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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콘실리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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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2.03.21 17:30
최근연재일 :
2022.04.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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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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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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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없는 분노(2)

DUMMY

쿵.


들어오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렸다. 직원 대 여섯이 벌떼처럼 몰려왔다. 무례하고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진캐니는 미간을 지푸렸다. 하지만 평소 습관대로 이 무뢰한들의 감정부터 탐색했다. 분노, 멸시, 어이없음, 무시··· 그리고 진태니가 가장 경멸하는 감정.

감정을 분석하다보면 간혹 깨닫는다. 어떤 감정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난다. 특히 선빈 의식은.


“대표님 어딨습니까.”


직원들을 이끌고 온 자가 물었다. 수석 디자이너였다. 이름은 밥.


“조르지뉴 어딨습니까?”


진태니는 창 밖을 보며 딴 청을 피웠다. 그러다 밥이 안달이 날 쯤 대답했다.


“외출 중입니다. 용건이 있으면 나한테 말하면 됩니다.”

“당신이 뭔데?”


그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지 당장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다.

진태니는 무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잘 알지 않냐, 라는 대답을 진태니는 눈으로 대신했다. 그러자 그가 묘한 눈빛으로 진태니를 바라봤다.


“어디서 남창 새끼를 끌고 와가지곤······”


모욕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납득이 가는 건 진태니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조르지뉴는 남색은 아니지만 워낙 행실이 난잡해 오해할만 했다.

그때 옆에 있던 부하 직원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밥의 눈썹이 꿈틀댔다. 당황하는 듯하다가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보안 담당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보안 담당은 주차장 거기 어디쯤에서 CCTV나 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는 무슨 일로?”

“ ······.”

“조르지뉴 어딨습니까.”

“······”


진태니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은은한 미소였다. 되려 침착한 진태니 때문에 밥의 얼굴이 슬슬 빨게졌다.

정작 진태니는 그를 약 올릴 의도로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이들의 감정을 좀 더 세분화해서 분석 중이었다.


“조르지뉴는 외출 중입니다. 용건은 나한테 말하면 됩니다.”

“나도 다시 한 번 말하지. 당신이 뭔데?”

“나는 공식적으로 조르지뉴를 대신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대표인 셈이죠. 용건은 나한테 말하면 됩니다.”


진태니는 완고했다. 어떤 흔들림도 없다. 그 모습은 정상인이 접하기엔 매우 이질적이다.

그 때문에 밥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식은 땀이 흘렀다.

다음 말을 내뱉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을 대해본 경험이 없었다. 대부분 게임상의 유저나 너드들. 그는 그저 게임 디렉터일 뿐이다.

이런 식의 기싸움으론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밥은 방향을 바꿨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바로 게임이었다.


“알겠습니다. 대리 대표님. 과연 우리 보안 담당께서 알아먹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씀드리죠.”

“네.”

“며칠 전에도 조르지뉴 대표에게 의사를 전달했지만 알폰스 폰 슈바르츠 캐릭터를 제고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뒤를 보며 다른 동료들의 응원을 구한다. 모두 결연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각 부분 디렉터들 모두 동의했습니다. 당장 베타 테스트가 코앞인데 도저히 이 캐릭터 만큼은 우리들로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보안 담당, 아니 대리 대표께서는 알폰스 폰 슈바르츠군을 알고나 있으신가?”


뒤에서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보안 담당 애들이 평생 해본 게임이 테트리스라던데요’ 하하하.

진태니는 지그시 그들을 응시했다. 그러자 모두 침을 삼키며 놀란 얼굴로 눈을 피했다. 실상 진태니는 그들을 노려봤다기 보단 단지 생각 중이었다.


“알폰스 폰 슈바르츠···”


진태니는 게임에 별다른 흥미는 없다. 단지 첫째 조셉의 명령을 받들 뿐. 하지만 둘째 형 조르지뉴가 약에 취해 떠들대는 통에 이번에 개발된 게임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나름 공부도 했고.

알폰스 폰 슈바르츠. 이 캐릭터는 오픈월드 RPG 게임에선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캐릭터. 성격 좋고, 친절하며 온순하지만 재능과 노력, 그리고 성장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다. RPG의 근본과는 완전 다른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는 플레이를 해도 성장하지 않는다. 그 상태에 머무른다. 이 캐릭터가 게임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하나. 한량이다. 놀고 먹고 즐기는 것.

밥의 반발이 이해는 된다. 그가 가진 RPG의 고정 관념과 완전 배치되는 캐릭터다.


“반응을 보아하니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이러면 대리 대표도 뭐고 대화가···”

“아니요. 얼마나 아느냐에 기준이 꽤 높으신 듯 하지만 대화할 정도는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진태니의 반응에 밥은 머슥해졌다. 전혀 주눅들지 않거니와 은근히 그의 무시를 돌려친다.


“뭐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 것 같으니 템포를 늦추죠. 진태니 보안 담당께서는 이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밥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일단 이 대화에서 진태니의 여유를 깨부순다. 그리고 그를 몰아세워 캐릭터 삭제 승인을 받아낸다.

그는 이 질문으로 그를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진태니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순하고, 착하며 정의로운데 반해 힘 없고, 나약하며 의지가 약한 캐릭터. 저는 그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캐릭터가 RPG 게임의 메인 캐릭터 중 하나에 들 수 없다는 것도 잘 아시겠군요?”

“네. 한심한 캐릭터죠.”


말은 깍아내리는데 표정은 아니다. 그냥 이 모든 게 귀찮다는 뉘앙스다.


“당신은 지금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르나보군. 이 캐릭터 하나로 게임 전체의 평가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기껏 키운 캐릭터가 한량으로 끝나는 걸 유저들이 두고 보겠습니까? 내 말 듣고나 있는 거에요?”

“네. 듣고 있습니다.”


심드렁한 태도에 밥은 더 열이 올랐다. 그는 분노하며 부하를 불렀다. 그에게 태블렛을 건네받아 진태니에게 들이밀었다.


“이 캐릭터의 유전 형질과 획득 형질이 시너지를 이루면 말 그대로 한량으로 성장합니다. 망나니가 아니라면 다행이지. 어떻게 되먹은 캐릭터에 의지 박약 같은 걸 박아넣어선······. 이 머저리 같은 캐릭터 때문에 베타테스터들 중에 키보드 박살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딱 봐도 게임 해봤자 테트리스 해본 사람 같은데 이 머저리로 플레이는 해보셨나?”

“사실 저는 게임에 대해선 알지만 게임을 하진 않습니다. ‘게임을 책으로 배웠다’ 딱 그 부류라곤 할까요. 그래도 욕 먹지 않을 정도론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디렉터님.”


진태니의 목소리가 짙게 깔렸다. 밥은 흠칫 놀라서 ‘뭐요’라는 말을 뱉고 켁켁거렸다.

진태니는 잠시 뜸을 들였다. 자신이 정리한 내용을 머릿속에 그렸다.

여기 있는 모두가 회사 전체를 대표해 삼형제를 조롱하고 있다. 마피아라는 소문이 돌곤 있지만 부모의 재산을 상속 받은 철부지 삼 형제 쯤으로 여기고 있겠지.

조르지뉴의 행실을 보면 그럴만도 했다. 술 아니면 약에 쩔어 있고, 어떨 때는 여기서 섹스를 하다가 틀킨 적도 있다. 그들의 입막음을 하느라 돈 꽤나 썼다. 평소였다면 협박했겠지만 조셉의 당부가 있었듯 우린 더 이상 마피아가 아니다.


“조르지뉴 대표가 있을 때도 이런 식이었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정해진 답을 말하는 거요.”


조셉은 아주 멍청이는 아니다. 게임 개발 능력이 없는 것이지, 게임 세계관과 설정 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하는 능력은 천재적이다. 기실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은 조르지뉴의 머리에서 나왔다.

이들이 5년 동안 개발했던 중세풍 판타지는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조르지뉴의 손길이 닿고서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캐릭터는 많아지고 세계는 커졌다. 오픈월드에서 자유도는 높아지고 인공지능은 사람 수준으로 작동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게임성이 좋아진 건 반박의 여지가 없다.


“큼큼··· 뭐··· 워낙 조르지뉴 대표가 의견을 안 들어먹어서. 대표가 게임에 대해 좀 안다고 해도 우리만 할까.”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듯 자신들을 조롱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선민의식. 조르지뉴의 천재성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자기 위에서 군림하는 돈 많은 양아치로 보일 뿐이다.

진태니는 태도를 바꾸었다. 정확하게 감정이 생겼다. 약간의 짜증.


“잘 아시겠지만 조르지뉴와 나는 형제 관계입니다.”

“그래서 뭐. 우리가 대표에게 무례했다고 야단이라도 치려는 겁니까.”

“야단이 아니라 경고를 하려는 겁니다. 당신들이 조르지뉴에게 뭘 하든 나는 상관없습니다. 거기에 일말의 감정도 없으니까.”


다들 침을 꼴깍 삼켰다. 정말로 진태니가 감정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았다.


“그런데 나는 조르지뉴가 아닙니다. 나는 누군가 내 허락과 양해 없이 내 시간과 공간을 침범하는 걸, 그것도 모자라 자기 말만 해대는 걸 무척 싫어합니다. 조르지뉴야 사람이 워낙 포근한 면이 있어서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느끼는 가장 예민하고 깊은 감정은 분노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 ······.”


되먹지 못한 놈들이 자신들의 위치와 능력만 믿고 까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었든, 자산 1위의 대부호가 되었든 자신의 총구 앞에서 다같은 인간일 뿐이다.

진태니의 분노와 비례하며 그들의 공포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다. 그들이 상대하는 건 늘 가상에 있다. 전사 마법사, 공주, 황제 몬스터 등등.

하지만 현실의 괴물을 만났을 때, 공포는 그 자체로 살의가 된다.


“보통 이런 결말에선 그 쪽이 나가는 게 예의죠. 안 나가십니까?”


밥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부하들을 등떠밀었다.


“네··· 가보겠습니다. 실례 많았습니다.


그렇게 소란이 잦아들고 그들이 발걸음을 돌릴 때였다. 씽에게서 온 문자가 왔다. 메시지와 함께 첨부된 건 사진이었다. 눈에 구멍이 나 있는, 피로 범벅된 얼굴.


-마스터. 조르지뉴가 살해당했습니다.


그 문자와 함께 진태니의 뇌신경에 오류가 생겼다. 살해란 단어 뒤에 조르지뉴라는 말이 붙어 시냅스는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막대한 혈류가 치솟으면서 뇌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윽······!”


순간의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그 소리를 듣고 밥과 사람들이 달려왔다. 진태니가 의자를 붙잡고 휘청였다.


“진태니. 왜 그럽니까. 괜찮아요?”


밥이 다가오려 하자 진태니가 스마트폰 든 손을 뻗었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띵동. 다시 스마트폰이 울린다. 진태니는 두통 때문에 찡그린 눈을 힘겹게 뜨고 화면을 보았다. 발신인은 씽이었다.


-마스터······.


그 말과 함께 전송된 사진 한 장. 다시 들어오는 정보에 편도체의 시냅스가 미친듯이 요동쳤다. 저택의 다이닝룸. 오크 식탁. 피 흘리며 쓰러진 조셉.


삐이이이이----------


귓가를 울리는 이명. 그와 동시에 터져버릴 듯 부푸는 뇌.


“뭐야 왜 저래. 야 의무팀 불러.”

“으아아아아아!!!!!!!!!”


진태니가 열 살이었을 때 대부였던 비토 꼴리에네 겐돌피니에게 의사가 당부했던 말이 있었다.


‘감정은 생리적인 반응이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어디서 어떤 반응으로 표현될지 모릅니다. 최악의 순간엔 혈압 상승이 비정상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극도로 치달은 분노가 비정상적으로 표현되는 거죠. 잘못하면 혈관이 터져서 뇌출혈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말이죠.’


사랑하는··· 사랑하는···


내가 형들을 사랑했던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진태니의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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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 없는 분노(2) 22.04.19 25 0 12쪽
2 감정 없는 분노(1) 22.04.17 32 0 12쪽
1 프롤로그 22.03.21 47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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