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장. 프롤로그
유환은 눈을 떴다.
유환의 눈에 비친 세상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에 맺힌 피 때문인지, 세상이 불타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유환은 알 수 없었다.
“크흑! 쿨럭! 후...하하핫!”
유환은 웃었다.
“크...쿨럭! 쿨럭! 하......결국....이렇게 되네”
유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렸다.
움직일 때마다 박살난 팔이 비명을 질렀다. 고통을 무시한 채 계속 팔을 움직인 끝에 유환은 원하던 것을 품 속에서 꺼낼 수 있었다.
작고 붉은 구슬.
어디를 봐도 평범한 그냥 구슬일 뿐이었다.
하지만 유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물건이었다.
유환의 부모가 유환 남매에게 남긴 유품이었고, 누나가 죽은 뒤에는 유환에게 남겨진, 가족 전원이 남긴 유품이었으니
유환은 손에 쥔 구슬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막상 죽을 때가 되니 아쉽기도 해. 어떻게 생각해 누나? 역시 나는 덜 떨어진 동생인 걸까? 누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기쁘면서도 무서워”
갑작스레 유환의 몸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간을 착각한 밤이 몰려온 듯 유환의 세상을 검게 물들이고 있는 건 놀랍게도 살아있는 것이었다.
검은 재앙.
SS급 몬스터인 드래곤 중 하나. 코드 네임 바그라드.
자신의 근거지에서 움직이지 않던 바그라드가 갑작스레 아시아 방면으로 향하자 아시아의 각국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인근의 군대를 동원되어 군인들이 지평선을 가득 메웠다.
S급 헌터인 유환마저 처음 보는 장비들이 방어를 위해 동원되었다.
아시아 전역, 아니 세계에서 모인 이름난 헌터들과 블루 블러드에 속한 솔져들이 집결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건 무의미 했다.
바그라드의 브레스는 단 일격으로 블루블러드에서 제공한 장비들을 박살냈다.
바그라드가 한번 꼬리를 휘두르자 군대는 괴멸 상태에 빠져 지리멸렬하게 패주했다.
바그라드에게 달려든 솔져와 헌터들은 어린애와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모든 방해물을 처리한 바그라드는 유환의 앞에서 물끄러미 유환을 내려다보았다.
“.....위풍 당당 하시군”
유환은 핏 웃고는 벌렁 드러누웠다. 사지를 무방비하게 펼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세였다.
유환은 잠깐 바그라드가 움찔거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 그건 착각이었을 것이다. 유환이 드러눕고 나서 거의 바로 바그라드의 발이 떨어져 내렸으니 말이다.
유환이 눈을 감는 것과 함께 어둠이 유환을 덮쳐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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