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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영 님의 서재입니다.

금룡진천하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07.12.11 09:55
최근연재일 :
2007.04.2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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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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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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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글자수 :
44,987

작성
07.04.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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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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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금룡진천하 - 6

DUMMY

하선란은 이름을 듣고서야 그를 알아보았다.

“아, 진초운! 거지가 되서 돌아왔다더니 진짜였네? 이 어두운 밤에 그런 꼴을 하고 있으니 오는 줄도 몰랐어.”

마을은 크다. 진초운은 오늘 도착했다. 그런데도 벌써 그의 귀향 이야기가 퍼졌다. 개천에는 그만큼 그를 아는 사람이 많았다.

진초운은 청소년기에 이미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손을 댔다. 큰 돈은 못 벌었지만 밥 먹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 시절에 하선란은 진초운을 몇 번 고용한 적이 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니다.

하선란이 궁금한 마음에 질문했다.

“그런데 초운이 너 같은 사람이 그런 꼴이 되다니 의외네. 똘똘하던 네가 사기를 당했을 것 같지는 않고. 산적이라도 만나 돈을 다 빼앗긴 거니?”

진초운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유미미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잡곡밥 한번 못 지어먹을 만큼 가난하게 살던 네가 그렇게 빨리 쌀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것도 그렇게 많이. 혹시나 했더니 역시...’

아픈 속마음을 감추고 질문했다.

“왜 그랬어?”

유미미가 얼굴을 붉혔다.

“오, 오라버니께서 오랜만에 돌아오셨잖아요. 단 며칠이라도 쌀밥을 드시게 하고 싶어서...”

듣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

“네가 그러면 내 마음이 편치 않구나.”

유미미는 진초운에게 꾸중을 듣는다고 생각했다. 대답하지 못하고 울먹였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니까...”

진초운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대로가 더 예뻐.”

‘마음이 제일 예쁜 녀석.’

유미미가 진초운에게 머리를 기대었다.

“오라버니...”

하선란의 목소리가 그 분위기를 깼다.

“진초운.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나는 이미 돈을 지불했어. 보아하니 그 돈을 이미 쌀을 사는데 써버린 모양이지? 그렇다면 그 아이의 머리카락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거 아닐까?”

진초운이 하선란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독하게 굴던 사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상하군.’

“돈은 내일 돌려드리죠.”

하선란이 진초운의 거지꼴을 물끄러미 보았다.

‘한 푼도 없겠군.’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철전 열 개를 하루 만에 구할 수 있다고?”

“저를 아실 텐데요?”

“알지. 옛날의 초운이라면 가끔이나마 철전 열 개를 버는 날이 있었지.”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아니. 이젠 상황이 달라. 요새는 우리 마을에 십원문의 무사들이 머물고 있어. 무공이 필요한 일은 보통 그들이 처리하지. 그들과 경쟁해서 단 하루 만에 철전 열 개를 버는 건 어렵다고 본단다.”

“예전에도 무공 때문에 저를 쓰신 건 아니죠. 새로운 일거리는 찾아낼 수 있어요.”

대답할 말이 막힌 하선란은 인상을 쓰며 잠시 머뭇거렸다. 이내 환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문제도 있어. 너네 집은 빚이 많은데 그건 어떻게 할 거지?”

“제가 꾼 돈도 아닌데 갚아주면 빚쟁이가 고맙게 생각해야지요. 어느 빚을 먼저 갚을지는 제가 결정합니다.”

“모르는 소리. 빚쟁이를 우습게보지 마. 미미가 왜 계속 거지꼴로 산 것 같아? 너라도 해도 방법이 없을 거야. 난 지금 돈을 돌려받아야겠어. 그러니 그냥 미미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해. 미미의 말처럼 머리는 다시 자라잖아?”

진초운은 미미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선란이 자꾸 시비를 걸자 성질이 났다.

‘이 아줌마 겨우 삼 년 만에 왜 이렇게 까칠하게 변했을까? 우리 미미의 머리카락을 돈 몇 푼에 잘라가려고 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여길 그냥 엎어버릴까?’

하지만 그는 마두가 아니다. 대마두가 되려던 생각을 아주 잠깐 먹은 적이 있지만 그건 미미를 만나는 순간 깨끗이 날려버렸다.

‘그래도 이 아줌마가 꼬맹이를 믿고 돈을 준 건 사실이지. 담보를 잡은 게 미미 머리카락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갚기는 갚아야겠지.’

“내일까지 돌려주지 못하면 은자 한 냥으로 갚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죠.”

하선란은 믿지 않았다.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야? 마을사정이 옛날과 다르다니까. 게다가 은자 한 냥? 그걸 하루 만에 어떻게 벌려고? 옛날에도 그렇게는 못 벌었어.”

진초운이 하선란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 웃음 속에 무한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그의 기운이 하선란에게 전해졌다. 하선란은 의문이 들어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왜 이렇게 자신만만한 거지?’

그녀가 입을 다물자 진초운은 유미미를 데리고 하가장을 나섰다. 한마디 인사는 남겨놓았다.

“내일 뵙죠.”

그가 사라지고 난 후, 하녀들이 한숨을 토했다.

“후아아. 초운 오빠. 역시 멋있어!”

“그러게. 거지가 됐는데도 분위기가 옛날보다 훨씬 더 좋잖아.”

하선란은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더 따지고 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왜 그만뒀지? 초운이가 돌아왔으니 미미를 까까머리로라도 만들어야 하잖아. 그런데 왜 그만뒀지?’

예전에는 진초운의 기운에 눌리지 않았다. 그 시절 그녀는 진초운에게 일을 맡기는 입장이었다. 그의 능력은 인정했으나 고용주의 권리를 포기한 적은 없다.

“화나! 그냥 넘어갈 줄 알고? 내일까지 돈 못 가져오면 아예 그 집 빼앗아 버릴 거야. 아아, 답답해라. 어떻게 해야 초운이가 돈을 못 가져오지?”

그녀의 곁으로 하가장의 총관이 다가왔다.

“마님.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총관. 방법?”

“그가 돈을 벌지 못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하선란의 얼굴에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무슨 좋은 수가 있어?”

총관은 진초운이 사라진 대문 쪽을 힐끗 보고 그가 없음을 확인한 후 말했다.

“어차피 요새 세상에 저런 거지에게 돈을 꿔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돈을 구하려면 일을 해야 합니다.”

하선란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 녀석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초운이야. 그의 재주가 삼 년 전 그대로라면 철전 열 개 정도의 일은 찾을 수 있을 거야. 화나!”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렇겠지요.”

“그게 무슨 소리야?”

총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제가 오늘 밤에 손을 써 두겠습니다. 내일 하루 동안 그에게 일거리를 주는 곳은 없을 겁니다.”

“그게 가능해? 우리 마을은 꽤 큰데?”

“하루에 철전 열 개를 받을만한 일거리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줄 곳은 뻔하니 하루 정도라면 틀어막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내일 하루. 누구도 그를 받아주지 않을 겁니다.”

하선란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총관.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어. 하지만 상대는 진초운이란 말이야. 궁지에 몰리면 무슨 수를 낼 거야.”

총관이 웃었다.

“후후. 제 계책이 겨우 그것 하나뿐이겠습니까? 설사 그가 무슨 수를 내서 일자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돈을 받으려면 먼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합니다.”

“당연한 일이지.”

“그의 집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빚쟁이에게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넣겠습니다. 그가 돈을 구할 때쯤에는 빚쟁이가 들이닥치겠지요. 마님도 아시다시피 그놈들은 꽤나 지독하게 뜯어갑니다.”

하선란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유쾌하게 웃었다.

“오호호홋. 그런 수가 있었구나. 맞아. 미미 저 아이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어. 아무리 초운이라고 해도 한 푼도 못 빼돌릴 거야. 그러고 보니 이건 화낼 일이 아니었구나. 이건 복이었어. 복.”

“다 마님의 복입니다.”

그녀가 진초운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즐거운 상상을 했다.

‘돈을 계속 꾸어주고 절대로 갚지 못하게 하는 거야. 그래서 그를 돈으로 옭아매서 내 몸종으로 쓰는 거야.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 잘 때도. 이제 미미의 미모를 경계할 필요 없어. 아, 진초운을 내 마음대로 하게 되다니. 평생소원을 풀게 생겼네.’

그녀의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 * *

진초운은 하가장을 나선 후 대문 뒤쪽 담벼락에 몸을 기댔다. 그 상태로 감각을 장원 안쪽으로 향했다. 내공을 끌어올려 청각을 향상시켰다.

일부러 대문 근처를 떠나지 않고 엿들은 것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 실망한 것이 너무 많아서였다.

결국 그는 하선란과 총관의 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진초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아줌마는 나랑 무슨 원수가 져서 저렇게까지 하려는 거야?”

유미미는 장원 안쪽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혼잣말을 하는 진초운이 이상해 보였다.

“오라버니. 무슨 말씀이세요?”

“별거 아니다. 집에나 가자.”

그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이런 망할 놈의 세상. 지켜주지 않을 거야. 흥하든 망하든 니들 마음대로 알아서 하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미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진초운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오라버니. 철전 열 개는 큰 돈이에요. 그런 돈을 어떻게 구하시려고요?”

진초운이 큰소리를 팡팡 쳤다.

“걱정 마라. 내가 누구냐? 나 진초운이야. 진초운.”

유미미는 나름대로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네가 어떻게?”

“쌀을 사고 남은 돈이 있어서 땅에 파묻어두었어요. 그리고 쌀도 도로 팔면 되요. 급히 팔면 제값을 못 받겠지만 그게 어디에요? 부족한 돈은 제가 사정해 볼게요.”

“안 통할걸?”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어요. 저 마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이해해 주실 거예요.”

진초운이 유미미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녀석.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한다. 넌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유미미는 진초운을 믿고 싶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진초운이라면 무슨 수라도 낼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옛날의 오라버니. 지금은 거지가 됐는데 돈을 어디서...’

그녀의 눈에 진초운의 허리에 찬 검이 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혹시 그 칼을 팔려는 거예요? 안돼요. 그러지 마세요. 무인에게 칼은 소중한 거잖아요. 돈은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요.”

“하하. 무공도 모르는 녀석이 아는 척 하기는. 걱정 마라. 이 칼은 팔지 않아. 만에 하나라도 이걸 알아보는 놈이 나타나면 좀 곤란한 일이 생기니까.”

유미미는 깜짝 놀랐다.

‘누가 알아보면 안 된다고? 훔친 걸까?’

그녀가 고개를 격렬히 흔들었다.

‘아니야. 오라버니는 구걸이라면 몰라도 도둑질을 할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진초운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았다.

‘귀여운 녀석.’

“이거 주웠어.”

유미미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정말 주운 거예요?”

“어느 동굴에 버려진 걸 주웠다. 그래서 칼이 이렇게 없어 보이잖아.”

그가 칼을 뽑아 칼날을 보여주었다.

“이거 봐. 날도 제대로 안 서 있지? 이딴 걸로 도대체 뭘 자를 수 있겠어? 이건 분명히 어느 대장장이가 만들다 실패해서 버린 거야. 그래서 내가 주웠지.”

유미미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밝아졌다.

“그러니까 주인이 찾으러 올 일이 없는 물건이라는 거네요?”

진초운이 호언장담했다.

“바로 그거지!”

‘이백 년 전에 조상님은 자기 손자에게 물려주려고 수련동을 만들었지만, 그 손자 조상님은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늙어죽었잖아. 주인 없는 물건을 후손 중 하나인 내가 갖겠다는데 누가 감히 내놓으라고 할 거야?’

유미미는 잠시 걱정을 잊었다. 눈을 반짝거리며 신이 나서 말했다.

“오라버니. 정말 잘 하셨어요. 그런 물건은 무조건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예요. 다른 건 뭐 주운 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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