. 하지만 상관이 직접 나서야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망치고 싶은 일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탸크 이야소파의 함교를 채운 흥분은 이제 시든지 오래였다. 집단군과의 전투가 없을 거라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탸크 이야소파는 갑작스러운 궤도변경 없이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항해했고, 또 다른 요격함대나 은폐된 센서군집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위나와 알라이파로써는 천만다행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던 가상의 워프 항해와는 달리, 실제 초광속 이동은 상당히 복잡했다. 개념 자체는 고대 지구부터 마련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가능하게 한 것은 한 파종선의 인공지능이었다. 해당 파종선은 원시적인 레이저통신을 통해, 다른 파종선들에게 오랜 기간 이 정보를 전달했고, 이때를 기점으로 파종속도가 수천 배에서 수만 배나 상승하게 되었다. 일로스키아 역시 이 워프 변곡점 이후 3년 만에 파종된 행성이었다. 비록 일로스키아를 파종한 ‘서울’은 연쇄적인 기능사고 때문에 곧바로 행성으로 추락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고대부터 수많은 파종인류 국가들 역시 워프엔진을 활용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과학자들을 초빙한 국가들이 있었고, 아예 파종선에 관한 미신에 의존해 워프엔진을 얻으려는 국가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초광속 이동이 없었기 때문에, 궤도시설을 이용한 레이저통신이나 아광속 우주선에 의존해야만 했다. 정보공유는 달팽이가 기어가듯 느렸다. 마침내 삼색인들이 파종인류사상 처음으로 워프 항해를 발명했고, 곧바로 이웃들 머리 위로 군함을 옮기는 것이 이를 기념하는 적합한 방식이 될 것이라고 결정했다. 시간이 지나 삼색인 제국이 몰락한 후, 워프 엔진의 원리는 우주 구석구석까지 퍼지게 되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우선 항성 궤도를 도는 발전소나 거대한 핵융합, 반물질 단지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들여 극소량의 이종물질을 생산한다. 이종물질은 질량의 음수이기 때문에, 3차원 공간의 ‘수면’의 높낮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은하계에 널리 퍼진 워프엔진은 우주선 앞쪽의 공간수면을 낮추고, 우주선 뒤쪽의 수면을 높게 한다면, 높아진 수면이 낮은 쪽으로 이동하면서 우주선도 파도 위의 서핑보드같이 떠밀리게 된다.


하지만 이 ‘떠밀림’의 방향을 제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고, 탸크 이야소파 호가 위험을 무릅쓰고 위대한 집단의 전투함대 후방으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메티시니로 향하는 가장 빠른 경로를 그들이 점령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인 점은 범자의 우주선도 이 법칙에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위험을 무릅쓸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당초 계획은 들키지 않고 메티시니까지 가는 것이 아니었소? 지금 일이 돌아가는 형세는 범자가 보기에 반대 같소만.” 알라이파는 샤웰캬와캬의 질문에, 일로스키아인이라면 코웃음이라고 할 만한 동작을 취했다. 나위나는 전부터 알라이파와 샤웰캬와캬 사이의 미묘한 경쟁의식을 느껴오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행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위나는 문득 뭔가 깨달았다. 범자들은 절대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기들을 지칭할 때도 그랬다. 일종의 문화나 언어적 관습일까?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원래 그랬소. 하지만 이 배가 집단의 센서에 발각된 지금은,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집단군의 감시체계에 들어와 있는 상태요. 몰래 빠져나가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오.”


“그렇다면 범자들은 그저 낚싯줄에 낚인 물고기처럼 기다릴 뿐이겠군.” 샤웰캬와캬는 팔을 머리 뒤로 포개고는 방석 위에 누웠다. “그보다 그대 일로스키아인은 항상 보이는군. 알라이파가 그대를 매우 신임하나 보오.”


“신임은 양방향이오. 한쪽에서 무조건으로 주기만 하는 신임은 뭔가 잘못되기 마련이지. 집단에서는 신임을 두 개의 날을 가진 단검이라 부르오. 지금 우리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지. 그대는 우리에게 신임을 바라면서, 아직 그대는 우리에게 마땅한 것을 주지 못했소.”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파종인류의 달과 나날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새 삽화 19.09.14 53 0 -
77 메티시니의 달밤 아래에서[완] 19.10.30 22 0 10쪽
76 아스라한 기억의 소금발을 잡으려 애쓰고,3 19.10.28 24 0 13쪽
75 아스라한 기억의 소금발을 잡으려 애쓰고,2 19.10.26 20 0 12쪽
74 아스라한 기억의 소금발을 잡으려 애쓰고,1 19.10.25 28 0 12쪽
73 대면,4 19.10.25 22 0 10쪽
72 대면,3 19.10.18 29 0 9쪽
71 대면,2 19.10.15 21 0 10쪽
70 대면,1 19.10.14 23 0 11쪽
69 올라가는 길,2 19.10.13 22 0 11쪽
68 올라가는 길,1 19.10.12 30 0 12쪽
67 메티시니 습격,7 19.10.10 24 0 9쪽
66 메티시니 습격,6 19.10.09 152 0 13쪽
65 메티시니 습격,5 19.10.09 27 0 10쪽
64 메티시니 습격,4 19.10.07 22 0 14쪽
63 메티시니 습격,3 19.10.06 21 0 17쪽
62 메티시니 습격,2 19.10.05 31 0 11쪽
61 메티시니 습격,1 19.10.04 30 0 12쪽
60 황제와의 만담 19.10.03 27 0 12쪽
59 집단과 범자, 그리고 그돈나의 과거,2 19.10.02 35 0 7쪽
58 집단과 범자, 그리고 그돈나의 과거,1 19.10.01 24 0 10쪽
57 메티시니-위대한 집단의 수도,3 19.09.30 30 0 12쪽
56 메티시니-위대한 집단의 수도,2 19.09.29 33 0 10쪽
55 메티시니-위대한 집단의 수도,1 19.09.28 41 0 8쪽
54 불안한 협상,4 19.09.27 36 0 9쪽
53 불안한 협상,3 19.09.26 41 0 9쪽
» 불안한 협상,2 19.09.25 32 0 13쪽
51 불안한 협상,1 19.09.24 39 0 10쪽
50 선택과 결정,2 19.09.23 36 0 11쪽
49 선택과 결정,1 19.09.22 33 0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