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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영 님의 서재입니다.

참마전기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09.06.03 23:15
최근연재일 :
2009.06.03 23:15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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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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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글자수 :
59,880

작성
09.01.0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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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참마전기(마존참회록) - 3

DUMMY

조금 전에 시장 사람들의 시선에서 경계하는 마음을 보았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홍철언에게 미친개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인간이었는지는 몰랐다. 기억이 없기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유난극이 말을 살짝 더듬었다.

“미친개...였습니까?”

홍철언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하하. 사람 잘못 봤다니까요. 미친개 유난극은 거의 십 년 전에 우리 도시를 떠난 놈입니다.”

“못됐었나요?”

“못되기는요.”

유난극이 희망을 살짝 가졌다.

“그럼 아주 나쁘지는 않은...”

“못 된 정도가 아니라 미친개였다니까요.”

“아니, 그래도 사람인데 미친개는 좀...”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게 얼마나 성질이 더러운지 다들 슬슬 피했지요. 여러 해 전에 미친개가 다른 지방에서 칼 맞아 죽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소식이 없는 걸로 봐서 죽긴 죽었나 봅니다.”

유난극이 머리를 굴려보았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름을 조용히 읊어보았다.

“유난극.”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생소했다.

홍시현이 곁에서 질문했다.

“이보게. 뭔가 기억이 나는가?”

유난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미친개였을 것 같지는 않은데...”

홍철언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홍시현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기억이라니요?”

홍철언이 유난극의 사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기억상실이라더라. 이 친구는 지금 자기 이름도 몰라.”

그 말을 듣자마자 홍철언이 자기도 모르게 홍현미의 팔을 잡아 자기 뒤쪽으로 당겼다.

“혹시... 진짜 미친개 유난극?”

유난극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 * *

유난극이 이 도시, 의부를 떠난 것은 팔 년 전인 스무 살 때다. 지난 팔 년의 세월이 그의 외모를 조금 변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때의 그는 항상 눈꼬리에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싸움을 할 때는 그 눈이 상대를 잡아먹을 것처럼 매서워졌다. 그 눈매 하나만 가지고도 싸움터에서 반은 먹고 들어갔다.

반면에 지금의 유난극의 눈매는 부드러웠다. 기억상실로 살기조차 잊어먹어서다.

그래서 홍철언은, 유난극이 그가 아는 그 미친개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확신을 못했기에, 유난극이 불쌍하니 잠시라도 머물게 하자는 홍시현의 제안을 거절하지도 못했다.


홍철언이 쌀집에 앉아서 고민했다.

‘그냥 쫓아낼 걸 그랬나? 아니야. 그랬다가 옛날 성질이 튀어나오면...’

그때, 유난극이 쌀가마니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홍철언에게 다가와 질문했다.

“아저씨. 이건 어디다 둘까요?”

쌀가마니는 무겁다. 하지만 유난극은 그걸 가볍게 들고 있었다. 태연한 모습을 보니 의심이 들었다.

‘속에 쌀을 어디다 팔아먹고 짚을 채운 건 아닐까? 미친개라면 그러고도 남지.’

확실히 옛날의 미친개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유난극은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뒤뜰 창고에 넣어둬.”

유난극의 곁에서 홍현미가 호들갑을 떨었다.

“와아. 오빠. 힘 장난 아니게 세네요?”

유난극이 쌀가마니를 어깨에 걸친 채 다리를 굽혔다 펴 보이며 큰소리를 쳤다.

“하하하. 이쯤이야! 으이쌰! 으이쌰!”

홍현미가 박수를 쳤다.

“와아아!”

그걸 보는 홍철언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확실히 저딴 실없는 짓이나 하는 걸 보면 미친개는 절대로 아닌데...”

유난극이 쌀가마니를 들고 어깨를 으쓱대며 홍현미를 데리고 창고 쪽으로 사라졌다.

홍철언이 이마를 짚었다.

“이거 골치 아프다. 아니라고 보기에는 생긴 게 너무 많이 닮았단 말이야.”

* * *

홍시현은 홍가쌀집에 겨우 이틀을 머물렀다. 그리고는 볼일이 있다며 수레를 몰고 떠났다.

홍철언의 고민이야 어쨌든, 홍시현은 유난극이라는 공짜일꾼을 남겨두었다.

유난극은 일을 빨리 배웠다. 쌀을 비롯한 곡물의 품종과 가격을 빠르게 파악한 건 물론이고 사람들과 흥정도 잘 했다. 배달할 일이 있으면 한달음에 다녀왔다.

홍철언이 조금씩 유난극을 신뢰했다.

“미친개가 아닌가보다. 뭐, 계속 저대로라면 미친개가 맞아도 상관없고.”

유난극에 대한 신뢰가 커질수록, 홍철언이 가게를 지키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유난극이 쌀가게 앞에서 시장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바쁘게 사는 삶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눈에 익숙했으면 좋으련만, 모조리 생소했다.

“나는 유난극일까? 유난극이 아닐까? 미친개일까? 미친개가 아닐까?”

그의 앞에 작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유난극이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던 걸 멈추고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열서너 살이나 됐을까 싶은 소년이 그의 앞에서 머뭇거렸다.

“저, 저기. 아저씨.”

“뭐 사게?”

소년, 하정호가 꼬질꼬질 때가 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철전 한 닢이 들려 있었다.

“저기. 이거로... 쌀을...”

철전 한 닢을 한 푼이라 한다. 철전 백 닢을 모아야 은전 하나가 된다.

은전 한 닢을 한 냥이라 한다. 금전은 한 닢을 열 냥으로 치며 액수가 너무 커서 이런 시장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은전 한 닢, 한 냥이면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다. 한 가마니의 무게는 보통 백 근이 넘는다.

한 가마니가 다섯 말이고, 한 말이 열 되다.

철전 한 닢은 한 푼이다. 거지가 ‘한 푼만 줍쇼’라고 할 때 쓸 정도로 작은 액수다.

한 푼으로는 쌀을 많이 줘야 반 되가 고작이다.

한 가마니의 쌀을 백으로 나누면 반 되가 나온다. 따라서 한 푼에 반 되 정도기는 한데, 그건 가마니째 샀을 때의 가격이다. 이렇게 한 푼으로 사면 반 되는 고사하고 두세 홉이 고작이다.

유난극이 됫박을 잡았다.

“그래. 이 정도면...”

인심 써서 반 되쯤 퍼주려고 했다. 그런데 쌀 반 되를 됫박에 담자 그 양이 워낙 보잘것없었다.

‘이거 가지고 한 끼나 제대로 먹을까 싶네.’

쌀 반 되는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양이다. 실제로 작은 가족이 한 끼 배부르게 먹으면 끝난다.

유난극이 소년의 옷이나 몸 상태를 다시 돌아보았다. 못 먹은 태가 역력했다.

‘가끔 굶겠는데?’

유난극이 반 되의 쌀을 도로 붓고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쌀은 철전 하나 해 봐야 반 되가 고작이야. 얼마 안 되니까 조나 수수 같은 거로 하지? 양은 그게 훨씬 많은데.”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쌀가게라고 쌀만 파는 것이 아니다. 콩도 팔고, 조와 수수도 판다. 가격은 당연히 잡곡류가 훨씬 싸다. 싼 곡식으로 고르면 한 됫박을 사고도 남는다.

하정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꼭, 꼭 쌀이 필요해서요. 반 되라도 좋으니까...”

유난극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정호처럼 낡은 옷에 바짝 마른 몸이면 질보다는 양을 추구해야 옳았다.

어쨌든 손님이 쌀을 사러 왔는데 다른 곡식을 팔수는 없다. 그런데 그냥 주기는 싫었다.

문득, 조금 전에 하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미친개일까? 미친개가 아닐까?’

유난극이 가게를 스윽 돌아보았다. 홍철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주머니를 벌리고 손에 네모난 됫박을 다시 쥐었다.

“손님이 쌀을 원하면 쌀을 줘야지.”

그가 쌀 한 되를 됫박이 넘치도록 크게 퍼서 자루에 담았다.

그걸 본 소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냥 보기에도 철전 하나 값은 훨씬 넘는 양이었다.

소년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

유난극이 됫박을 부지런히 움직여 자루에 쌀을 담았다.

“한 되에, 두 되에, 세 되에...”

쌀주머니가 점점 부풀어 오르자 소년이 당황했다.

“저, 저기요. 전 한 푼밖에 없어요. 그렇게 많이 담으시면 드릴 돈이...”

유난극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입을 가렸다.

“쉿.”

“예?”

“어차피 이 쌀, 내 거 아니야.”

“예에?”

유난극이 다시 한 번 주변을 확인했다.

“주인아저씨 없을 때 채워줄 테니까 줄 때 그냥 받아.”

“하지만...”

“이 집은 쌀이 곳간에 가득 쌓였어. 좀 덜어내도 표도 안 나. 걱정 마. 걱정 마.”

유난극은 결국 자루에 쌀 한 말을 담았다. 소년이 들기에는 조금 무거운 무게였다.

“가져갈 수 있겠냐?”

하정호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대답소리도 컸다.

유난극이 깜짝 놀라 말했다.

“이 녀석이 조용히 하라니까. 들키면 나도 쫓겨나! 나도 오갈 데 없는 신세야.”

하정호가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아, 예. 조용.”

유난극이 손을 내밀었다.

“그럼 줘야지?”

“예?”

“쌀값.”

돈을 달라는 말에 하정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하정호가 울먹이며 항의했다.

“한 푼밖에 없는 거 알면서... 이런 큰 돈 없는데 나를 놀리고... 무슨 어른이...”

유난극이 하정호의 머리에 알밤을 살짝 놓았다.

“이게, 지금 한 푼도 안 내놓으려고.”

하정호의 눈이 커졌다.

“에?”

“돈은 받아야지. 이것도 장사인데.”

하정호는 그때서야 유난극의 말을 이해했다.

하정호가 눈물을 쓱 닦았다. 환하게 웃으며 꼭 쥐고 있던 철전 한 닢을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쌀값.”

“자, 쌀도 여기 있다. 아저씨 오기 전에 얼른 가.”

하정호가 자루를 잡았다. 무거웠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무겁더라도 가져가야 한다.

하정호가 유난극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전 하정호라고 하는데요.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유난극이 손을 흔들었다.

“내 쌀 준 것도 아닌데 고맙기는.”

하정호가 신이 나서 쌀자루를 안고 걸어갔다.

유난극이 그런 하정호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래. 내 성질이 미친개까지는 아니었을 거야.”

조금 위안이 됐다.

”최소한 똥개 정도는 됐을 거야.”


하정호가 쌀자루를 신주단지 모시듯 안고 간 직후에 홍철언이 돌아왔다.

“어험. 별 일 없었지?”

유난극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똥냄새가...”

“커험. 닦는다고 닦았는데... 어허. 별 일 없었냐니까.”

유난극이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대답했다.

“별 일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죠.”

그의 기준에서는, 거짓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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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잘 보내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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