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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로 천재 회사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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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11 23:08
최근연재일 :
2023.09.2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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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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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야구 (1)

DUMMY

회사원은 시간관념도 요일별로 달랐다.

평일은 월요오일, 화요오일로 길게 느껴졌는데, 주말은 톨과 일욜로 짧았다.

늦잠을 자고 마트에 다녀왔더니 토요일이 끝났다.


일요일엔 모처럼 밀린 청소를 했다.

웬 머리카락이 그렇게 많이 떨어져 있던지. 탈모방지 샴푸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설마 나도 과장님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 검은 콩이라도 먹어야 하나?”


강 과장의 휑한 정수리를 떠올리자 불안해졌다.


먼저 이불을 탁탁 털고.

돌돌이로 침대에 붙은 먼지와 머리카락을 제거하고.


빗자루로 방을 쓸다가 멈췄다.

유니폼 장식장 아래에서 빛바랜 노트를 찾았다.


가자, 100억 포수.

이름도 거창한 훈련일지였다.


“이런 때가 있었지. 그땐 훈련을 하루만 빼 먹어도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았는데.”


민재는 침대에 걸터앉아 노트를 훑어봤다.

매일 하체 훈련 한 시간, 스윙 삼백 번 등 구체적인 실천 계획도 있었다.


“근데 지금 목표는 뭐지?”


그는 노트를 덮고 자신에게 물어봤다.


목표를 세울 정신이 없었다.

취업하는 게 먼저였고, 지금은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바빴다.

목표는 고사하고, 업무 파악도 덜 됐다.


“야구부 장민재의 목표는 공수겸장 포수. 그렇다면 회사원 장민재는 뭘 위해 회사에 다니는 걸까? 단지 돈을 위해서? 하지만 돈을 위해서 좀비처럼 회사만 오간다면 너무 삭막한 인생이 아닐까?”


거듭되는 자문자답.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


다음 날, 출근길.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우울해졌다.


“오빠.”


뒤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푼수 토끼, 이윤주가 바나나 우유를 든 채 달려오고 있었다.


‘맞다. 잠실 쪽에서 자취한다고 했지?’


민재는 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었다.


“지난주 소문 들었어요. 축하해요. 벌써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서요?”


이윤주는 우유를 쪽쪽 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무슨 프로젝트예요. 그냥 회의 한 번 가 본 건데.”


민재는 웃으며 손사래 쳤다.


“그게 그거죠. 전 아직도 복사기나 돌리고 있는데.”


이윤주는 다른 동기들의 근황을 간단히 전해 줬다.

부서마다 상황이 달랐지만, 대부분 아르바이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잡무를 맡고 있었다.


“참, 그 소식 들었어요? 교육팀 재근 씨요. 지난주에 사직서 썼대요.”


이윤주는 좌우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벌써요? 원하는 부서에 배치됐다고 좋아했잖아요?”

“대리하고 첫날부터 싸웠나 봐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일 시키고 문제 되니까 신입한테 미루는 스타일. 안 그래도 재근 씨는 불만이 많았거든요. 집도 잘 사는 편이고. 그래서 다른 회사 준비한다고 나갔대요. 여차하면 유학이라도 가겠죠.”

“아쉽네요. 재근 씨하고는 밥 한 번 같이 못 먹었는데.”


민재는 가볍게 혀를 찼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직장생활, 상사와의 트러블.

대학 동기 중에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재근 씨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동기가 많은 것 같아요. 재진 오빠도 로스쿨을 생각하는 눈치고.”

“윤주 씨도 나가려는 건 아니겠죠?”

“전 나가고 싶어도 못 가요. 대출받은 게 많아서. 이직 준비도 여유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죠.”

“하긴, 학교 선배나 동기만 봐도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직장생활에서 돈이 전부는 아닌 것 같고. 우리는 회사에 뭘 원하는 걸까요? 무엇에 만족할 수 있을까요?”


민재의 혼잣말 같은 질문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연봉, 복지. 뭐 하나 꿇릴 것 없었다.

그러나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직장인이 원하는 것이라. 그런 게 있기는 할까? 월급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니었어? 회사는 내게 어떤 의미일까?’


아침부터 여러모로 심란했다.


***


사무실에 도착한 뒤.

민재는 자연스럽게 변신했다.

구두는 잘 벗어서 책상 아래 내려놓고, 편한 삼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그리곤 모닝 커피를 들고 강 과장, 박 대리, 이 대리 등과 함께 휴게실에 들어갔다.


업무 시작 전의 짧은 수다.

민재도 사업기획 1팀의 직원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젠 그까지 해서 직원 사인방이었다.

김현아도 있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9시 3분 전에 사무실에 들어섰다.


“민재 씨는 주말에 뭐 했어?”


박 대리가 커피를 홀짝이며 물었다.


“늦잠 자고, 청소하고 빨래하니까 끝나던데요.”


민재는 다른 직원들을 돌아봤다.


다들 비슷했다.

강 과장은 해피 산책시키고 끝.

박 대리는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고 했다.

이 대리만 요가와 독서 등으로 알차게 보냈다.


“대리님은 목표 같은 게 있습니까?”


민재의 시선이 박 대리에게 향했다.


“나? 내 목표는 결혼이지. 나도 곧 마흔이잖아. 집에서 난리야.”


결혼 스트레스.

결혼 다음에는 출산과 육아.

박 대리는 민재의 10년 후 모습이었다.


“과장님은요?”

“은행 대출금 갚는 거지. 지금 집은 현관하고 화장실만 내 소유야. 나머진 은행 거지. 얼마 전에 딸내미 사과 패드 사주느라 비상금도 다 썼는데.”


강 과장의 푸념이 길어졌다.

민재의 말에 감동 받아 믿음과 신뢰를 와이프한테 시전했다가 실패했다나?

과장은 회사에서 치이고, 집에 가서 또 치이는 우리네 서글픈 가장의 전형이었다.


“아, 현실적이시군요. 이 대리님은요?”


민재는 내심 혀를 차며 이수아에게 물었다.


“단기적으로는 올해 근무평가를 잘 받는 것, 중기로는 곧 시작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 장기적으로는 제 이름을 건 독립 프로덕션을 차리는 거요.”


에이스답게 꿈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다.

대리가 벌써 독립 프로덕션을 꿈꾸는 게 성급해 보였지만, 그녀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민재 씨는요?”


이번엔 이수아가 물었다.


“전 아직 모르겠습니다. 제가 뭘 원하는지.”


민재는 커피를 마시며 얼버무렸다.


결혼, 내 집 장만, 직장에서의 성공.

첫 월급도 못 받은 신입사원에겐 별로 와 닿지 않았다.


‘난 뭘 위해 회사에 다녀야 할까?’


상사들에게 물어봤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


오후 1시 30분.

복합기에 A4 용지를 넣고 있는데 부장이 불렀다.

민재는 다이어리와 펜을 들고 부장의 옆에 섰다.


“이따 박 대리하고 코리안 리서치에 다녀와. 동남아 시장조사 관련해서 미팅이 있거든. 인터넷으로 조사하는 대학교 과제 수준이 아니야. 거기 사장님은 보스턴에서 유학까지 한 서베이 전문가니까 보고 배울 게 많을 거야.”


사업전략 1팀의 업무는 국내에 국한되지 않았다.

해외시장 조사, 신사업 발굴, 해당 자회사와 협력 및 신사업 안정화 등도 그들의 일이었다.

경우에 따라선 다른 사업전략팀이나 본사 전략기획실과 협업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회사에 독불장군은 필요 없어. 회사는 조직과 시스템. 모든 구성원이 유기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해. 그리고 이거.”


부장은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 FS 기획 사업전략 1팀, 사원 장민재.


태양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백마.

그룹 로고가 박힌 명함 한 통이었다. 이름 아래에는 전화번호와 이메일 등이 깨알같이 쓰여 있었다.


“민재 씨도 이젠 우리 회사의 대표야. 외부 사람을 만나는 데 명함 하나 없는 건 말이 안 되지. 명함을 주고받는 예절은 알지?”


부장은 민재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네. 감사합니다.”


민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명함을 받아들었다.


“이야, 명함까지 받았어? 이제 진짜 회사원 다 됐네.”


뒤에서 과장의 짓궂은 농담이 들렸다.


첫 명함.

민재는 상기된 표정으로 꾸벅 인사하고 물러났다.


***


오후 2시 30분.

민재는 처음으로 업무용 승용차를 타 봤다. 검은색의 깔끔한 준중형 세단이었다.

다만 그는 장롱면허였다. 박 대리가 운전하고, 그는 조수석에 앉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사업전략팀은 그룹 규모에 비해 좀 작은 거 아닙니까? 동기들이 간 부서는 팀원이 많으면 20명이 넘는다던데요.”

“부서 규모는 유동적이야. 우리처럼 컨트롤하는 부서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거든. 작지만 효율적으로. 대신 기획전략팀은 1팀부터 6팀까지 독립된 팀이 여섯 개나 있잖아.”


가는 동안 그룹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신입사원 연수 때 듣긴 했지만, 너무 방대하고 추상적이었다.


박 대리는 그룹의 연혁부터 차근히 설명했다.


그룹의 태동은 경제 성장기의 무역.

현재는 자동차, 건설, 개발, 물류, 유통 등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했고, 최근엔 IT 쪽도 활발히 노크하고 있었다.


“회장님은 현재에 안주하는 성격이 아니시지. 성과가 당장 안 보이더라도 꾸준히 도전하는 걸 강조하셔. 우리 FS 기획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고.”

“일본의 유명한 투자가, 미스터 손처럼요?”

“그렇지. 그 양반이 항상 성공할 것 같아? 아니야.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다고. 그러나 하나만 터지면 다른 곳의 손실을 모두 메우고도 남지. 회장님께서 바라는 것도 바로 이거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남들이 갔던 길을 가지 마라. 일곱 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라.”


박 대리는 마치 자신이 회장인 양 열변을 토해냈다.


“오, 칠전팔기의 정신입니까? 멋진데요.”


민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FS 기획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단순히 기업 홍보나 광고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 이름처럼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게 FS 기획의 역할이었다.


“본사 전략기획실하고는 어떻게 다른 겁니까?”

“좋은 질문이야. 민재 씨도 군대 다녀왔지? 전략과 전술이라고 생각하면 돼. 전략기획실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잡지. 그럼 우린 큰 그림에 맞춰 구체적인 프로젝트나 사업을 기획하는 거야.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다른 사업 부문의 컨트롤 타워 역할도 하고. 물론 우리가 선제적으로 기획해서 본사 전략기획실에 요청하는 경우도 많아.”

“전방 야전사령부 같은 겁니까? 부장님은 야전군사령관이시고요.”

“그렇지. 민재 씨도 앞으로 해외에 관심을 많이 가져. 회장님이 해외 시장 개척에 관심이 많으시니까. 우리 팀에서는 황 차장님이 해외 전문가시지. 지금 H 제과의 동남아 사업 확장과 관련해서 장기 출장 중이시거든. 돌아오면 배울 게 많을 거야.”


박 대리는 황 차장의 칭찬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 사이 차는 종로 쪽에 접어들었다.

오늘 만날 코리안 리서치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 있었다.


“아참. 거기 사장님이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라고 했는데. 민재 씨가 알 수도 있겠네.”


박 대리가 지하주차장으로 차를 몰며 말했다.


“프로선수요? 누군데요?”

“김호승이라고 했나? 서울 곰돌이들 외야수 말이야. 거기 사장님도 야구광이라서 툭 하면 아들 자랑이라니까. 얼마 전에는······.”


박 대리는 거래처 사장과의 일화를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호승이?’


민재는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박 대리가 틀렸다.

중학교 야구부 동기. 김호승이 아니라 김승호였다.

지금은 서울 곰돌이들의 주전 좌익수, 갈색 야생마라는 애칭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연봉도 그의 10배 이상.


그는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씁쓸하고 자조적인 미소. 긴 한숨이 나왔다.


작가의말

댓글 0, 추천 0, 두 자릿수 조회수는 계속 하락 중.


그렇습니다. 아주 시원하게 망했습니다.

요즘 웹소설과 분위기가 달라 각오는 했는데 예상보다 더 나쁘네요. ㅠㅠ

아직도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비축분만 풀고 더 연습해서 다른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모처럼 후원까지 해 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거듭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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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야구 (1) 23.09.21 11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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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신인의 자세 (2) 23.09.16 15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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