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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당의 서재

전쟁중이지만 탈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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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도두당
작품등록일 :
2023.08.27 21:03
최근연재일 :
2023.10.02 22:1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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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667

작성
23.08.2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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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 그렇게 다들 징집이 된다

DUMMY

전쟁중이지만 탈영하겠습니다


나는 2018년즘 행정병으로 전역했다.

그때는 분명 내 인생에 군대는 예비군이나 민방위쯤을 빼면 다신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휴전 국가에 살고 있던 거였고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 밤부터 전화기가 모르는 번호를 띄우며 수시로 우는 것을 보니···

국가가 날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인 것 같던 8월의 마지막 날, 북한군은 기습 남침을 개시했다.

그리고 사정이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기존의 국군으로는 북한군과 대치하기 힘들어진 대한민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예비군을 징집했다.

그리고 난 안 갔지.

나는 안 갔다.

분명 무슨 문자가 왔고 어디로 몇 시까지 오라는 내용의 문자를 잠금 화면으로 대충 본 것 같긴 한데··· 클릭해서 원문을 보진 않았다.

오히려 눈을 질끈 감아버렸지.

그러니까 난 못 본거야.

안타깝게도 검은 화면이 되어버려서 소집 명령을 못 본 거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할래.

아쉽다 문자가 아니라 전화였다면! 미치겠다!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치고 싶었는데!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몇 시간 후 부터 본격적으로 전화가 걸려오자 그 생각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결론적으로 난 징집을 거부하고 수원에 있는 자취방에 누워있다.

전쟁이 터지고 예비군을 모집해서 최전방으로 보낸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돌자마자 그때부터 토르를 키고 지금까지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었지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사실 잘 모르겠는데 지난 며칠 동안은 괜찮았다.

‘집에 틀어박혀서 나가지 않기’··· 뭐 늘 해오던 일이라 힘든 것도 없고 특이할 것도 없었다.

가끔 정말 심심할 때면 컴퓨터를 키고 오프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을 했다.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면 위치가 발각된다고 드라마에서 그랬던 것 같으니까

피카츄 배구와 포켓몬스터 골드 버전을 다시 하게 된 건 초등학교 컴퓨터실 이후로 13년만이었는데··· 확실히 명작이었다.

그러다 밤이 되면 혹시라도 컴퓨터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들고 웅크렸다.

그렇게 달빛을 맞으며 이불 안에 웅크리고 있을 땐 주로 정보를 수집했다.

최적의 타이밍을 찾기 위한 정보를 말이다.

그러니까··· 징집당할 최적의 타이밍···

‘전선으로··· 그러니까 총알받이로서 적합한 자리에 내가 옮겨지기 전에 전쟁이 끝난다면 참가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미래에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기인 한 행동이었다.


“아 전쟁 참가하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버려서 그만···”


따위를 중얼거리면서 병무청 앞을 서성이고 있다면 ‘으이구 녀석’ 하며 머리를 딱콩 때리고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닌 것 같다.

어찌됐든 나는 전쟁이 나의 참전과 상관없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찌라시들을 쫓아다녔다.

전쟁이 끝나고 무슨 법 무슨 법에 걸려 감옥에서 썩게 되더라도 전쟁에 끌려가서 인생이 끝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북한군이 우세하다느니 국군이 평양까지 올라가고 있다느니 쉽게 쓰여진 것 같은 정보들 여럿이 금세 수집되었지만

정보가 금세 다른 정보에게 반박당하는 상황이 매번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는 며칠 밤을 ‘어느 걸 믿어야 하나···’하며 고민 하다가 잠에 빠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내가 좋은 대로 믿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속에선 대한민국의 전차는 개경을 넘어 만주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 전쟁이 일어난 지 일주일 차, 그리고 소집에 응하지 않은지 6일차가 되었다.

나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군 당국의 보도 실수나 심심했던 누군가의 저급 어그로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에 말이다.

그도 그럴게 창문을 살짝 열고 바라본 바깥의 풍경은 바뀐 게 없었다.

조용하고 고양이가 있고. 가끔 사람이 돌아다니는 그런···

11시 쯤 일어나면 볼 수 있는, 늘 그랬던 모습의 우리 동네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오늘은 늘 그랬던 대로 롤을 켰다.

이 게임에 중독이 되어 있기에 아무런 저항 없이 게임을 킨 것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게임을 하면서 뇌를 깨우고 늘어난 뇌 용량을 지금까지의 일들을 정리하는 것과 앞으로의 계획 수립에 이용하려는 거지 .

그리고 VPN켜서 아마 괜찮을 거다.

지금생각해보면 전쟁이 터진 그날은 나름 운이 좋은 날이었다.

분기마다 한두 번 정도 밖에 없는 오전에 깨어있는 날이었으니까.

열한시 사십 몇 분쯤이라 애매하긴 했지만···

과거 아버지 세대가 일어나서 신문을 읽듯

지난 몇 년 동안 일어나자마자 각종 커뮤니티 인기 글 정독을 루틴으로 유지했던 나는

그날도 늘 하던 대로 스마트 폰을 잡았고 여러 사이트의 개념글을 정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에 전쟁이 터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즉시 움직여야 했다.

기상 후에 이불 속에서 그렇게 빨리 빠져 나온 건 아기 침대를 썼던 시절을 제외하곤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젠가 조건이 맞아 발급할 수 있었던 신용카드를 챙겨 집 앞 식자재 마트로 달렸다.

구입 물품은 보관이 용이하고 조리가 편한 것, 통조림이나 냉동식품 위주였다.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매끄럽게 식료품을 쓸어 담았다.

오전시간의 식자재 마트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라이벌이라고 할 만한 게 할머님들이나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은 아주머니정도밖에 없어서

사재기에 있어서 딱히 눈에 띄는 라이벌은 없었다.

그렇게 79만원이 나왔다.

식자재 마트에 딱 하나있는 카트에 식료품 탑을 두 번이나 예쁘게 쌓은 결과였다.

물론 통장 잔고에 그만한 돈은 없다.

취업이랑 관련 없는 과를 다니고 있는 내게 할부로 갚을 능력 따위도 없다.

그러니까 신용카드 들고 간 거야!

전쟁 중에 카드 회사의 전산망이 망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말이지

그렇게 낑낑대며 집으로 돌아와서 에너지 소비 효율 5등급 냉장고에 모든 음식을 쑤셔 박았다.

그리고 미처 쑤셔박지 못한 것들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저 냉장고 때문에 아주 괴롭다

물론 내 명치까지밖에 안 오는 작은 냉장고에 79만원어치 식자재를 다 때려 박은 내 잘못이 크긴 하지만.

식자재들을 식히는데 많은 힘이 드는지 쉴새없이 웅웅대는 게 밤마다 내가 꼭 우주선에서 자는 것 같다.

저 녀석도 괴로운 거겠지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식사는 매번 간단하게 이뤄졌다

전쟁 영화 또는 재난 영화에서 음식 냄새로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채는 장면은 이제 진부하다고 느껴질 만큼 많이 봤기 때문에 잘 숨기 위해서 거창한 요리는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징집’이라는 단어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거리낌 없이 프라이팬에 만두를 올려놓고 충분히 익을 때까지 그 향을 즐기겠지만

아마도 징집대상자일 나에겐 그런 사치 따위는 허용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음식은 전자레인지를 사용했고 그마저도 작동하는 소리나 전자레인지 안에서 음식을 뺄 때 냄새가 새어나갈까 어제까지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사용했다

오늘 아침부터는 현자타임이 와서 그만뒀다.

그간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일주일 째 그런 식으로 잘 생존하고 있다.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으로부터 자주 전화나 문자가 오고 있긴 하지만 역시나 받을 수 없다

징집관이 부모님 옆에 앉아 유괴범과 통화를 옅듣는 도구를 쓰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식사재 마트를 다 털고 나서 핸드폰 유심을 빼기 전 부모님께


-몸 조심히 다시 뵈러 갈게요. 조심히 계세요-


라는 문자를 남기긴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군대는 최대한 안가는 쪽으로 해서 몸조심히 다시 뵈러 갈게요. 조심히 계세요.-


라고 남길걸 그랬다. 첫 번째는 뭔가 의미심장하잖아 조국을 지키러 떠나는 것 같고···

안타깝지만 다시 문자를 남길 순 없는 일이다.

미안해요 엄마 아빠··· 절대 안 죽을 거예요. 꼭 살아서 언젠가 만나러 갈게요.

머릿속에 이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쾅쾅쾅쾅쾅쾅'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김영광씨 안에 계신거 압니다 병무청입니다.”


징집관이 찾아왔다. 사실 별 일은 아니다.

3일차에도 한 번 왔었고 5일차에도 한번 왔었던 것 같다.

그냥 적당히 없는 척을 하면 된다.

근데 지금 한타하기 직전인데 미치겠네.

나는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최후의 한타를 도모하려는 팀원들을 향해 빽핑을 찍었다.


“김영관씨!”


징집관은 더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

오늘은 좀 더 집요한 것 같다.

그럼 나도 좀 더 집요해지면 된다.


“김연관씨!”


절~대 안 열어주지 저는 김영광이지 김영관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혹시 김영광을 찾으시는 거라면 김영광은 원룸을 이미 떠나서 저 충청남도쯤 피난가고 있답니다?

안에 있긴 한데 대충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될것 같아요~


'쾅쾅쾅쾅쾅쾈왘'


···그렇게 생각해줄 수 없었나보다.

오히려 나도 이제 화가 나기 시작한다.

덕분에 한타는 시작도 못해보고 혼자 우물에서 팀원들의 분노를 홀로 감내하고 있는데 나도 울분을 토해내고 싶다.

당장이라도


‘아니! 남의 집 문을 그렇게 세게 두드려도 되는거요?’


라고 따지고 싶지만 그렇다면 더욱 세게 두드릴게 분명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이불 속으로 스스륵 들어가 눈을 감았다.

입주 옵션이었던 도어락을 제외하더라도 두개의 자물쇠가 알아서 외부인들을 막아줄 테니까.

나와 달리 저들은 한가하지 않을 테니까.

든든하다. 잠금 장치를 추가해두길 잘했어.

징집관들은 이번에도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돌아갔다.

처음도 아니건만 흡족한 승리에 씨익 웃음이 지어졌다.


‘하하, 이 성 안으로 너희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 물론 나도 나갈 생각따윈 없다.

전쟁이 끝난대도 말이지.

늘 그랬던 것처럼 날 필요로 하지 말아라, 나도 너희를 필요로 하지 않을테니.

너희는 내 허락 없이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 절대, 절대!‘


···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팔뚝 만한 그라인더를 가지고 오기 전까진

한밤중에 그들은 그라인더를 들고 10평자리 자취방 문을 뜯어버리고 있었다.

늦게까지 핸드폰을 하다 막 잠이 들었던 나는 그들이 문을 절반 쯤 갈라버렸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 요새가 함락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비틀비틀 일어나 점점 갈라지고 있는 문을 한동안 바라보다

백도어가 없는 원룸에서 지난 며칠간 쓰레기장으로 쓰던 보일러실에라도 숨어야 하나 싶었지만 걸렸을 때의 수치심과 법정에서 불리해질 수 있는 정황을 생각해 마음을 차분하게 먹고 컴퓨터 의자에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김영관씨 안에 있으면서 왜 안나옵니까 병무청입니다.”


집에 들어온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표정으로 나를 매도했다.


“옷 입으세요. 지금부터 김영관씨는 전시 징집대상자로 군에 입대하신 겁니다.”


내가 순순히 적당한 상하의를 걸치자 그들은 내게 다가와 나를 연행하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내 양팔을 꽉 잡고 있는 30대 남자 둘과 그보다 더 숨 막히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여자··· 집에 틀어박힌지 딱 2주째 되는 날의 밤이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돼지처럼 징집관들의 우람한 근육에 붙들려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오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뗏다.


“저···”


오른쪽에 있던 남자는 내 얼굴을 흘끗 보더니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찾아냈냐고요? 계량기 늘어나는 거 보면 다 알죠. 우리가 모를 줄 알았죠?”


징집 노하우를 푸는 남자의 얼굴은 어째선지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었다.

겨우 그딴 질문이 아니었다.

내가 물어보고 싶던 건···

냉동실에 삼겹살 있는데 그거 먹고 가면 안되냐는 거였다.

삼겹살은 아무래도 냄새가 너무 많이 날 것 같아서 제일 먹고 싶었는데도 꾹 참고 아껴뒀는데!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 즉시 구워먹으려했는데!

손도 대보지 못한 이상적인 삼겹살이 내 눈에 아른 거렸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못 먹은 밥이 생각나는 사람이구나”


실소와 함께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조용히 하세요”


여자 주무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나는 징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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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요즘 소설이 안 올라오는 건에 대하여 23.10.16 7 0 -
7 7. 소년병 징집 하면 되는 거 아님? 23.10.02 20 2 11쪽
6 6. 학익진 맞지? 잘하자 23.09.20 28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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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용서 받지 못할 자 23.09.02 54 2 10쪽
» 1. 그렇게 다들 징집이 된다 23.08.27 9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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