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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마녀의 서고

에이든은 오늘도 용사를 만나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집필마녀
작품등록일 :
2023.05.14 01:16
최근연재일 :
2023.08.20 12:00
연재수 :
102 회
조회수 :
3,635
추천수 :
74
글자수 :
540,615

작성
23.05.15 09:58
조회
70
추천
3
글자
26쪽

2장. 아나스타시아(3)

DUMMY

·········



“헬레나 씨, 늦어서 죄송—”


우뚝.


돌연 나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헬레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지금은 훤한 대낮이었지만 그래도 꽤 늦은 시간이었다. 설령 헬레나가 딴 길로 샜다고 해도 돌아와도 진즉에 돌아왔을 시간이란 소리다.


“후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기시감이다. 분명 해가 중천에 떠 있으니 여관에 불을 켤 시간은 아니었고 옅게라도 내부에 그림자가 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기이한 기분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


나는 햇빛이 선명히 들어오도록 문을 연 채로 들어와 그대로 숨을 죽였다. 더불어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걸으면서 기민하게 움직였다.

재빠른 움직임으로 어느덧 부엌 앞까지 온 나는 눈에 보이는 과도를 능숙하게 손에 쥐었다.


“······.”


여전히 숨을 죽였고 두 눈의 시야를 여관 전체로 넓혔다.


두근.


“······.”


두근.


느려지는 심장 박동에 따라 시야는 한없이 넓어져 갔다.

그리고······.


“······.”


일렁.


보였다.


“흡!”


망설임 없이 과도를 일렁이는 곳을 향해 던졌다.


“키에에엑!!!”


“쳇, 놓쳤군.”


손맛은 있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잡진 못했다.


“이거 안 좋네.”


과도에 박힌 몬스터의 살점은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펄떡였다.


“하필이면 ‘솔라’라니.”


‘솔라’ 모순적이게도 태양빛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림자 괴물의 명칭이었다.

브레이브 크루 오리지널 몹. 해가 비치는 낮에만 활동할 수 있기에 솔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게임에서 후반부 ‘불쾌한 골짜기’라 부르는 필드 및 던전에 등장해 다방면으로 골치를 썩게 만드는 몬스터다.

그리고 이 괴물을 창조해낸 건 다름 아닌,


“릴리시아.”


부쳐를 만든 장본인, 네크로 메이커 릴리시아다.



·········



잠시 후 상황을 파악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역시나 아무리 근처를 뒤져봐도 헬레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라에게 당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


솔라가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가 아는 대로라면 릴리시아가 만든 피조물인 솔라는 그녀가 엄중히 관리하고 있는 몬스터다.


‘릴리시아가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생명체가 아니니까.’


우리가 아는 네크로맨서의 경우에는 시체를 다룰 수 있는 마법적 지식과 관련된 아티팩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보다 상위에 있는 네크로 메이커는 물질로 이루어진 아티팩트가 따로 필요가 없었다.

내가 지닌 ‘패링’같이 선천적인 아티팩트의 소유자였으니까.

게임사에서 아티팩트를 따로 분류해놓지 않아서 헷갈리는 부분이 많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내 선에서 이해하기 쉽게 무기와 장신구 방어구와 같이 물건을 뜻하는 아티팩트를 ‘메테리얼 아티팩트’라 칭하고 개인이 보유한 선천적인 능력은 ‘소울 아티팩트’라고 칭하겠다.

아무튼 릴리시아는 레어한 소울 아티팩트의 소유자였고 또 그 위력이 강했기에 종족이 인간종인 마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위력이 강하다는 설정이 붙으면 십중팔구 제어하기 힘들다는 꼬리가 붙기 마련인데 릴리시아도 이에 해당했다.

결론적으로 솔라라고 불리는 이 그림자 괴물들은 릴리시아의 자아와는 상관없이 마구마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블린이 말한 걸로 들어봐선······.”


이블린은 틀림없이 릴리시아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걸 당장 내게 말해주려 하지 않은 걸 보면 그녀의 사정도 제대로 알고 있단 소리가 된다.

무언가 릴리시아가 불안정한 상태,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었다.


“······.”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솔라만이 아니었다.


‘피.’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혈흔, 인간의 것이었다.

놀이 흘리는 피는 진한 점성을 띤다. 하지만 이건 그렇지 않았다.


“아무래도 복잡한 일인 거 같네.”


나는 더 늦기 전에 흔적을 쫓아 헬레나를 찾기 시작했다.



·········



외딴 동굴.


“으응······.”


그곳에서 헬레나는 눈을 떴다.


“······아?”


또한 금방 제 팔다리가 묶여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분명히······.’


············

·········

······

···


에이든, 그녀에겐 레논이었던 사람과 하는 수 없이 헤어진 후 곧장 여관으로 돌아가고 있던 그녀였다.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후로는 여관에서의 일은 오롯이 그녀의 것이었으니까. 늘 그랬듯 장을 본 후 여기저기 정리한 후엔 휑한 카운터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


도시에서도 떨어지고 마을과도 거리가 있는 외딴곳에 있는 여관은 사실상 그리 장사가 잘되진 않았다.

이따금 먼 곳에서부터 여행하는 나그네가 온다거나 운 좋게 행상 행렬이 지나다 여로를 풀기 위해 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최근부터 현재까지 그녀의 여관을 이용하는 손님이라곤 레논 혼자였다.


‘아까 손, 잡아 주었지.’


남편 이후로 남자의 손을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남편과는 애정을 채 나누기도 전에 사별했다. 결혼하자마자 미망인이 되어버린 그녀에겐 이런저런 안 좋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대체로 붉은 머리가 남편의 피를 먹어서 그렇다느니 온갖 추잡스러운 소문이 돌던 시절도 있었다.

뭐, 그걸 빼도 원래 장사가 잘되는 여관은 아니었다. 여자 홀로 해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가끔 무뢰배나 도둑들이 들 때면 홀로 벌벌 떠는 일도 잦았다.


‘근래는 참 편했어.’


레논은 참 친절하고 상냥한 남자였다. 비록 얼굴은 평범하고 인상에 잘 남진 않았지만, 그의 행동거지에선 하나하나 배려심이 느껴졌다.

매일 해주는 음식을 정말 잘 챙겨 먹어주고 그릇을 함께 치워준다. 빈방을 청소하러 들어갈 때면 이미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손댈 것이 거의 없었고 그녀에겐 번거롭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와서 도와준다.


“······.”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이성적으로 끌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건 조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타고난 성품인 듯했고 아마도 누구에게나 친절할 것이 분명했다.


“후우, 계속 있어 주지 않으려나.”


언젠간 여행길에 오를 사람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없으면 그거야말로 거짓말일 것이다.

헬레나는 그렇게 속으로 푸념했다.


그때였다.


“────!!”


밖이 왠지 어수선했다. 하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호통을 치거나 심상찮은 듯 구는 목소리들이었다.


“여기다. 여기로 들어간 흔적이 있어!”


“애 먹이고 있고 말야, 시발.”


험악했다. 슬쩍 바깥을 엿본 헬레나는 다가오는 인파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 같이 검을 차고 있어.’


야생에 떠돌아다니며 가축을 훔치는 놀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위험을 느낀 헬레나는 어떻게든 가게 안쪽으로 몸을 숨기려고 움직이려 했다.


“음? 안쪽에 사람이 있군.”


“그럼 빨리 가서 잡아.”


“살려서?, 죽여서?”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해야 아나? 일단 살려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


“알겠다.”


헬레나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들 중 한 명이 그녀를 눈치채고 건물 안으로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다.


“안녕?”


그리고 어느새 들어왔는지 여관 안으로 들어온 검은 사내는 사늘한 인사말과 함께 그대로 헬레나를 쓰러트렸다.


“윽!”


“야, 다른 건 뭐 찾은 것 있어?”


사내에게 그대로 업혀진 헬레나는 정신을 잃어가는 중에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음, 좀 더 뒤져봐야 알겠지만 없는 것 같다.”


“쯧, 잠깐 들른 것뿐인가? 일단, 솔라를 하나 풀어놓고 가지. 귀소 본능이라는 걸 보일지도 모르니까.”


“───.”


“────.”




그렇게 의식을 잃었던 것까지 떠올랐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헬레나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구속된 팔다리를 풀어보려고 필사적이었다.


“······관둬, 어차피 못 빠져나간다.”


“헉?!”


헬레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굴에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녀를 납치해온 사내가 구석에 앉아 있었으니까.


“다, 당신들은 대체 누, 누구인가요?”


헬레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무도 무섭고 떨렸지만, 자신을 납치해온 이들은 아무리 봐도 도적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헬레나 자신이 놓인 동굴엔 이곳저곳 동물들의 사체가 놓여 있는 걸 보면 더욱 불안했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 필요 없다. 만에 하나일 뿐이지만 넌 우리 대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살려둔 거니까.”


하지만 역시 말해주지 않는다. 헬레나는 바들바들 떨었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에 공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



둘, 셋, 여덟.


꽤 많았다. 흔적을 쫓아 온 숲속에서 나는 잠복해 있는 무리들의 수를 찬찬히 세었다.


‘도적이 아냐.’


도적이라기엔 장비가 좋았고 어느 정도 실력들이 있었다. 다만 어딘가의 군이라기엔 체계가 갖춰있지 않았다. 분명한 점은 게임에선 볼 수 없었던 영문 모를 무리라는 것이다.


‘헬레나 씨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여관에서 챙겨온 과도와 포크 나이프를 폼나게 뽑아 들었다.


“다트는 해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머리를 점수판이라고 생각하고 과도를 조준하여 신중하게 하나씩 던졌다.


퍽!


“헉?!”


하나의 머리를 제대로 맞추니 다른 하나가 눈치를 챘다. 하지만 지원을 부르기 전에 능숙하게 머리를 맞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색적 아티팩트라도 구하는 건데······.”


아직 밝았지만, 숲은 바깥과 시간이 다르다. 아마도 금방 어두워질 것이다.

눈으로만 적의 위치를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에이든인 나의 특기는 처절한 전투지. 색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내 경험과 실력에 의존하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놈들에게 질 이유 따윈 하등 없지만······.”


방금 죽인 따끈따끈한 시신에서 문양을 발견했다.

두개골을 먹은 뱀 그리고 그 위로 검을 꽂아 넣었다. 꺼림칙하기 짝이 없었고 본 적도 없는 문양이었다.


‘역시 나 때문인가? 어느 순간부터 게임과는 다른 부분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어.’


만약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면 이런 점에 흥미로워서 잠도 자지 않고 플레이했겠지만 지금 나는 에이든이라는 현실에 빙의해 있었다.


절대 흥미롭지 못했다.


“······.”


그렇게 적을 여럿 제거하고 나서 나무 위를 이리저리 다니니 머지않아 아래에서 탁 트인 동굴이 보였다. 그 앞에선 무리 지어 담소를 나누는 놈들까지.


“하하, 단란한 간담회 분위기는 아니네.”


담소라고 해도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음습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감돈다.

동물의 사체부터 몬스터의 해골까지. 상당히 컬트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고 나는 이런 것을 본 적 있었다.


“······대충 어떤 놈들인지 보이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걸 사이비, 부두 혹은 샤머니즘이라고 한다지?

그런데 한술 더 떠서 판타지라는 녀석은 지극히 반인륜적인 일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는 거다.

특히 용사나 마왕이 나오는 장르에선 인간이면서 꼭 마왕 편에 붙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고 대부분이었다.

희안하게 꼭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는 놈들인데 이놈들도 그러한 부류의 한 종류였다.

짧게 말해서 이런 놈들의 약칭은 대게 이렇게 고정된다.


마왕 숭배자.


라고.


정식 명칭은 따로 있겠지만 나는 그건 나중에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지금은 헬레나의 목숨이 걸려 있는 만큼 한시가 급했다.


나는 과감하게 적진을 향해 뛰어내렸다.


“누, 누구냐?!”


나는 챙겨온 날붙이들을 사방으로 날렸다. 정확히 머리만을 조준해서 날린 만큼 몇몇은 그대로 절명해버렸고 몇 명은 자연스럽게 튕겨냈다.


‘역시 익숙하지 않는 짓은 하는 게 아니라니까······.’


“적습이다!”


외침과 호각 소리에 다른 놈들도 속속들이 달려왔다.


“쉬익!!”


뒤에서도 덮쳐왔는데 나는 지금 맨손이었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맨손 패링(Hand Parrying)」

기습을 할 거면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이놈들은 전혀 모른다.


“흑, 크아아악??!”


계속 말하지만 패링은 소울 아티팩트 중에서 가히 최악이다.

웬만한 무기는 내구도 때문에 못 쓰지. 타이밍도 맞추기 어렵지. 엇박으로 때리는 놈도 있었다.


“······.”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그런 걸로 기죽을 이유는 하등 없었다. 그리고 게임이었을 땐 목숨이 걸려 있지 않았었다. 분노와 짜증은 남긴 하지만 딱히 실패한다고 해서 화병이 나 죽는 건 아니었다.

약 500번, 에이든을 그만큼 다뤘다. 그리고 빙의하고 나서는 내 몸이었다.

무협지에 나오는 절세고수 흉내 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내, 파, 팔이?!!”


내 맨손 패링에 당한 놈은 팔이 꽈배기마냥 뒤틀어져 있었다. 내 손에는 지금 조잡한 구석이 있지만 그럴싸한 적의 검까지 들려 있었다.

드래곤조차도 핸드 패링으로 넘기는 게 지금의 나였다. 어쭙잖게 마왕이나 숭배하는 한낱 인간이 그 중압감을 과연 견딜 수나 있을까?


“간다.”


나는 살기를 띤 채 속공으로 들어갔다.


“히익!!”


“하나!”


검격 한 번으로 눈앞의 적은 물론 뒤에 있는 바위까지 토막이 났다.


“이, 이 새끼!?”


난 멈출 기미 없이 눈앞의 적들을 도륙 내고 있었다. 가차 없는 일격 한 번 한 번에 비명과 피가 튀는 소리가 온 사방을 메꾸었다.


“시, 시발! 엡솔룸을 불러, 당장!”


몇 명이 겁에 질려 도망치는가 하면 몇 명은 동굴로 달려갔다.


‘도망친 놈들을 쫓을까?’


아니, 헬레나가 우선이었다. 아직 놈들은 내가 헬레나를 데리러 왔다는 것을 모른다. 갑작스레 하늘에서 떨어진 재해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고 나는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자, 열다섯!”


이미 주변은 내가 남긴 검흔으로 가득 찼다. 나무는 대각선으로 바위는 두 동강, 같은 인간이 보더라도 그것이 한때 인간이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뒈져라, 시팔!”


하지만 역시 인원이 많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사각지대에서도 공격이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그럴 땐 늘 이런 식이다.


「보조 패링(Assistant Parrying)」


캉!


내가 감지하지 못한 것을 보조해주는 패링 스킬이다.

에이든으로 살면서 아티팩트의 특성을 어쩌다 진화시킨 능력 중 하나로 주로 다수와의 전투나 예기치 못한 공격에 대해 치명상을 입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패링으로 말 그대로 완벽하진 않으나 상대의 공격을 튕겨내거나 흘릴 수 있게 만든다.


‘픽’하고 뺨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른다.


이름처럼 보조만 해주기에 몸에 상처가 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치명상을 피하는 것과 적의 빈틈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니까.

나는 그 틈을 절대 놓친 적이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촤아악!!


“열여섯.”


꽤 죽였다. 이제 근처에 서 있는 놈은 거의 이제 없었다.


“네, 네놈. 정체가 뭐냐? 뭐 하는 놈이길래 우리를.”


“아아아, 그건 알 필요 없고, 네가 대장이냐?”


통성명을 할 만큼 친절하진 않았다. 마왕 숭배자라면 더더욱.

나는 검을 겨누고 놈에게 다가갔다.


“이봐,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지 않을까? 우리가 딱히 네놈에게 무얼 한 것도 아니고······, 우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 않나!?”


“대충은 알아, 마왕 숭배자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잖아.”


“······.”


정곡을 찔린 듯 놈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과연, 네놈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소리인가. 성전 기사단이냐? 아니면 갈라스 군사협회? 그것도 아니라면 왕국의 개? 무엇이 됐든 살려둘 이유는 없겠군.”


아, 이거 강적이 나타날 것 같은 대사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망토를 펄럭였다. 그러자 그 안에서 갓 태어난 듯 싱싱한 솔라 대여섯 마리가 튀어나왔다.


“?!!”


지금 보이는 솔라들은 거대한 늑대를 의태 했는지 사납고 거친 모습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패링」


캉!


「어시스트 패링」


챙!


패링 아티팩트를 적재적소 사용하면서 솔라들의 칼날 같은 이빨과 발톱의 맹공을 막아낸 나는 거침없이 적을 향해 다가갔다.


“크윽, 이놈들도 별거 아니란 거냐!!”


“솔라를 어떻게 사육했는진 몰라도 네가 소유주라면 간단한 일이지.”


솔라가 골머리를 썩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태양이 비칠 때만 움직이는 몬스터. 솔라는 움직이지 못할 땐 주로 사람을 숙주로 삼아 그림자 속에 기생하면서 살아간다.

솔라는 주로 약한 인간들이나 평범한 인간들의 그림자 속에 기생할 수 있는데 게임 후반부에선 그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3번째로 본 엔딩, ‘절망의 그림자’ 엔딩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이 엔딩이었고 릴리시아를 잡지 않고 넘어가 마왕을 잡는 것이 조건인 엔딩이었다.


기생한 솔라를 제거할 최선의 방법은 숙주인 인간을 죽이는 것.

그렇지 않으면 솔라는 그림자 속에서 번식하여 그 수를 점점 늘려가거나 혹은 진화해서 사회를 침식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네크로 메이커, ‘죽음을 만드는 자’의 무서움이었다.

그러니 내겐 인과를 바꾸기 위해 부쳐를 죽여야 한다는 한 가지 목표가 있으면서도 넓게 본다면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릴리시아 자체를 죽여야 한다는 보다 높은 목표 또한 존재했다.


“오, 오지마!!”


그렇게 나는 어느덧 놈의 코앞까지 왔다.

솔라들이 처음에 몇 번이고 달려들어 위협했지만, 그때마다 베어 넘기니 얼마 있지 않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놈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 들어버렸다.


“이, 이 병신같은 새끼들이? 숨지 말고 나오란 말이다!”


솔라는 죽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죽이기 한없이 까다로울 뿐.

쉽게 죽이는 방법은 숙주를 죽인다는 다소 꺼려지는 방법이었지만 다행히도 내 눈앞에 있는 자는 솔라를 조종하고 마왕까지 숭배하는 극악무도한 인물이었다.


“······.”


해서 나는 거침없이 검을 내리쳤다.

그러나,


“───?!!”


‘어시스트 패링’


촤아아아악!!


“······.”


검을 내리치는 순간이었다. 놈의 뒤에서 인영이 드리우더니 또 다른 솔라가 튀어나와 나를 엄습한 것이다.


“한 놈, 더 있었나?”


저벅, 저벅.


동굴 안에서 한 명이 나왔다. 그걸 본 숭배자의 수장은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시발, 왜 이렇게 늦었어?”


“······잤다.”


“······큭, 뭐, 좋아. 아무튼 난 여기서 빠져나간다. 너는 어떻게든 저놈을 막아. 기왕이면 죽여라. 생각보다 알고 있는 게 많은 놈이다.”


“알겠다. 접선은 늘 만나던 곳으로 하면 되나?”


“그래, 그러면 돼.”


“안쪽에 여자는?”


안쪽의 여자는 헬레나를 말하는 것이다.


“쯧, 본래는 우리 비원을 위한 실험재료로 쓸까도 생각했지만, 때가 안 좋군. 알아서 처리해.”


“알겠다.”


얘기가 끝나자 놈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려고 한다. 놈을 놓치면 왠지 귀찮아질 것을 예상한 나는 서둘러 쫓으려 했으나,


“기다─!”


스윽.


정해진 클리셰처럼 다른 놈이 앞을 가로막았다.


“네 상대는 나다.”


“······.”


‘대사가 너무 식상하잖아······.’


마왕 숭배자의 수장은 죽여둘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눈앞에 이 녀석, 이런 놈들은 대게 힘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브레이브 크루에는 따로 레벨링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니, 레벨 자체는 있었지만, 그 레벨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숙련도’


실전을 경험하면 할수록 스탯이 오른다. 레벨을 올려 입맛에 맞게 스탯을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검을 잡으면 검에 대한 숙련도가 오르고 마법을 쓰면 마법에 대한 숙련도가 오르는 방식이었다.

강적을 잡으면 잡을수록 이끌어낼 수 있는 한계의 척도가 달라진다.

그러나 누가 똥망겜 아니랄까봐 스테이터스 창과 같이 레벨과 능력치를 보는 것도 길드에서 요청해야만 볼 수 있었으니 혹시나 내 능력치가 탄로 날까 싶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상대의 역량을 알기 전까진 함부로 덤빌 순 없었다. 특히 이렇게 자신만만한 놈은 꼭꼭 숨겨두는 게 한두 개는 무조건 있어서 봐주는 게 예의였다.


“······.”


“신속의 엡솔룸.”


“······아니, 통성명할 생각 따윈 없었는데?”


“안다. 싸우기 전엔 항상 이렇게 하라고 배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을 든 엡솔룸이 찌르기를 해왔다.


「패링」


키이이이잉─!


속도가 실린 찌르기를 패링하자니 부싯돌을 붙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자검을 통한 찌르기가 특기구나.’


방패로 패링을 시전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물론 검을 주로 쓰는 내겐 별 의미 없었지만.


“막았다? 그럼 이건 어떠냐?”


엡솔룸은 뒤로 한걸음 물러나 펜싱하듯이 자세를 잡았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과 함께 검 끝으로 마력이 집중되었다.


“저, 검 아티팩트였나?”


내가 놀랄 틈도 없이 엡솔룸이 발을 내디디며 외쳤다.


“「앱솔루트 퓨리엔슐라그(Absolut Fulrenschlag)」!!”


눈으로 보기도 힘든 무수한 찌르기가 덮쳐왔다.


“크윽?!”


킹, 캉, 팅, 핑.


패링으로 응수해보지만 막고 흘리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자검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상대가 절명할 때까지 빛을 발하는 물건으로 보였고 ‘신속’이라는 이름이 붙은 엡솔룸답게 그 찌르기의 속도는 섬광과 같았다.


“지금껏 이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큭, 네놈들 대체 목적이 뭐냐? 뭣 때문에 마왕을 숭배하는 짓을 저지르는 거지?”


공격받는 와중에도 나는 밀리는 척하며 질문했다. 하지만 엡솔룸에게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과묵하게 입을 꾹 다문 채 검격을 이어 나갔다.


“제법 버티는군.”


“다시 묻겠다. 네놈들 목적이 뭐지?”


그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와중에 나와 그의 사이엔 불똥이 튀고, 피와 살이 튀었다. 나는 중요 급소 부위만을 겨우 막아내고 쳐내는 나는 반격조차 버거워 보였고 위기였다.


“버티기 힘들어 보이는군. 그만 죽어라.”


야속하게도 그는 내 질문에 답을 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걸 물으면 죽기 전 선물이랍시고 다양한 말을 해주는 게 정석인데 이 녀석은 그 정석을 모르는 모양이다.

야박하디 야박한 엡솔룸은 발을 한 번 뺀 뒤 다른 방향으로 돌아 제 2격을 쏠 준비를 했다.


“「앱솔루트 퓨리엔슐라그」!”


이 회심의 공격에 나는 틀림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 것이다.


‘뭐, 그건 이놈 생각이겠지만······.’


챙!!


“───?!!”


“대답해줄 생각이 없다면 놀이는 이만 끝내자.”


나는 묵묵한 표정을 하곤 딱 한 번 휘둘렀다.

그리고 동시에 엡솔룸의 검은 영문도 모른 채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이, 이게······?”


푹, 퓩, 퓨뷰뷰뷰뷰!!!


“허억?!”


그리고 검이 부러진 것을 채 인지하기도 전에 엡솔룸에 몸에는 내 몸을 찌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관통상이 나타났다.

구멍이란 구멍에선 와인통을 딴 것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 이건······, 내 공, 격?”


“충성스러운 건지 아니면 융통성이 없는 건지는 몰라도 너한테선 얻을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 말이야.”


“무,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욕심 많은 녀석이다. 내 질문에 답은 해주지 않으면서 자기는 해답을 바란다.

하지만 설명해줘도 특별할 게 없었다. 내가 놈에게 가한 건 다름 아닌 패링이었으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패링을 연마한 끝에 터득할 수 있었던 기술이다.


「반사 패링(Reflect Parrying)」


적의 공격을 정확하게 패링하게 되면 적의 공격마저 되돌려주는 스킬이다.

한때 에이든에 빙의하고 성장하면서 다양한 강적과 만났다. 그 과정에서 고전하고 또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겨왔고 이윽고 패링에 대한 새로운 계보를 만드는 도중 탄생한 기술.

즉 엄연히 말하자면 게임상 아티팩트 시스템에 대한 특성을 무시한 아류였고, 다른 말로는 진화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을 배운 이후로는 웬만한 것이 편해졌다. 범접할 수 없는 강적과 이런 어중간한 놈들을 상대하기가 쉬웠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리스크도 상당히 컸다.

정확한 타이밍을 알아야 했고 혹여 실수하기라도 하면 반대로 내가 요절나버리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스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기술을 쓰고 나면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 있었다.


파사삭.


“아, 이거 가루가 됐네.”


사용하는 무기가 무조건 파괴된다. 지금은 해결책을 찾았지만 그전까진 상당히 고생해야 했다. 한 번 쓰기만 해도 무기 내구도가 마이너스를 돌파해버리니 이렇게 자루만 남고 검신은 원형조차 남지 않는 게 숱한 일이었다.


“자,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죽기 전에 할 말 있으면 하던가.”


나는 어떻게든 정보를 끌어내고자 엡솔룸에게 다가갔다.


“흐, 크크.”


그런데 갑자기 엡솔룸이 웃기 시작했다.


‘아, 이거 설마······.’


“이,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난 네놈을 죽이라고 명 받았다. 명을 받은 건 반드시 해내야 한다! 크, 윽. 컥!!”


갑자기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처럼 온몸을 뒤틀어가면서 일어난 엡솔룸에 입에선 어느샌가 검은 액체가 폭포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 오우.”


참 보기 그럴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뼈가 튀어나오고 검은 액체가 온몸 구석구석에서 뿜어져 나와 사방에 흩뿌려진다.


“시발, 보기 졸라 흉하네.”


그렇게 보기 힘든 광경이 한참 지나자 엡솔룸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은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Oh, Holy shit······.”


뒤틀어진 황천의 요리같이 생긴 2 페이즈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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