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 빨이 좋아지는 날까지.

길거리 농구에서 이단 점프를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십간지
작품등록일 :
2023.10.01 11:50
최근연재일 :
2023.10.06 17:3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208
추천수 :
23
글자수 :
31,490

작성
23.10.01 12:00
조회
74
추천
5
글자
11쪽

178CM가 덩크를 어떻게 해.

DUMMY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쯤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다 거짓말이라는 걸 깨닫는다.

요즘은 똑똑해서 잘 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그러니까 마누라 얼굴 바꾸고 싶으면 공부 열심히 해라. 알겠냐? 이상.”



담임 선생님이 피식 웃으며 시선을 손목시계에 걸었다.

드디어 4교시 수업시간이 끝났다.



“우오오오오!!”



4교시가 끝나고 종이 울리면 죽음의 레이스가 시작된다.

누가 보면 돈이라도 걸었다고 착각할 만큼 미친 속도로 달려나가는 아이들.

학생들에게 급식을 먼저 먹는다는 것은 곧 권력의 지표와도 같았으니···.

순식간에 교실 안이 텅- 비어버렸다.



“급식 빨리 먹는 게 뭐라고···.”



나는 의자에서 천천히 엉덩이를 떼며 ‘나머지’ 아이들과 무리를 지었다.

학생 1, 2, 3, 정도로 하자.

원래 남학생들은 기본 4명이 한 세트니까.

내가 학생 4쯤 될 테고.

오늘은 생각보다 일찍 출발한 탓일까.

평소보다 급식실 줄 맨 앞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미안한데, 먼저 좀 지나갈게.”



하나.

처음 보는 놈이 앞으로 지나갔다.

또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 우리 밥 먹고 농구 내기 있어서 미안!”



둘.

다음에 오는 놈들은 이유도 없이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쏘리!”

“고멘!”



셋. 넷. 다섯···.



이게 우리같이 평범한 학생들이 급식실에 늦게 가는 이유였다.

뛰어가서 일찍 앞줄에 서면 뭐하겠는가. 일진 녀석들에게 자리만 내어줄 텐데.

마지막으로 하나 더 뛰어왔다.

붉은색 아디다스 저지를 입은 우리 반 일진이었다.



“오늘도 진짜 미안! 친구야 아, 근데 너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리 그래도 같은 반 친구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내 존재감은 딱 이 정도였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못 하는 것도 없는 웹툰 주인공의 여섯 번째 친구 정도 되는 평범한 병풍 같은 학생.

성적은 5등급에 유일한 자랑거리라곤 고등학생치곤 조금 큰 키.

아마 나라에서 학생을 찍어내는 공장이 있을지도 모른다.

단연 나는 그곳에서 엘리트겠지. 그러니 이름 정도 까먹는 것은 당연했다.




“이진석이야.”

“아아··· 맞다. 어쨌든 고맙다아!”



한바탕 일진 무리가 지나가고 나는 식판을 들었다.

오늘 급식은 쇠고기뭇국과 오징어 바.

이 정도면 맛있는 편이다.

우리는 그림자 분신술을 쓴 것 마냥 넷이서 모여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주제 역시 평범했다.

주인공이 찐따인 웹툰 얘기부터 학교 끝나면 뭐함? 하고 기계 같은 일상 루틴.



에효. 밥이나 먹어야지.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새치기를 당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아마 녀석들도 이런 비슷한 기분으로 내 이름을 잊어버리는 거겠지.

밖에는 벌써 식사를 마친 빨간 저지 일당이 농구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퉁. 퉁. 퉁.


공이 바닥에 튀는 소리와 다급한 외침들이 창문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우리 급식실 외벽은 이렇게 창문으로 되어 있었기에 농구 하는 애들이 곧잘 보이곤 했다.

대한민국에서 스포츠를 가장 사랑하는 학교가 어디일까?

체육을 전문으로 하는 예체능 계열의 학교?

정답은 남고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안 처먹고도 공을 차는 축구 광신도들부터, 슛 비거리를 늘린다며 수업시간 내내 악력기에 영혼을 바친 놈들, 쉬는 시간엔 책상을 이어붙여 슬리퍼로 탁구를 하는 기상천외한 방법도 만들어낸다.

여기가 태릉인가? 하는 착각이 든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아아앗!”


농구를 하던 아이들 중 키가 나랑 비슷한 놈 하나가 발목을 접질렸다.

일진 무리 중에는 꼭 운동할 때 슬리퍼만 신는 놈들이 있다.

체육 시간이었다면 꾸중을 들을 게 뻔하니 신발이란 것을 들고 다니기야 하겠지만.

점심시간에는 그들의 폭주를 막아설 자가 어디에도 없었으니.



“아 병신아, 그러니까 내가 운동화 신고 오라고 했잖아.”

“너 같은 좁밥을 상대하는데 내가 왜? 아야야!”

“어휴. 이 새끼 또 지건 마렵게 하네.”



아이들은 반코트로 3대 3게임을 하고 있었다.

지고 있는 흐름에 무리를 하다가 다친 모양이었다.

아, 남고에 있다 보면 원래 웬만한 스포츠의 룰이나 흐름 정도는 꿰게 된다.



그건 그렇고,

내기라고 들었는데. 저렇게 선수가 나가리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선수 한 명이 부상으로 아웃 되어버리니 남은 아이들은 벙쪄있었다.

상대편 아이들이 이야기했다.



“이러면 우리가 이긴 거 아님?”

“뭔 소리야, 이제 시작인데!”

“에이, 이건 기권으로 봐야지, 선수가 없어서 못 뛰는 건 니네 팀 책임이잖아.”

“아···씨.”



붉은 저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저 멀리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왜지? 녀석이 갑자기 나를 보며 빵끗 웃는다.

녀석이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설마···.



“진석아! 이진석!”



살갑게 웃으면서 뛰어오는 붉은 저지.



“마침 잘 됐다. 진짜 미안한데 혹시 지금 바쁘냐?”



붉은 저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야기했다.

솔직히 의도가 뻔히 보였다.



“어? 바쁘진 않은데··· 나는 농구 잘못해.”

“오올, 눈치 빠르네?”



내가 눈치가 빠른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알겠거든요?



“딱 5분만 뛰어주라 너 키 크잖아.”

“농구 해본 적 거의 없어.”

“걱정하지 마, 쟤들 진짜 개 좁밥이야.”

“······.”

“괜히 너무 잘하는 애들 데려오면 또 나중에 말 나온단 말이야. 그냥 가서 수비만 해줘 수비만. 아 이렇게 부탁 할게에!”



하긴, 농구 잘 하는 애를 땜빵으로 세우면 분명 말이 나오겠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졌을 때 이겼을 때 둘 다 나한테 낯 따가운 화살이 날아올 것 같진 않았다.

거기에 맨날 새치기나 하던 녀석이 이렇게 손을 파리처럼 비벼대며 사과하고 있으니.

솔직히 살짝 우쭐해졌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진짜? 고맙다. 진석아 내기에서 이기면 매점에서 피자빵 쏠게.”

“피자빵···?”



피자빵은 못 참지.

나는 결의를 다지며 코트로 향했다.

다리를 다친 놈이 쩔뚝거리며 입고 있던 붉은색 조끼를 건넸다.



“쟤들 개좁밥이니까, 그냥 골대 밑에서 손만 위로 뻗고 있어도 돼.”

“알겠어.”

“그렇다고 대충하진 마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V자로 자신의 눈과 내 눈을 가리키며 ‘난 너를 지켜보고 있다’를 시전하고 퇴장했다.

아. 시발 괜히 하기로 했나.



“자 그럼, 점수는 12 대 8. 다시 시작한다.”

“오케이!”



센터는 붉은 저지.

그리고 처음 보는 조던 신발의 붉은 조끼가 왼편.

내가 오른편을 맡았다.

공을 쥐고 있던 붉은 저지가 상대편에게 공을 던지자. 곧바로 공을 되돌려준다.

이게 3대 3, 하프코트의 시작 방식이다.



퉁. 퉁. 퉁.


붉은 저지가 공을 튕기며 상황을 지켜보고, 조던 신발은 외곽으로 달려나갔다.

셋중에서 키가 가장 컸던 나는 당연히 안쪽으로 향했다.

자유투 라인 안으로 들어가니 상대편 센터와 어깨가 맞닿았다.

근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몸으로 미는데 무슨 돌덩이를 미는 느낌.

녀석이 그런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아니, 좁밥이라며!’



볼을 몰던 붉은 저지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반면, 상대 팀 아이들은 무언가 정돈된 듯 깔끔한 움직임으로 붉은 저지를 봉쇄했다.

어떻게 이 녀석들이 좁밥 인 거냐.

농구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나여도 실력 차이는 현저하게 느껴졌다.

깜빡하고 있었다.

남고에선 자존심 때문에 상대는 무조건 좁밥이 된다는 걸.



“아오, 이 새끼들이!”



드리블 중이던 붉은 저지는 이미 공을 두 손으로 잡은 후였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슛을 쏘거나, 패스하거나,

선택은 슛이었다.

그런데 손에서 공이 완전히 떠나기 전에 붉은 저지가 소리쳤다.



“삑났다! 진석아 부탁해!”



녀석의 말처럼 공은 누가 봐도 기묘한 포물선을 그렸다.

농구 초짜인 내가 봐도 저건 안 들어간다.

내가 자세를 낮춰 리바운드 준비하자 상대편 녀석의 어깨가 더욱 깊어졌다.



‘누가 여기다 모아이 석상을 갖다 놨냐.’



아무리 밀어도, 녀석에게 밀려날 뿐이었다.

결국, 나는 자유투 라인 바깥으로 동댕이쳐졌다.

어라?

밀려난 순간 갑자기 무릎 언저리에 소용돌이 같은 게 생겨나있다.

오랜만에 땀을 흘려서 헛것을 보나.



퉁-!


공이 골대를 맞고 높게 치솟았다.

내 시선은 다시 공으로 향했다.

그래, 그래도 이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해보긴 해야지.

결국 먼저 뛰어오른 건 나였다.

그러자 어깨 싸움을 하던 녀석이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옆모습으로 여실하게 보였다.



“병신, 너무 빨리 뛰었어.”



정말이었다.

말대로 나는 너무 빨리 뛰었다.

공은 아직 하늘에 높이 있었는데 내 미미한 점프력은 이미 한계를 느끼고 바닥으로 내리꽂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게 웬걸?

방금 봤던 소용돌이.

내가 밀려났을 때 보았던 소용돌이가 내 발끝에 생겨있었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으면서도, 한 번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 신묘한 느낌.



살짝, 슈퍼마리오가 점프대를 밟는 기분이랄까?



나는 거짓말처럼 다시 부웅하고 날아올랐다.

옆에 있던 상대편 센터도 마찬가지로 점프했다.



“고맙다. 잘 먹을게.”



둘의 손이 빠르게 허공으로 뻗어 올라갔다.

볼을 잡은 것은 내 손이었다.



“뭐야! 이게 뺏긴다고?”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공중에서 볼을 빼앗기고 바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유가 있었다.



‘뭐지? 몸이 너무 가벼운데?’



그때였다.

내 시선과 붉은 농구 골대의 링이 일직 선상에 놓였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골대를 가까이에서 본 게.

나는 홀린 듯 공을 움직였다.

단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신성한 영역이였던 붉은 골대를 향해 손이 향한다.

결국, 나는 공을 그대로 골대에 내리 찍었다.



촤아아악!


골대가 갈라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바닥에 내려온 나를 본 상대 팀 아이들의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분명 쟤가 먼저 뛰었는데?”

“시벌 뭐야, 점프력 실화야?”

“미친···. 나 태어나서 덩크 처음 봄.”



반면 우리 팀 아이들은 기뻐서 미쳐 날뛰었다.



“와, 너 농구에 재능 있었어? 미쳤는데!?”

“이러면 진짜 이길지도··?”



부상 당해 구석에서 게임을 지켜보던 녀석도 멍하니 나를 보며 따봉을 날렸다.

이때 나는 처음 알았다.

덩크는 생각보다 손가락이 아픈 행위였다는 걸.

손가락 마디가 욱신욱신 아려왔다.



‘아···, 개 아프네.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



내 인생에 첫 덩크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길거리 농구에서 이단 점프를 숨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안녕하세요. 십간지 입니다. +2 23.10.05 17 0 -
공지 연재 시간 공지입니다. 23.10.02 11 0 -
6 전투력 측정기 23.10.06 16 3 12쪽
5 완전한 천재 23.10.05 24 4 12쪽
4 3명이 오리라. 23.10.04 29 4 12쪽
3 풀코트가 뭔데 씹덕아 23.10.03 29 3 12쪽
2 철옹성 블록킹 23.10.02 36 4 12쪽
» 178CM가 덩크를 어떻게 해. 23.10.01 75 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