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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퀄라이저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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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엘탄
작품등록일 :
2019.11.03 23:55
최근연재일 :
2022.03.18 20:05
연재수 :
1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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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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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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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트레블

DUMMY

낯선 풍경을 둔 훈련장에서 훈련 세션을 마무리하고 있는 스트라스부르 선수들.

이곳은 익숙한 도시, 나라가 아니었다.


“수고했다.”


마누엘 리코 감독의 엄중한 말이 떨어졌다.


“다들 컨디션 관리에 주의하도록.”

““예.””


장난스러운 평상시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묵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무패우승을 달성한 14일 전이나, 프랑스 컵 우승을 거머쥔 10일 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여, 동상.”

“누나. 나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 할 것 같아.”

“응. 너무 얼어있지 말고.”


이곳은 스트라스부르의 홈이 아니었다.

반슬리의 홈도 아니거니와.


***


「스트라스부르 vs 반슬리, 어느 팀이 이기든 트레블 달성!」

「조쉬 허드슨 ‘여기까지 온 건 선수들 덕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

「대량의 이적설에 흔들리는 반슬리··· 대상은 윤태우, 에드 로즈, 아민 리세인」


안드레이 아르키치 수석 코치가 방에 들어오자, 마누엘 리코 감독이 팔을 들어 인사했다.

리코 감독은 늦은 시간까지 반슬리의 최근 경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돌려본 경기였다.


“전술은 이미 짜셨잖습니까.”

“경기에 돌입하면 무슨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니까.”

“하긴, 그렇죠. 그래도 선수들한테 컨디션 관리하라고 으름장을 놓으셨는데, 감독님이 피곤해하시면 어쩌려고요.”

“너무··· 많아.”


아르키치는 그 뜻을 알아챘다.

반슬리엔 획일화된 스타일이 분명 존재하지만, 경우에 따라 언제든지 유동적으로 전술에 변화를 가했다.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았고, 대다수가 최근 새로이 등장해 표본마저 적었다.


“에드 로즈도 그렇고, 스트라이커 조합이 다채로운 게 제일 걱정되는군.”

“반슬리도 똑같은 생각일 겁니다. 우리가 호야를 어떻게 기용하는가를 경계하고 있을 테죠.”


정석적인 두 줄 수비라는 기반을 잘 다져놓았기에 더욱 공격이 돋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스트라스부르는 수비수들을 조율하던 이브스 클라라의 폼이 저조해 기용할 수 없었다.

반면 반슬리는 오랫동안 다져온 조직력에 감각도 문제가 없으니, 분명 마땅히 파고들 약점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 맹점은 공간 조율에 있었다.


“상황에 따라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간의 간격을 기가 막히게 조절하더군요.”

“맞아. 그렇기 때문에 단순 지공으로는 무리가 있어. 아예 웅크리고 있다가 역습하겠지.”


점수를 앞서면 그대로 경기를 마치기보단 더 많은 득점을 노리고 전진하는 성향 덕분에 한두 골은 만회할 수 있겠지만, 결국 게임을 가져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의 전술로 경기에 임할 수는 없었다.


“아예 우리 쪽도 화끈하게 가기로 했잖아요. 확신을 가져요.”

“그래야겠지.”

“내일 관중들은 좋겠네요. 서로 난타하고 막··· 재밌을 테니까요.”


마누엘 리코는 윤태우의 골 장면에서 멈춘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


사민재, 제이크 오리온, 체칠리아 다니엘레는 경기장으로 향했다.

화려한 현수막이 걸려있고, 그 아래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반슬리와 스트라스부르가 범세계적으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할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활약하지는 않았지만, 대회의 지명도와 두 클럽의 활약상을 보았을 때 이만한 인파는 당연했다.


“저기 근데···.”


오리온이 말문을 열자 나머지 둘이 그를 바라보았다.

오리온은 자신의 수염을 가리켰다.


“이거 진짜 안 어울려요? 만나는 사람마다 다 얘기하던데, 깎으라고.”

“그럼 깎아.”


사민재의 대꾸엔 자신도 안 어울린다 생각한다는 태도가 담겨있었다.

오리온이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자, 체칠리아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아니요. 대답이 됐어요.”


스트라스부르의 엠블럼이 멋들어지게 휘날리는 것을 바라본 오리온이 중얼거렸다.


“승아가 왔으면 좋았을 텐데···.”


사민재가 몸을 움찔했다.

하도 북새통인 탓에, 그 찰나의 어색함을 아무도 눈치 채지는 못했다.


***


6월의 시작이었다.

시즌은 5월에 끝나도록 일정을 조정하는 게 최근 축구계의 관례였지만, 하루쯤 빗나가서 안 될 것도 없었다.


-정말 화창한 날씨입니다.

-네, 그렇죠.


드론에 달린 카메라 화면이 TV를 가득 메우자, 공중에서 바라본 경기장이 자태와 위용을 드러냈다.


-여기는 34/35시즌 챔피언스리그, 그 대망의 결승전이 열릴 장소!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입니다!


약 7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독일의 대표적인 구장 중 하나.

모든 축구인들의 시즌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경기가 펼쳐질 전장이었다.


“호야. 잠 못 잤어?”

“아니.”


조르당 타르디는 고개를 갸웃했다.

벽에 상반신을 기댄 이호가 머리를 벽에 댄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거기서 뭐해?”

“이리 와봐. 들려.”


타르디는 라커룸 구석으로 다가갔고, 이내 극히 작은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Tous ensemble,

Tous ensemble,

Hey, hey!


현지에서 경기를 준비한 며칠 동안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프랑스어였다.

스트라스부르의 서포터들이 경기가 한창 남은 현 시각부터 팀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쓰라렸던 지난 패배를 극복하고 일어서 빅 이어를 들길 바라는 마음이, 이호에게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모두 함께(Tous ensemble), 모두 함께···.”

“······좋아.”


조르당 타르디가 몸을 돌려 라커룸의 모두를 눈에 담았다.


“나가기 전에 분위기 한번 끌어올리자! 여태까지 컵이고 리그고 다 따냈으면서, 오늘만 이렇게 쫄아 있을 필요 있어?”


별다른 방법은 필요하지 않았다.

서포터들과 동화되어 짧은 가사를 반복해 읊어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승리는 모두 함께 쟁취해내는 것이라고, 그렇게 각인시켰다.


“나가자! 스트라스부르를 위해!”

“모두 함께!”


-프랑스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한 이번 시즌의 스트라스부르는 결코 쉽게 재단할 수가 없죠.

-쿠페 데 라 리그에서 생테티엔에게 발목이 잡혔지만, 그 외에 패배가 없습니다.

-이번에 승리해서 챔피언스리그까지 따낸다는 과정 하에, 트레블을 달성한 세 대회에서는 패배가 없다는 얘기죠?

-맞습니다. 반슬리가 극적인 드라마 끝에 타 대회를 정복하고 최종 목표를 목전에 둔 역전의 용사들이라면, 스트라스부르는 압도적인 차이로 군림하고 이제 마지막 과실을 따먹으려는 폭군에 가깝죠.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점이 이 매치업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정말로 경기를 시작할 때였다.


-라인업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필드로 들어서는 선수들을 비추던 화면이 두 팀의 라인업을 소개하는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먼저 스트라스부르입니다. 막시밀리언 부이어 골키퍼입니다.

-포메이션에 약간의 변화가 있습니다. 4-2-4입니다. 조르당 타르디, 아르노 보사드, 시릴 칼리사, 데미안 르블랑.

-미드필더진에 에베르 사나브리아, 요한 티시에.

-공격진에 이호, 율리안 헤르겔류드, 마티아스 페레이라, 르네 모린.


모아진 관심만큼 많은 예측이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여러모로 예상을 빗나가는 포메이션이었다.

4-3-3을 통한 지배적인 경기 운영 방식을 굳힌 스트라스부르가 4-2-4라는 극단적인 진형을 취할 줄은 몰랐던 조쉬 허드슨 감독 또한 바짝 긴장했다.


-이번엔 반슬리입니다. 아민 리세인이 골문을 지킵니다.

-백4에 존 필립스, 페르난두 시망, 니키 머튼, 커티스 챔버스.

-미드필더에 닐 해밀턴, 제임스 워드, 핀 파월, 루이스 발로우.

-2선에 에드 로즈 위치합니다.

-최전방은 언제나처럼 윤태우 선수입니다.


결국 반슬리는 익숙하고 그만큼 능수능란한 4-4-1-1을 택했다.

게다가 랭커스터, 카피탕, 스토크스를 교체명단에 포함시킴으로써 유기적인 공격수 조합으로 변수를 창출할 것을 예고했다.

선수들이 서로 악수를 하는 절차에서, 이호와 윤태우가 서로를 살폈다.


[윤태우 (240/240)] 최대 300

데드볼 38

킥력 42

속도 58

신체 55

볼 컨트롤 47


[이호 (258/258)] 최대 300

데드볼 49

킥력 54

속도 51

신체 54

볼 컨트롤 50


“오늘 막기 힘들 거에요.”

“막는 건 내 임무가 아니지.”


윤태우의 대답에 이호는 만족스런 미소를 띠었다.


***


피곤함이 한결 가신 몸을 차에 실었다.

권승아는 운전석에 자리한 이시현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왜 안 깨우셨어요. 지금 가면 경기 시작하겠어요.”

“자는 걸 어떻게 깨워.”


시동 걸린 차가 부드러운 배기음을 내보냈다.


“승이는 어디로 간 거야?”


앞길을 살피며 이시현이 질문했다.


“누구 유명한 건축가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요.”

“어디?”

“파리요.”

“아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숙소는 경기장과 차로 15분 남짓 되는 거리에 있었지만, 날이 날인지라 나아가기 힘들었다.

걸어서 이동하는 게 훨씬 수월해보였다.

하지만 권승아가 그런 제안을 꺼냈을 때, 이시현은 냉정하게 끊어냈다.


“인파가 너무 많아. 그리고 대다수가 널 알아볼 텐데, 그 사람들 뚫고 가면 이미 승부차기까지 다 끝났겠다.”


자동차를 의식하기 시작한 시민들이 비켜준 덕에 점차 이동할 수 있게 된 둘은 결국에 경기장 근처까지 다다랐다.

이시현이 빠르게 시간을 살폈다.


“지금 막 시작하겠네. 그렇게 늦지는 않았어.”

“네.”


입구 코앞까지 진출하고 나서야 권승아는 내리라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잠깐.”


이시현은 서둘러 문을 여는 권승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의 몸은 50m 전력질주도 벅찬 연약한 상태였다.


“내 제안.”

“예···?”

“선수는 무리여도, 다른 방식으로 축구계에 남아있고 싶으면 내가 돕겠다고 했잖아. 마음 정한 거야? 그거 대답 듣기 전까진 못 가.”


권승아는 몸을 돌려 이시현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녀는 훌륭한 에이전트였다.

비단 계약에서 권승아가 바라는 바를 이행해준 것뿐만 아니라, 편의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애써주었다.

그녀가 좇는 것은 그의 돈이 아니었기에, 축구에 대한 대화에서도 끊임없이 활력을 주었다.

커리어를 보내면서 갖가지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려 할 때, 그것을 씻겨주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다.

그만큼 편안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대답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감독이 되려고요. 몸이 완전히 회복 되는대로 시작해야죠.”


그래.

그렇게 대꾸하며, 이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느긋하게 할 생각은 없어?”

“최대한 빨리 준비를 마치면 기회도 그만큼 빨리 오겠죠.”


이시현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선수 권승아의 에이전트 계약은 끝났으니, 감독 권승아의 에이전트 계약을 하자고.”


이시현은 권승아의 어깨 위에 올렸던 손을 갈무리했다.


“최대한 빨리 써올 테니까 서명이나 해.”


권승아가 웃음을 터트리며 바깥으로 다리를 뻗었다.


“조건 보고요. 그럼 가볼게요!”

“그래.”


퉁, 문이 닫히고.

이시현은 기지개를 펴며 ‘끄아아으’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떨려서 못 보겠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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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30. 코르도바에 온 호랑이 (16) 22.02.04 44 2 11쪽
134 30. 코르도바에 온 호랑이 (15) 22.02.03 4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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