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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깨달 님의 서재입니다.

CIELO - 팔을 잃은 작은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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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깨달
작품등록일 :
2020.01.02 21:19
최근연재일 :
2020.02.04 20:00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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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추천수 :
26
글자수 :
139,686

작성
20.01.0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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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심연

DUMMY

답변은 정확했던 것 같다. 이연의 표정이 잠깐 흔들렸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당신들은 날 높으신 분들에게 데리고 가는 건가?"

“······네, 아내분께서는 이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아내, 엘리자를 그곳에 보내 놓을 정도로 용의주도한 녀석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닐 거라 예상한 올리버는 현명하게도 이 정도에서 말을 줄이는 것을 선택했다.

무안하게 있던 그는 아직 꽉 잡고 있는 리볼버를 그제서야 보며 리볼버를 품 안에 넣었다. 흠뻑 땀으로 젖은 손을 바지에 쓱 닦은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너무 많아. 조금만 설명해 주게."

“······자세한 것은 가서 들으시면 됩니다만. 원하신다면요."

이연은 조수석에 있던 경호원으로부터 서류 하나를 건네 받았다. 서류를 올리버에게 내민 이연은 말을 시작했다.

“일단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CUSASA'의 부 국장직에 있는 서문 이연입니다. 제가 전에 에바를 살리겠다는 말, 기억하시죠?"

“기억하고 말고. 내가 그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말을 하던 와중에도 올리버의 눈은 서류에 고정되어 있었다.

“제가 한 말은 그런 의미 없는 위로가 아니에요. 저희가 에바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저희는 에바가 다시 깨어나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올리버의 ㄴ의심을 대신하듯, 서류 대부분에 그가 알 수 없는 약자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CUSASA. 못 들어 본 곳인데?'

전혀 믿음이 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죽어가는 아이를 살린다니? 물론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올리버의 마음속에서는 간사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미친 소리라도 한 번만 들어보자. 지금 잃을 건 더 없잖아.'

자식을 살리고픈 아버지만큼 절박한 것은 없었다. 올리버의 의심 어린 시선을 읽은 듯 이연은 말을 멈췄다. 올리버는 꿈틀대는 희망의 끈을 억지로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일단 이 사람을 쫓아내고, 거절하자······.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생각하자.

”······의사들도 다 포기한 마당에 당신이 어떻게?"

그의 이성을 배신하듯, 올리버의 대답은 정 반대였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뒤늦게 그는 자신을 자책했지만, 딸을 반쯤 잃은 아버지는 한 사람의 이성으로 제어할 만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올리버의 물음에 이연은 자세한 답을 삼켰다.

“자세한 방법은······ 국장님과의 대화 때 알려드리겠습니다.”

리무진이 도착한 곳은 10층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건물을 둘러보던 올리버는 이연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이연이 있었던 경호업체,”Lancers Co-Operation''의 본사인 듯, 곳곳에는 랜서스의 로고가 보였다.

이연은 안내데스크의 두 사람에게 눈인사를 한 뒤 엘리베이터로 그를 이끌었다.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고, 올리버는 그 층에 도착하자 마자 달라지는 분위기에 긴장한 듯 보였다. 불안할 정도로 밝은 복도는 건조한 콘크리트로 도배된 것 같았고, 군데군데 있는 양복 차림의 사람들은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대놓고 총을 꺼내 경계를 서고 있었다. 1층에 있던 경호원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무장을 한 사람들은 석상처럼 정면을 주시할 뿐이었다.

”저,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총을 든 경비병들 사이에서 하는 이연의 부탁은 '말하면 이 사람들이 밤중에 여러분들을 찾아갈 테니 입 닫고 있으세요'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연을 따라갔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복도 중앙에 있는 어느 문이었다. 노크를 두 번 하고 문을 연 이연은 올리버를 안내했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의 방 중앙에는 검은색 손님용 소파가 있었는데, 그 소파에는 기다리고 있다던 그의 아내, 엘리자 에스텔이 있었다.

엘리자의 옆에 앉은 올리버는 그제야 방 안을 살필 수 있었다. 방은 무채색의 건조한 복도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밝은 색이었다. 어두운 나뭇결을 한 책장과, 베이지색 벽, 그리고 그 중앙에 놓인 검은 색 손님용 소파와 꽃이 있는 화분이 중앙에 있는 철제 탁자······. 그가 방금 전까지 걸어가며 마주한 비밀 시설 같은 분위기랑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벽 한쪽에는 진열장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옛날 시대의 총이나 칼 같은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커다란 방패에 찍힌 방패 문양을 보던 중,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정장 차림을 한 말끔한 갈색 머리의 남성이었다. 남자는 서글서글한 눈으로 올리버와 엘리자에게 인사를 했다.

“국장실에 어서 오십시오. 저는 CUSASA의 임시 국장을 맡고 있는 알베르토 코르테즈입니다."




에바는 영원할 것만 같던 심연에서 정신을 차렸다,


막 잠에서 깬 에바가 느낀 것은 어딘가의 떠다니는 듯한 비현실적인 부유감이었다. 온몸이 콘크리트 안에 갇힌 것 마냥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코에서는 액체가 폐로 들어가는 기분 나쁜 느낌이 났다. 여기는 어딜까? 그리 고나는 왜 여기 있을까···? 속삭이는 상념은 귓가에 찬 물결처럼 에바를 괴롭혔다.

에바의 질문들은 금세 떠올랐지만, 또한 금세 가라앉았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것이 아주 오래되고 평온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맘속으로나마 버둥거리던 에바는 결국 움직이려는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정신을 집중했다. 오래지 않아서 에바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되짚을 수 있었다.

마지막 기억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나는 오늘, 분명히 일어나서 집을 떠나고, 그리고. 그 작은 카페에 가서 자베르를 만나고······

그리고, 놀다가 그날 저녁에 자베르가 나, 나한테······.”

이, 입술을······.

그곳까지 생각이 난 에바는 맘 속으로나마 얼굴을 저으며 소리 질렀다. 생각만 해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타오를 것만 같았다. 그래, 일단 이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보류하고, 그 다음에는?

계속해서 기억을 되짚어가던 에바는, 곧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있던 두 사람을 기억해냈다. 나 그때 정말이지 기절할 정도로 긴장했었는데······.

잠시 전 에바가 했던 결심이 무색하게, 지금 그녀의 심정은 온통 행복한 기억에 쏠려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핑크빛 망상에 빠져 있던 에바는 겨우 망상을 떨치고 다른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어? 그러고 나서, 다음엔 뭐였지? '

그 다음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봤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당황한 에바는 눈을 찌푸리며 - 마음속으로 - 생각에 잠겼다. 계속 집중하자 옛날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밀려들었다 사라져갔다.

커다란 소리와 밝은 빛.

나를 감싸 안은 자베르.

그리고 두 사람을 떠올려 던져버린 강한바람······.

그것이 에바가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에바는 그때 머리를 박았던지 뭔 지 해서,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과연 어디일까? 혹시 자기가 죽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약간 철렁했다.

'그래도 죽은 사람이 본다는 빛의 터널이나 사신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 걸 보니······아직은 살아있는 게 아닐까?'

조금이라도 자기가 죽었다는 생각은 하기 싫은 에바는 마음대로 살아있다 결정을 내려버렸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면 난 어디 있는 거지? 병원인가? 자베르는 괜찮을까?

에바의 마음에는 곧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베르에 대한 걱정이 무럭무럭 피어 올랐다. 그 아이, 분명히 나랑같이 휩쓸렸을 텐데, 어디 다치지는 않았을까? 만약에 혹시라도 막, 팔이 부러지거나, 심하게 다치면 그 아이는 엄청 울 텐데······. 혹시 내가 아프다고 또 짜고 그러지는 않겠지···? 분명 그럴 거야.

'······아직 덩치만 컸지, 애나 다름없으니까.'

왠지 모를 울적한 기분에 에바는 - 마음속으로 - 주위를 둘러봤다.에바는 이제 자기가 있는 곳이 일종의 정신세계 같은 곳이라 알아차린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눈을 뜬다!"를몇 번이나 외치던 에바는 결국 포기했다.

주위는 진한 핏빛이 되었다가, 밤하늘의 진청색에서 보라색이 되었다가 연기 섞인 하늘의 회색이 되었다. 완전한혼돈 속에서 생각을 포기한 에바는 그러려니 하고 주저앉아버렸다.

"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오후11시 경, 마지막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확인한 의료진들은 수술대 위에 혼수상태로 있는 에바를 회복 캡슐로 옮겼다.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맥박과 체온을 확인하고, 분당 호흡량을 확인하고, 뇌파반응을 확인하고···. 모든 과정을 다 마치고 에바를 재생관 안으로 집어넣는 데에는 1시간넘는 시간이 소모되었다. 에바의 수술을 진행하던 5시간 동안 전혀 긴장을 풀지 못했던 의료진들은 그제야 편한 얼굴이 되었다. 피로감에 젖은 눈을 비비던 의료진들은 에바의 일이 끝나자 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칼퇴근을 해버렸다.

에바의 관리를 위해 숙소에서 아주 살기시작한 주치의, 다니엘 루더필드 박사는 의사가운을 벗어놓고 마지막으로 에바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에바의 안정적인 뇌파를 확인한 루더필드는 그제서야 가방을 집어 들었다. 피로감에 병원 숙소에서 눈이라도 붙일 생각이었다.

막 불을 끄려고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퇴근했을 텐데 뭘 놓고 왔나?

들어오는 사람이 누군가 보던 루더필드의 눈에 푸른머리의 아가씨가 눈에 들어왔다. 루더필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신분증 하나를 꺼내 든 여자는 별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시작했다.

"CUSASA의 서문이연입니다. 에스텔 양의 상태확인을 위해 왔습니다······ 다른 의료진 분들은 어디······?”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보려고 찾아오는 서문 이연을 모를 리가 없었다. 루더필드는 이미 반쯤 외운 신분증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을 시작했다.

"방금 11번째 수술을 끝내서 다 지쳐있을거요. 내가 마지막으로 나가는 거고."

닥터 루더필드의 말에는 짙은 피로가 느껴졌다. 그의 퉁명스러움을 느낀 이연은 바로 사과했다.

"아, 퇴근하시려 했을 텐데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루더필드는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나섰다. 매주마다 오는 믿을만한 사람인데다가, 어차피 그가 가고 나면 간호사나 안드로이드가 관리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복도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자 주변에는 기분 나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연은 에바가 있는 시험관을 훑어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전혀 보이지 않는 이연에게선 거의 볼 수 없던, 깊은 슬픔이 담긴 눈이었다.


CUSASA,혹은 시엘로 연합 특수능력 감독기관의 국장, 알베르토 코르테즈의 제안은 간단했다.

'에반젤린 에스텔이 살아날 때는 이능력 발휘 가능성자, 이하 '가능성자'로 명명된다. 에바의 회복이 완료될 시, 정부의 보호 안에서 의무적인 적성검사와 교육을 받고, 적성 검사시 감마 타입 이능력 발휘가능자, 이하 '타입 알파'로 판명되면 카이루시안 내 특수부대 '랜서스'에, 이능력 발휘가능자, 이하 '타입 베타'로 밝혀지면 요격대대 카이루시안에 최소 4년동안 근무한다······.'

1달 전만 해도 일, 가족과 술 한잔만이 전부였던 평범한 일반인 올리버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내용이었다만 예상 외로 올리버는 국장이 말하는 '이능력'이 뭔지를 눈치챈 듯 했다. 이연의 대답은 그의 예상대로였다.

"네, '초능력자' 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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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크사이광 치유법 20.01.13 16 1 12쪽
17 원래 팔은 어쩌다 20.01.12 19 1 14쪽
16 테트라 스텔라 20.01.11 27 1 14쪽
15 멋진 결정 20.01.10 21 1 15쪽
14 답답함 20.01.09 51 1 14쪽
13 훈련 20.01.08 20 1 13쪽
12 리본의 파도 20.01.07 16 1 12쪽
11 실패작 20.01.06 15 1 12쪽
10 죄책감 20.01.05 20 1 12쪽
9 폭주 (2) 20.01.04 19 1 13쪽
8 폭주 (1) 20.01.03 15 1 12쪽
7 재활 20.01.03 17 1 15쪽
6 작은 천사 20.01.03 21 1 12쪽
5 꿈에서 깰까봐 20.01.03 38 1 12쪽
» 심연 20.01.03 31 1 12쪽
3 남겨진 자의 슬픔 20.01.03 24 1 11쪽
2 고백, 그리고. 20.01.03 24 1 7쪽
1 크리스마스 20.01.03 80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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