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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마녀의 서고

에이든은 오늘도 용사를 만나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집필마녀
작품등록일 :
2023.05.14 01:16
최근연재일 :
2023.08.20 12:00
연재수 :
10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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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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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수 :
540,615

작성
23.05.1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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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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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2장. 아나스타시아(4)

DUMMY

·········


휘익!


엡솔룸은 몸에서 뻗어져 나온 검은 촉수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위력은 상당했고 주변에 널리고 널린 시체와 나무 바위 절벽마저 부수기에 이르렀다.


“완전히 무차별 공격이로군.”


인질인 헬레나 씨를 무사히 구출하고 훈훈하게 끝내고자 했는데, 그 가벼운 마음을 배신하듯 엡솔룸이었던 것은 거침없이 촉수를 휘둘러 댔다.


“······.”


무수한 채찍질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놈의 공격 패턴을 관찰했다.


‘근데 딱히 패턴이랄 게 없네.’


하긴 이건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브레이브 크루 속 현실 세상이었다. 인간이거나 적어도 도구를 쓴다거나 하면 특유의 습관을 콕 집어서 반격이라도 해볼 만하겠지만 이건 그 축에도 못 들었다.


‘이성 없는 순수한 괴물.’


그림자 괴물 ‘솔라’가 기생한 인간이 변화한 돌연변이.


“······.”


이 마왕 숭배자란 것들은 솔라를 통해서 마족이라도 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상당히 미쳐 있었다. 놈들이 바라는 이상향이 과연 어떤 것인지 모르나 그 끝에 정말 그들이 바라는 것이 있을지는 장담조차 할 수 없었다.

나라면 저토록 추하고 흉물스럽게 변할 바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자결하고 말 테다.


「핸드 패링」


“소용없네.”


그림자 채찍의 흐름을 포착해 패링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패링된 부분만 뜯겨 나갈 뿐, 별다른 데미지를 주지도 못했다.


“흔적도 없이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 말곤 방법이 없으려나?”


그랬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내가 쓰는 검을 들고 오지 않았기에 일격으로 날릴 수도 없었다. 주변에 널브러진 검을 주워 쓰자니 이미 엡솔룸의 채찍질로 산산조각들이 난 상태였다.

그리고 저 거체를 쓰러트리기엔 아무래도 힘도 부족했다.


‘아니면 먼저 헬레나 씨의 안전을 확보하고 검을 가지고 다시 돌아올까? 아니야, 이놈은 지금 나만 노리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헬레나 씨도 위험해.’


“······겉보기와 다르게 제법 고전하네. 도와줄까?”


이런저런 방법들을 머릿속으로 강구하던 중이었다. 들어본 적 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황금빛 섬광이 떨어졌다.


“이, 이건?”


빛은 엡솔룸을 향해 정확하게 떨어졌고 그 파장은 큰 먼지와 함께 폭풍을 일으켰다.


“실력을 일부러 숨기는 거야? 아니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남자인 건가?”


자욱한 먼지가 점차 걷어지자 그 형상이 드러났다.


“하아, 이런 전개는 예상 못했는데······.”


엡솔룸은 흔적도 없이 소멸해 있었고 그 자리엔 기다란 성창이 있었다. 그리고 성창을 부여잡은 채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나스타시아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역시 그런 시시한 이유는 아니겠지?”



·········


황금빛과 후광이 사그라들고 본연에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구불구불 길게 흐트러진 금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올리면서 그녀는 여유롭게 내 앞에 섰다.


“······.”


“······.”


약간의 정적.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나스타시아와의 재회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내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녀의 손에 들린 성창이 어느샌가 사라졌다는 것과 말없이 묵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답답한 나머지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도움 감사합니다?”


“어째서 의문문인 거야?”


그녀는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됐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충분히 보았으니······.”


“그게 무슨?”


내가 진정으로 의문을 표하기 무섭게 그녀는 내게 검을 겨누었다.


“너, 성전 기사단에 들어와라.”


이건 권유일까? 아니면 협박일까?

참 난감할 따름이다.

이 세계에 빙의한 이례 나는 용사와 관련된 일에 얽히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단 한 가지, 용사를 만나면 죽는다는 운명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나스타시아 그녀는 용사 파티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용사를 만나는 운명이었다.

비록 게임 속 세상이었지만 현실이 된 이곳은 또 묘하게 게임 시스템을 따라가는 일종의 습성이 있었다. 보스들은 정해진 패턴이 있다거나, 특정 이벤트가 무조건 발생하는 것. 그렇기에 부쳐 같은 튜토리얼 보스는 죽일 수 없을지도 모른단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걸 멀리하고 단순 내 목적만 이루고 도망치는 선택을 하지 못했던 건 반대로 용사가 죽는 것도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용사가 죽으면 길든 짧든 언젠간 마왕에 의해 세상은 멸망할 테니까.


‘오직 선택받은 용사만이 마왕을 무찌를 수 있다.’


이 세상에 있는 전승은 그렇게 말했다. 지금도 그 전승을 알리는 벽화가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용사를 돕기도 해야 했다.

성검을 뽑고 용사로서 선택된 그를 말이다.


물론 뒤에서.


그리고 그것이 최선이었고 옳은 선택이었다.

용사가 헤쳐 나가야 할 난관 중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해결했다. 어차피 실패하면 죽는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목숨을 걸고 위협적인 괴물과 보스들을 무찔렀다.

그렇게 최근에 목을 잘라 죽여버린 재액의 용을 끝으로 난 그 사명을 어느 정도 다했다고 생각했다.

용사의 성장에 대한 발판도 인류의 여건이 나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다.

따라서 이젠 용사와 관련된 것에 엮이지 않고 내(에이든)게 가장 연관되어있는, 처음의 목표를 해결하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도 생각할 게 많은 모양이네.”


“······.”


정신이 드니 아나스타시아가 겨눈 푸른 빛의 칼날의 끝이 선명하게 보였다.

게임을 했을 땐 아나스타시아의 관심을 갈구했다. 그녀를 어떻게든 동료로 영입하고 싶어 발광했을 정도로.

그만큼 아나스타시아라는 캐릭터에 푹 빠졌었다. 그녀의 등장은 분명 중반부부터인데다 그 이후로는 결정적인 순간을 제외하곤 등장 횟수도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란 인물에 빠져 있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용사가 아닌 내게 한 편이 되자고 한다.


“후.”


실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냉큼 그 칼끝을 잡아 매달려도 좋을 만큼······.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원도 나 바람도 이루어질 순 없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


그녀의 얼굴이 상당히 험악해졌다. 불같은 성정의 그녀다. 필시 기분이 나쁠 것이다. 무려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인 그녀가 직접 권유한 것이니,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덤벼들 가능성도 충분했다.


“······새끼, 졸라 비싸게 구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고 이내 불만 가득한 표정이면서도 꾹 참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뭐, 쉽게 될 거라곤 생각 안 했어. 차 한 잔도 안 마시는 쪼잔한 놈한테 이런 걸 기대한 내가 빡대가리지.”


“······화, 내시지 않는 건가요?”


“내가? 무슨 권리로?”


아나스타시아라면 분명 화를 낼 줄 알았다.

내가 아는 그녀는 언제나 화를 달고 살았던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그녀에겐 모두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그녀 기준에서 올바르지 않은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때마다 그녀는 화를 내고 욕지거리를 해댄 것이었다.


“······내가 그때 너를 붙잡은 것만 아니었어도 이런 상황을 겪지도 않았을 거야. 오히려 내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게 이상하지.”


“제가 부단장님께 왜 책임을?”


“아니, 그러니까······.”


아나스타시아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 썅. 몰라, 그냥 그러면 그런 줄 알아!”


그녀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부단장님은 지금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시고 또 쑥스러우셔서 그러신 거예요.”


“뭐, 시발?! 내가 언제?!!”


그새 뒤에서 다가온 그녀의 보좌관 마리샤가 말을 덧붙였다.


“원래부터 영웅적인 걸 좋아하시거든요. 레논, 아니······, 분명 당신께선 에이든 님이 맞으시겠죠?”

마리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보았다.


“아니, 난······.”


당황한 나머지 입을 연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마리샤의 눈빛이 그윽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했다.’


마리샤의 아티팩트 ‘진실의 눈’을 망각해버린 것이다.


“친절한 답변 감사드려요.”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부단장님의 무례한 행동은 여관의 아낙을 구하기 위해서 보인 영웅적 행동에 감명받으셔서 그러신 거니 이해해주세요.”


마리샤의 말처럼 함께 대동한 기사들 몇몇이 정신을 잃은 헬레나를 무사히 데려오고 있었다.


“쯥,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자빠졌어.”


아나스타시아는 어울리지 않게 얼굴을 붉혔다.


“······.”


그런가.

과연 아나스타시아는 원래부터 이런 성격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화면에서 본 아나스타시아는 마냥 강하고 찬란했다. 등장 횟수도 얼마 되지 않으니 그녀의 영웅적인 면만 부각 되니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제법 귀여운 성격의 소유자네.’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인물에게서 낯선 분위기가 풍겼다. 그런데 그게 신선했고 나쁘지 않았다.


‘나를 동경하게 된 아나스타시아라······.’


섣부르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쁘지 않은 착각이다.

나는 영웅으로서의 아나스타시아를 동경했기에 동료로서, 또 그녀를 플레이하면서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동료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용사를 싫어했다.

후반부에 갈수록 동료가 죽어가는 중에도 용사는 결코 멈추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어쩌면 용서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동료를 희생하고 주위 사람을 희생하고 자신마저 희생하며 마왕을 쓰러트리는 용사를······.

아나스타시아란 여자는 그런 용사가 죽을 만큼 싫었던 것이다.


‘빙의하고 나서야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 되다니 이거 아이러니하네.’


“크흠, 됐고 넘어가, 넘어가. 빨리 저 여자나 퍼뜩 데려가. 내 기사단이 엄호해줄 테니. 그리고 나중에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까. 도망치거나 할 생각하지 마!”


“······후, 그럼 아까 못 마신 차 대신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큭, 아아, 그래. 맘대로 해.”


그녀는 아까보다 더 얼굴을 붉히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원하던 만남도, 목표로 한순간도 아니었지만, 이 만남은 왠지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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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은 오늘도 용사를 만나지 않는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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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장. 네리우스 교단(3) +2 23.05.17 60 2 13쪽
11 3장. 네리우스 교단(2) +2 23.05.17 59 1 12쪽
10 3장. 네리우스 교단(1) 23.05.16 60 1 15쪽
9 2장. 아나스타시아(5) 23.05.16 68 2 12쪽
» 2장. 아나스타시아(4) +1 23.05.15 76 2 11쪽
7 2장. 아나스타시아(3) 23.05.15 72 3 26쪽
6 2장. 아나스타시아(2) 23.05.14 79 2 14쪽
5 2장. 아나스타시아(1) 23.05.14 81 3 12쪽
4 1장. 인과(3) 23.05.14 89 4 16쪽
3 1장. 인과(2) +1 23.05.14 102 4 20쪽
2 1장. 인과(1) +2 23.05.14 149 6 19쪽
1 프롤로그 +1 23.05.14 227 6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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