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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티 신병 슌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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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1.10.24 00:06
최근연재일 :
2023.02.14 11:51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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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640

작성
21.10.2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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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화

DUMMY

1-1


"인정하는가?"


이단심판관의 물음에 모두가 슌 카람을 바라봤다.

둔찻 대령은 아니라고 말하라며 카람에게 소리쳤고 5중대 부하들과 시장 상인들은 그가 고개를 흔들길 바라고 있었다.

모두 카람에겐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초에 이것이 카람의 임무였다.

마왕을 죽이는 것.

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이제 그에게 남은 건 그들의 원망과 죽음뿐이었다.

카람은 감사와 미안함을 담아 그들을 한 번 훑은 뒤 대답했다.


“인정한다.”

“그럼 다시 한 번 확인하겠다. 그대는 인간국 세인트버나드 첩보부 소속 후안 데 카르디노, 마왕국명 슌 카람. 맞나?”

“맞다.”

“그대는 상부의 명령을 받아 마왕을 죽이기 위해 마왕군에 잠입했다. 맞나?”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카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경악하며 탄식을 내질렀다.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전장의 선두에서 부하를 지키는 지휘관이었고 시장에선 평민과 귀족을 차별하지 않는 마족이었다.

그런 그가 마족의 탈을 쓴 인간이었다니.

허탈함, 배신감, 슬픔.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에 카람의 마음 한 곳이 아려왔다.

아무도 날 배웅해주지 않겠지.

욕심이다. 난 저들의 믿음을 짓밟은 배신자이자 조국을 등진 죄인이니까.


마지막 절차를 끝낸 심판관이 선고를 위해 심판문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 묵묵히 지켜보던 마왕 디 랏슈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손짓에 심판관은 뒤로 물러났다.

마왕은 가장 높은 심판대에서 카람을 내려다보았다.


“나의 오랜 전우이자, 충실한 부하 카람이여. 짐의 마음이 참으로 아프구나.”


그의 말이 참으로 가소롭게 들렸다.


“애초에 너 따위에게 줄 전우애도 충성심도 없었다. 나는 오로지 널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게 한일 뿐이다.”


마왕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친위대가 저지하려 했지만 마왕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슬퍼하는 건가.

그럴 리가 없지. 이 일로 세인트버나드를 침공할 명분이 생겼으니까.


“처음 널 보았을 때도 그랬지. 별 것도 없는 놈이 패기만 가득했어.”


그러곤 심판관을 불러 심판문을 달라고 말했다.

심판관이 심판문을 건네주자 마왕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대는 아는가. 이건 내가 바라던 전쟁이 아니다. 인간과 마족들은 너로 인해 죽는 것이다.”


나로 인해 벌어질 전쟁을 말하는 것인가.

카람은 가증스럽기 그지 없었다.

인간의 영원한 적이자 악 그 자체인 마왕.

전쟁을 원했던 건 당신이 아니었던가.

카람은 주저 앉으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마왕에 장단 맞출 생각이 없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반드시 널 죽이겠다.”


마왕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복수와 분노에 사로잡힌 인간이여. 그대가 악마가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그러면서 마왕이 심판문을 펼쳐들었다.


“선고한다. 그대는 마왕군에 잠입해 나 마왕 디 랏슈를 죽이려 했다. 이는 마왕국 최고 범죄에 해당하며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이에 나와 최고위 이단심판회는 마우(魔牛)형을 선고한다.”


좌중이 그 선고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우형은 마왕국 마물인 마우(魔牛)를 이용해 사지를 찢어발기는 극형이었다.

그동안 쌓인 정 때문인지 마족들은 탄식했다.

마왕은 그들의 연민엔 아랑곳 않고 선고문을 카람에게 던졌다.


“그곳에서 똑똑히 지켜봐라. 네 녀석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1-2


마왕성 문 앞.

마우(魔牛)가 사방을 둘러싼 가운데 카람은 무릎 꿇고 앉아 형 집행을 기다렸다.

마왕은 그에게 마왕국 전통을 따를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 전통이란 사형 집행 전, 마왕의 술을 하사 받는 것이었다.

같잖다며 거부하려 했는데 술병을 든 이의 얼굴을 보자 카람은 자리를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특수전사령부 소속 대대장인 리둔찻 대령이었다.


리 둔찻은 할 말을 잃은 채 술이 넘치도록 술을 따랐다.

술 한 잔을 들이키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카람 역시 할 말이 없었다.

리 둔찻에겐 누구보다 죄책감이 컸다.


“괜찮냐?”


리 둔찻이 묻자, 카람이 허탈하게 웃었다.


“괜찮아 보이십니까.”

“그렇지? 괜찮을 리가 없겠지?”


리 둔찻은 카람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형님은 제가 원망스럽지 않으십니까..”


자신의 술잔에도 술을 따르며 리 둔찻이 대답했다.


“원망스럽다. 아주 죽이고 싶을 만큼.”

“그런데 뭣하러 여기 오셨습니까.”

“배신자이고 적이지만 그래도 전우다. 가는 길을 지켜봐야하지 않겠냐.”

“형님...”


리둔찻에게 슌카람은 피를 나눈 형제나 다름없었다.

수 많은 전투를 겪었고 수도 없이 목숨을 빚지기도 했다.

카람이 보였던 헌신과 전우애는 진심이었다.

원망할래야 할 수 없었다.


“내가 진짜 싫었던 건 네 녀석이 진짜로 나한테 정을 줬다는 거다. 첩자였으면 첩자답게 임무나 수행할 것이지 왜 진심을 보인 것이냐.”


그의 고통스러운 절규에 카람은 고개를 떨구었다.


“저도 그러기 싫었습니다. 적이란 걸 알면서 형처럼 마음이 갔습니다. 겉으론 엄한 것 같아도 살뜰하게 부하들 챙기는 모습을 보면 왜인지 마인이 아니라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말에 순간적으로 감정이 차오른 리 둔찻이 어깨 위로 주먹을 치켜들었다.

카람은 속시원해질 때까지 한대 치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리 둔찻의 주먹은 힘없이 내려갔다.


“너 신병 시절 기억나냐.”

“......”

“귀족도 아니고, 능력도 없는 네 녀석이 정말 싫었다.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보였고 조금씩 바뀌는 네 모습 보면서 키우는 맛도 있었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리둔찻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좋은 시절이었어. 전장을 누비는 것도 돌이켜보니 추억 같구나.”

“형님...”


고개를 숙인 카람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회색바닥이 까맣게 물들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형님까지...”


리 둔찻 대령은 카람을 두둔한 죄로 좌천된 상태였다.


“그런 소리마라. 죽을 마당에 남 걱정하는 거 아니다.”

“죄송합니다.”

“배신이고 나발이고 전장에서 등 맞대고 목숨 맡겼으면 그걸로 된 거야. 원망은 않으마.”


리 둔찻의 목소리가 떨렸다.

애써 울음을 참고 있다는 걸 슌 카람도 알고 있었다.


“너랑 나. 친위대에 올라 마왕님을 지키고 전장에서 뼈를 묻는 게 꿈이었는데... 그걸 이루지 못한 게 한이 되겠구나...”

“그랬다면 전 마왕을 죽이기 위해서 형님까지 죽여야 했을 겁니다.”

“내가 그걸 그냥 두고 보겠냐. 정체를 먼저 알았다면 진짜 마인으로 만들기 위해 뭐라도 했을 거다.”


리 둔찻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그의 울음을 애써 외면하며 카람은 술병을 들어 술을 따랐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자 형 집행인이 다가왔다.


“이제 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그러자 카람이 둔찻의 무릎을 치며 그를 밀어냈다.


“이제 가십시오. 여기 계속 있으면 사람들한테 오해 받습니다.”


리 둔찻은 아쉬움에 빈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입술을 깨문 그는 형 집행인이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췄다.


“정말 무간지옥에서 살아오면 마왕을 죽이러 올 거냐?”


카람은 마지막 남은 술을 입에 털어놓곤 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네, 다시 올 겁니다. 이번 생엔 실패했지만 다음 생엔 모르죠.”

“하하하. 그래 그래야 네 놈답지.”

“다시 돌아올 땐 칸 타타 그 놈 라인 타지 않고 형님 뒤에 꼭 붙어서 갈 겁니다. 그리고 절 막아서는 형님도 개의치 않고 마왕의 목을 딸 겁니다.”

“그래 좋다! 나는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 네 녀석을 진짜 마족으로 만들 것이다!”


둘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리 둔찻이 물러나자 형 집행인이 다가와 사지를 밧줄로 묶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생각했는데...

몸이 심하게 떨렸다.

밧줄이 서서히 당겨졌고 그의 몸이 공중에 띄어졌다.

온몸에 찢어질 듯한 고통이 가해졌다.


우두둑.


관절이 뽑히면서 경악할 충격이 찾아왔다.


“아아아악악아아”


죽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마음에 담긴 회한과 분노는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마왕이여.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돌아와 네 놈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얼마 뒤 슌 카람의 사지가 찢어지며 숨을 거뒀다.


**


숨이 끊기고 얼마가 지났을까.

카람은 희미한 의식의 빛을 느꼈다.

여긴 어딜까.

수 만년이 흘러간 것처럼 시간이 날뛰었다.


이름 후안 데 카르디노.

인간국 세인트버나드 소속 특수임무요원.

본래 그는 세인트버나드의 외곽에 사는,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었고 평생을 바이올리스트로 살아갈 거라 생각했는데.

마왕군이 고향을 침략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마왕군은 살인과 노략질을 일삼았고 그 사건으로 후안의 가족은 몰살당했다.

아버지는 마왕군에 산 채로 먹혔고 동생과 엄마는 후안이 보는 앞에서 강간 당한 뒤 살해됐다.


복수를 꿈꾸며 세인트버나드 군사학교에 입학한 후안은 졸업 직전 마왕 암살 임무를 부여받았다.

고통스러운 실험을 이겨내고 마족이 된 그는 마왕군에 잡입에 성공했고, 마왕의 친위대에 오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빠른 진급을 위해 유력자에 줄을 댔지만 그것이 썩은 동아줄이란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은 뒤었다.

마왕국 에블란트의 정치적 격변기.

마왕은 정치적 숙청을 단행했고 그가 붙잡았던 라인은 부정부패를 감추기 위해 후안을 잘라냈다.

그 과정에서 후안이 첩자란 게 밝혀졌고 결국 후안은 죽음을 맞이했다.


만약 다시 살아난다면 마왕군 정점에 올라 마왕을 죽일 수 있을까.

리 둔찻까지도...


“후안이자 카람이여. 정말 원하는 것이냐.”


회한이 그의 마음을 짓누를 때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거대하면서 경건한 음성이었다.


“누구십니까?”

“나는 모든 이가 신이라 부르는 존재. 넌 죽었고 여기는 무엇도 아닌 존재들이 발을 딛는 곳.”


카람은 눈을 떠 주변을 돌아봤다.

자욱한 안개가 낀 곳.

무간지옥인가.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

모두를 배신한 자들이 오는 곳.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이곳에 올 것임을 그는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모두의 신이여 어찌하여 나를 카람이라 부르십니까.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고 마왕을 죽이기 위해 그 이름을 쓴 것 뿐입니다.”


흐릿한 인상에 뿔달린 여신이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로 네가 인간이라 생각하느냐. 인간이자 마족이여. 그리고 인간도 마족도 아닌 자여.”

“아닙니다. 저는 인간이며 후안 데 카르디노, 긍지높은 세인트 버나드의 일원입니다.”

“어리석구나 미물이여. 넌 인간의 복수심에 빠져 널 믿었던 마족을 배신했고, 마족의 온정에 현혹돼 인간을 배신하지 않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마족을 사랑한 건 맞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임무에 소홀했던 적이 없습니다. 저의 복수심은 늘 불탔고 사랑하는 조국과 국민을 위해 마왕을 죽이려 했습니다.”

“정녕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으렸다!!!”


순간 카람의 몸이 붕 뜨더니 앞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족 여신이 손을 들어 그를 끌어당긴 것이었다.

여신의 앞에 서자 카람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크고 매서운 눈이 카람을 압도했다.

카람은 몸을 벌벌 떨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네··· 맞...습..니다. 저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마족을 배신할 생각을 했고 마족을 사랑하면서 임무를 포기했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묻겠다. 마왕국 에블란트의 마왕 디 랏슈를 죽이고 싶으냐.”


그 말을 듣자 카람은 얼굴색을 바꾸었다.

원수이자 삶의 목적.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유일한 이유.

마족과 인간 모두를 사랑했고 모두를 배신했다.

양쪽의 발을 놓은 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디 랏슈를 향한 분노 하나는 분명했다.


“네. 만약 또 한 번의 생이 주어진다면 반드시 디 랏슈를 죽일 것입니다.”

“널 사랑하며 믿었던 마족이 네 앞을 막아선데도?”


여신의 질문에 카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에 리 둔찻과 자식 같은 부하들, 그리고 시장 상인들이 어른거렸다.

카람은 주먹을 쥐며 대답했다.


“네. 사랑하는 자라 해도 그저 적일 뿐. 그조차 목을 베고 디 랏슈를 죽이겠습니다.”


여신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집채만한 눈망울이 카람을 응시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느냐.”

“네.”


카람에겐 망설임이 없었다.

또 한 번 삶을 시작하면 반드시 마왕을 죽인다.


여신이 거대한 손바닥에 카람을 올려놓았다.


“너의 분노는 아직도 저쪽에서 넘어오지 않는 듯 하구나.”


그러곤 후 하고 바람을 불어 카람을 날려보냈다.


“허나, 만약 딴 마음을 품는다면 넌 죽음도 무엇도 아닌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명심해라. 인간도, 마족도 아닌 너를 정의해주는 건 오로지 그 분노와 원망 뿐이니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람의 몸은 빛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충격 때문에 의식이 흐릿했지만 여신의 마지막 말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세상이 널 기다리고 있단 걸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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