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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311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7.20 12:30
조회
31
추천
5
글자
13쪽

진짜와 가짜

DUMMY

"네.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 있다고 믿습니다."

자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고등 마법 무기로 사람을 살해할 경우, 시신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보석처럼 보이는 돌이 나오곤 했다. 그 돌은 처음 발견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영혼석이라고 불렸다.


"실제로 이 안에 사람의 영혼이나 그 비슷한 거라도 들어 있을지 수많은 사람이 달려들어 알아보려고 했었지. 하지만 증명된 건 딱히 없어."


그렇기 때문에 그 돌들은 영혼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 시장에서는 보석처럼 취급되었다. 물론 영혼석이라는 말에는 특별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보석보다는 조금 더 큰 가치를 인정받긴 했다.


자나 역시 이엘의 손에 들린 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안에 사람의 영혼이나 그 비슷한 게 들어 있다고 믿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마법 무기의 소유자들은 대체로 이엘과 같은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게 정말 영혼을 담고 있다면 너무나도 꺼림칙하니까.


자나가 이엘이 생각하는 바를 알겠다는 듯 슬쩍 웃어 보였다. 이엘은 그 웃는 얼굴을 주먹으로 깨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여튼, 그 안에 사람의 영혼이나 그 비슷한 게 들어 있다면 뭐 어쩔 거지?"

"이미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잘 알고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짐작하기에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사람의 영혼이나 그 비슷한 존재, 그걸 인형의 육체에 이식시키려는 거겠지. 그 공작이 성공한다면, 그 결과물은 단순히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자동인형과는 아예 다른 존재가 될 터였다.


"그런 게 정말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거야?"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시도를 해 보기 전에 알 수 없습니다. 그냥 해 보는 거죠."


그냥 해 보는 거라. 인형사의 입장에서 밑지는 시도는 아니긴 했다. 실패한다고 해도 본전이다. 그리고 성과가 있다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되는 거다.


"나한테 바라는 게 뭐지?"

"이엘 알체이라 씨. 당신이 앞으로 만드는 모든 영혼석을 제가 사고 싶습니다."

"공짜로 달라고는 안 하는군."


자나의 제안은 표면적으로 보기에 꽤 정정당당한 거래였다. 그는 합당한 대가를 주고 영혼석을 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엘은 그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느꼈다.


티테이블이 준비된 이 전시실부터가 말이다.

"우발적으로 돌을 훔친 게 아니지? 나를 만날 거라고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당신이 사월 밖으로 나올 때를 기다렸죠."


"사월 밖으로 나올 때를 기다렸다고?"

이엘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생각해 보니 그는 근 몇 년 동안 사월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어지간하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치안관리부에서 유리오의 이름을 인질로 잡지 않았더라면.


자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이 뻐근한 듯 목을 몇 바퀴 돌렸다. 기계장치가 마찰할 때 나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네. 당신을 직접 만나고 싶었습니다만 저는 사월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개인적인 사정이 조금 있는지라."

"굉장히 수상하게 들리는데."


"사람을 찾는다면서 수도에 틀어박혀 있는 당신만 할까요."

"무슨 뜻이지?"

이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나는 급하게 양손을 가로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수도에서 사람을 찾든, 제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찾든 그건 당신 마음이죠. 안 그래요?"

이엘이 코트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자나가 짐짓 과장된 동작을 취하며 그 사진을 양손으로 받았다.


"유리오 알첸브라임, 제가 기다리는 또 한 명이 여기 있군요. 이분 또한 상당히 질 좋은 영혼석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유리오가 영혼석 같은 걸 만들 날은 안 올 거다."


"와,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나 쉽고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데. 마치 공장처럼 말입니다. 탕! 덜컥, 탕! 하면 또 덜컥. 안 그래요?"

어디부터 박살을 내야 저 입을 놀리지 못하게 될까. 입? 아니면 머리통?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해 줄까? 고등 마법 무기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 그 사실은 아는지 모르겠군."


"네, 들은 적이 있죠. 그래서 이엘 알체이라 씨는 알 수 있는 겁니다. 유리오 알첸브라임 씨가 제국 어딘가에 멀쩡하게 살아 있고, 그래서 자신이 굳이 안락한 집과 택시를 내버리고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별안간 유리 깨지는 소리가 전시실 안에 울려 퍼졌다. 이엘이 제 손에 들고 있던 영혼석을 전시실의 유리 벽에 집어 던진 것이었다. 상당히 두꺼웠을 유리 벽은 박살이 나 그 조각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일어나 깨진 유리 벽 앞으로 다가갔다. 유리 조각들이 발에 밟히며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 죄송합니다. 편한 사람과 말을 할 때면 자꾸 깐족거리게 되어서. 손님 응대만 하려니까 정말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다니까요."


이엘은 바닥에 떨어진 돌을 다시 주워들었다. 돌에는 흠집 하나 생겨 있지 않았다.

"내가 편한가?"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좀 불편한 사람을 대하듯이 대해 줬으면 좋겠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언제 만났다고 친한 척인지.

"오, 이런. 그럼 그럴까요. 어쨌든 당신을 기다린 건 진심이거든요. 어쩌면 제 거대한 계획을 알아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사월로 찾아오지 않은 이유는 뭐지?"

"그건 천천히 설명해 드리죠. 지금 당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이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아 있던 자나가 목을 돌려 그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천천히 설명할 일은 없어. 난 영혼석을 팔 생각이 없으니까."

"어라, 없나요?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도대체 뭘 보고? 내가 돈에 쪼들리는 사람처럼 보였나?"


"그건 아니지만, 인형에 흥미가 있으실 줄 알았는데요. 제법 매혹적이지 않습니까? 원래라면 만들어낼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는데요. 영혼을 다루는 기술과 인형 만드는 기술을 결합한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겁니다."


"흥미가 있을 리가."

이엘은 한숨을 쉬었다. 당장 문가에 서 있는 커다란 인형도 그에게는 별 감흥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냥 잘 만들었네, 정도의 생각만 들 뿐이었다.


자나가 따라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손을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쩔 수 없네요. 제국 사냥꾼들은 누구나 사람의 목숨과 영혼에 관한 주제에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적어도 나는 아니야. 이전에 누구를 만났지?"

"그건 비밀입니다."

이엘이 혀를 찼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이 기분 나쁜 남자가 자신을 스토킹했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아, 그리고 영혼석을 가지고 뭔가 실험을 하려고 한다는 것까지.


"아는 걸 전부 가르쳐 주겠다더니?"

"그렇지만 당신이 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기로 결정했잖아요."

"다짜고짜 남의 물건을 훔쳐서 헛발질하게 만든 건 누군데. 나도 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머니에 영혼석을 다시 집어넣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소매치기가 털어 가지 못하도록 좀 더 경계하는 게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방에서 나가려는데, 자나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이걸 알려 드리는 걸 잊어버렸네요. 저 요조 여성분께서 가지고 계신 돌은 영혼석이 아닙니다. 보석도 아니죠."

"뭐라고?"


"감정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마법은커녕 보석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요."

인형사를 두고 나가려던 이엘은 문가에 서 있던 인형 옆에 그대로 멈춰 섰다.


지금까지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인형이 그에게 스르륵 고개를 돌렸다. 투명한 유리알처럼 보이는 눈동자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티 테이블 옆에 그대로 서 있던 자나가 다시 끄덕였다.


"그 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영혼석이 아닙니다. 얼핏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인형사를 뭐로 보는 겁니까? 가짜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보다 가짜를 잘 알아보는 법이죠."


"자기가 만드는 인형을 가짜라고 표현하는 건가?"

하긴, 인간과 비슷한 존재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터였다. 인형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진짜 인간이 될 수는 없으니.


"그야, 둘 다 영혼석이었으면 둘 다 훔쳤을 텐데요. 그쪽의 돌은 척 보기에도 가짜라서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돌이 가짜라면 이엘은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이대로 사월로 돌아가서 치안관리부 부장에게 역정을 내도 될 판이었다. 가짜 돌을 가지고 사람을 이리저리 오가게 만들다니.


하지만 이 남자가 하는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또 어떻게 알겠는가? 협조해 주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그냥 장난질이나 치려는 걸지도 모르는데.


"제 공방에는 영혼석을 판별하기 위한 기구도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가셔서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만."

"영혼석을 수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기계를 구비해 놓은 이유라도 있나?"

자나가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끗거리며 방 안을 몇 걸음 정도 걸어 다녔다.


"기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 말 자체는 맞는 말이군. 이엘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이야기긴 했다.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영혼석과 로체가 가진 돌을 검사해 볼 수 있다면 귀찮게 오월까지 가지 않아도 될 테니까.


"절대 안 되네."

그러나 로체는 그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우리 부장님이 그런 걸 인정할 리가 없어."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나온 증명서 정도나 되어야 윗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게 진짜 누군가가 만든 가짜라고 해도.

"관료주의 사회의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직이 여기 있군요."


두 사람이 다시 로비로 돌아갔을 때 로체는 여전히 벽에 걸린 그림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제 세 번째 눈은 감은 채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가 이엘의 외투 주머니의 묵직한 부피감을 보더니 슬쩍 미소 지었다.

"돌을 되찾았군."


"도둑놈에게서 다시 훔쳐 왔죠."

"도둑놈이라니, 저로서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니까요. 이해 좀 해 주시죠."

"이해해 주고 있잖아.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주먹을 날리지 않음으로써."


하지만 이 인형사와는 한 번쯤 더 대화를 나눠 봐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지식이 많은 건 확실해 보였으니까. 그에게는 아닌 척했지만, 이엘은 사실 영혼석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이전에 단 한 번 그의 스승과 영혼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스승은 그것이 마치 지저분한 물건이라도 되는 양 손대지 않으려 했었다.


"연구소에 가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르지."

그렇게 말하자 자나가 반색했다.

"역시 열린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죠."


"그런 건 절대 아닌데."

"그럼 무슨 할 이야기가 더 남으셨다는 겁니까?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내가 물어볼 게 있다는데 불만이라도 있나?"


자나가 고개를 연거푸 저었다. 그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짜고짜 물건을 훔쳐 남의 일을 방해한 것치고는.

"그보다, 어디 가는 길이라고 하셨죠?"

"오월의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라. 영혼석의 감정을 하러 가신다고요."

자나는 집게손가락 끝으로 제 턱을 매만졌다.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과장된 동작으로 손뼉을 짝, 하고 쳤다.


"그럼 레몬을 데려가시죠, 도움이 될 겁니다."

"레몬?"

자나의 뒤쪽에 어느 틈엔가 아까의 그 인형이 따라 나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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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호수의 마녀 22.08.10 34 5 12쪽
82 가라앉아 가는 22.08.09 31 5 12쪽
81 모든 걸 알고 있는 여자 +1 22.08.08 31 4 13쪽
80 유일한 생존자 +1 22.08.07 32 4 13쪽
79 감정 결과 22.08.06 32 5 13쪽
78 아레인스터의 학장 22.08.05 30 5 13쪽
77 비와 안개의 도시 +1 22.08.04 34 5 13쪽
76 별들이 모이는 곳 +1 22.08.03 32 5 12쪽
75 반딧불 22.08.02 31 5 12쪽
74 샹들리에 +1 22.08.01 32 5 13쪽
73 별빛 아래에서 +1 22.07.31 33 5 12쪽
72 등에 얹히는 것 22.07.30 32 5 13쪽
71 거래 +1 22.07.29 33 5 13쪽
70 서서히 조여드는 것들 +1 22.07.28 31 5 13쪽
69 고통의 절반 +1 22.07.27 31 5 13쪽
68 고결하고 정의로운 제국 사냥꾼 22.07.26 35 5 13쪽
67 불꽃놀이가 끝난 뒤 +1 22.07.25 36 5 12쪽
66 불길한 전조 +2 22.07.24 32 5 13쪽
65 절대로 꽃을 꺾지 마시오. 단, 붉은색 꽃은 제외하고 22.07.23 33 5 13쪽
64 차갑고 축축한 기운 +2 22.07.22 29 5 13쪽
63 세 개의 눈, 하나의 인형 +1 22.07.21 34 5 12쪽
» 진짜와 가짜 22.07.20 32 5 13쪽
61 영혼의 물성 22.07.19 34 5 12쪽
60 설상가상 +1 22.07.18 33 5 13쪽
59 가설 22.07.17 37 5 12쪽
58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여자 +1 22.07.16 38 5 12쪽
57 한밤의 방문자 +1 22.07.15 33 5 12쪽
56 불편한 동행 +2 22.07.14 37 5 12쪽
55 뱀의 소굴 +1 22.07.13 36 5 12쪽
54 새벽 두 시의 살인 사건 22.07.12 3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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