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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영 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협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07.05.22 18:14
최근연재일 :
2007.05.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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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35

작성
06.12.1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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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천하제일협객 - 8

DUMMY

며칠 뒤 고소미는 마을에서 구소라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구소라는 고소미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호호홋. 소미야. 요새 너 얼굴이 까칠해 보인다?”

고소미는 집히는 것이 있어 얼굴을 얼른 만졌다.

‘그 거지 때문에 화를 많이 냈더니 얼굴이 상했나? 에이씨. 이게 전부 그 거지 때문이야.’

“정말 그렇게 보여?”

구소라가 그 말을 한 것은 나름대로 꿍꿍이가 있어서다. 그녀는 고소미가 자신의 말에 말려들지 얼른 본론을 꺼냈다.

“오호호. 소미야. 너도 나처럼 피부 관리 좀 해야겠다. 내 얼굴이 좀 매끈매끈해 보이지 않니?”

고소미와 구소라 모두 서로의 미모에 경쟁심을 가지고 있다. 그건 그만큼 상대의 미모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고소미가 구소라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하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쳇. 정말 매끈해져 보이는데?’

“얼굴에 분이라도 발랐니?”

“오호호. 겨우 그런 거로 되겠니? 내가 어제 얼굴에 하수오를 썰어서 붙였단다.”

고소미의 눈이 반짝였다.

“하수오? 그거 붙이니까 좋아?”

“그러엄. 피부에 아주 효과가 좋아.”

고소미의 얼굴에 의혹이 피어올랐다.

‘요년이 그런 좋은 정보를 순순히 가르쳐줄 리가 없는데?’

“그냥 하수오면 돼?”

구소라는 통쾌하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오호호홋! 그냥 하수오로 될 리가 있니? 나는 삼십 년 묵은 하수오를 썰어서 붙였지. 그것도 신선한 것으로.”

고소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 삼십 년? 비, 비싸겠네?”

고가장과 구가장의 재산은 비슷하다. 하지만 구가장의 장주는 구소라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 그래서 용돈은 구가장의 구소라가 훨씬 많이 받는다.

“비싼 정도가 아니라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들어. 나는 어제 마침 약방에 그게 들어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재빨리 샀거든. 삼십 년짜리는 일 년에 하나 들어오기도 힘들다지? 그러니 이제 없을 거야. 십 년짜리는 남아있다고 하더라. 오호호홋!”

고소미는 이제 구소라가 왜 이 이야기를 해 줬는지 알 수 있었다.

발끈한 고소미가 외쳤다.

“흥. 까짓 삼십 년짜리 하수오. 난 아예 사람을 풀어서 아주 신선한 놈으로 캐오게 할 거야!”


고소미는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큰소리는 쳤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걸 누구한테 이야기해야 캐다 주지?”

다들 할 일이 있는데 순순히 그런 심부름을 해 줄 리가 없다.

“엄마한테 말하면 그런 거 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혼만 날 텐데. 이잉.”

그녀는 자기 뺨을 만져보았다.

“정말 까칠해진 것 같네. 하여간 그 거지가 나타난 이후로 되는 일이 없어.”

투덜거리는 그녀의 눈에 짐을 나르고 있는 서흑수가 보였다. 그녀는 그를 보자 좋은 생각이 났다.

‘그렇지. 자고로 원인을 제공한 놈이 책임을 져야지. 더불어 고생도 실컷 시키고. 히히히.’

그녀는 신이 나서 서흑수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야. 거지!”

서흑수는 어깨에 짐을 들쳐 메고 걸어가면서 대답했다.

“왜?”

고소미는 그의 곁에 따라붙어서 말했다.

“거지. 사람이 불렀으면 멈춰 서서 대답해야 할 거 아냐?”

“나 바쁘니까 그냥 이야기해라.”

“이, 이게. 좋아. 내가 한 번 더 봐줬다. 거지. 너 내 심부름 좀 해라.”

“애들하고 놀 시간 없다.”

“애, 애라닛! 내 나이 열아홉. 이제 한창 피어나는 한 떨기 꽃 같은 나이얏!”

서흑수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빠는 바쁘다.”

“오, 오빠? 이 거지가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어, 어? 야, 너 거기 서. 너 거기 안 서?”

서흑수는 고소미가 뭐라고 해도 무시하며 짐을 날라 창고에 내려놓았다.

손을 탁탁 터는 그의 뒤에 고소미가 서서 말했다.

“거지. 좋은 말로 할 때 듣는 게 좋을 거야.”

“어지간하면 니가 해라.”

“이, 이이 거지가. 좋아. 마음씨 착한 내가 양보할게. 내 심부름 해 주면 술 한 병 가져다줄게. 어때?”

술 이야기를 듣자 서흑수는 입안에 침이 고였다.

“한 동이는 안 되고?”

“돈 없어!”

서흑수가 고소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옷 벗으라는 거면 술 한 병으로는 안 돼.”

고소미가 분에 차서 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오, 옷이라니! 그런 거 아냐!”

“그럼 뭔데?”

“산에 가서 약초 좀 캐다 줘.”

“너 돈 많은 집 딸이잖아. 그냥 약방 가서 사.”

“약방에는 없는 약초란 말이야!”

서흑수가 씩 웃었다.

“혹시 남이 알면 부끄러운 약초냐?”

“아, 아니야. 천 년을 묵으면 영약이 되는 약초얏!”

“천년하수오? 지금 나보고 영약을 캐오라는 거냐? 그런 거 있으면 내가 왜 가져오는데? 그거 팔아서 팔자 고치고 말지.”

“누가 천 년이나 묵은 거 가져오래? 삼십 년이면 돼.”

“저 산에 삼십 년짜리는 확실히 있고?”

“있어. 약방에 삼십 년짜리가 들어왔다가 팔렸대. 어디서 캐왔겠어? 이 근처 산에서 캐왔겠지. 하나 캘 수 있었으면 거기에 더 있을 거잖아.”

“오호. 그게 왜 필요할까?”

서흑수가 캐묻자 고소미는 당황했다.

“어, 엄마 다려드리려고 그래. 요새 몸이 안 좋아 보이시단 말이야.”

“어이쿠. 효녀 났구나. 그런데 마님의 체질이 하수오랑 맞던가? 내가 보기에는 안 맞을 것 같은데?”

“거지 주제에 그걸 어떻게 알아?”

“너보다 배운 게 많거든. 그리고 삼십 년짜리 하수오라. 그거 썰어서 얼굴에 붙이면 피부가 꽤 고와진다는 소리가 있기는 하지. 그런데 호박에 그거 붙인다고 수박 되냐?”

속셈을 들켜버린 고소미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빽 질렀다.

“이게 다 네가 내 속을 썩여서 그런 거야. 너 때문에 내 피부가 까칠해졌잖아!”

“너는 원래 성격과 외모 모두 까칠했어.”

“이, 이게 진짜! 하여간 술이 먹고 싶으면 산에 가서 삼십 년 묵은 하수오나 캐와!”

서흑수가 웃었다.

“싫어.”

“시, 싫어? 술 준다니까?”

“니 얼굴 고와지라고 산타고 싶은 생각 없다. 그것도 삼십 년 짜리라니. 그게 쉽게 나오냐? 다 안다. 너 나 고생시키려고 일부러 수작 부리는 거지?”

고소미는 서흑수에게 멀쩡한 화단을 고쳐달라고 땡깡 부린 적이 있다. 그녀는 뜨끔한 마음에 소리를 빽 질렀다.

“싫으면 하지 마. 너 따위한테 줄 술은 한 방울도 없어!”

고소미는 성을 잔뜩 내며 돌아가 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서흑수가 웃었다.

“후후. 확실히 놀리는 맛이 나는 녀석이란 말이야.”


고소미는 일이 생각대로 안 되자 투덜거리며 장원의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쳇. 무슨 거지가 저렇게 깐깐해?”

그녀는 자기 돈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약방에 십 년 묵은 거는 있다고 했는데. 내 용돈이 은자 하나하고 철전 다섯 개 남았네. 이거면 살 수 있겠지? 그런데 그거 사면 다음 용돈 받을 때까지 어떻게 살지?”

고민은 오래 할 것도 없었다. 아까 웃던 구소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흥. 그까짓 거. 일단 지르고 보자.”

막 결심한 그녀에게 천기연이 급히 다가왔다.

“아가씨. 여기 계셨네요?”

“응. 나 찾았어?”

“네. 저기 다름이 아니라...”

천기연이 머뭇거렸다.

“무슨 일인데?”

“아가씨. 돈 좀 꿔주세요.”

그 말에 고소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연이 너 시집갈 밑천 많이 모아놨다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왜 돈을 꿔?”

“그게, 급히 쓸 일이 생겼거든요. 묻지 말고 좀 꿔 주세요. 네?”

“얼마나?”

“은자 하나가 필요해요.”

천기연의 얼굴에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고소미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기연이 요것이 요새 남자가 생긴 것 같은데. 그래서 치장이라도 하느라 돈 드는 곳이 많나? 에휴. 좋겠다. 누구는 남자도 있고.’

고소미는 미모가 대단하다. 하지만 그녀는 애인이 없다.

그동안 그녀의 미모만 보거나 집안의 돈을 노리고 접근하던 남자는 당화련에게 걸려 모조리 박살났다. 반면에 괜찮은 남자는 그녀의 미모와 집안, 그리고 성질에 지레 부담을 느껴 아예 접근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수유현에는 그녀의 상대가 없었다.

딸의 연애에 대해서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 것은 구가장의 장주도 마찬가지다. 고가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고소미는 거기서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기연이니까 다행이지. 만약에 소라 고년이 애인까지 생기면 난 배 아파 죽을 거야.’

망설이던 고소미가 할 수 없이 돈주머니를 열었다.

“여기 있어. 은자 하나.”

천기연이 환한 얼굴로 은자를 받아갔다.

“고마워요. 아가씨. 봉급 받으면 꼭 갚을게요.”

뛰어가는 천기연의 뒷모습을 보며 고소미가 돈주머니를 살폈다.

“그런데 철전 다섯 개로는 몇 년이나 묵은 하수오를 살 수 있을까? 아이참. 기연이 저건 하필 이런 때 와서.”

고소미는 철전 다섯 개만 딸랑 들고서 투덜거리며 약방 쪽으로 걸어갔다.


서흑수는 그녀들이 보지 못하는 쪽 건물 벽에 기댄 채 두 아가씨의 대화를 들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술이라도 한 병 얻어 볼까나.”


서흑수가 총관 노주광을 찾아 질문했다.

“총관 아저씨. 저 산에 하수오 좀 나옵니까?”

노주광이 산을 돌아보았다.

“저 산? 하수오 많이 나오지. 수십 년 묵은 것도 곧잘 나오고, 가끔은 백 년 이상 묵은 것도 나온다네. 왜? 하수오가 필요해? 약방에 가면 몇 년 묵은 것들은 좀 있을 텐데 하나 사라고. 아, 자네는 아직 임금을 받기 전이지? 내가 조금 꿔줄까?”

“아뇨. 삼십 년짜리 싱싱한 놈이 필요해졌어요. 오늘 일도 끝나고 했으니 하수오나 좀 캐러 가려고요.”

노주광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같이 가세.”

“혼자 가도 충분한데요?”

노주광이 한쪽을 뒤적거리더니 술을 한 병 꺼냈다.

“우리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할 거 아닌가? 자네가 있어서 오늘 할 일도 일찍 끝났으니 같이 산에 가서 한 잔 하고 오세나. 산에서 마시는 술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으니.”

“술이라. 그거 좋죠. 흐흐흐.”

* * *

천기연이 은자를 가지고 만난 사람은 손광태였다.

그녀가 손광태를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걸었다.

“손 사부님.”

손광태가 그녀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가져왔느냐?”

“여, 여기 있어요.”

그녀는 은자 하나를 내밀었다. 손광태의 눈이 번쩍였다. 그는 그것을 날름 낚아채고는 말했다.

“수고했다.”

“아, 아니에요. 손 사부님께서 필요로 하신다면 그런 건 얼마든지...”

손광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환히 웃으며 천기연을 끌어안았다. 천기연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그녀는 손광태의 품에서 망설이며 말했다.

“소, 손 사부님. 지금은 대낮이에요.”

천기연이 미처 보지 못하는 손광태의 얼굴은 차가웠다. 하지만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오늘밤에도 내 거처로 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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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렸다는데 이상하게 더 춥네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그러나...


앞편에서처럼 등장인물이 혼자 이상한 말을 하면, 그 사람이 그 상황에서 왜 그런 말을 했을까를 생각해주시기를... 이상한 거 앞으로 몇 번은 더 나올 겁니다... ^^;;

음모가 나오는 형태를 봐도, 그리고 더러운 놈이 하는 짓을 봐도, 천하제일협객은 잠룡전설과는 다르지요. 그래서 연재 시작하면서 다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오히려 잠룡전설보다는 표사랑 더 비슷하겠죠. 물론, 좀 더 보시면 표사와도 다릅니다만...

잠룡전설 같은 풍의 글은, 천하제일협객 말아먹으면 당장 쓸지도 모릅니다... 쿨럭... 농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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