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다 망할 구미호 때문이지
쿵-
아무렇게나 세워져있는 간판 몇 개가 넘어가며 불꽃이 튀었다. 엉덩이가 뻐근해져왔지만 얼른 몸을 일으켰다. 늦은 새벽 텅 빈 거리인데도 술 취한 몇몇 사람이 시끄러운 소리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유인하려 했건만. 저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주변을 정리하는 등 뒤처리는 협회에서 알아서 해줄 테니 나는 저 자식만 해결하면 되겠지.
“도사나리께서 꼴이 영 말이 아니구나.”
조롱하며 걸어오는 놈의 꼴도 우스웠다.
반짝거리는 네온사인 아래 도포자락.
현대의 패션 감각은 안 가르쳐 준 것 같다.
아, 물론 그것보다 가장 못 참겠는 건······.
“이제 그만 조용히 죽음을 받아-.”
“말 좀 그만하거라. 제발.”
“······?”
“몸뚱아리 말고 그 머리통을 사람으로 바꾸는 도술은 할 줄 모르는 것이냐? 짐승의 머리를 달고 다니고 싶으면 말을 하지 말던가.”
사람 몸에 짐승의 머리를 달고 있는 저것이 말을 하는 게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물론 저것뿐만 아니라 지금의 상황도 받아들이는데 오래 걸렸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 한 밤중인데도 낮보다 훤히 밝은 것부터 적응하기 힘들었고, 노비들 수백, 수천이 죽어나가도 지을 수 없을 것 같은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것도 마찬가지.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자동차 같은 수단을 이용해 축지(縮地)를 하고 휴대폰을 가지고 멀리 있는 사람과 전언(傳言)을 나눈다.
이건 뭐 세상사람 전부 도사가 된 꼴 아닌가.
여하튼 중요한 건 저놈을 없애야한다.
생각해 보자면 조선에서도 요괴가 날뛰는 꼴은 똑같았다. 사람이 죽으면 그 억울함이 원귀가 되어 남들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심지어 제 가족들마저 못살게 구니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흔한 얘기.
문제 될 건 없었다.
이 최풍헌 님 같은 도사들이 있기 때문이지.
아, 물론 어중이떠중이 도사 놈들과 나를 비교해서는 안 되고.
어찌되었든 요괴들의 음의 기운과 도사들의 양의 기운이 적절히 대립해 큰 문제까지는 없었는데.
그래, 다 망할 구미호 때문이지.
억울한 혼 수준이었던 원귀들이 미친 요괴가 되어 날뛰며 사람들을 죽이는 것도, 내가 도력을 빼앗긴 채 400년씩이나 잠들어 있게 된 것도.
“스승님과 내 동생 왕우가 죽어버린 것도······.”
가만히 있던 내가 중얼거리며 살기를 띄자 놈의 몸이 보라색 기운으로 감싸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주변에 검은 형체의 요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어 뜯겨 고통 속에 죽어가라. 그리고 네놈의 도력을 내놓아라.”
물론 난 저 말대로 당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저놈이 그 꼴이 될 것이다.
다른 도사들처럼 오행의 기운으로 불을 뿜고 바람을 일으키는 건 봉인이 된 이후로 불가능해졌지만 그 덕에 생긴 능력이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하자 내 주변에 서서히 나타나는 요괴들이 보였다. 덩치 큰 늑대의 모습을 한 녀석은 이미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놈 참 잘생겼다.
난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말했다.
“자, 가서 먹어치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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