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305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7.05 13:00
조회
49
추천
7
글자
13쪽

구원

DUMMY

꿈에는 엄마가 나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라기보다는, 엄마를 닮은 젊은 여자였지만······. 그래도 나는 그 여자가 내 엄마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녀는 엄마의 총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으니까.


잠시만, 엄마가 아닌가? 이 여자가 진짜 내 엄마라고 하더라도, 내 엄마의 과거일 테니까, 그럼 나를 낳기 전이고. 나를 아직 낳지 않았다면 내 엄마라고 할 수는 없는 건가?


머리가 이상해진 건지 온갖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결론을 내 봐야 아무 의미도 없는, 쓰레기 부스러기 같은 생각들.


그녀는 허름한 동네의 골목 사이로 정신없이 달리는 중이었다. 도망치는 쪽이 아니라 누군가를 따라가는 쪽이겠지.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면서도 눈빛이 흔들리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엄마처럼 보이는 여자를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시야는 마치 그녀를 따라 날아가는 사진기처럼 여자의 뒤를 밟았다.


여자의 뒤에서 한 젊은 남자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녀만큼 걸음걸이가 빠르지 않은지, 기침을 토해내며 한 번 멈춰 섰다.


"천천히 가요! 이러다가 심장 터지겠어요."

"천천히 따라와!"

여자는 쌀쌀맞은 말을 남기고 좁은 골목들 사이로 빠져나갔지만 나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그만 숨을 삼켰다.


남자의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나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 코트와 부츠 차림에 허리에는 커다란 활을 멘 남자는 한참이고 서서 숨을 골랐다. 나는 그 얼굴을 한참이나 뜯어보다가, 결국 그를 버리고 다시 여자를 따라가기로 했다.


우와, 벌써 잡았잖아? 여자가 도착한 장소는 척 보기에도 낡은 주점이었다. 이미 폐업한 것 같은데. 얼마나 청소를 안 한 건지 바며 진열장은 새까만 먼지투성이였다.

예전에는 가수를 불러 공연을 했던 걸까. 작은 무대 구석에 마이크며 기타와 같은 집기들이 보였다.


그 무대의 중앙에 여자의 표적이 앉아 있었다. 다 부서져 가는 의자에 겨우 등을 기대고 있는 거니까, 앉아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건가?


서른은 넘었고 마흔은 되지 않았을 것 같은 남자였다. 원래는 꽤 풍채가 당당한 미남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엉망진창인 모습이었다. 걸레짝이 된 외투에 얼굴이며 온몸에 자잘한 상처들. 그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매서운 눈으로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히려 총을 들고 있는 여자 쪽이 기가 죽은 표정이었다.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걸로 날 쏠 거냐?"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남자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육체는 이미 내구성이 다해서 그 안에 담긴 영혼을 뱉어낼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광기가 서린 눈을 빛내며 여자를 몰아붙였다.


"네가 나를? 넌 알겠지, 내가 뭘 위해서 그런 일을 했는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이해해 주겠지?"

무슨 개소리야. 제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설명 좀 해주면 안 되나?

이래서야 1편을 안 본 채로 2편을 상영하는 영화관에 들어온 기분이라고.


여자의 얼굴에는 피로가 먼지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선배. 스물네 명이 죽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파악한 게 스물네 명이니 아마 더 많이 하셨겠죠."

"스물네 명이나 찾았구나, 이제 너희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내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었는데."


남자가 마룻바닥에 피를 뱉어냈다. 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왜 그러셨죠? 왜 그런 일을 하셨나요? 대체 뭘 이루고 싶으셨나요?"

"멍청한 자식!"


그의 몸은 큰 소리로 고함치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운 상태인 듯싶었다. 여자에게 소리친 대가로 그는 바닥에 엎어져 힘들게 숨을 토해내야만 했다. 여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니. 어리석고 불쌍하구나. 이제 곧 제국이 너를 잡아먹을 날이 오거늘."

반쯤 쓰러져 있던 남자가 갑자기 팔을 뻗어 여자가 들고 있던 총을 낚아챘다. 그의 억센 팔이 총구를 자기 이마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제 됐다. 네가 해야 할 일을 해라. 너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무슨 말씀이시죠? 제국이 저를 잡아먹는다는 건. 선배는 도대체 뭘 보셨죠? 뭘 알고 계시는 겁니까?"


여자가 남자의 손으로부터 총을 빼앗았다. 그녀는 쏠 생각이 없다는 듯 총을 저 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이거 어마어마하게 비싼 총인데. 남자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이쉐. 네가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다고 생각하지? 네가 죽인 사람들의 수를 세어 본 적 있나?"

역시 엄마였구나. 남자가 부른 이름은 내 엄마의 이름이었다.

이쉐 알첸브라임, 제국 사냥꾼 제1호가 되어 버린 여자. 그녀는 남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영혼들의 무게를 갚을 수 있겠어? 그 많은 목숨을 없애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겠어?"

"하지만 선배. 저는 철저히 계시에 따라······."

"그놈의 계시!"


남자는 다시 쿨럭거리며 피를 토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그 계시가 면죄부일 거라 철저히 믿고 있겠지. 나는 계시에 따랐을 뿐, 사냥의 신이 내게 자격을 주었다. 나도 그랬었다! 하지만 아니야. 제국 사냥꾼이 뭐라고 생각하지, 이쉐? 신의 허락을 받아 사람을 죽여도 되는 존재? 아직도 세상에 그딴 편리한 신이 있다고 생각하나!"


남자의 말은 여자뿐 아니라 나에게까지 충격을 주었다. 잠깐, 사냥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가?

그럴 리가. 하지만 분명히······.


여자는 동요했지만 이내 억지로 마음을 다잡은 듯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선배. 뭘 알고 계신 거죠? 제게 말씀해주세요."

"······를 죽여라. 그것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다."


그 말은 남자의 유언이었다. 그는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절명했다. 여자는 돌아서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녀가 바닥에 던져 놓았던 총을 주워 와 총알 한 발을 장전했다. 마법 총알이군. 나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남자의 시신을 향해 총을 쏘자 남자의 시신은 산산이 부서져 사라져 버렸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자리에는 보석처럼 보이는 검은 돌이 하나 떨어졌다. 손바닥에 가득 찰 정도로 커다란 돌이었다. 여자는 돌을 손에 쥔 채로 남자의 시신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참 뒤에서 여자를 따라 달리던 남자는 그제야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와, 씨. 뭐야 이거."


창밖에서 서서히 밝은 기운이 넘어오는 걸 보니 새벽녘인 모양이었다. 그 말은 충분히 잘 잤다는 건데, 좀처럼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내가 누워 있던 방의 구조는 낡은 여관처럼 보였다. 일단 좀처럼 생활감이라는 게 없었고, 벽이며 바닥이 쩍쩍 갈라져 있었으니까. 나는 뭐라도 마실 생각으로,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불편함을 느끼며 방을 나섰다.


창가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젠이 혼자 앉아 있었다. 생각에 잠긴 듯 내가 문을 열고 나온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어제 뺨을 두 대 맞은 복수로 그의 뒤통수를 최대한 세게 후려갈겼다.


"아야!"

"좋은 아침~"

"이 미친년이. 죽고 싶냐?"


젠의 고운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섰다. 나는 깔깔 웃으며 그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이미 어제 한 번 뒤질 뻔했어. 어떤 새끼가 만든 쓰레기 물약 때문에."


젠이 다시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뭐야, 어제가 아닌 거야?"


내 총에 걸린 마법을 교란하기 위해 젠이 만든 물약을 마셨었다. 뭐, 몸 속에 흐르는 마력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약이라던가. 그리고 그 부작용 때문에 거의 맛이 간 상태로 잠이 들었고, 엄마가 나오는 꿈을 꿨다.


이게 아닌 건가?

"아, 그게 어제 일인 줄 알았나. 넌 사흘 동안이나 자고 있었어."

"사흘?"


어쩐지 하루 푹 잔 것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배가 고팠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도 그래서였나.


"그래. 서비가 난리를 치던데? 이러다가 유리오가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이딴 소리를 하면서. 어떻게 되면 어떻게 해? 지금 생각하니 말장난 같아서 웃기네."

"서비는?"

"아직 자고 있어. 그냥 자게 놔둬."


말하는 걸로 보아 어젯밤까지 날 돌봐준 게 서비인 모양이었다. 그럼 나는 잠들어 있는 동안 옮겨진 건가.


"여긴 어디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게 어딘데."

"리오나의 검을 빼앗겼다고 젠이 나한테 지랄을 했던 거."


거기가 밤의 숲이었지. 여긴 아무리 봐도 숲속의 여관은 아니었다. 일단 밤의 숲 같은 데 여관을 짓는 미친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여긴 렘다라는 작은 촌 동네야. 밤의 숲을 빠져나오자마자 이 여관에 방을 잡았고."

"그런가."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팔다리를 쭉 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은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몇 번이고 기지개를 켜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 주변이라도 한 바퀴 정도 달리고 와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일어서려는데, 젠이 내 팔을 붙잡았다.


"꿈을 꿨지?"

"꿈?"

어떻게 아는 거지? 나한테 먹인 약이 무슨 개수작이었나.


한쪽 눈이 없어 안대를 쓴다는 이 남자, 젠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걸 직감한 나 역시 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난 두 달 동안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때리고 욕설을 하거나 속이곤 했다.

그는 뒷골목에서 주워들은 기술로 겨우 마법을 조금 썼는데, 그 마법 실력을 의심하거나 무시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래. 그 약을 먹으면 꿈을 꿀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지만, 자는 동안 가만히 있질 못하더군. 무슨 꿈을 꿨지?"

"그게 너한테도 중요한 일이야?"


어젯밤 꿈은 제국 사냥꾼들이 나오는 꿈이었다. 엄마뿐 아니라 죽은 남자 역시 제국 사냥꾼이었겠지. 성물을 팔아 먹고사는 내 일행이 그 꿈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필요에 의해 같이 다니는 사이니까. 나는 혼자 다니는 것보다 길을 잘 아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으며 다니고 싶었다. 서비와 젠은 척 보기에도 좋은 무기를 가진 내가 전력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은 듯했다.


지금은 내가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도 못하고, 대신 전력에 도움도 안 되는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렸지만.


"아마도 아닐걸."

"그럼 생각 좀 해 보고 얘기해줄게. 지금은 머릿속이 복잡하거든."

"그러든가."


젠이 내 시선을 피하며 팔을 놓았다. 나는 뻐근한 목을 좌우로 번갈아 기울이며 여관을 나섰다.

"어린애도 아니고 엄마 꿈이냐······."


하긴, 엄마 꿈을 꿀 만도 한가. 애초에 내가 집을 나온 것도 어떻게 보면 엄마 때문이었으니까.


엄마는 십 년 전 갑자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 나는 엄마가 남긴 메모를 가지고 있었다.


엄마, 이쉐 알첸브라임은 이런 글을 남기고 떠났다.

"나, 제국 사냥꾼 제1호 이쉐 알첸브라임은 아이니를 찾으러 떠나겠다."


아이니가 뭐냐 하면, 제국 사냥꾼들에게 계시를 내리는 사냥의 신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신을 찾겠다며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고 보니, 꿈 속의 남자가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었나?


"······를 죽여라. 그것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다."

젠은 나에게 무슨 꿈을 꾸지 않았냐고 물어봤었지. 설마 내가 어젯밤에 이런 꿈을 꾼 건 젠이 만든 약을 먹었기 때문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3 다섯 번만에 누군가의 이름을 외운다는 것 +1 22.07.11 31 5 12쪽
52 손님으로 들어와 연행되어 나간다는 것 +1 22.07.10 38 6 12쪽
51 죽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읽어본다는 것 +1 22.07.09 44 7 12쪽
50 검을 맞댔던 여자와 마주 앉아 식사한다는 것 22.07.09 43 7 12쪽
49 전 여자친구의 오빠에게 머리카락을 맡긴다는 것 +1 22.07.08 51 7 12쪽
48 신을 담는 그릇 +1 22.07.07 48 7 12쪽
47 신의 사자들 22.07.06 50 7 12쪽
» 구원 +1 22.07.05 50 7 13쪽
45 폭우 +1 22.07.04 53 7 12쪽
44 멀어져 가는 모든 것들 22.07.03 52 7 12쪽
43 수면제 +2 22.07.02 47 7 13쪽
42 커다란 걸 짊어진 자 +2 22.07.01 50 8 12쪽
41 그의 반쪽 +4 22.06.30 51 8 12쪽
40 아직 한창인 사냥꾼 +2 22.06.29 53 7 12쪽
39 모르는 게 없는 +1 22.06.28 49 8 12쪽
38 기댈 곳 없는 이 +1 22.06.27 55 8 12쪽
37 옛 파트너 22.06.26 55 8 12쪽
36 반역의 씨앗 +1 22.06.25 49 8 12쪽
35 의뢰를 가리지 않는 사람 +1 22.06.24 53 9 13쪽
34 건방지고 무례한 손님 +2 22.06.23 59 9 12쪽
33 태평한 아가씨 +2 22.06.22 54 9 12쪽
32 막무가내에 고집 센 여자 +1 22.06.21 57 9 13쪽
31 황제 시해자 +1 22.06.20 59 9 12쪽
30 제국 사냥꾼 제6호 +1 22.06.19 59 7 12쪽
29 시험 +2 22.06.19 53 9 12쪽
28 옥탑방의 남자 +1 22.06.18 53 9 12쪽
27 인터뷰 +1 22.06.18 64 9 13쪽
26 소설가 선데이의 하루 +1 22.06.17 68 9 12쪽
25 일단락 +2 22.06.16 72 9 13쪽
24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22.06.15 77 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