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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308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07 12:30
조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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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유일한 생존자

DUMMY

"팔경 지구에서 나온 돌,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나온 돌 모두 가짜입니다."

사사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일단 고생 많으셨어요. 서류는 복사본을 이쪽으로 바로 보내 주시겠어요? 여기서도 처리해야 할 게 좀 있어서요."

"그러죠."


"그러고 보니, 이엘 씨 숙소는 잡으셨나 모르겠네요. 제가 연락을 어디로 드려야 할지 몰라서 아, 참. 비용은 이쪽에서 처리해 드릴게요. 마음껏 편한 숙소에 묵으시길."

"별로 까탈스럽게 숙소를 따지는 편이 아니라서요. 영수증은 받아 뒀으니 나중에 처리하죠."


사사야에게 다시 연락받기로 하고 통신을 끊었다. 파리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는데, 그의 싱글싱글 웃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불길한 느낌. 왠지 이상한 질문을 마구 해댈 것 같은데.


"식사는 하셨어요? 저랑 산은 학생 식당으로 갈 건데, 괜찮다면 같이 가시죠."

"그럼 그렇게 하죠, 뭐."


"저는 이엘 알체이라 씨를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었거든요."

"대체 왜요?"

"어떻게 그 악명 높은 실비나를 만났는지 궁금해서요."


또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냐. 나는 그만 혀를 씹을 뻔했다. 산과 파리스는 나를 학생 식당으로 데려갔다. 밥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레몬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사람, 레몬을 샅샅이 뜯어봤으려나.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에 산이 불쑥 말했다.


"이 인형, 말을 할 줄 알죠?"

나는 레몬 쪽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레몬은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말을 하던가요?"


"아뇨. 말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라서 알았죠. 제 앞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더라구요."

"말수가 적은 성격이라서요. 성격 같은 게 있다면 말이지만."


레몬이 살짝 나를 흘겨보았다. 말수 적은 성격은 개뿔. 아마 온갖 잡소리를 떠들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겠지만 그러도록 놔둘 수는 없다. 무슨 이상한 말을 할지 어떻게 알고.


그보다, 말을 하는 구조까지 파악했을 정도면 옷을 벗겨 봤겠군. 식당에 도착해서도 레몬을 향한 산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이 인형은 마력을 충전해서 움직이는 방식인 거죠?"

마력을 충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시치미를 떼고 물어봤다. 산이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레인에는 마법 인형 연구원들도 있으니까요. 가져가면 다들 좋아하실걸요."

"그럼 소개 좀 해 주시면 좋겠네요."

"내일 도와 드릴게요. 오늘은 연구원들은 죄다 바쁠 일만 남았거든요."


어째, 실비나와 굉장히 닮았으면서 성격이 딴판이라 영 어색하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파리스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거 같은데, 말해도 돼요?"

"하지 마세요."


오늘 이쪽 학생 식당의 추천 메뉴는 검은 빵에 그라필라 수프란다. 그라필라, 사월에서는 먹기 힘든 재료인데 여기서는 꽤 흔한가 보네. 학생 식당에서 배식할 정도면 많은 양이 필요할 테니까. 그러고 보니, 실비나와 다시 마주친 것도 그라필라 때문이었지······.


"밥 좀 먹읍시다."

식사 내내 파리스는 나를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노골적인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제가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는 성격이라서요."

"그건 실비나랑 똑같네요."


파리스는 즐거운 듯 테이블을 치며 마구 웃어 댔다. 드디어 내 입에서 실비나의 이름을 끌어냈다는 사실이 신난 모양이었다. 대신 그 옆에 앉아 있던 산이 가시방석에 앉은 표정이었다.


"저희끼리 계속 이야기했거든요. 그 실비나를 참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저희라는 건, 형제자매들을 말하는 거죠?"


수프가 맛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라필라 고기가 들어갔으면 맛이 없기가 어렵겠지만.


실비나의 형제자매들이라. 실비나가 줄기차게 욕하던 시칼트라 말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나 아버지 다른 형제들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뭐, 그렇죠. 보통은 아버지가 다르면 사이가 나쁠 거라 생각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거든요."

"실비나는 딱히 형제자매들과 사이가 좋아 보이지도 않던데요."


"아, 언니는······."

"그건 걔가 성격이 더러우니까 그런 거고요. 그냥 친구도 별로 없을 텐데."


산이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듯 파리스를 흘겨보았다. 아니, 내 앞이라고 굳이 말조심하는 쪽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거든. 대체 헤어진 지가 언제인데.


"이런 말 하면 안 돼? 아니, 이엘 씨라고 모르겠냐고. 너보다 더 잘 알지도 몰라."

산은 반박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녀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라, 지갑 어디 갔지? 식권 내 거 쓰려고 했는데."

"어허, 아무리 동생이 교직원이라도 돈은 내고 밥을 먹어야지."

파리스 쪽이 동생이었나······. 사람 나이 맞히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니까.


산이 한참이고 주머니며 가방을 뒤지더니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파리스, 나 지갑 잃어버렸어요."

"교직원용 식권 충전돼 있으니까 이거 쓰면 돼."


파리스가 자기 지갑을 건네주자 산이 그걸 받아서 들고는 결제 창구로 걸어갔다.

"실비나랑 거의 똑같이 생겼죠, 친자매라서 그래요."

"친자매라는 건 부모가 둘 다 같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죠?"


이부 자매라고 해도 엄밀히는 친자매잖아. 파리스는 숟가락을 입에 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카잔치카 씨. 좋은 분이죠. 저한테도 거의 아버지 같은 분이고."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요?"

"우리 아빠는 옛날에 돌아가셨거든요. 우리 아빠가 어머니의 첫사랑이라던데."


잠깐, 방금 파리스가 산의 동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산은 실비나를 언니라고 불렀고. 이거 참, 등장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네.


하여튼 그렇다면, 파리스가 막내인데 파리스의 아버지가 시칼트라 학장의 첫사랑이란 말인가.

"머리 아프죠? 근데 어머니 입으로 직접 말한 거니까 그건 사실일걸요."


학장은 미남을 좋아한다고 수많은 사람이 강조했었지. 그렇게 생각해 보면 과연 파리스의 아버지가 학장의 첫사랑인지도 모른다. 파리스가 아버지를 닮았다면 파리스의 아버지 역시 어마어마한 미남일 테니까.


"하여튼, 실비나는 산한테는 언니가 되죠. 걔는 오래전에 집을 나가서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지만."

"유월에 있는 걸로 아는데, 안타레스와는 꽤 가깝지 않습니까?"


"좀 더 멀어졌으면 좋겠네요. 가족은 원래 가까울수록 사이가 나빠지기 쉽다니까요."

그는 수프 그릇을 들고 남은 걸 한 번에 마셔 버린 뒤 입가를 티슈로 닦았다. 비슷한 속도로 내 그릇 역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어쨌든 전 파리스 마벨이라고 해요. 지금은 학장님의 비서 겸 조교를 맡고 있고요."

"네, 잘 부탁합니다."

파리스가 빈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학장실로 오실 거죠? 할 일이 있으실 텐데 너무 방해는 하지 않을게요."

"괜찮습니다. 저도 보고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라 당장 그리 바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치안관리부 쪽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연구소에서 진짜 영혼석이 나왔다는 사실이 증명하는 건 아직 하나밖에 없다. 적어도 누군가 한 명이 영혼석을 만들 수 있는 마법 무기로 살해당했다는 것.


아니면 사냥당했거나.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니까, 어쩌면 수사에는 진척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을 방해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건 옳지 않은 일일까?


"그럼 내일 뵙죠. 오늘은 피곤하실 텐데 푹 쉬시고요."

파리스는 내게 인사를 건네고는 식당을 떴다. 이어 계산하고 돌아온 산이 두리번거리며 제 동생을 찾았다.


"돌아가셨어요, 내일 학장실에서 뵙자고 하시던데요."

"아, 그렇구나. 그러면 이엘 씨는 이제부터 뭘 하실 생각인가요?"

"오늘은 특별히 일정이 없어요. 그냥 근처를 구경하거나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죠."


거기까지 말했을 때, 산이 갑자기 내게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얼굴이 너무 익숙해서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소개해 드리고 싶은 손님이 하나 있어요. 틀림없이 이엘 씨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지금 말입니까?"


"네. 혹시 곤란하시다거나 다른 일정이 있으신 건가요?"

손님이라. 따지고 보면 나도 손님인데, 굳이 나한테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니. 지금까지 나를 대하는 태도로 봤을 때 산은 꽤 좋은 사람이었다. 아마 누군가를 소개해 주려고 한다면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오늘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딱히 생각해 두지 않았다.

"아뇨, 지금부터라면 저녁에는 딱히 일정이 없습니다."

"오, 그러면 같이 가요! 제가 이 근처 구경도 좀 시켜 드릴게요."


산은 나와 레몬의 사이로 끼어들어 팔짱을 꼈다. 풀 냄새 같은 시원한 향이 훅 끼쳤다. 나와 레몬은 그녀에게 완전히 말려들어 그녀를 따라갈 뿐이었다.


"학교 서쪽에 호수가 하나 있거든요. 그 호숫가에서 마시는 커피가 그렇게 맛있어요."

"그렇군요."

"아마 이 시간쯤이면 언니도 거기 있을 거예요!"


나도 모르게 우뚝 발을 멈췄다. 아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실비나가 산의 언니라고 말이다. 그녀는 내 표정이 싸늘해지는 걸 알아차렸는지, 팔짱을 풀고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쪽 언니가 아니고. 당연히 아시는 줄 알았는데! 저 언니가 두 명이나 있거든요?"

"궁금해서 묻는 건데, 형제자매가 총 몇 명입니까?"


일단 산과 파리스, 그리고 실비나. 내게 소개해 주겠다는 다른 언니. 거기까지만 세어도 벌써 네 명이다.


"이···아니, 여섯 명이요."

"성이 다 다른 겁니까?"

"저와 실비나만 제외하면 그렇죠."


이름 외우는 것도 일이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 순간 눈앞이 확 트이면서 공터가 나타났다. 부지 안에 이런 공터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저 멀리, 산이 말했던 호수가 보였다.


"저거군요."

"네. 시그니 호라고 하죠. 안타레스의 명물 중 하나랍니다. 사월에는 큰 호수가 없죠?"

"큰 강도, 큰 호수도, 근처에 바다도 없죠."

"정말 메마른 곳이네요."


근처에 물이 없다고 메마른 곳인가. 뭐, 별개로 사월은 진짜 메마른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와 산, 그리고 레몬은 나란히 서서 한동안 호수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고여 있는 물이 저렇게 깨끗하다니. 자연이란 참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롭단 말이지.


"아름답죠? 예전에는 안타레스에서 살게 되면 날마다 이 호수 근처를 산책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산책은 했습니까?"


"여기 오고 나서 한 이틀 정도 했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막상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참 시들해지더라고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다들 가까이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기가 쉽지 않은 법이지. 저 멀리 그림처럼 아름다운 건물이 보였다. 산이 말한 게 저기인가.


입구로 들어서자 세련된 흰색 풍의 실내가 나를 맞았다. 카운터 너머에서부터 향긋한 커피 향이 풍겨 왔다.

"신경 써서 꾸민 공간이네요."

"그렇죠? 학생들도 교직원들도 좋아하는 곳이라니까요."


내가 카운터 위에 걸린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산은 성큼성큼 테라스 쪽으로 걸어갔다. 황급히 그녀를 따라가 보니 과연 호수가 정면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이래서야, 휴가라도 온 기분인데.


호숫가 좌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꽤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아름다웠다. 회색 같기도 하고 갈색 같기도 한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원피스 위에 흰 가운을 걸친 차림이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언니!"


산이 여자에게 손을 마구 흔들며 달려갔다. 실비나를 대할 때와는 아주 다른 태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렇게 시선을 교환했을까, 산이 아차 하며 그녀를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소개할게요, 이쪽은 제 언니. 고등 마법 무기 연구를 하고 있어요. 루토 시칼트라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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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가라앉아 가는 22.08.09 31 5 12쪽
81 모든 걸 알고 있는 여자 +1 22.08.08 31 4 13쪽
» 유일한 생존자 +1 22.08.07 32 4 13쪽
79 감정 결과 22.08.06 32 5 13쪽
78 아레인스터의 학장 22.08.05 30 5 13쪽
77 비와 안개의 도시 +1 22.08.04 34 5 13쪽
76 별들이 모이는 곳 +1 22.08.03 32 5 12쪽
75 반딧불 22.08.02 31 5 12쪽
74 샹들리에 +1 22.08.01 32 5 13쪽
73 별빛 아래에서 +1 22.07.31 33 5 12쪽
72 등에 얹히는 것 22.07.30 32 5 13쪽
71 거래 +1 22.07.29 33 5 13쪽
70 서서히 조여드는 것들 +1 22.07.28 31 5 13쪽
69 고통의 절반 +1 22.07.27 31 5 13쪽
68 고결하고 정의로운 제국 사냥꾼 22.07.26 34 5 13쪽
67 불꽃놀이가 끝난 뒤 +1 22.07.25 35 5 12쪽
66 불길한 전조 +2 22.07.24 32 5 13쪽
65 절대로 꽃을 꺾지 마시오. 단, 붉은색 꽃은 제외하고 22.07.23 33 5 13쪽
64 차갑고 축축한 기운 +2 22.07.22 29 5 13쪽
63 세 개의 눈, 하나의 인형 +1 22.07.21 34 5 12쪽
62 진짜와 가짜 22.07.20 31 5 13쪽
61 영혼의 물성 22.07.19 34 5 12쪽
60 설상가상 +1 22.07.18 33 5 13쪽
59 가설 22.07.17 37 5 12쪽
58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여자 +1 22.07.16 38 5 12쪽
57 한밤의 방문자 +1 22.07.15 33 5 12쪽
56 불편한 동행 +2 22.07.14 37 5 12쪽
55 뱀의 소굴 +1 22.07.13 36 5 12쪽
54 새벽 두 시의 살인 사건 22.07.12 3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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