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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345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7.24 12:30
조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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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불길한 전조

DUMMY

로체의 차는 앞 유리가 통째로 날아갔다. 자욱한 먼지구름 사이로 쇠처럼 보이는 파편이 하나 날아왔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인형, 레몬이 치켜들고 있던 오른팔을 휘저어 그 파편을 쳐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로체는 머리를 낮춘 채로 바깥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레몬에게 말을 걸었다.

"뭐야?"


"이엘 알체이라는 귀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추정. 혹은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음."

"적대적 기운을 감지했다는 말은 들었어. 그렇다고 이렇게 냅다 쏴 버려도 되는 거야?"


먼지구름이 걷히고 나자 우리를 따라오던 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 천장을 돌덩이나 포탄처럼 보이는 물체가 완전히 찌그러뜨려 놓은 상태였다.

"저거, 네가 쏜 거냐?"


레몬의 팔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저런 게 나올 구석은 없는데.

"운전자는 없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음."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로체 쪽을 보며 말했다.

"잠깐 가서 확인해 보고 오죠. 조사관님은 여기서 기다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로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내리자 레몬이 나를 따라 내렸다.


"앞 유리와 보닛이 깨지고 우그러져 있다. 이건 내 탓이 아님."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레몬의 말대로였다. 차 앞 유리는 마치 무언가를 들이받은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보닛 역시 교통사고를 낸 차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레몬이 공격한 건 뒤에서였으니, 이건 다른 일로 손상된 흔적이라고 봐야겠지.


나와 레몬은 거의 반파된 차의 운전석 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총을 겨누고 레몬은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정확히는, 열려고 했다. 아무래도 운전석 문이 찌그러져서 잘 열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레몬은 주먹으로 운전석의 유리창을 깼다.

"정말 비어 있군."

"이엘 알체이라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믿지 못함."


차 안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사람은커녕, 눈에 띄는 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뒷좌석 쪽으로 돌아가 문을 열려 했다.

"경고."


그때 레몬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마어마하게 힘이 셌다. 그게 나를 억지로 끌어당겨 차에서 떼어 놓았다.

"왜 그래?"


내 말이 끝나자마자, 차 안에서 작은 불꽃이 하나 피어올랐다. 불꽃은 삽시간에 번져 내부를 남김없이 불사르기 시작했다.

"폭발할 가능성이 있음. 차로 돌아가야 함."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차로 돌아왔다. 로체에게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자 그녀 역시 의아해했다. 당연하지 않을까, 운전자 없는 차에 갑자기 저 혼자 불이 붙었다고 하면 누구나 당황하겠지.


로체의 차가 불타는 차를 지나쳐 조금 달리기 시작했을 때, 뒤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차창을 통해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그 차는 도로 한복판에서 불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지금 파악 중."

레몬은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사람이 생각에 잠겼을 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로체는 통신기로 제 상부에 보고했다. 대충 들어 보니 별 내용은 없었다. 그냥 사고가 좀 있었고, 복귀가 조금 늦어질 것 같다는 말뿐이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죠. 누군가가 마법 총을 노린다면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로체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라고 말하긴 했지만 내가 가리키는 건 명백히 치안관리부의 부장, 사사야 타테지아였다. 분명히 짚이는 바가 아예 없지는 않을 텐데.


레몬은 다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사실 이 인형을 여기 놔두고 이런 대화를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녹취 기능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곤란해지면 그때 가서 부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로체는 오른손으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콘솔 박스를 열더니 무언가를 한참 찾았다.

"담배 찾으십니까?"

"가지고 있나?"


한쪽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로체가 창문을 활짝 열더니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항아라니, 옛날 담배군."

그녀는 세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지금까지 그 총을 많이 쏘지 않았겠지, 그런 건 안 봐도 알 수 있다네."


그리 많이 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스승님이 될 수 있으면 이 총은 쓰지 말라고 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솔리를 쐈던 것도 원래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


"하지만 자네 스승은 어땠을 거라 생각하나?"

"뭘 생각할 게 있습니까, 내 눈으로 직접 다 봤는데."


스승님은 사냥꾼 일을 하며 번 돈을 마법 탄환 사는 데 다 쓰는 게 아닌가 싶은 정도였다. 적어도 내가 어릴 때 본 바에 의하면 거의 모든 목표물을 마법 총으로 살해했다. 거기서 나온 수많은 영혼석들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이쉐 알첸브라임 하나가 안전사냥부를 떠받치던 시절도 있었다지."

그리고 그 시절이야말로 안전사냥부의 황금기였다. 이쉐 알첸브라임이 되겠다며 제국 사냥꾼의 길로 뛰어드는 아이들이 많았었지.


요즘은 어떻지? 요즘도 제국 사냥꾼 같은 걸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나?

"그렇지만 그 부부가 마법 총 두 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더군."

"그야 그 누구도 감히 스승님한테 반기를 들지 못했을 테니까요."


누가 감히 이쉐 알첸브라임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당신과 당신 남편이 마법 총을 독점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그도 그렇고,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총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

"무슨 뜻이죠?"

"잘 생각해 보게나, 이엘. 악인의 손에 들어갔다가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만한 무기야, 그건."


"그 총이 스승님의 손에 있었을 땐 스승님이 강력한 억지력을 가졌었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겁니까?"

"대충 그런 이야기지. 테러리스트가 그 총을 손에 넣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사람 여럿 죽어 나가겠죠."


"그러니까 스스로 그 총을 관리하고 싶은 거지. 치안관리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말이네."

얼핏 들었을 때는 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만 뜯어보면 하나하나가 궤변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군요."

"하나부터 열까지 하면 되겠군."

"먼저, 마법 총은 스스로 주인을 선택합니다. 아무나 주워 들고 빵빵 쏴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당장 스승님의 딸인 유리오조차 그 총을 마음대로 다루지 못할 텐데. 차라리 유리오가 그 총을 쏴댔다면 유리오가 어디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을 테지. 지나가는 은행강도가 총을 줍는다고 해도 그 총을 마음껏 난사할 수는 없다.


"자네는 그럼 그 총에게 선택받은 건가?"

"뭐, 주인을 바꿀 수 있는 절차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 역시 마법적으로 아주 복잡한 일이죠."


내가 가진 총은 예전에 스승님의 남편분이 쓰던 물건이었다. 내가 넘겨받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하여튼 그건 지금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고.


"다음으로, 치안관리부가 뭔데 개인의 소유물을 회수하려 하는 겁니까?"

이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었다. 황제도 아니고 한낱 부서의 수장 주제에. 제국 사냥꾼을 껄끄러워하는 것까지야 그들 마음대로 할 일이지만, 이런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로체는 담배 두 대째를 피우며 조용히 운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기에는 치안관리부 부장이야말로 위험한 인간입니다."

"뭐라고 했나, 지금?"


이런 말까지는 참고 들어넘길 수 없는 모양이지? 참 이상한 조직이다. 자기 상사나 조직 전체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스승님께서 사라지기 얼마 전에 예전 부장을 만났었다고요. 며칠 내내 감금되어 계셨다고 했죠."


"그렇네."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제가 치안관리부 사람을 의심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치안관리부라는 조직 자체가 짜증 나. 그들은 구성원 하나하나가 조직을 위해 움직였다. 그게 불편했다. 그들에게 개개인의 목표나 이념 같은 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그 조직이 향하는 방향조차 나와는 너무나 달랐다.


"자네가 치안관리부 자체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네."

"뭐, 그렇겠죠. 치안관리부에서도 나를 싫어하니까."

"그리고 부장님께서 총을 관리하려는 동기를 의심하는 것도 이해는 가."


"그걸 이해한다면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할 필요 없겠는데요."

"하지만 나는 적어도 부장님께서 그 총을 사사로운 목적으로 휘두르지 않으실 분이라는 걸 믿는다네."


사사로운 목적으로 휘두르지 않으실 분, 이라. 그건 내가 그 여자를 믿을 근거가 전혀 되지 않는데. 나는 우리 스승님이 자기 총을 사사로운 목적으로 쏴댈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분을 신뢰하고 좋아했었다.


열린 창문으로 담배 냄새가 빠져나가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어쨌든 치안관리부 부장이 총을 손에 넣으려 한다는 건 충분히 의심할 법한 일이네요."

"그 사실까지 굳이 부정할 수는 없겠군."

"그게 어떤 목적이든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치안관리부 쪽은 대충 정리가 됐군. 나머지는 저 수상한 자동차인데.

"마법이나 기술로 자동차가 저절로 움직이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논의가 계속되고 있음. 방금 저 차를 보니, 그렇게 먼 훗날의 일로 느껴지지 않음."


레몬이 문득 그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운전하던 로체가 어깨를 으쓱했다. 시원하게 앞 유리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덕에 우리는 밤바람을 맞고 있었다. 내 차를 끌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

"그래서, 저게 시제품이라도 된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몬이 다짜고짜 선제공격을 갈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안에 사람이 없었으니 그랬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부술 필요가 있단 말인가?


"저 차 안에서 이상한 마력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아주 이질적인 느낌이었음. 그래서 멈추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이상한 마력 기류라. 그래서? 결국 뭐였는지 알겠어?"


"지금까지는 추측이다. 확실하게 결론을 내려면 가설을 보강해야 함."

"그럼 그 보강하기 전의 추측을 알려줘."


레몬이 공중에 손가락을 저어 그림을 그렸다. 레몬의 손가락이 지나가는 곳마다 빛무리가 따라가며 그림의 형태를 드러냈다. 완성된 건 자동차 한 대. 그리고 커다란 바위 같은 그림이었다.


"자동차는 정해진 권역을 돌게 되어 있다. 언제까지 돌게 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음. 강제로 멈추면 아까 본 것처럼 자연발화 하는 방식이다."

그림 속 자동차가 달리다가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멈췄다. 그러더니 이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는 건가. 하지만 네 추측이잖아?"

"물론 추측이지만, 사실상 확실하다. 폭탄을 만드는 건 마법사들이 꽤 열중하는 과제 중 하나임. 자나 역시 한동안 폭탄을 만드는 데 매료됐었다."


레몬이 그림을 손으로 지워 없앴다. 도대체 마법으로 폭탄 같은 걸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뭔데? 하여튼 마법사들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그 차에서 느낀 기류는 자나가 폭발 실험을 할 때 느꼈던 기류와 비슷했다."

"그래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니까 그냥 우리가 폭발하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네."


"정확함."

"왜 그런 게 여기 있었던 거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차가 급정거했다. 앞 유리가 통째로 나가 있었기 때문에 벨트를 매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앞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나는 한껏 짜증을 부리며 운전석으로 시선을 올렸다.


"아니, 운전 좀 똑바로······."

그리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저 멀리,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로부터는 단 한 줄기의 빛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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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모든 걸 알고 있는 여자 +1 22.08.08 31 4 13쪽
80 유일한 생존자 +1 22.08.07 33 4 13쪽
79 감정 결과 22.08.06 32 5 13쪽
78 아레인스터의 학장 22.08.05 30 5 13쪽
77 비와 안개의 도시 +1 22.08.04 34 5 13쪽
76 별들이 모이는 곳 +1 22.08.03 32 5 12쪽
75 반딧불 22.08.02 31 5 12쪽
74 샹들리에 +1 22.08.01 32 5 13쪽
73 별빛 아래에서 +1 22.07.31 33 5 12쪽
72 등에 얹히는 것 22.07.30 32 5 13쪽
71 거래 +1 22.07.29 33 5 13쪽
70 서서히 조여드는 것들 +1 22.07.28 31 5 13쪽
69 고통의 절반 +1 22.07.27 31 5 13쪽
68 고결하고 정의로운 제국 사냥꾼 22.07.26 35 5 13쪽
67 불꽃놀이가 끝난 뒤 +1 22.07.25 36 5 12쪽
» 불길한 전조 +2 22.07.24 32 5 13쪽
65 절대로 꽃을 꺾지 마시오. 단, 붉은색 꽃은 제외하고 22.07.23 33 5 13쪽
64 차갑고 축축한 기운 +2 22.07.22 29 5 13쪽
63 세 개의 눈, 하나의 인형 +1 22.07.21 34 5 12쪽
62 진짜와 가짜 22.07.20 32 5 13쪽
61 영혼의 물성 22.07.19 34 5 12쪽
60 설상가상 +1 22.07.18 33 5 13쪽
59 가설 22.07.17 37 5 12쪽
58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여자 +1 22.07.16 38 5 12쪽
57 한밤의 방문자 +1 22.07.15 33 5 12쪽
56 불편한 동행 +2 22.07.14 37 5 12쪽
55 뱀의 소굴 +1 22.07.13 36 5 12쪽
54 새벽 두 시의 살인 사건 22.07.12 3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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