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입니다.

나는 악인을 찢어, 방구석에서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2.04.30 11:17
최근연재일 :
2022.05.25 17:00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70
추천수 :
2
글자수 :
22,642

작성
22.05.07 22:54
조회
44
추천
1
글자
13쪽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DUMMY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활주로.

공항 당국은 별안간 활주로를 폐쇄했다. 파견된 정부 요원들만이 출입이 가능했다.


“넌 이게 뭐라고 생각하냐?”

“김미경 팀장이요.”

“다시 생각해봐. 뭔 거 같냐?”

“다시 생각해도 김미경 팀장이요. 선배는 어떤데요?”

“내 생각에도 김미경 팀장이란 말이지. 이해가 안 가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 무력부 산하 악인수사국에 근무하는 요원들이다.

7년차 정찬기

4년차 김민석

재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인을 쫓는다.


“얘는 뒈질거면 홍대에서 뒈져야지 왜 여기 있는 거야?”


정찬기는 시체 앞에 쭈그려앉았다.

지난 밤 이들은 홍대에 잠복하며 김미경 팀장을 감시했다. 그는 악인회 중 하나인 강태공의 중간 간부였다.

그런데 술 먹던 놈이 다른 악인들과 시비가 붙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민간인 보호차 지원 요청을 했는데 그 사이에 사라졌다. 그리고 여기서 죽어있는 거고.


“이제 어쩌죠. 수사 다 어그러졌는데.”


악인회인 강태공은 보이스피싱 조직이다. 사람을 낚아 납치한다. 납치된 사람은 피가 빨려 악인들의 진기가 된다.


“워낙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라 김미경 하나 보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

“일단 국장님께 보고부터 하죠.”

“.......”

“선배? 왜 말이 없어요.”


정찬기가 시체의 웃옷을 들쳤다. 그러곤 배와 허리를 가리켰다.


“이상하지 않냐? 배랑 허리 일부가 찢겼어. 5레벨 실력자가.”


김민석이 시체에 가까이 가자 정찬기는 말을 이었다.


“5레벨을 찢으려면 적어도 6레벨 상위는 되어야 해. 근데 지난 밤 홍대에 6레벨은 없었어.”


6레벨부턴 전투의 규모가 달라진다. 모든 6레벨을 기억하는 정찬기의 말은 확실했다.


“그리고 이 자잘한 상처를 봐. 이건 고만고만한 녀석들과 싸웠다는 뜻이다. 근데 이 찢김은 던져질 때 생겼지.”

“새로운 영웅? 아니면 악인의 등장?”

“모르지. 고작 던지는 행위로 악인을 찢고 여기까지 날려보냈다라······.”


놀람도 잠시 정찬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악인이든 영웅이든 모두 좋다. 악인이면 찢고 영웅이면 정부 요원으로 포섭한다.


“영웅관리국에 전화 넣어. 새로운 각성자 있냐고. 신규 영웅 등록도 살펴보고.”

“만약에 악인이면요?

“강태공 새끼들 찢으면서 같이 찢어야지.”



***



“좋은 아침이군.”


나는 모처럼 단잠을 잤다. 일어나자마자 거실에서 햇빛부터 맞이했다.

고통없이 잠든 건 5년만이다. 놈을 배웅하자마자 그냥 자버렸다.

평소엔 이렇지 않다. 하반신이 마비된 몸은 늘 긴장 상태다.

멀쩡해진 두 다리를 툭툭 쳤다. 뭉툭한 감각이 올라온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런데 이유는 별로 안 궁금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머리 아프게 이유 찾지말자.

그보다 다른 게 문제다.


“아 씨발 미치겠네.”


깨진 접시가 사방에 널부러졌다. 피가 소파며 벽지에 튀었다.

어제 녀석을 날려보낸 여파가 상당하다.


“피자는 그냥 떡됐네.”


집에 음식이라곤 피자인데 그냥 떡이다. 떡. 먹지 못한다.

거기다 청소할 생각을 하니 넌덜머리가 난다.

그래도 3년을 혼자 보내야 하는데 돼지 우리에서 살 수는 없다.

청소하고 밖에 나가서 밥 먹고 몸 좀 굴려봐야겠다. 달라진 몸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확인해야 하니.

단순히 육체 능력의 각성 말고 다른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청소부터 시작했다.


똑똑똑


근데 깨진 접시를 집기도 전에 노트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현관문 앞까지 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않다.

위기 감지 센스가 발동했다.

이렇듯 위기 속에서도 재능을 발견하는 게 나다.


문 밖에 있는 건 확연한 악인. 그것도 십 여 명. 잔챙이부터 굵직한 악인이 섞였다.

그 중에서 문 바로 앞에 있는 놈이 굉장하다.

그래서인지 말빨이 다시 살아났다.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나의 광기를 받으면 상대해주고, 못 받으면 즉살이다.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이 놈 명줄이 길구나.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느냐 왔느냐.”

“미경 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미경 꽃?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어제 찾아온 악인 → 내가 죽였고 → 다음 날 악인들이 찾아온다. → 결론: 악인 동료들의 복수혈전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미경 꽃 찾으러 오거든, 그런 꽃은 없다고 전해라.”


미경꽃의 죽음을 애도하며 구슬프게 불렀다. 내 애도를 놈은 받을까.


“어째서지?”


평범하고 묵직한 대답이다. 내 광기를 받지 못했으니 넌 죽었다.

나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나의 달라진 직감이 말한다. 한 방이면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보내드렸거든. 이미 저 세상 보내드렸는데 말해 머해.”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게 찾아온 두 번째 손님이다. 그것도 날 위해 무리로 왔다. 환영할 일이다.

나는 문을 열었다.

눈 앞에 머리 희끗한 아이가 있었다. 노인인가 싶었지만 아이였다.


“어떻게 오셨다고요?”


말을 높여야 할지, 낮춰야할지 몰라 안전한 쪽을 택했다.


“우리 김미경 팀장을 찾으러 왔습니다. 결례를 무릅쓰고요. 송구스럽습니다.”


얼굴을 대면하니 공손하다. 이렇듯 익명성이 참 무섭다.


“김미경 팀장이 어제 술 먹다가 상대 조직이랑 시비가 붙어서 쳐맞고 날아와 우리집 창문을 깨고 방문한 악인이라면 맞게 오셨습니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 일단 통성명부터 하죠. 나는 강이라는 자이올시다. 악인회의 강태공이란 조직을 이끌고 있죠.”


악인이지만 점잖은 통성명이다. 내 위기 감지 센스가 없었다면 풍기는 풍모만 보고 영웅이라 생각했을 거다.


“저는 이경봉입니다. 하반신 마비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놈이 아래를 훑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분이군요.”

“아닙니다.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을 영접했죠.”


가끔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놈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세상 미친 놈이 참 많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본론으로 돌아가죠. 우리 미경이를 죽이셨다고요?”

“네, 근데 남자인데 왜 미경이입니까?”

“그런 차별적 발언은 삼가하시죠.”

“불쾌했다면 송구하군요. 그럼 좀 전에 저도 불쾌했습니다. 하반신 마비라고 하니 몸을 훑어보시더군요. 상당히 모욕적이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장애를 가진 분들에 대한 에티켓이 부족합니다. 용서하시죠.”


격조와 교양이 묻어나는 대화다.

이렇듯 나는 악인과도 품격있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또한 나는 품격있는 악인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다.


“됐습니다. 그냥 꺼져주시죠. 청소를 해야합니다.”


하지만 대화고 자시고 청소를 못한 게 찝찝하다.

내 광기를 광기로 받아냈고, 날 찾아온 손님이고, 대화도 공손하니 살려주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됩니다. 피는 피로 갚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놈이 명을 재촉한다.

생각할수록 죽일 놈이다 싶어서 안 죽이기도 찝찝했다.

지금 날 협박하고 있는게 첫 번째 이유.

사람들 피 빨아먹어서 젊음을 유지하는 강태공인 게 두 번째 이유.

그 더럽고 역겨운 애늙은이 낯짝이 내 눈앞에 있는 게 세 번째 이유.


그럼에도 나는 살려주기로 다짐했다.

나는 악인도 영웅도 될 생각이 없다.

귀찮다.

이 능력으로 돈을 벌기도 귀찮은데 악인까지 상대하긴 더 싫다.

벼룩을 가둬두면 풀어나도 그 높이 만큼 뛴다. 집구석에 계속 있다면 집구석 같은 인간이 되는 법이다.


“살려줄 때 가시지요. 멀리 안 나갑니다.”

“아니요 죽여야겠습니다.”

"정 죽이고 싶다면 해보시지요. 내기하잖 놈이 지는 법입니다. 그러니 죽이겠다는 놈이 죽는 법입니다.


잠자코 걸었다. 강태공 조직원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마당에 섰다.


“그럼 집 말고 대문 밖에서 합시다. 죽는 데 자신 있습니다. 도망가지 않습니다. 기적을 만나고 죽이는 데도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습니다. 그러니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단지 집이 더러워지는 게 싫습니다. 죽이든 죽든 집 밖에서 하시죠.”


광기를 광기로 받아내는 녀석인지 수긍이 빠르다.

대문에 멈춰서서 나는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


“먼저 나가시죠. 예의가 있으니.”

“아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요단강 건난다 생각하고 마음 정리하시고요. 깔끔하고 빠르게 죽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듯 내 주변엔 예의바른 악인이 있다.


대문 밖으로 나가자 강이 자리를 잡았다. 눈이 검뭇해졌다.

생명의 진기를 끌어다쓰는지 피부에 주름이 생겼다.

나는 어떻게 하면 여파를 최소화할지 고민했다. 상당한 실력자라 힘을 꽤 써야 한다. 그러면 마당이 뒤집어진다.

청소하기 귀찮다.


“자 그럼 갑니다.”


대충 해치워야지 생각하며 대문을 넘었다. 그리고 고꾸라졌다.


“엥?”


다리에 감각이 없다. 발가락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금 하반신 마비가 찾아왔다.


“이게 아닌데?”

“극락왕생하소서.”


내 곁으로 다가온 강이 손날을 세웠다. 그러곤 등으로해서 내 심장에 손끝을 찔러넣었다.


푸슉.


쓰라린 고통과 함께 가슴께가 뜨근해졌다. 나는 죽었다.



***



“보스. 생각보다 약한 놈이었습니다. 제가 나설 걸 그랬습니다.”


부하가 이경봉의 시체를 들쳐멨다.


“괜히 쫄았다. 별 거 없는 놈인데 입이 살아서 재밌었다.”


악인회 강태공의 수장 강은 이경봉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집에 발을 들일 때부터 느꼈다. 강적이라고. 이런 강적은 정말 오랜만이다. 긴장도 되고 즐거웠다.


“근데 왜 갑자기 고꾸라졌을까요?”

“글쎄다. 아마 대문 문턱에 걸려넘어진 거겠지.”

“이런 놈에게 미경 팀장님이 죽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원래 현실이란 이런 곳이다. 영웅의 재채기 소리에 악인이 놀라서 패하기도 하고, 망토 때문에 목졸려 영웅이 죽기도 한다.”


강은 이경봉의 집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이름난 영웅의 집. 잘 구워진 벽돌이 반짝이고, 정원에선 풀내음이 시원하다.


“이제 어쩔까요?”

“어쩌긴. 일단 집으로 들어가야지. 결투가 쉽게 끝나서 악인수사국의 시선은 안 끌었다.”


뭔가 이상을 느낀 주민들이 있겠지만 도망갈 시간은 충분하다.


“이름난 영웅이니 집에 무구며, 아티팩트가 상당할 것이다. 잘들 털어가라.”

“예! 보스.”


그런데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분위기가 묘해졌다.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이경봉의 시체가 사라졌다.

부하의 등 뒤로 돌아간 이경봉이 허리를 붙잡아 주저앉았다. 그러곤 있는 힘을 다해 부하를 집어던졌다.


콰아아아아아!


로켓이 발사되는 굉음처럼 부하는 솟아올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강은 그때 깨달았다. 미경이도 이렇게 갔구나.

이경봉을 쳐다보는 강의 얼굴은 노여웠다.


“너 우리 속였니?”

“아 또 뭘 속여.”

“근데 왜 죽었니?”

“죽었으니까 죽었지. 나도 몰라. 다시 살아났어. 5월 4일 오늘 나의 부활절이다.”


그 말과 동시에 이경봉은 눈 앞에서 사라졌다.

빛의 속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슈슝.

뒤늦게 바람소리가 도착했고 부하들이 줄줄이 솟아올랐다.

땅이 뒤흔들렸다.

마지막 남은 부하가 하늘로 사라졌을 때 강 앞에 이경봉이 나타났다.


“그······ 그만하자. 여기까지 하자. 나 무섭다.”


강은 굴복했다. 싸우지 않아도 알 때가 있다. 개가 곰을 보고 도망가듯이.

거기다 자신은 전투 타입이 아니었다. 단지 재능을 빌어 젊음을 유지하고 돈을 버는 부류였다.

죽는 게 두렵다.


“싫다. 너 살려보내면 또 누굴 데리고 올 거잖아.”

“약속한다. 여기서 끝내자. 돈이 필요하면 줄게. 젊음? 젊은 여자? 다 줄게. 살려만 다오.”

“싫다.”


세침하게 거부한 이경봉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소리보다 이경봉이 빨랐고, 인간의 인지보다 이경봉이 빨랐다.

의식이 꺼지기 전 강이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멀리 안 나간다. 지옥행 열차 잘 타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악인을 찢어, 방구석에서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 봄볕이 말랑하다 22.05.25 21 0 13쪽
3 나가보지도 않는다 22.05.10 31 1 11쪽
»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22.05.07 45 1 13쪽
1 멀리 안 나간다 22.05.07 74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