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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만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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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2.05.25 19:06
최근연재일 :
2022.05.31 10:37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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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
추천수 :
68
글자수 :
40,471

작성
22.05.2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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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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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형님 유품 잘 쓰겠습니다

DUMMY

“그 이상하다는 게 뭔가.”


나는 대답 대신에 피자를 내려봤다. 먹을까, 말까. 지금 안 먹으면 못 먹을 것 같은데.

하지만 피자 먹으며 대화하기엔 충격적인 이상함이다.


“형님에겐 재능이 없소. 맞지 않소?”


이건 치명적인 약점이다. 악인을 제자로 두고, 영웅인지 악인인지 모를 미친 놈을 앞에 뒀는데 정작 본인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덕배 형님의 표정은 한결같다.


“맞게 보았네. 눈썰미가 좋군. 어찌 알았나?”

“뭐 별 건 없지. 직감이 좋아. 거기다 저 놈이 쥐랄발광을 쏴대서 확신을 가졌소.”


나는 인간 김치 장독대 뚜껑에 돌을 던졌다. 영옥이 으으거리며 신음했다.


“제 딴에는 스승을 보호하려고 했는데 도가 지나쳤소. 나 같은 비범한 자에겐 스승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꼴이니.”

“애초에 감출 생각은 없었네.”

“뭐 어쨌든.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무능력자를 스승으로 둔 악인놈이나, 악인놈을 제자로 둔 무능력자나 그 사연이 궁금해 미치겠소.”


내 말을 듣고 덕배 형님은 피자를 집어들었다.

나는 그 한 조각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뭐 스승이니 영웅이니 그런 거추장한 명칭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피자 좀 만들 줄 아는 사람이지.”

“겸손이오. 피자 만드는 실력만 보면 형님은 피자계의 일짱 피자계의 일진 피자계의 무천 피자계의 평등이오.”


무천은 영웅길드연합회의 회장이자 최강 영웅이다. 평등은 악인회 정점에 있는 자이고.

내 칭찬이 마음에 드는지 덕배 형이 허허 웃는다.


“어쨌든 저 놈을 만난 게 피자에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낄 때였어. 이 놈이 세 번이나 무전취식하고 도망가더군. 그때마다 피클도 대 여섯개씩 훔쳐가고.”

“그때부터 싹수가 보였구만.”

“워낙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놈이라 그냥 지켜봤지. 어디 사연 있는 놈이구나, 애 하나 거둔다 생각하고 그냥 먹였다.”

“참 사람 인심도 좋네.”

“근데 한 날은 이웃 닭집에서 무전취식하다가 이 놈이 닭집 사장을 두들겨 팬 거야. 내가 또 그런 꼴을 못 참아. 훈계질 좀 했네. 그랬더니 악인화를 하더군”

“보아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죽일 상판인데 형님은 어찌 안 죽었소?”

“이렇게 얘기했지. ‘그래 네 놈이 재능을 믿고 그렇게 날 뛰는데 어디 날 이길 수 있나보자. 네가 좋아하는 피자 원 없이 먹여주겠다. 질릴 때까지 만들어주마. 대신에 나는 네가 한 판을 먹기 전에 한 판을 만들 것이다. 내가 피자를 만들다 지치나 네 놈이 처먹다 지치나 보자.’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

“저놈은 미친 놈이오. 대게 악인은 그냥 죽여버리잖아. 어쨌든 스승과 제자가 되었으니 결과야 뻔한 거고, 저 놈이 몇 판이나 처먹었소?”

“125판.”


그 말을 들으니 저 놈도 곱게 미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악인화와 재능으로 대사 능력이 월등해지지만 125는 순전히 의지의 문제다.


“근데 영옥 저 놈이 순순히 받아들였소?”

“받아들였다 뿐인가. 대뜸 무릎을 꿇더니 스승님 스승님 그러는 거야. 자기는 125번 먹는 내내 125번 똑같이 맛있는 피자는 처음 먹었다고. 제자로 받아달라고.”

“미친 놈 미친 놈. 인간 김치 장독대가 된 걸 보면 보통 미친 게 아니오.”

“그건 자네가 미친 거 아닌가.”

“아 됐고. 그래서 이렇게 내 피클 훔치고 리치골드 빼먹는 알바놈이 된 거요?”

“뭐 그런 셈이지. 조건을 달았어. 악인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내게 혼 많이 났지. 그렇게 혼나도 자기의 벼룩만도 못한 날 죽이지 않는 걸 보면 내가 스승은 맞나봄세. 그러니 나도 저 놈 인간 좀 만들려고 애쓰고 있고.”


얘기를 듣고 보니 참으로 기묘했다. 영옥이 저 놈이 왜 순수히 덕배형을 따르는가.

악인회에 들어가 사람을 죽여도 125번을 죽였을 놈이 내 피클이나 훔치고 있다.

사연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이런 건 본인에게 직접 묻는 게 예의다.

대신 나는 다른 걸 물었다. 덕배 형님과 대화를 나누려다보니 내 고민에 실마리가 보였다.


“죽는 게 두렵지 않소? 당시에 내기고 나발이고 저 놈이 형님을 죽일수도 있었소. 그것도 아니면 지금이라도 눈이 돌아가거나.”


덕배형은 세 번째 피자를 다먹고 입을 열었다.


“그 때는 무서웠는데 지금은 아니네. 이 세상에서 내 피자를 가장 많이 먹은 놈이야. 가장 맛나게 먹는 놈이기도 하고. 저 손에 죽어도 후회는 없네. 그저 피자 만드는 이 손으로 저 놈 사람 만드는 게 소원이야.”

“하하하. 참 사람도 하하하.”


나는 박수를 치면 미친듯이 웃었다. 미친놈이 미친 듯이 웃으니 세상 전체가 섬뜩해지는 웃음이 되었다.


“저 놈이 죽이려 들면 안 무서운데 자네 웃음은 좀 무섭네.”

“아 미안하오. 내가 도가 지나쳤지.”


하지만 그것은 깨달음의 웃음이었다.

무엇이 영웅이고 무엇이 악인인가.

그걸 명확하게 정리할 개념은 내게 없다.

한명회는 본성에 따라 흘러가는 게 좋다고 했다. 악인 본성을 타고나면 악인, 영웅 본성을 타고나면 영웅.

영웅 요원들이 날 악인으로 몰고, 나 스스로도 악인이라 생각했을 때 한명회는 생각을 고쳐먹으라 했다.

그건 고맙다.

하지만 한명회의 말엔 동의하긴 어려워졌다.


“어떤 악인이 내게 이랬소. 악인은 악인답게 영웅은 영웅답게. 본성따라 살라는거지. 근데 형님은 뭐요. 딱 보니 자기 삶에 열심인 소시민이지 않소.”

“그렇지. 소시민이지.”

“소시민답게란 무엇을 말할까.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영웅은 아니오. 근데 형님이 하고 있는 건 영웅도 못하는 영웅짓거리지 않소.”

“영웅짓거리라. 뭘 보고 그렇게 말하는가.”

“바로 저 놈 때문이지. 목숨 하나 내던지고 악인 한 명 갱생하고 있는 거 아니오. 저 놈 상판이면 벌써 125명은 넘게 죽일 놈인데 그럼 형님은 125명을 구한 거요.”

“하하하. 과찬이네. 너무 치켜세우지말게.”


사실 이보다 더한 칭찬이 있지만 미친 놈 칭찬이라 무서워할 듯하여 참았다.

바로 내 앞에 있는 자가 영웅이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새기자.

나는 악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영웅도 아니다. 왜냐하면 덕배 형님의 세 발의 피만도 못하니까.

하지만 내가 내 의지로 냉소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재능없는 소시민 영웅을 지키는 일 아닐까.

그리 생각해본다.


“형님 이제 그만가보쇼. 낮잠 좀 자게.”

“손님을 앞에 두고 잔다니. 예의가 없구만.”

“거 누가 꼰대 아니랄까봐. 이틀을 못 잤소. 오늘 그나마 꿀잠이었지. 그냥 이 난장판에서 잘라우. 이 놈은 배추 뽑듯 뽑아가시오.”


나는 잔디에 드러누웠다. 영웅과 담소를 나눠서인지 잠이 솔솔 왔다.

그런데 덕배 형님은 바로 가지 않았다. 피자를 계속 먹으며 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했다.

나는 내일 피자 먹어야지 생각하며 잠들었다.



***



낮잠을 잔 건데 다음날이 되었다. 또 24시간을 잔 것이다. 그런데.


“이 씨발 형님 같으니라고.”


아침을 분노로 맞이했다.

덕배 형님이 날 걱정해서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니 빈 상자만 덩그러니 놓였다.

악인이었다면 지옥행 열차각이다.

덕배 형님은 진정한 영웅이니 용서한다.


“자 그럼 청소를 해볼까.”


이젠 진짜 청소를 할 시간이다. 거진 4일째인데 집이 돼지우리다.

청소 시작 전 나는 피자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못 먹은 피자는 먹어야 하니.


“거 덕배 형님이오. 형님도 참. 어찌 피자 하나 안 남기고 간 거요.”

“씨발. 주문이나 해라. 무슨 피자 처먹을래?”


아침부터 욕 처먹으니 신선하다. 김치 장독대가 힘으로 안되니 입으로 승부를 보려나.


“너 장독대냐?”

“장독대가 사람 이름이냐.”

“그렇다.”

“청국장 찌린내나는 이름이구나. 그래서 뭐 처먹을래?”


장독대는 어디 간 걸까. 내가 너무 세게 때렸나.

그리 갈 줄 알았다면 좀 더 잘해줄 걸.

하지만 나는 피자를 생각했다. 깨진 장독대는 다시 사면 그만이다.

이렇듯 하루 본 사이인 장독대보다 10년 먹은 피자가 소중하다.


“늘 먹던 걸로. 20분 안에 와라.”

“뭐 이 씨······.”


나는 전화를 끊고 기다렸다.

20분이 흘렀다. 마당 쓰레기를 한쪽으로 치우고 잔디에 드러누웠다. 청소하기 귀찮다. 다시 10분이 흘렀다.

장독대가 사라지고 장독대 같은 놈을 고용했나.

덕배 형님의 됨됨이를 재고해야 하나 고민이 될 때였다.


턱······.


피자 상자가 날아왔다. 뚜껑은 열려있다. 상자가 뒤집혀 누운 채 피자로 얻어맞았다.

진뜩한 치즈의 감촉. 나는 혓바닥을 핥짝거렸다. 어이가 없다. 피자가 맛없다.

개떡 같은 피자라 해도 피자는 맛있다. 그런데 이건 맛이 없다. 피자가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다.

피자를 얼굴에 뒤집어쓴 채 말했다.


“죽고 싶냐?”

“파자 받았으면 곱게 돈이나 내놓지 말이 많다.”

“이건 덕배 피자가 아니다. 쓰레기가 왔다. 뭐냐.”

“쓰레기라니. 덕배 피자는 쓰레기인지 몰라도 독배 피자는 제대로다.”


나는 바뀐 이름이 어이가 없어서 일어났다.


“악인이냐?”

“그렇다.”

“덕배 피자를 어떻게 했지? 덕배 형님과 김치 장독대는?”

“덕배 피자는 우리가 접수했다. 우리 악인회가 거기 건물주거든.”

“누가 네 자랑하라고 했냐. 둘은 어떻게 했지?”

“장독대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알바놈이랑 사장은 죽였다.”


나는 입에 남아있던 쓰레기를 뱉었다. 더럽게 혐오스럽다.

입에 남은 건 씁쓸한 감정뿐. 조용히 곱씹다보니 분노로 되새겨 뱉자고 다짐했다.


“시체는 어떻게 했지?”

“모른다. 내가 처리 안해서.”


시체가 없다면 살아있을까.

모른다. 만약 죽었다면 이 일 끝나고 내가 거둬야겠다.


“너희 악인회 이름이 뭐냐.”

“젠틀리피케이션이다.”

“악덕한 놈들이구나. 홍대쪽에서 활동한다고 들었다. 장사 잘 되면 주인을 죽이고 차지한다지? 너희 피자처럼 쓰레기구나.”


내 말에 놈이 눈을 치켜떴다. 주먹을 쥐고 피부가 검붉어졌다.


“싸우자는 거냐?”

“닥치고 내 말 끝까지 들어라. 나는 악인도 영웅도 아니다. 악인이 될 생각도 영웅이 될 생각도 없다. 그런데 어제 하나 맹세했다. 진정한 영웅을 지키기로. 너희는 내 피자집을 빼앗고 내 영웅을 빼앗고 장독대까지 부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뭔 개소······.”


펑────!


나는 주먹을 날렸다. 주먹은 녀석을 직접 강타하지 않았다. 주먹에 팅긴 공기가 녀석을 덮쳤다.

하지만 놈은 뒤로 살짝 밀릴 뿐이었다.


“약하군.”

“약해진 거다.”


저 놈은 장독대보다 강하지만 한 방이면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안됐다면 놈이 강한 게 아니라 내가 약해진거다.

이제 확실히 알았다. 집이 문제다. 금제 자체가 집에 걸렸으니 힘의 약화도 집 때문이다.


“이제 내 차례인가.”


녀석이 권기를 모으며 다가왔다.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그러고보니 놈을 죽이지 않는 게 좋다. 내 목적은 악인회 젠틀리피케이션의 말살이다.

이건 내 피자에 대한 복수, 덕배 형님에 대한 복수, 장독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다.

뭉쳐진 권기가 사납게 짖는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과 비교하면 보스 강에 필적한다.

그런데 이 놈은 자기 악인회에서 말단이다. 아마 앞으로 상대할 놈들은 어마무시하겠지.


“형님 유품 잘 쓰겠습니다.”


그렇다고 복수를 멈출 내가 아니다.

나는 덕배 형님이 남긴 피자 상자를 들었다. 이 놈들이 웃긴 게 형님의 상자를 쓰면서 이름을 매직펜으로 바꿨다.

형님은 모든 일의 진심이라 상자도 튼튼하다.

상자 뚜껑을 잘라내어 손톱으로 가장 자리를 벼렸다. 그리곤 날을 세워 잡았다.

에너지란 흐름이다. 내 몸에 흐르는 에너지가 사물로 옮겨질 수 있다.


“미친 새끼!!!”


녀석이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몸을 숙여 피하는가 동시에 공간을 만들어 상자 뚜껑을 휘둘렀다.

칼처럼 벼려진 상자는 내 에너지와 만나 강철이 되고, 잘 제련된 칼이 된다.


푸슈슉!!!!!


녀석의 팔이 날아가고 피가 잔디를 적신다. 온동네가 떠나가라 비명이 터진다.

나는 빠르게 접근해 목을 틀어쥐고 비명을 끊어냈다.

그리곤 내 옆에 떨어진 팔을 짓밟아 터트렸다.


“내가 보통은 악인을 죽인다. 그런데 네 놈을 살려주마. 대신에 네 어미 아비 선생 삼촌 누나 동생 할아버지 할머니 다 데려와라. 다 죽여줄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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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맙소 22.05.31 20 2 14쪽
» 형님 유품 잘 쓰겠습니다 22.05.27 48 4 13쪽
5 피자 한 조각의 소중함을 아는 자요. +1 22.05.26 51 6 13쪽
4 봄볕이 말랑하다 22.05.25 77 12 13쪽
3 나가보지도 않는다 22.05.25 81 12 11쪽
2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22.05.25 97 15 13쪽
1 멀리 안 나간다 +1 22.05.25 172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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