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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306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6.20 14:00
조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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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2쪽

황제 시해자

DUMMY

사진 속 도달은 이상하게도 웃고 있었다. 도대체 이 사진을 찍은 건 누구일까?

"물론 아는 사이입니다만."

애초에, 이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제국 사냥꾼은 몇 되지 않는다.


"아는 사이라면 심리적인 저항감이 큰가요?"

그럴 리가. 그런 사람은 제국 사냥꾼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내가 얼마나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지, 일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을 수 있는지 이 남자에게 증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잠깐 침묵하자 남자는 내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제국 사냥꾼은 본인의 계시에 부합하는 살인이라면 어떤 살인의 책임도 피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만, 그런 걸 왜 묻죠?"


그건 제국 사냥꾼의 의뢰 집행에 관한 법률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내가 지금 당장 이 남자를 죽이더라도 그게 내 계시를 따르는 일이라면 내게는 아무런 죄도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도달 아자칸은 그 많은 살인을 계시 아래에서 저지른다는 겁니까?"

"저는 모릅니다."


굳이 도달을 보호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우리가 갈라선 지도 벌써 십 년 가까이 지났으니까. 지금 우리는 너무 다른 곳을 걷고 있었다.


"지난 십 년간 도달 아자칸이 집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살인만 마흔 건이 넘습니다. 근 십 년 동안 그 어떤 제국 사냥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추정치는 어디에서 구하는 겁니까?"


별 뜻 없이 한 질문에 남자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무래도 남자의 출신 성분과 관련이 있는 정보인가 보군.


마흔 명이라. 단서가 파악되지 않은 건수가 더 있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도달 이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사냥꾼이 누구일지도 짐작이 갔다. 아마 그 사람도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겠지.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 물어본 건 아닙니다. 단순한 흥미였어요."

"도달 아자칸의 집행 대상 중에서 중범죄자와 같이 다른 사냥꾼들에게도 충분히 표적이 될 만한 이들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남자는 보이지 않는 서류를 읽는 사람처럼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계시에 따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없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보편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계시라는 건 대체 뭡니까?"

남자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건 흥미 차원에서 한 질문이 아닌데. 그가 대체 누구이길래 제국 사냥꾼들의 계시와 같은 내용을 입에 올리는지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내내 나 역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남자가 한참 후에야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제가 누구인지 설명해 드리는 게 맞는 것 같군요, 알체이라 씨."

"누구인지 설명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분입니까?"

남자의 경호원이 나를 노려보았다.


뭐 얼마나 엄청난 사람이길래 이렇게 구는 거야. 나는 살짝 심술을 부리고 싶은 마음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벨트를 맨 그의 상반신이 살짝 휘청했다.


"죄송합니다. 대단한 분을 모실 정도로 운전을 잘하는 건 아니라서."

"혹시 같은 제국 사냥꾼을 죽여 달라는 의뢰가 모욕적입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나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았다. 그럼 대체 뭐가 불만이냐. 이렇게 말하고 싶겠지. 물론 그 말을 직접 입 밖에 내지는 않는 게 그가 품위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품위를 지킬 필요가 없는 내가 말하는 수밖에.


"자신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제국 사냥꾼에 대해 이리저리 조사한 기색을 숨기지도 않으시죠. 더구나 제가 도달 아자칸을 죽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저는 아직 모릅니다. 뭘 원합니까?"


내가 모는 택시는 사월의 거리를 몇 바퀴고 돌고 있었다. 유성호텔로 가려면 두 번도 더 갈 만한 시간이 흐르고도 남았다. 슬슬 이 남자에게 차에서 내릴 걸 요구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원래 이런 식의 의뢰는 받지 않는다. 지금까지 쫓아내지 않은 이유는 단지 궁금해서였다. 도대체 누가, 왜 도달을 죽이려고 하는지.


"제 위에 계신 분은 그을음이 나는 곳에 서지 않는 분입니다."

남자의 경호원이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야 경호원을 데리고 온 게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겠는데. 이렇게나 동요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하는 경호원이라니.


"그건 알겠습니다."

그을음이 나는 곳에 서지 않는 자. 그자는 그래서 아무도 총을 쏘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제국 전체에 남은 총이라고는 그을음이 나지 않는 총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제가 엮인 문제라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도달을 죽이려고 하는 게 황제거나 혹은 그 측근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제게 오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왜냐니, 그야······."


황제에게는 충분히 알아서 처리할 힘이 있으니까. 황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니, 정말 그런가?


황제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특별히 다른 이들을 두렵게 만들지도, 행복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나는 사냥의 숲에서 계시받은 이후로 황제라는 존재를 마주친 적도 없었다.


내가 제국 사냥꾼이 된 이후로 황제가 한 번 바뀌었으니, 적어도 지금의 황제는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황제가 정말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제가 알 수 있는 건 하나뿐인데요. 제국이 제국 사냥꾼을 등지려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제국 사냥꾼을 등지다니, 그런 생각은 한 적 없습니다."

남자가 황급히 따라붙듯 대답을 쏘아 댔다.


"정말 제국 사냥꾼을 등지려 한다면 여기로 찾아왔겠습니까? 제국 사냥꾼을 사냥할 수 있는 건 같은 제국 사냥꾼뿐이겠지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뭡니까? 이유가."

"도달 아자칸은 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어떻게 말이죠?"

다시 대답이 끊겼다. 이건 쉽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인 모양이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사람은 제국 사냥꾼의 이름을 함부로 휘두르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건 제게는 그다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인데요."


한참을 고민해서 내놓은 게 고작 이런 이유라니. 제국 사냥꾼이 계시를 어긴다고 해도 그건 내가 개인적으로 징벌할 일이 아니다. 그건 내가 도달의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법이 존재하고, 절차가 존재합니다. 안전사냥부에는 감시관도 있는데요. 굳이 제가 그 모든 걸 벗어나 개인적으로 제재를 가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남자는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낙담한 기색이었다.


"알체이라 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악하게 살았던 사람도 참회하고 노력한다면 보답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느 정도의 악행을 저질렀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그 기준은 누가 정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려운 선문답으로 접어드는 건 딱 질색인데.

"과거에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두 번 다시 구제받을 여지가 없다고 한다면, 한 번 손을 더럽힌 사람은 선하게 살아갈 이유가 사라지겠지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이후에 선한 삶을 살더라도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 굳이 선한 행동을 하려 하지 않지요."

"그런 사람이라면 딱히 구제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요."


"도달 아자칸의 존재가 그런 사람들을 동요하게 만듭니다."

이제야 무슨 말인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도달은 예전부터 현상금 사냥꾼과 비슷한 일을 하고는 했었다. 현상금이 걸린 흉악범들을 인정사정없이 죽여 버렸었지.


그중 누군가는 마음을 고쳐먹고 선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 확신하지만.


얼마 전에 만난 선데이 아이스라는 남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지. 누군가를 죽이는 건 어떤 가능성을 아예 없애 버리는 일이다. 그게 비록 악인이라고 하더라도.


"제가 아는 도달 아자칸은 평범한 제국 사냥꾼입니다. 물론 차림새나 행동거지가 조금 독특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반사회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제국 사냥꾼으로서의 능력도 훌륭한 편이죠."


"알체이라 씨와는 제 생각보다 가까운 사이인 모양이군요."

"한때 친한 사이였다고 하는 쪽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겠죠."

남자의 이야기 중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보편적으로 추측이 가능한 계시, 라는 말.


남자 본인이나 남자가 속한 집단은 제국 사냥꾼들에 대해 조사를 한 모양이었다. 보통 계시와 관련된 이야기는 일반인들에게 잘 털어놓지 않는다. 그러니까 계시의 내용은 직접 알아내지 못하고 추측했으리라.


그는 높은 확률로 제국 사냥꾼을 적대하거나, 최소 경계하고 있었다.


"어쨌든 도달은 사회의 위협이 된다거나, 종교적 교리를 흔든다거나, 그런 커다란 일과는 거리가 멀죠. 다소 도달을 과대평가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지난 십 년 동안 마주치지도 못했지만, 도달은 그대로일 것이다.


메이라 페탈포드라고 했었나. 아까 그 여자를 죽일 때의 모습도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작은 손짓 하나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증거물을 챙긴다.


"도달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의뢰는 단 하나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저와는 맞지 않아서 같이 행동하지 않게 됐죠."

나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일만 하며 지내고 싶었다. 제 몸과 마음이 망가질 정도로 많은 일을 하는 도달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많은 의뢰를 받아서 버는 돈은 대체 어디다 썼던 걸까. 결국 나와 도달의 사이가 멀어지는 건 필연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 싶은 동료 같은 것도 아닙니다."

이제 와서는.


남자는 선글라스크와 마스크 너머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 표정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인가, 거리에서 마주쳐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달 아자칸은 제국의 붕괴를 꾀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남자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들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붕괴를 꾀하고 있다고?

"잠깐. 더 정확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제국의 붕괴니, 뭐니 해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의뢰를 수행하는 데 목적이 있었단 말인가?

"도달이 제국을 붕괴시키려 한다고요."


도달은 십 년 만에 사월에 나타났다.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러 왔노라고 내게 말했다.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제국을 붕괴시킨다. 나는 단 한 명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황제를 죽일 생각인가, 도달 아자칸.


"지금 제가 추측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남자는 침묵을 지킴으로써 대답했다. 내가 도달에게 사월에 돌아온 이유를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할까요?"


도달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었다. 아주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는 먼저 상대에게 이런 식으로 묻곤 하는 습관이었다.


"들을 준비됐어요?"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이야기해도 화 안 낼 거죠?"

그리고 아까 나와 마주쳤을 때도 그랬었다.


나는 충분히 직감할 수 있었다. 도달이 무언가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사월에 다시 나타났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게 아마도 황제를 살해하는 일이라는 사실도.


"먼저 시간을 좀 주시죠."

"시간 말입니까?"

"도달 아자칸을 직접 만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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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폭우 +1 22.07.04 53 7 12쪽
44 멀어져 가는 모든 것들 22.07.03 52 7 12쪽
43 수면제 +2 22.07.02 47 7 13쪽
42 커다란 걸 짊어진 자 +2 22.07.01 50 8 12쪽
41 그의 반쪽 +4 22.06.30 5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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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모르는 게 없는 +1 22.06.28 49 8 12쪽
38 기댈 곳 없는 이 +1 22.06.27 55 8 12쪽
37 옛 파트너 22.06.26 55 8 12쪽
36 반역의 씨앗 +1 22.06.25 49 8 12쪽
35 의뢰를 가리지 않는 사람 +1 22.06.24 53 9 13쪽
34 건방지고 무례한 손님 +2 22.06.23 59 9 12쪽
33 태평한 아가씨 +2 22.06.22 54 9 12쪽
32 막무가내에 고집 센 여자 +1 22.06.21 57 9 13쪽
» 황제 시해자 +1 22.06.20 60 9 12쪽
30 제국 사냥꾼 제6호 +1 22.06.19 59 7 12쪽
29 시험 +2 22.06.19 53 9 12쪽
28 옥탑방의 남자 +1 22.06.18 53 9 12쪽
27 인터뷰 +1 22.06.18 64 9 13쪽
26 소설가 선데이의 하루 +1 22.06.17 68 9 12쪽
25 일단락 +2 22.06.16 72 9 13쪽
24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22.06.15 77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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