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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영 님의 서재입니다.

참마전기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09.06.03 23:15
최근연재일 :
2009.06.03 23:15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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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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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글자수 :
59,880

작성
09.01.0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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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참마전기(마존참회록) - 4

DUMMY

유난극이 쌀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시장을 씩씩하게 걸어갔다. 기억을 잃었기에, 시장의 골목골목을 새로 기억했다. 이제 의부의 중앙시장에 관해서는 손바닥처럼 잘 알았다.

유난극이 중앙시장에서도 꽤 유명한 식당에 들어섰다.

“배달이요!”

이 식당의 여주인 오유선은 삼십대의 요염한 기운을 풍기는 미녀였다. 그녀가 원숙한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뿌리며 유난극을 맞았다.

“어머. 난극 총각은 정말 힘이 장사야. 어쩜 그걸 공깃돌 다루듯이 쉽게 가져와?”

유난극이 투덜댔다.

“공깃돌보다는 무겁거든요?”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밥이라도 먹고 갈래?”

“됐네요.”

젊은 여자가 남편 없이 사는 삶은 편안하지 않다. 낮에는 고단하고 밤에는 외롭다. 그래도 그동안은 딸 하나를 곱게 키우며 꽤 조신하게 살았다.

그런 그녀였지만 요즘 들어 상황이 변했다. 그녀는 유난극만 보면 몸이 후끈 닳아 올랐다.

오유선이 유난극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쩝.”

유난극이 흠칫 몸을 떨더니 쌀가마니를 식당 뒤쪽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잘못하면 잡아먹힐라. 얼른 빠져나가자.’

막 일어서던 그의 눈에 작은 쌀자루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유난극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사물을 보는 능력이 몇 배나 활성화되었다. 쌀자루를 이루는 지푸라기의 형태가 눈에 박히듯 그러졌다.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한 능력이다.

그건 그가 아는 쌀자루다. 아까 그 자루에 쌀 한 말을 담아 하정호에게 주었다.

유난극은 하정호를 걱정했다.

“아줌마. 이 쌀 어디서 났어요?”

혹시 하정호가 쌀을 가지고 돌아가다가 누군가에게 빼앗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유선은 유난극이 질문을 해 주자 그걸 기회로 삼으려고 슬그머니 다가왔다.

“이거? 정호라는 애가 판 거야. 애가 꼭 사달라고 하는 게 불쌍해서 스무 푼 주고 샀어. 쌀은 괜찮더라고.”

유난극이 인상을 찌푸렸다. 갖다 팔라고 퍼준 쌀이 아니다.

“정호에게 샀다고요?”

“어머. 왜? 다른 쌀집에서도 쌀을 사나 해서? 걱정하지 마. 이건 애가 불쌍해서 특별히 산 거야, 난 총각네 쌀집 단골이니... 어머. 난극 총각. 어디 가?”

유난극이 더 듣지 않고 식당을 나왔다. 그는 하정호가 그 쌀을 가지고 밥을 지어먹기를 바랐었다.

괘씸했다.

“이 쪼끄만 놈이 하는 짓 좀 봐라. 쌀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퍼 줬더니 그걸 그새 팔아먹어?”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내가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바보취급은 안 받고 사는데 말이야. 그런 조그만 녀석이 감히 나를 만만하게 보고 사기를 쳐? 이 쥐방울, 너 이제 큰일 났다.”

* * *

하정호가 시장을 어슬렁거렸다. 그의 손에는 아까처럼 철전 한 닢이 쥐어져 있었다.

“홍가쌀집은 이제 못 가고, 어디 가야 쌀을 많이 줄까?”

하정호가 손을 펴 철전을 확인했다. 한 닢, 한 푼의 값어치를 가진 돈이다.

그런 그의 손목을 다른 큰 손이 덥석 잡았다.

“그거 주면 쌀을 또 한 말이나 줄 거 같냐?”

하정호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유난극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하정호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아, 아저...”

유난극이 처음부터 본론을 꺼냈다.

“내가 준 쌀 식당에 팔아먹고 얼마 받았냐?”

하정호의 눈이 놀라 커졌다.

“히익!”

“스무 푼 받았다고?”

“그, 그걸 어떻게...”

“니가 뛰어봐야 쥐벼룩이지.”

유난극이 하정호의 팔을 위로 당기고 몸을 툭툭 털어보았다. 쇳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정호가 가진 돈이라고는 손에 든 철전 한 닢이 전부였다.

유난극은 포기하지 않았다. 억울해서라도 돈을 모조리 돌려받을 생각이었다.

“가자.”

“예? 어, 어딜...”

“니네 집. 가서 내가 더 준 쌀 받아와야지. 아니지, 이미 팔아먹었으니 돈으로라도 도로 찾아와야지.”

놀란 하정호가 몸을 뒤로 빼며 버텼다.

“죄송해요. 팔아먹은 거 죄송해요. 그래도 집에는 안돼요. 집에는...”

유난극이 하정호를 질질 끌고 갔다.

“버티면 될 거 같냐? 어떻게 쪼끄만 놈이 벌써부터 사람 호의를 이용해서 사기를 치고 다녀? 내가 준 거니까 도로 회수한다. 이자 단단히 쳐서.”

이자라는 말에 하정호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절망에 빠진 표정이었다.

* * *

하정호의 집은 시장에서 꽤 가까웠다. 방 두 칸에 작은 부엌이 딸린 작고 낡은 집이었다.

유난극이 씩씩거리며 하정호의 집으로 향했다. 목표가 눈에 보이자, 당당하던 그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어라?”

집에서 나오는 냄새가 어쩐지 익숙했다.

유난극이 집에 들어선 후 하정호의 손을 놓았다. 하정호가 급히 뒤로 몸을 뺐다.

유난극은 하정호는 무시하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호니?”

소녀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그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녀는 유난극의 뒤에 서 있는 하정호를 발견하고 마음을 조금 놓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남자가 방문을 열었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했다.

“누구신지...”

유난극은 이 시점에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내가 준 쌀을 팔아 약을 샀구나. 원래는 쌀 살 돈도 없었으니까 약도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겠지. 돈을 만들어서 일단 약부터 썼다는 이야긴데... 이거 좀 미안하잖아.’

하정호가 시무룩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유난극이 화가 잔뜩 난 채 그를 끌고 왔으니 조용히 넘어가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누나. 저기... 사실은...”

유난극이 그런 하정호의 머리를 쿡 눌러 말을 못하게 한 후 소녀에게 말했다.

“남들이 날 유난극이라고 부른다. 정호가 자기 누나 진찰이라도 한 번 해달라고 하도 졸라서 따라왔지.”

소녀, 하정화의 얼굴에 비로소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아, 의원이세요?”

이번에는 유난극이 당황했다. 진찰이라는 건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 말이다.

‘에구. 진찰해 준다는 건 핑계 치고 좀 심했나?’

대충 둘러댔다.

“하하. 의원은 아니고, 그냥 진맥만 좀 봐.”

진맥을 보는 척 흉내를 내는 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아아, 그러시구나.”

하정호가 유난극을 쳐다보았다.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아저씨. 맥...도 보세요?”

유난극이 속으로 고개를 마구 저었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봐. 내 직업은 마부였던 것 같은데.’

겉으로는 당당했다.

“그것도 모르면서 진찰해달라고 했냐? 내가 원래 진맥을 잘 보는 건 아닌데, 그래도 기본은 대충 알지. 어흠.”

보는 시늉만 할 생각에 큰소리를 쳤다.

하정호는 상황이 변했다는 걸 눈치 챘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군소리 없이 유난극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유난극이 어쩔수 없이 하정화의 곁에 앉았다. 하정화의 말라서 가늘어진 손목이 보였다.

유난극이 손가락을 쫙 편 후 하나씩 손목에 감았다. 자세는 그럴싸했다.

생판 모르는 남자가 자기 손목을 잡자 하정화의 창백한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유난극이 손목을 잡은 김에 말까지 보탰다.

“내가 사실 삼각산에서 사 년, 불암산에서 사 년 동안 수련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거든. 그러니까 이 정도 병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만 믿어. 나만.”

하정화도 유난극이 정식 의원이 아니라는 건 눈치를 챘다. 그래도 그 약장수 같은 말투가 재미있어서 살짝 웃었다.

“훗.”

그녀의 손목을 잡은 유난극은 웃지 않았다.

‘어라?’

하정화의 몸 상태가 그림을 보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먹을 것 제대로 못 먹은 상태로 너무 무리해서 기가 약해진 거잖아. 이대로 놔두면 약해진 기를 보충하지 못해서 본격적으로 탈이 나고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실수로 했다.

“한 달 안에 죽겠는데?”

하정화와 하정호 남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주, 죽어요?”

유난극이 말실수를 깨닫고 급히 표정을 바꾸었다.

“하하하. 내가 안 왔다면 말이지. 하지만 내가 누구야? 두 산에서 총 팔 년간 수련을 한 전설의 명의란 말씀이지. 내가 왔으니 죽을 일은 없어.”

하정화의 얼굴이 겨우 펴졌다. 그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아서다.

유난극이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내가 이걸 어떻게 알지? 난 마부 아니었나? 혹시 내 과거가 의원?’

의원은 고소득 직업이다. 적어도 마부나 쌀집 점원보다는 수입이 훨씬 낫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내 과거가 의원이라면 정말 좋겠다. 팔자 피는 거잖아.’

그 미소를 본 하정화가 따라 웃었다.

‘내 상태가 좋나보다.’

유난극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환자의 상태가 아니라 자기 처지 생각이었다.

‘이제 의술만 기억나면...’

자신이 아는 의술이 뭐가 있는지 기억해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자기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의술이라고 기억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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