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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별의 다락방

재벌 박차고 개발천재 된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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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별
작품등록일 :
2021.07.26 12:37
최근연재일 :
2021.08.11 17: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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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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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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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

DUMMY

최 대표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강산의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사람의 맘속을 꿰뚫어 볼 것 같은 눈매, 천재만이 가질 수 있을 자신감 넘치는 미소, 차분하면서도 당당한 음성이 그의 이름 한 자처럼 눈앞에 산을 두고 있는 심정이 됐다.

강산이 입술을 열었다.


“우선, 호칭과 존대 문제부터 고치죠. 그냥 강산이라고 해주세요. 존대는 하지 마시고요. 뭐, 공식적인 자리라면 어쩔 수 없지만.”


최 대표도 싫지 않은 오더였다.


“정 그렇다면··· 알겠네.”

“우선은 제가 보유한 주신 그룹 지분을 매각해 주세요. 50억 정도 될 겁니다. 언제까지 홍도 작업실에서 지낼 순 없으니까요.”

“그 돈으로 사무실을 겸한 연구개발실을 꾸며야겠군.”


강산은 술술 막힘없이 말이 잘 통하는 최 대표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하하, 맞아요. 그래서 말인데···.”

“말해보게.”

“그 돈으로 서울이나 근교의 폐교 하나 알아봐 주세요. 학교라면 대지가 넉넉할 테고 기존 건물을 이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모자라면 따로 말씀해 주시고요.”

“폐교라···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근래 인구 감소로 폐교되는 학교가 늘고 있다고 들었네. 알겠네. 그리하도록 하지.”


창업 준비, 첫 단추는 이렇게 끼워졌다.


점심때가 되자 자러 들어간 홍도가 기지개를 켜며 침실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미국에 있을 때와 비슷하게 샌드위치와 과일로 가벼운 점심을 즐겼다.


“궁금한 게 있어.”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던 홍도가 물었다.

커피를 들던 강산이 홍도와 시선을 맞췄다.


“깊은 원리야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생각만으로 서로 소통한다고 그랬잖아.”

“안 믿어진다면 한 번 더 시도해 볼래?”

“놉, 사양할래.”

“그럼 뭐?”

“그러니까···음, 내가 인식하는 걸 네게 전달하는 거라면, 내 인식이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라면 어떻게 돼?”


강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외국어를 이해할 수 없듯이 내 인식이 상대방과 공유할 수 없는 상태라면 이해할 수 없지.”

“그럼 소통에 한계가 생기겠네.”

“대화나 음성 통화를 비롯한 모든 소통이 마찬가지지. 디자인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과 네가 음성 통화한다고 하자. 네가 과연 깊은 디자인 이론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까?”

“물론 어렵겠지.”

“마찬가지로 보면 돼. 공유할 바가 없으면 음성으로도 소통이 어려운 것처럼 이미지도 상대에게 전할 수 없어.”


홍도는 골몰해졌다.


“오히려 일상적인 대화 수준이라면 언어 장벽 없이 이미지로 소통할 수 있어.”

“오···. 실시간으로 번역까지?”


홍도는 프랑스에 머무는 어머니와 통화를 되짚어봤다.

전화상으로 얼마나 깊은 얘기를 나눴던가.

날씨 얘기, 음식 얘기, 별 관심 없는 서로의 안부, 그러다가 종국엔 상호 간의 해묵은 팩트체크, 이어지는 감정싸움.

이름난 화가와 명망 있는 예술 대학을 나온 엘리트와의 대화도 그다지 고상하거나 지적이지 않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이라면 공유할만한 주제로 소통을 나눈다.

강산의 말대로라면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방법과 방향이 달라도 보디랭귀지 수준의 내용은 무리 없이 소통할듯했다.

강산이 한 가지를 더 설명하며 홍도의 상념을 깨뜨렸다.


“거기에 약간의 감정도 실어 보낼 수 있지. 우리가 통화에서 상대방의 음성을 듣고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보다 나은 정도로···.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냐.”

“예를 들면?”

“감정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 거짓말을 하거나 감정을 숨길 수도 없겠지.”

“그건 문제네. 살면서 감정 숨길 일이 많잖아. 피곤해 죽겠는데 술 마시자는 친구에게 정색할 수는 없지.”


홍도는 그간 애주가였던 강산을 상대하며 겪은 고초를 떨어놓았다.

강산은 신이 나서 홍도의 뼈 때리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걸 통제할 방법을 찾는 중이야. 전달의 수준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으로 봐. 예를 들면, 감정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을 연인이나 반려자로 여기지 않을 테니까.”

“맞아! 이혼이 늘고 솔로가 넘쳐날지도.”

“짓궂어.”


홍도는 살짝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가면 속에 살아왔는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되겠지.”


홍도는 신기술에 덜미가 잡혀 연인을 빼앗긴 이들의 분노한 워딩을 떠올렸다.


‘모든 게 저 빌어먹을 기계 탓이다!’


“휴, 사업 시작 전에 대형 로펌과 경호 인력부터 알아봐야 할 듯.”

“후후후.”

“호호호.”


홍도는 강산의 유쾌한 웃음을 따라 웃었다.


&


같은 시각 운전을 하던 최 대표도 홍도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홀로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었다.

미리 읽어본 사업계획서 내에 힌트와 오전에 겪은 경험을 토대로 제법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최 대표는 한 발자국 더 나가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겨났다.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기술력이라면 이미 실현된 BCI 기술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리라.

어쩌면 팔다리가 끊어진 사람을 위한 재활 기기라든지 뇌파로 간단한 게임을 하거나 주행을 하는 정도는 상회하고도 남지 않을까.

강산 말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최 대표는 이 부분을 따져 묻지도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강산이 아직 개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런 추측은 최 대표 말고도 이 기술을 알게 될 모든 사람이 가질만한 합리적 의심이다.


‘그렇다면 숨기려는 의도는 뭐란 말인가?’


최 대표는 강산이 굳이 말해주지 않으면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이미지 통화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너무 복잡했으니까.


어느덧 도착한 곳은 주신 그룹 본사 사옥.

선약이 된 최 대표는 곧장 총괄 부사장실을 찾았다.


“오래간만이에요. 선배.”

“미모는 여전하십니다. 부사장님.”

“선배가 뛰쳐나가지만 않았으면 먼저 앉아있을 자리여서 그런지··· 그 호칭, 별론데요.”

“그래요? 회장님을 위해 안팎에서 애쓰시는 분께 사모님이라 불러드려야 하는데···. 사모님이란 호칭은 입에 영 안 붙어서 말이죠.”


두 입사 선후배는 악수하며 10여 년 전처럼 다소 뼈있는 인사말을 서로에게 던졌다.

그리곤 찻잔을 앞에 두고 앉은 두 사람은 오래된 연인이라도 된 모양으로 서로 잔잔한 미소를 나눴다.

서로 가슴 속엔 총칼을 품었으면서도.


“매니지먼트 기획 이사님이 어쩐 일이실까? 스카웃이라도 하시려 오셨나요?”


정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막장 드라마는 취급하지 않아서요. 미안합니다. 아, 그리고··· 매니지먼트는 때려치웠습니다.”


최 대표는 대기업 총수의 나이 어린 연인이란 뉘앙스로 도발했지만, 정순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래요? 설마 구직하러 오신 것 같진 않고··· 내가 맞춰볼까요?”

“어디 그 뱀 같은 촉이 녹이 안 슬었나 봅시다.”

“강산 군과 같이 일하게 됐겠죠, 아마도? 휴, 강산 군이 맘을 굳혔나 보군요. 만 하루도 안 돼 선배가 날 찾은 걸 보면.”

“역시··· 더 날카로워지셨군요. 허허허.”


정순은 아직도 미소를 머금은 채 차를 마시곤 최 대표를 지그시 바라봤다.


“선배는 아직도 날 미워하는군요.”

“굳이 아니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부사장님. 때린 사람보다 말리지 않은 사람이 더 미운 법이니까.”

“선배는 아직도 내게 투정을 부리는 중이에요. 너라도 좀 말리지 그랬냐고···. 사실은 말리지 못한 선배 자신이 더 미울 테고요.”


최 대표는 차를 들며 말했다.


“그래요. 참 못났죠. 나란 사람.”

“우리가 좀 더 노력했으면 사영 선배를 지켰을까요?”


최 대표, 최제공은 대답할 수 없었다.

사영의 병증을 막을 방법이 지금도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아! 사설이 길었네요. 선배 덕에 옛 감상이란 것도 떠올려보는군요. 이제 용건을 말씀해 보세요.”


정순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어제 강산이 찾아오면서 그러더군요. 할아버지를 뵙고 오는 길이라고. 대충 얘긴 들었습니다. 회장님 성정에 이해 못 할 것도 없지요.”


정순은 침묵으로 긍정과 동의를 표시했다.


“부사장님의 강산에 대한 포지션을 알고 싶어 왔습니다. 강산이 벌이려는 사업, 규모가 상상 이상일 겁니다. 재계 서열 3위의 주신 그룹은 감히 쳐다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가능한 일이다. 강산 군이라면···. 또 저 선배의 말이라면.’


정순은 속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대답했다.


“할아버지와 손자, 조손이 화목하길 바랄 뿐이에요. 선배. 그건 부자간이 화목하길 바랐던 10여 년 전과 마찬가지예요.”

“적어도 방해는 하지 않겠군요.”

“그룹과 회장님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요.”


최 대표도 약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문제는··· 1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둘 사이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세력이 문제지요.”


정순은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정순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기에 부정하진 않았다.

다만, 자신 입으로 직접 그룹 내 치부를 운운한다는 건 적절치 않은 발언이 될 수 있었다.


“총괄 사장님은 여전하시지요? 건설, 유통 부문 사장님도 건재하실 테고요.”


주신 그룹 총괄 사장 김기주.

건설 부문 사장 장인한.

유통 부문 사장 강화영.

최제공이 그룹의 고위 간부를 언급하자 정순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선배에게 특별히 할 말은 없는 것 같군요. 이미 내 생각은 밝혔으니까요.”

“강산의 성공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한다고 느낄 겁니다.”


주신 그룹 내 몇몇 부문은 사영이 살아있던 10여 년 전에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대표적으로 그룹 창업이 시작된 건설이 그러했고 지난 세기 그룹 성장에 일익을 담당한 유통이 그랬다.

강 회장은 창업과 성장을 도운 두 계열사에 대한 애착이 컸기에 혁신을 바라던 사영의 생각을 항상 철저히 무시해왔다.

마지못해 아들에게 내준 신사업.

사영의 사업이 무참히 망가지자 강 회장이 진노와 비아냥을 막을 길이 없었고 하루하루 피폐해진 사영은 올바르지 못한 길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 사영을 누군가가 적대하고 뒷공작을 한 정황을 두 사람은 모르지 않았다.

최제공은 그 점을 환기하고 있었다.


“뜻은··· 잘 알겠어요. 선배. 새겨두죠.”


최 대표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묵례를 한 후 부사장실을 나가다 혼잣말하듯 말했다.


“언제 좋은 날에 알이 꽉 찬 양미리구이에 소주 한잔합시다. 그런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정순이 신입 시절 사영과 제공과 어울려 즐겨 먹던 술안주, 알이 꽉 찬 양미리구이.


‘그래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모르겠네요.’


정순은 제공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다 소파에 깊이 파묻히며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나온 최 대표는 터덜터덜 걸으며 푸념했다.


‘오늘도 맘에 없는 소리만 잔뜩 해댔구먼. 부사장이 뭔 죄라고.’


그래도 필요한 일이다.

분명히 불편한 일이 벌어질 터.

강산 곁에 최제공이 서 있다는 걸 보이고 그룹 측에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부족하지만 미리 깔아두는 돌이다.

최제공의 씁쓸한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여, 이게 누구야? 최제동이!”


듣기 싫은 목소리.

서양배 스타일의 몸매에서 나오는 울림소리가 최 대표의 귓가에 들렸다.

단정히 검은 정장을 입은 짧은 머리의 거한이 최 대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이야, 이게 얼마 만이야. 최제동이.”


악수 나눌 사이도 없이 우악스러운 두 손이 최 대표의 어깨를 감쌌다.

주신 그룹의 총괄 사장 김기주.

최 대표 어깨에 뜨거운 온도가 전해졌다.

기분 더러운 축축함도 느껴졌다.


“오래간만입니다. 사장님.”

“오, 그래, 그래. 딴따라 판에 들어갔다는 소리는 들었다. 사람, 참. 아무리 비빌 때가 없어도 그렇지, 원.”


‘깍두기 머리는 여전하군.’


조폭 행동대장 같은 머리 모양을 고수하는 기주를 보며 잊었던 조직의 쓴맛이 생각났다.


“그래, 어쩐 일인가? 우리 회사엔?”

“부사장님 만나고 가는 길입니다.”

“부사장?”


김기주의 쭉 째진 눈이 좀 더 작아졌다.

직급상으론 김기주가 위였지만 부사장의 일에 간섭할 처지는 아니었다.

강 회장의 또 다른 손이나 다름없는 정순의 일에 관여하긴 애매했다.

그래서 꼬치꼬치 캐묻긴 더욱 어려웠다.


“그래, 그렇군. 앞으로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

“아니요. 사장님.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좀 바빠서··· 이만 가겠습니다.”


그제야 김기주는 그의 어깨에서 축축하고 뜨거운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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