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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로 천재 회사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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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향
작품등록일 :
2023.09.11 23:08
최근연재일 :
2023.09.2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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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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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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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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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야구 좋아하세요? (3)

DUMMY

무대 옆 대기석.


“면접 때보다 더 떨리는데.”


김재진이 부장들을 힐끔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무대 위에서는 다른 조의 발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의 난제. 노동자를 이익 극대화를 위한 계약관계로 볼 것이냐, 아니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동반자로 볼 것이냐? - 라는 내용이었다.


“······방금 말씀하신 건 황견계약입니다. 부당노동행위로 금지되고 있죠.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견대상업무 및 파견금지업무 위반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죠. 요즘 근로기준법이 얼마나 엄한지는 아시죠?”

“······사용사업주의 파견근로자 직접 고용의무의 위반은······.”


부장들의 질문이 비수처럼 신입사원들을 난도질했다.


“저, 그게······.”


발표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조원들을 돌아봤다.


“이거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요. 우리랑 비슷한 선택을 했잖아요. 우리도 저렇게 공격받는 거 아니에요?”


송보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줄 모르는 발표자의 모습에 자신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민재 씨 말대로 해 보는 게 어떨까요?”


이윤주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조별 회의 후.

이성적으로 A사를 선택하는 1안, 민재의 말대로 B사를 선택하는 2안, 둘 다 준비했다.


- 앞에 분위기를 보고, 유동적으로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김재진의 신중론이었다.


결국 1안은 김재진이 마이크를 잡고, 2안은 민재가 마이크를 잡기로 했다. 자료 분석은 이윤주가 맡았고, 송보라는 PPT를 예쁘게 만들었다.


“1안대로 고? 아니면 민재 씨 말대로 2안?”


김재진도 초조한 듯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차피 우리가 부장들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무리예요. 아까는 법대로 했다며 사회적 책임을 물었잖아요. 어떤 선택을 하든 날카로운 질문을 받는 건 마찬가지. 그러니 민재 씨 말대로 해 보죠. 남들은 생각 안 한 방식으로, 독특하게.”


송보라가 민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 찬성이에요. 독창성으로 밀고 나가는 거죠.”


이윤주가 웃으며 거들었다.


“정말이세요?”


민재는 고개를 갸웃하며 조원들을 돌아봤다.

야구 의견을 제시하긴 했지만, 그도 내심 불안했다.


“좋아. 민재 씨가 나서 봐요. 이건 정답을 원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사결정에 이르는 이유와 과정일 거예요.”


김재진은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였다.


“자신 있죠?”


이윤주가 민재를 보며 웃었다.

다른 조원들의 시선도 일제히 민재에게 향했다.


“솔직히 공부나 머리 쓰는 건 자신 없습니다. 하지만 야구라면 얘기가 다르죠.”


민재는 조원들을 차례로 돌아봤다.


“대전 독수리들의 이대양 선수가 이런 말을 했죠. 내 손에서 공이 떠나면, 그 공과 결과는 더 이상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그는 조원들을 하나씩 시선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믿고 가 봅시다.”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윤주는 민재의 말을 나직이 되뇌었다.

불안이 한결 가라앉았다. 다른 동기도 비슷했다.


그사이 무대 위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끝났다.

신입사원들은 패잔병이 돼 고개를 푹 숙이고 내려왔다.


“다음은······.”


인사팀 대리가 마이크를 건네받아 그들을 호명했다.


“청주 S고, 등번호 62 장민재. 시원하게 휘두르고 오겠습니다.”


민재는 넥타이를 살짝 풀어헤치며 무대에 올랐다.


***


밝은 조명의 무대 위.

민재와 조원들은 양손을 앞에 모으고 나란히 섰다.


“안녕하십니까, 저희가 맡은 과제는······.”


먼저 김재진이 앞에 나와 간단히 소개했다.


PPT를 이용한 주제와 내용 정리.

여기까지는 앞선 다른 조와 대동소이했다.

조원들이 차례대로 인사한 뒤, 민재가 마이크와 PPT 리모컨을 들고 두어 걸음 나왔다.


‘전국대회 때보다 더 떨리는데?’


꿀꺽, 민재는 청중을 둘러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모두가 자신만 주목하고 있는 상황.

무대 아래에서는 부장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야구 좋아하십니까?”


민재는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부장 몇 명만 재미있다는 듯 옆 사람과 수군거렸다.


- 쟤야? 면접 때 야구 얘기만 했다는 친구가.

- 어떤 결과가 나오든 눈에 띄는 것 하나는 확실하네.

- 연수 시작 전에도 한 건 했다던데요. 야구로.


몇몇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야구는 인생이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민재는 톤을 살짝 높여 말을 이었다.


“부산 거인들에 이호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통산 타율이 3할을 넘는 리그 최고의 타자, 역대 최고의 일루수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죠. 그런데 작년 시즌 초, 이호 선수가 개막하고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에이징 커브가 왔다.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 말이 많았죠.”

“······.”

“그러나 감독은 이호 선수를 라인업에서 빼지 않았습니다. 팀의 4번으로 꾸준히 내보내는 한편, 불만 가득한 팬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죠. 이호는 더 증명할 게 없는 베테랑이다. 올라갈 선수는 언젠가 다시 올라갈 거다. 실제로 이호 선수는 이 발언 이후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시즌이 끝날 즈음에는 귀신같이 자신의 통산 타율에 맞췄습니다.”


부장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는 국민 스포츠.

코로나 이후 관객이 줄긴 했지만, 축구 등 다른 프로 스포츠에 비하면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같은 비유라도 누구나 아는 것을 이용하면 더 쉽게 와 닿았다.


“야구를 하다 보면 누구나 슬럼프를 겪게 마련입니다. 신인은 물론이고, 베테랑도 예외가 없죠. 그러나 감독은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베테랑일수록 믿고 기다리죠. 베테랑에겐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과 리더십이 있으니까요. 실제로 베테랑은 초반에는 불안해도 결국엔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자신의 평균치로 말이죠. 흔히 야구를 통계의 스포츠라고 말하는데, 이런 이유도 있을 겁니다.”


민재는 상체를 뒤로 살짝 돌리고 리모컨을 눌렀다.

A사와 B사의 과거 통계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B사는 오래된 거래처, 야구의 이호 선수입니다. 비록 당장은 신인인 A사가 우세하지만, B사도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B사의 통계를 보면, 이전에도 계절 등의 여러 요인으로 한때 수치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물론 연간으로 통계 범위를 확대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갔고요. 저희가 거래 상대로 B사를 결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민재는 화면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기업간의 신뢰. 거래의 안정성. 그리고 오랜 거래를 통해 쌓인 노하우. 저희가 주목한 것은 이런······.”


그의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려 퍼졌다.


부장들의 시선은 화면에 향하지 않았다.


- 재미있는 친구네. 정말 과제를 야구로 풀 줄이야.

- 야구나 기업 운영이나.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죠.


그들은 민재를 힐끔거리며 속삭였다.


조별 발표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었다.

부장들의 얼굴에 다른 조를 공격하던 날카로움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 씰룩이는 눈가를 보니,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민재는 발표하며 좌우를 슬쩍 돌아봤다.

다른 조원들도 눈이 반달 모양으로 쳐졌다. 무표정한 송보라마저도 볼이 상기돼 있었다.


‘됐다.’


민재는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다.


발표가 끝나고 짧은 총평이 이어졌다.


- 과제를 야구에 비유해 참신했다.

- 신입사원다운 발상이 마음에 들었다.


앞선 조와 달리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마지막으로 중년 배우처럼 점잖게 생긴 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까 입구에서 민재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던 그 부장이었다.

목에 건 신분증에 “송”이라는 글자만 얼핏 보였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시선은 민재에게 고정돼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설마 회사가 장난이냐고 화를 내는 건 아니겠지?’


꿀꺽, 민재는 마른침을 삼키고 송 부장의 말을 기다렸다.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


강당에는 송 부장의 목소리만 낮게 울려 퍼졌다.

성우처럼 담담하면서도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사실 이번 과제는 정답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싶었던 건 여러분이 얼마나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느냐, 하는 신입사원다운 참신한 태도였습니다.”


부장은 민재를 곁눈질하며 말을 이었다.


“눈앞의 상황, 수치화된 자료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재계는 부침이 심하고 언제든 흐름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유행과 흐름만 좇다 보면, 정작 자신만의 장점을 잃어버리죠. 데이터를 참고하지만 믿음과 신뢰를 잃지 않는다. 눈앞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본다. 이게 바로 기업 경영의 기본이자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부장의 말은 묵직한 메아리가 돼 신입사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민재는 은퇴한 모 감독을 떠올렸다.

오더를 짜고 작전을 구상할 때는 데이터를 참고했지만, 데이터를 맹신해서 전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 데이터와 믿음의 조화.


그 감독의 팀은 이를 통해 프로야구의 왕조 중 하나로 군림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

민재는 아침에 꾼 야구 꿈을 떠올렸다.


B전국대회 16강.

프로 관계자의 눈에 들 수 있는 중요한 대회였지만, 당시 민재는 허리 부상으로 선발 출장이 어려운 상태였다.


9회말 이사 만루.

팀이 2점 뒤지고 있는 상황.

객관적인 전력도 상대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고 있었다.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은 그때.


- 대타 62번 장민재.


감독님은 구석에 앉은 그를 호명했다.


“네? 저요?”

“그래. 여기에 62번 장민재가 너 말고 또 있어?”

“전 허리도 안 좋은데.”


민재는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수비력이 뛰어난 전국구 포수.

그도 한때는 프로야구를 누비는 괴물 포수를 꿈꿨다.

지역에서도 제법 인정을 받았고, 프로에서도 몇 번인가 그의 경기를 보러 왔었다.


하지만 그것도 부상 전의 얘기였다.

고질적은 허리 부상은 그를 은퇴로 내몰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스카우터들의 관심은 상대팀 에이스 투수에게 집중돼 있었다.


“네 마지막 경기잖아. 삼진 당해도 좋아. 후회가 남지 않게 시원하게 휘두르고 와.”


감독은 엉덩이를 두드리며 그를 밀어냈다.


후배 하나가 헬멧과 배트를 건넸다.

그는 장비를 챙겨 들고 얼떨결에 그라운드로 나섰다.


정신이 없었다.

그는 긴장을 느낄 새도 없이 곧장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 헛스윙, 2구 파울, 3구는 살짝 빠지는 볼.

타자가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지만, 민재는 상대 투수의 마지막 공을 놓치지 않았다. 한가운데로 몰린 실투.

타구는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우중간을 꿰뚫었다. 끝내기 싹쓸이 안타.


그가 야구선수로서 찬란하게 빛났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 후 그는 야구선수로의 꿈을 접었고, 늦깎이 수험생이 돼 대입시험에 매진했다.


하지만 지금은 끝이 아니라 시작.

회사를 그라운드로 하는 신입사원 장민재의 야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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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스토리와 감동 (1) 23.09.25 67 1 12쪽
17 나만의 야구 (4) 23.09.24 79 2 12쪽
16 나만의 야구 (3) 23.09.23 83 1 12쪽
15 나만의 야구 (2) 23.09.22 93 1 13쪽
14 나만의 야구 (1) 23.09.21 116 3 11쪽
13 일곱 명의 야수들 (3) 23.09.20 126 1 12쪽
12 일곱 명의 야수들 (2) 23.09.19 1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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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인의 자세 (3) 23.09.17 15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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