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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843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4.03 21:30
조회
446
추천
4
글자
12쪽

112화

DUMMY

허리춤에 가져다 댄 손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잡힌 건 칼자루였고, 뽑힌 건 검날이었다.

휘잉-. 순간 바람이 일었다. 실내가 아닌 실외이긴 하나 계절은 여름. 자연적으로 불어온 바람이 아닌, 발도한 검에서 난 바람이었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폐를 통해 공기가 빠져나갔다.

고개를 들어 엘리나를 바라보았다. 경계, 아니. 미약한 공포마저 깃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속속히 드러난 감정에서 설진은 의문을 느꼈다.


‘왜 이러는 거지?’


다시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설진이 알기로 엘리나는 기본적으로 친절을 갖추고 있는 인물. 비록 겉모습뿐만이긴 하나 적어도 무턱대고 공격할 만큼 막무가내인 성격은 아니었다.


‘옛날에 비슷한 일을 겪었나?’


단어 몇 개와 미래의 일이 일치하는 것.

그런 일을 과거에 겪기라도 해 트라우마라도 된 것인지.

설진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에서는 엘리나의 과거를 공개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흑마법사라는 이질적인 존재와 엘리나가 만났음을 몰랐고, 그녀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외부인의 존재를 알고 있음을 몰랐다.

그래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생긴 의문은 많았지만, 정작 해결되지가 않는다.


아니, 당장에라도 이쪽으로 돌진해올 듯한 엘리나의 공격부터 막아야 할 판국이다.

예상외로 치달아 가는 상황에 설진은 뽑은 검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일단···.’


왼손을 뻗어 시연의 어깨를 잡았다.

이쪽을 흘긴 그녀에게 고개를 한 번 저었다. 신호를 한 번 보내고서, 최전방에 있어야 할 시연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비스듬히 기울인 검은 아직도 불고 있었다.

흩날리듯 날아오는 봄바람이 뺨에 닿는 듯했다.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바람이었다.


볼을 스치는 바람을 등지고서 달려오는 엘리나를 응시했다.


‘여기서 싸워봤자 좋을 건 없어.’


이곳은 수도의 거리였다. 사람이 다니고 움직인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금, 칼부림을 부려 봤자 좋을 건 없었다.

오히려 교회 쪽에게 명분을 주는 셈이다. 엘리나를 견제할 수 있는 명분을, 아니. 더 나아가 입지를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의 명분을 말이다.


그런 사실을 엘리나 또한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 교회의 견제를 감수할 만큼의 이유가 있다는 뜻일 터다. 그리고 그건 아마 설진 자신일 것이고.


그러나 정작 설진은 싸울 마음이 없었다. 검을 주고받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 그에게는 엘리나와 전투를 벌일 이유가 하등 존재치 않았다.


그래서-.


“황녀님.”


비스듬히 기울인 검을 더더욱 기울였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 검이 이윽고 피부와 멀어진다. 손바닥에 닿은 쇠의 감촉이 사라진 지금, 설진이 들고 있는 검은 떨어져 바닥과 맞부딪혔다.


탁.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곧바로 얼굴을 올려 엘리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황녀님과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검을 내린 손과 반대쪽 손을 동시에 올렸다. 하늘을 바라보며 나아간 팔이 쭉 펴지며 이윽고 일자(一字)을 그렸다.

저항 의지를 내보이지 않으며 읊듯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황녀님께서는 왜 그리 저를 박하게 대하시는지요.”


처음에는 단지 소원이 이유였다.

게임에서는, 탑을 클리어하면 소원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도 똑같이 탑을 오르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플라임을 만나고서 설진의 생각은 달라졌다.

소원보다, 다른 것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탑을 끝까지 오르는 것이 아닌 탑을 오르는 과정을 중시하게 되었다.


플라임처럼 절망에 빠진 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베드 엔딩이라고 정해진 세계를 바꾸고 싶었다.


그걸 원했고, 실제로 하려고 했었다.

충분히 경계심을 살 만큼 행동하긴 했지만 이리도 박하게 대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설진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 행동이 그리도 위협적으로 느껴지셨습니까?”

“···.”

“다른 걸 다 제치고서라도 제 목을 쳐야 할 만큼?”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내심 엘리나를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했건만, 돌아오는 게 검이라니.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예기가 붙은 날붙이라니.


“···당신은.”


이쪽으로 달려오던 엘리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대체 무엇입니까.”


경계심이 가득했던 엘리나의 얼굴이 점차 누그러졌다.

검을 쥔 그녀의 손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대신 건넨 건 황망한 물음이었다.

포괄적인 의문을 담아 건넨 말. 설진의 정체도 목적도 모르는 상황에서 엘리나가 내뱉은 말을 단지 그것이었다.


“제 쪽에서 질문하죠.”


그러나 돌아온 건 대답이 아니었다.

똑같은 질문이었다.


“무엇이었으면 좋겠습니까?”


그 말에, 아니. 말보다는 되물음에 가까운 문장에 엘리나는 숨을 삼켰다.

동시에 그동안 있었던 일이 여럿 머릿속을 스쳤다.

처음 만났을 때와 지하 동굴에서 만났을 때를 비롯한 여러 재회의 상황.


그러한 상황 속에서, 설진은 단 한 번도.

엘리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루루의 복장과 교회로 안내했다는 경위를 진술한 것도.

지하 동굴에서 루루를 구했을 때도.


생각해 보면 엘리나에게 있어 그리 피해가 가는 건 아니었다. 아니, 하나도 없었다. 그저 진술이었고 도움이었으며 조력의 상황이었을 뿐이다.


루루가 갇힌 감옥에서 사제 하나를 죽이기는 했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두 팔 들어 환영해도 모자를 판이다.

자신의 손이 아닌 타인의 손으로 적대 세력의 인물을 죽였으니. 단순 살인으로 끝날 것이 아닌, 교회 전체가 긴장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으니.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저는.”

“···같은 편.”


기어코 대답을 찾는 데 성공한 엘리나의 손에서 힘이 완연히 빠져나갔다.

뽑아들었던 검은, 달려들었던 다리는 설진의 지척까지 닿지도 못한 채 멈췄다.

탁-. 설진의 검과 같이 엘리나의 검 또한 떨어졌다. 바닥에 놓인 것은 단지 두 자루의 검이었으되 마음에 놓인 것은 오만가지의 감정이었다.


방금의 일을 후회하는 감정부터, 삽시간에 가라앉혀진 분노, 더 나아가 예민하게 굴었다는 점을 반성하는 회한까지.

더불어 종래에는 미안함마저 느껴졌다.

자국처럼 남겨진 트라우마에 붙잡혀 자신은 사람 하나를 죽이려 들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저항하지 않는 자를, 적이 아님에도 칼을 빼 드는 행위는 황녀인 엘리나에게 있어 지양해야 할 일들이었다.

급작스럽게 방금의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당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저 복잡한 감정만이 뇌에 몰려들어서 엘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더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진은 천천히 팔을 내렸다. 엘리나가 달려온 탓에 풍압이 생겼고, 풍압은 먼지를 만들어 옷감에 묻었다.

상체에 걸치고 있던 암살자의 망토를 몇 번 털며 입을 열었다.


“황녀님.”

“···.”

“황녀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지요.”

“갑자기 왜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인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엘리나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로 인해 설진은 추측이었던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음을.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친철한 엘리나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정도로 커다란 사건, 혹은 트라우마가 될 만한 계기가 존재했음을 말이다.


“시치미를 떼거나 약점을 잡으려는 게 아닙니다. 순수한 궁금증입니다.”

“···.”

“왜 저한테-.”

“자리를.”


약 오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엘리나의 입이 열렸다.


“정말 염치불고 없지만, 자리를··· 옮겨주실 수 있으신지요.”


숙인 고개가 더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공격에 일말의 저항조차 하지 않고 그저 손을 들어 올린 모습이 충격이었던 모양.

더불어 적이 아님을 확실히 확인하자 이때까지 했던 짓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답지 않게 반말을 사용한 건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로?”

“처음 만났을 때 갔던 카페로 하지요. 금전적인 부분은 제가 충당하겠습니다.”


사람을 죽일 기세로 달려오던 아까의 엘리나는 어디 가고, 지금의 엘리나에게서는 아무런 기백도 느껴지지 않았다.

슥-. 떨어뜨린 검을 주운 설진은 다시금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아직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엘리나의 검까지 주워 손에 쥐여주며,


“알겠습니다.”


그런 말을 건넸다.

뒤에서 방금의 광경을 지켜보던 시연은 그제야 안심한 듯 표정을 풀었다.

조금이라도 설진에게 손을 댔다가는 죽여버릴 듯한 기세였던 그녀의 눈빛은, 어느덧 평소의 눈매로 돌아와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힐 마법을 준비했던 찬우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아직 상황 이해가 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찌어찌 끝난 것 같았다.

그렇게 판단한 건 채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일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거리를 두고 있었다.


스윽-.


설진과 같이 떨어뜨렸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은 엘리나가 몸을 일으켰다.

든 고개가 올라가더니, 이내 정면을 바라보았다.


“따라와 주시기를.”


그런 말을 남기며 엘리나가 걸음을 옮겼다.

설진을 포함한 넷은 그녀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된 겁니다.”


5인석 테이블.


간단히 음료를 주문한 후 엘리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주문한 음료가 테이블에 도착했을 즈음, 그녀의 끝맺음을 맺었다.

설진은 엘리나의 말을 정리해 보았다.


어릴 적 수인이 습격해온 사건과 또다른 존재인 흑마법사.

흑마법사는 환영 마법을 사용해 황실 결계를 뚫고 침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엘리나의 목을 가지러 왔다고.


확실히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했다. 어린 나이에 목숨을 위협받았으면 설진 자신이라고 해도 무서워서 잠을 설칠 것이다.

설진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나의 과거가 상당히 충격적인 것도 있지만, 놀란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니, 비단 설진뿐만이 아니었다.

시연, 찬우, 채린도 무언가 짐작이 가는지 표정이 심각해졌다.


“흑마법사의 정체에 관해서 알아낸 건 있습니까?”

“워낙 신출귀몰한 자여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저 황실 쪽에서 그에게 이름을 붙이기를, ‘오엘’이라 칭했습니다.”


흑마법사 오엘.

그 이름을 되새기던 설진은 짐짓 한숨을 내쉬었다.


“며,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자와 설진 님을 겹치게 생각해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니까요.”

“네?”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묻는 엘리나의 말에 대답한 건 시연이었다.


“밖에서 온 외부인. 저희도 그렇거든요. 흑마법사 오엘이랑요.”

“···?”

“그런데 달라요. 오엘의 목적이 황녀님의 목을 취하는 것이라면, 저희는 적어도 그런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시연이 설명을 이어갈 동안, 설진은 생각했다.

아니,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고 표정마저 변했다.


흑마법사 오엘.

그건, 다름 아닌-.


삼국 중 하나인 연나비 에피소드의 최종 보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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