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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당의 서재

전쟁중이지만 탈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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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도두당
작품등록일 :
2023.08.27 21:03
최근연재일 :
2023.10.02 22:16
연재수 :
7 회
조회수 :
309
추천수 :
16
글자수 :
36,667

작성
23.10.02 22:16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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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7. 소년병 징집 하면 되는 거 아님?

DUMMY

그 이후로는 별 거 없는 나날들이었다.

회의에 나가서 간부들의 농담거리가 된다거나 자체적으로 개발한 훈련과 모의탈영이 일과의 전부였다.

안타깝게도 이런 나날들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전역이 아닌 전쟁터였다.

어느덧 전선에 나가기까지 5일 밖에 남지 않았다.

어제는 참고로 인사담당관이 가져온 A4위에다 유서를 작성했는데 상당히 기분이 더러웠다.


···


‘뭐라고 쓰지··· 연락 못하고 이렇게 가서 미안해··· 숨어 있다가 잡혀오느라 핸드폰을 뺐겨서··· 이건 부모님이 보기에도 너무 찌질한 것 같은데···’


죽고 싶지 않아서 인지 쓰고 싶지 않아서 인건지 한 줄 한 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상당히 고역이었다.

유서란 말에 감성적이게 되어 눈시울을 붉히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쓰는 건 더더욱.

하긴 여기 있던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나도 내 인생이 언젠가 죽음으로 끝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적당히 자연사나 병사수준일줄 알았고. 많이 쳐줘 봤자 교통사고나 익사 정도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전쟁터라니··· 폭사나 과다출혈, 쇼크사··· 사인이 참 다이나믹해진다.

이대로 부모님 목소리도 못 들어보고 죽어야 되는 걸까 정말···


‘그러고 보니 빼앗긴 핸드폰은 어디 있을까?’


안 그래도 소대원들 사이에서 자주 얘기가 나오던 사안이었다.

눈썰미가 좋은 경수씨가 징집관이 이쪽 군인들한테 핸드폰 가방을 인계 하는 걸 봤다고 했었는데··· 그 이후로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핸드폰은 언제 주나요?”


그 순간 역시나 입을 연 건··· 박지민이었다.

그는 유서를 쓰라고 준 종이에 단 한 방울의 잉크도 묻히지 않은 채 인사담당관에게 질문했다.

인사담당관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우리에게 평소 보내던 것 보다 더 경멸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한마디를 뱉었다.


“왜?”

“이런 종이로 하는 것보다 그냥 전화 한 통이나 카톡으로 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아서요. 영상으로 남겨도 좋고··· 그게 낫지 않나요? 핸드폰 받아서 여기 지리도 한 번 파악하면 또 좋잖아요.”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의견에 동조를 구했다.

마지막 본심만 빼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하나둘씩 끄덕이다가 다들 담당관의 얼굴을 바라봤다.

담당관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한 것 같다가 이내 미간에 힘을 팍 주고 짜증을 냈다.


“하··· 애들아 여기 군대야···.”


뭐 어쩌라는 건가 싶었다.

소대원들의 표정을 보니 다들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오죽하면 수거 책으로 인사 담당관을 따라왔던 최성빈 상병 마저도 어이없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띠링.’


그때 인사담당관의 건빵 주머니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담당관은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신보안 인사 담당관입니다.”


그렇게 그는 우리 텐트를 나갔다.

텐트 아래의 모두는 어이없는 듯 실소를 짓다가 다시금 유서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까도 잘 써졌던 건 아니지만 진짜 안 써지네··· 다 필요 없고 핸드폰 한번만 켜보고 싶다. 핸드폰 켜서 디씨 들어갔다가 바로 홈 버튼 누르고 유튜브 들어갔다가 또 홈 버튼 누르고 싶어······’


어디 자랑도 못할 찌질한 취미생활이었지만 그 루틴이, 일상이란 게 지금 너무도 그립다.



···


전선으로 가기 4일 전인 오늘,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고 다 좋지만 할 게 없다.

훈련이 없는 오늘 같은 땐 뭘 먹거나 자거나 아니면 마음이 맞는 사람과 잠깐의 담소를 나누는 그 정도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담소를 나눌 때 아주 좋은 것은 담배다.

군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것들을 못하게 되었지만 아직 담배는 피울 수 있다.

나는 재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한 애연가가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아침을 먹고 한 번, 일과를 시작하며 한 번, 끝내며 한 번, 백태섭씨나 마찬가지로 담배를 사랑하는 소대원들과 눈이 맞을 때 등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을 담배를 피우며 보내고 있었다.(박지민은 놀랍게도 담배 그 자체를 혐오했다. 좋아하게 생겼으면서···)

새삼스럽지만 군대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정말 많다.

사회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사람들도 대부분 다 피우고 있다.

애초에 군대에서 담배를 정말 많이 주는 것도 있고 불안감 때문인지 허탈감 때문인지 다들 뻑뻑 피워대고 있다.

괜찮다. 50년 정도 더 쓸 거라고 생각했던 폐의 유통기한이 이제는 1주일도 장담할 수 없게 됐지만 남은 기간 내에 최대한 쓰고 가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고 싶지만 기간 내에 다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는 건 상당히 씁쓸한 일이다.

그래서 난 이곳을 좋아한다.

막사가 아주 잘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인 이곳.

슬픈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없고, 담배를 피우다 경례를 할 일도 없다.

누가 가져다 둔 건진 모르겠지만 모래주머니도 몇 개 있어서 앉을 수도 있다.

여기 잠시 앉아 하늘을 보고 있다 보면 여기가 군대가 아니라고 착각할 수 있게 된다.

그냥 계곡 같은 걸 찾아 피서를 왔다가 숲속의 조용함을 즐기고 있는 관광객이라고 나를 착각할 수 있게 한다.

어느새 이곳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건 내 하루에 꼭 필요한 일이 되었다.

이곳에 있으면 그 누구도 내가 재 입대를 했고 곧 끌려가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주지 않는다.


“김 하사, 여기 있었나?”

‘시발···’


누군가가 눈을 감고 모래주머니 위에 앉아 있던 나를 불렀다.

‘소대장님’ 이나 ‘영광씨’ 가 아닌 것을 보니 간부인 것 같다.

나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경례를 했다.

장현석 소위였다.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나. 탈영이라도 하려고?”


순간 움찔 했지만 이내 장현석 소위의 농담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한 번 두드린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한대 줄까?”

“괜찮습니다. 이미 펴가지고···”

“그래···”


장현석 소위는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숲속으로 연기를 뿜었다.


‘이 새끼 왜 왔지? 설마 들켰나? 설마 박지민이 다 불었나? 그 새끼 설마 언더커버 뭐 그런 거였나? 어쩐지 이상하더라 이 개새···.’


괜히 무게를 잡는 것 같은 장현석 소위의 모습에 불안한 생각이 마구마구 피어올랐다.


“후우···김 하사가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아무리 내가 골랐다고 하지만”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씨발 다 알고 왔구나. 역시 이상한 사람이랑 엮이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아니 근데 아직 탈영 하지도 않았는데 처벌할 수가 있나? 변호사 선임 같은 건···’



“훈련 엄청 열심히 하더라 완전 놀랐어.”

“네?”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몸이 순간 진정됐다.


“엄청 조직적으로 보이던데? 내가 많이 도와주지도 못 했는데 훈련이 엄청 잘 된 것 같더라고.”

“아, 아닙니다. 그냥 소대원들을 위해서”

‘도망치는 걸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까지 말이 튀어나올 뻔 한 걸 겨우 참아냈다.

다행이다. 누군가 불지도 이야기가 새어나간 것도 아닌 겉 같다.

나는 마음속으로였지만 박지민에게 쌍욕을 뱉어 댔던 것이 내심 미안해졌다.

그 와중에도 장현석 소위는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멀리서 몇 번 봤는데 완전··· 예비군이라고 생각도 못하겠던데 일사불란한 게 김 하사가 재능이 있나? 내가 나중에 중대장님께 말씀드려서 임관을···”

“그건 괜찮습니다.”


급한 마음에 상급자의 말을 끊어버렸다.

장 소위는 내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피식 웃으며 담배를 다시 물었다.


“많이 힘들지 전역 했는데 다시 이렇게 와서 좆같고···”

“네······ 아, 아닙니다.”


자꾸 본심이 튀어나와 위험했다.


“아니긴··· 다 알아 나도. 그래도 전쟁에 이렇게 딱 나와서 국가를 위해 싸워봐야지 앞으로의 대한민국에서 남자로서 살아갈 자격을 갖추게 되는 거야, 그렇지 않아? 나중에 전쟁 끝나고 누가 그때 어디 있었냐고 물어보면 딱 대답해야지, 멋있게, 이제 진짜 남자가 되는 거라고 김 하사는”


‘그냥 집에 있었다고 해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몸은 알았다고 예쁘게 대답을 올린 후였다.


“그래 잘 해보자고 그리고 내가 책임지고 김 하사는 몸성히 전역시킬 거야 진짜, 이래 봐도 여기 있는 간부 중에서 제일 이론은 빠삭하거든.”


그렇게 말하곤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나도 그렇게 웃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몸속엔 웃음이란 게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조금도 웃을 수 없었다.

과연 몸 성하게 전역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전역하고 나면 이때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게 될까.

그렇게 되는 걸까.

전쟁을 나갔던 사람과 그러지 않았던 사람으로 남자는 나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망자와 생존자로 남는 것 같았다.


“그 소위님, 혹시 실전은 어떻습니까? 많이 위험합니까?"


이왕 얘기를 튼 김에 이것저것 물어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 소위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 음··· 실전이라, 나도 아직 실전은 경험해보지 못해서··· 신임 장교로 여기 부대에 왔을 땐 이미 철수 중이었거든. 그래도 훈련 때와 같이만 한다면 그리고 상관의 지시만 잘 따른다면 위험한 건 충분히 비껴 갈 수 있을 거야.”

“···”


미친놈인가 싶었다. 이 새끼 무슨 자신감으로 남자로 태어나니 마니 한 거지? 전투 해본 거 아니었어?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그에게 다시 물었다.


“다, 다른 데에서 실전 하고 오신 게 아니라 여기가 처음이신 겁니까? 그런데 아까 이론은 빠삭하시다고···”

“원래는 학군단 끝나고 후방 쪽에 배치되는 거였는데 전쟁 때문에 편제가 좀 바뀌어가지고··· 이론은 졸업한지 안됐으니까 내가 제일 빠삭하지.”


‘미친 이 새끼도 나보다 어리네···’


충격에 입이 살짝 열려서는 다물어지지 않았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혼자만의 기분 좋은 휴식시간이었는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장 소위의 눈은 꿈을 꾸는 어린 아이의 것처럼 반짝 거려서 더욱 심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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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소년병 징집 하면 되는 거 아님? 23.10.02 20 2 11쪽
6 6. 학익진 맞지? 잘하자 23.09.20 28 2 8쪽
5 5. 생존일지는 쌓여간다 23.09.17 33 2 10쪽
4 4. 재입대 적응기 23.09.13 42 2 16쪽
3 3. 이런 소대장은 싫어 23.09.08 43 3 14쪽
2 2. 용서 받지 못할 자 23.09.02 54 2 10쪽
1 1. 그렇게 다들 징집이 된다 23.08.27 9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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