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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나는 악인을 찢어, 방구석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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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2.04.30 11:17
최근연재일 :
2022.05.25 17:00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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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642

작성
22.05.07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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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멀리 안 나간다

DUMMY

지금 가족이 날 버리고 있다.


“3년이다 3년.”


계부의 말은 단호하고 잔인하다.


“오빠······ .”


피 하나 안 섞인 여동생이 날 안쓰럽게 쳐다본다. 엄마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다.

오늘 나를 빼고 모두 미국으로 떠난다.

동생의 재능때문이다. 동생은 전세계에서 손에 꼽힐만한 재능으로 각성했다. 그래서 미국 영웅 개발원의 입학 제의를 받았다. 동생은 입학하기로 결정했고.

그렇다고 내가 동생을 원망하는 건 아니다.혈육은 아니지만 그런 동생을 사랑한다.

단지 날 버리고 갈 줄 몰랐지. 저 계부 새끼가.


“설마 고작 3년인데 이 집 하나 건사 못 하는 건 아니겠지? 사내 새끼가.”


저 턱주가리를 찢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저 양반은 거대 길드 중천의 간부급 영웅이다. 그에 반해 나는 휠체어 신세다.


“3년이다. 버티면 이 집을 너에게 주겠다. 나는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 시세대로 팔아도 평생은 놀고 먹을 수 있어.”


개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하반신 마비라는 거다. 입은 멀쩡하거든.


“닥치고 꺼져. 미국 가서 뒈져버려라. 아빠 새끼.”

“아빠에게 말버릇이 형편없군. 3년을 안 볼텐데 섭섭하다. 죽여버릴까? 거둬서 키워줬더니 은혜를 모르는군”

“쫄보 새끼가 틈만나면 죽인데. 죽여봐 이 새꺄.”


내가 너무 막나가는 거 같겠지. 하지만 이 자식이 그동안 했던 짓을 생각하면 많이 참는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온갖 폭언폭행모욕을 다 했다. 이 계부새씨가.

계부의 살기가 내 감각을 저민다. 하지만 나는 질 생각이 없다. 계속 노려봤다.

순간, 여동생 희아가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빠 그만해. 빨리 나가. 비행기 시간 늦겠어.”


희아가 자신의 아빠를 등떠밀었다. 그러곤 뒤돌아 나를 본다. 눈물이 고였다.


“오빠 미안······.”


녀석은 요새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 귀엽고 애교 많고 붙임성있던 동생이었는데.

지금 녀석은 내가 버려진 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신경쓰지마. 네 탓 아냐. 저 개새··· 아니 아빠가 잘못한 거야.”

“미안······. 늘 우리 아빠때문에···.”

“미안하단 말 지겹지도 않냐. 훌륭한 영웅 돼서 돌아와. 9레벨 치유능력자랑 크루도 맺고 내 다리 고쳐줘야지.”

“응 오빠! 나 진짜 열심히 해서 오빠 다리 고칠 거야!”

“아직 안 갔냐. 빨리 가라. 멀리 안 나간다.”


희아는 화이팅을 외치곤 집을 나섰다.

누군가는 희아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장애를 가진 오빠를 버리고 떠나냐고.

하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희아만한 동생이 또 없다.

아픈 오빠 챙긴다고 친구들이랑 놀러가지도 않고, 밥 챙겨주고 심부름해주고, 꼬박꼬박 산책도 같이 나간다.

방구석에만 있는 내게 아주 소중한 말동무이기도 하다.

나도 염치가 있는 놈이어서 동생 발목 잡을 생각 없다.

애초에 계부 새끼가 날 버리고 떠날지 동생도 나도 몰랐다.

희아는 죄가 없다.

죄는 계부에게 있다. 생각할수록 빡친다.


“엄마도 가. 이러다 늦어.”


현관에 홀로 남은 엄마. 자꾸 밍기적거린다. 난 휠체어로 엄마를 툭툭쳤다.


“이게 다 엄마 죄다. 가면 안되는 건데······. 이러면 안 되는데···.”

“아 글쎄 됐다니까. 혼자 지낼 수 있어. 3년 동안 집 잘 보고 있을게.”

“미안하다.”


쿨하게 넘긴다. 이해하고 있으니까.


“연락 자주 할게. 밥 잘 챙겨먹어. 배달 음식만 먹지 말고. 적적하면 아랫층 공시생한테 말 좀 걸고.”

“떠나는 마당에 잔소리가 많네. 가. 멀리 안 나가.”


엄마는 울먹이며 집을 떠났다.

마당 딸린 2층집에 적막이 내려앉는다. 홀로 남은 나는 속삭였다.


“이 씨발.”


진심 개빡친다.



***



“배달 왔습니다.”


나는 피자를 시켰다. 엄마의 당부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내가 원래 청개구리 기질이 있다.

엄마가 손수 1주일치 반찬을 해놨고, 연락만 하면 계약한 가정부가 요리를 해준다. 하지만 오늘은 패스. 스트레스 받을 땐 역시 배달 음식이지.


“아 이 새끼 또 리치골드 빼먹었네.”


피자 옵션으로 리치골드를 넣었는데 알바가 또 빼먹었다. 이렇게 동네 피자 알바는 정신이 오락가락이다.


“맥주 마렵다.”


피자 먹을 기분도 잡치니 맥주가 땡긴다.

하지만 마실 수 없다. 맥주 마시는 순간부터 화장실 들락날락거려야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다.


“하씨. 3년을 어떻게 버티냐.”


하반신을 못 쓰게 된 건 6년 전 고등학생이 되던 해다.

내 친부께선 영웅이었다. 그날 집을 습격한 악인들에 죽임을 당했다. 나와 엄마가 보는 앞에서.


“아이 씹새끼 또 피클 안 넣었네.”


설명하다가 샛길로 빠져 미안한데 알바놈이 또 피클을 빼먹었다. 싸우자는 건가. 언젠가 잡아서 족친다.


어쨌든 아빠는 죽었는데 나와 엄마는 어떻게 살았냐.

계부 덕분이다. 차라리 죽게 놔뒀으면 어땠나 싶지만 어쨌든 계부 덕이다.

하반신 마비는 그때 얻은 장애다. 악인 한 놈이 날 발로 찼다. 그 바람에 척추를 다쳤다.

그 뒤로 이렇게 인생 비관하며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피자집에 전화해서 따질까 하다가 말았다. 그래도 이 집 피자가 예술이라 모든 게 용서가 된다.

나는 이제 막 첫 피자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혀가 녹아내려야 할 이 순간에 진짜로 이상한 게 뭔 줄 알아?

계부가 자기 집을 나한테 맡겼다는 거. 3년을 무사히 보내면 이 집을 내게 준다는 조건이다.

제 딴에는 그래도 엄마의 눈치를 봐서 이렇게 한 거겠지. 근데 이게 또 함정 카드라고


쾅-------!


순간, 창문이 깨지고 거대한 물체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 충격과 함께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씨발.”


자 보아라. 이렇게 사건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참 피자 먹기 힘들다.




***




나는 피자를 한 입 베어물려다가 말았다. 그래도 집에 찾아온 손님인데 홀대하면 안되지.


“혼자 왔어?”


자세히 보니 피칠갑을 했다. 전투의 흔적이다.

남자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습다는 듯 침을 뱉는다.


“영화 찍니?”

“거 사람이 호의를 보이는데 까칠하긴. 바닥에 침이나 뱉고. 예절 교육 안 받았어?”

“너 내가 안 무섭니?”

“보아서 알겠지만 내가 휠체어 신세야.”

“어쩌라고?”

“몸이 약하면 마음이 강하다.”


나는 잃을 게 상반신 밖에 없는 놈이다. 잃을 게 적으면 곱게 미친다. 곱게 미친 놈은 생각보다 담이 크다.


“곱게 미쳐서 여유가 상당하군.”


보아라 녀석도 인정한다.

녀석이 식탁 근처로 걸어왔다. 피자를 내려본다. 입맛을 다신다.


“맛있니?”

“이 집 피자 괜춘하지. 왜 먹고 싶니?”

“달라하면 주니?”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다. 줄까도 생각했지만 자꾸 니니거려서 거슬렸다.


“너 우리집에 뭐하러 왔니?”


거슬리는 건 따라해서 거슬리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보면 모르겠니? 술 쳐먹다가 상대 조직 아새끼들 만났다야. 싸우다가 방심한 틈에 일로 날려보내더라.”

“약한가 보네. 쳐맞기나 하고.”

“맞고 싶니?”


검은 가죽 자켓에 찢어진 청바지. 검붉은 눈빛과 살기.

피를 머금고 남의 집 창문을 깨고 방문해주시는 센스.

딱 보아도 악인이다.

이렇듯 1년에 세 번 정도 악인들이 민가를 습격한다.

계부의 집이 위치한 곳은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경의선 숲길 근처이다. 마포구 동교로.

소득 수준이 꽤 되고 능력자들도 거주해 치안이 좋다.

그럼에도 3번은 문제가 생긴다. 술집이 많아서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

그때마다 계부가 문제를 해결했는데 나한테 집 맡기고 떠난 인성보소.


“왜 말이 없니?”

“보면 몰라 생각 중이잖아. 아 새끼 졸라 보채네. 야 안 줘. 피자 나 혼자 다 먹을 거다. 꺼져 새끼야.”

“니 죽고 싶니?”

“자꾸 니니니 니. 드라마 찍니?”

“아니 피자 주기로 했잖니. 왜 말 바꾸니.”


그 말을 듣고 나는 피자를 내밀었다. 녀석은 잠자코 손을 들었다.

나는 피자를 앞으로 든 채 얼굴을 내밀어 한 입 베어물었다.

약올리기.


“안 줘 이 새끼야. 너 때문에 거실 더러워졌잖아. 우리 계새끼가 3년 간 집 잘 지키래.”


녀석의 눈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성큼성큼 걸어온다.

무섭냐고? 하나도. 나는 죽다살아난 놈이라 그런 건 별로 안 무섭다.

계부 새끼가 몇 번인가 날 죽이려다 멈춘 게 그 때문이다.


'죽여봐 씹새야.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런 눈을 하고 덤비니 김이 세는 것이다.

내 기세가 등등해지자 악인도 목소리를 높였다.


“피자만 먹고 곱게 가주려 했지. 근데 네 놈 버르장머리를 보아하니 죽이고 가야겠다.”

“나 죽이고 뭐하게?”

“피자로 배 채우고 다시 나가서 나 날린 놈 찢어야지. 배고파서 힘을 못 썼다야.”


녀석이 득의양양하게 배를 쳤다.

한심한 논리다.

악인 중에도 하수나 할 법한 변명을 짓거린다. 그런 꼴을 내가 또 그냥 못 본다.


“그럼 나는 마비만 풀렸으면 네 놈 찢었다.”

“말이 많구나. 죽는 게 소원이니?”

“야 나는 죽음에 당당하다.”


죽음에 당당하면 입이 쉬질 않는다.


“야 이 새끼야. 너는 사람 죽이는데 자신이 있지. 나는 죽는 데 자신있다. 그러니 곱게 죽여라. 아프게 죽이든 즉사시키든 상관없는데 그냥 잘 죽여라.”


뭔 개소리를 하는지 나도 모른다.

녀석도 모른다. 그래서 당황한 눈빛이다.

하지만 치켜올린 주먹은 멈추지 않고 내게 쇄도한다.


‘아 죽는구나.”


피할 생각은 없다. 근데 뭘까. 왜 나 안 죽을 것 같지?


퍽. 꽈지지지직······.


녀석의 주먹이 내 얼굴을 때렸다. 상당한 파괴력이다. 그 바람에 접시가 날아가고 물건들이 나뒹굴었다.

나는 청소할 걱정을 했다. 죽는 것보다 청소가 더 무섭다.

내 몸은 아무렇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


녀석의 주먹이 바스라졌다. 그것도 모자라 팔뚝뼈가 뒤틀려 튀어나왔다.


“너 뭐니.”


녀석이 침음을 흘렸다.

나는 뭐가 어찌된 건가 잠시 놀랐다. 근데 솔직하게 말하주는 게 좋을 듯 싶었다.


“하바신 마비.”

“뭐? 영웅이니? 이 새끼. 나 잘못 건들면 너 진짜 뒈진다.”


내가 멀쩡한 게 의아하지만 마음은 평온하다. 그냥 받아들일 뿐.

그냥 좀 쎄졌나 싶다.


‘일어나볼까.’


머리로 떠올리니 일어나진다.


“야 봤냐. 나 일어났어.”

“너 그동안 나 속였니?”

“아니야. 친구야. 나 솔직한 사람이야.”

“그럼 뭐니?”

“뭐긴 그냥 그렇게 됐어. 받아들여.”


자. 나는 강해졌고 갑자기 섰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나는 녀석을 보았다. 떨고 있다.

오랜만에 피자 겸상할 뻔한 손님이라 살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죽여야겠다.

마음이 갑자기 바뀌어서 내가 싸이코패스인가 싶었다. 악인의 아들이어서 그런가?

잠시 고민했지만 그건 아니다.

무단가택침입한 죄.

피자를 탐한 죄.

날 죽이려 한 죄.

악인인 죄.

이유는 차고 넘친다.

아 하나 추가하자면 악인은 사람을 찢는다. 그러니 죽여야 한다.


내가 다가가니 녀석이 뒷걸음친다. 나는 그것보다 빠르게 다가갔다.

어떻게 죽여야 하나. 장독대 옆에 묻을까. 근데 또 그게 귀찮다. 나중에 뒷탈도 걱정이고.

거기다 지금 내 힘의 정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전투가 길어질지 모른다. 집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우후후.”

“그 웃음은 뭐니. 그냥 여기서 끝내자. 얌전히 갈게.”


나는 녀석 앞에 멈춰섰다. 녀석은 손을 들어서 소극적인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 손이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전에 품으로 파고 들었다. 멱살을 잡았다.


“아 이유 또 추가. 너 살려보내면 엄마, 아빠, 삼촌, 육촌, 팔촌, 친구, 선생님 네 집 개새끼까지 악인들 다 데리고 올 거잖아. 나 그 꼴 못 봐. 집 지켜야 하거든.”

“야야. 이거 놓고······.”


멱살을 잡은 채 몸을 돌려서 등으로 들쳐멨다. 하반신을 단단히 고정했다. 코어와 등근육을 활성화시켰다.

집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들어오셨던 창문으로 배웅해드리는 것이다.


쾅아아아앙.


녀석을 던졌다. 그런데 굉음과 함께 집이 흔들린다.

힘조절이 안됐나? 나름 로우 파워라고 생각한 건데.


“으아아아아아.”


녀석이 비명을 지른다. 창공을 가른다.

그냥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기만 할 생각이었다. 그곳에 가면 녀석을 상대하던 악인들이 알아서 하겠지.

근데 내 손으로 보내버렸다.


“지옥행 열차 늦겠다. 멀리 안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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