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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1.10.23 03:08
최근연재일 :
2021.10.2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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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3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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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첫 필기구

DUMMY

평범함. 그것이 에드워드 에일이 생각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외풍과 침입을 막아줄 견고한 집에서 눈을 뜨고 때가 되면 잠들고. 삼 시 세끼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저녁이면 아빠가 뒷산을 거닐고.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하고 친구들과 놀고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그 나이 때에 튀지도 특별하지도 않는 아이들을 사귀고. 어른이 되면 어찌될 지 모르지만 아빠처럼 의사가 되거나 평범한 가정을 꾸릴 정도로 돈을 벌 생각이었다. 역시 때가 되면 참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렇게 쭈욱 살아갈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늘 얘기했던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그 중에서도 생물학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랑과 소속감의 욕구, 딱 이 세 가지만 충족되면 됐다. 아버진 5단계의 정점까지 가길 바랐지만 에드워드는 아니었다. 그것이 에드워드가 생각하는 평범함이었다.


에드워드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1층에선 엄마, 미사가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양푼이가 거품기에 긁히고 냄비가 끓는 소리에 에드워드는 괴로웠다. 소리와 냄새만으로 에드워드는 무슨 음식들을 만드는지 알아챘다. 콘슬로우와 으깬돼지감자샐러드, 훈제삼겹살, 버터와 토마토를 버무린 뒤 옥수수전분을 넣어 치즈와 함께 오븐에 구운 스튜. 모두 에드워드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보통 때 그에게 만족감을 주었던 이 아침을 그는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에드워드, 이제 일어나야지."


일정한 간격으로 미사가 에드워드를 깨웠다. 에드워드는 침대에 걸터앉아 얼굴을 비볐다. 그의 금발머리가 양볼을 뒤덮었다. 그냥 이대로 도망가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능력이 있는데도 입학을 거부하는 건 불법이었다. 미성년인 에드워드를 처벌하진 않지만 부모는 얘기가 달랐다. 입학을 원치 않은 게 에드워드 본인이어도 처벌은 부모가 받는다. 그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1층에 내려갔을 때 부엌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미사를 뒤로 아빠, 헨리와 난장이족 하나가 식탁에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난장이의 이름은 두린 두부, 부부의 친구였다.


에드워드를 발견한 두린이 그를 붙잡아 껴 앉았다. 그의 길고 푹신한 수염으로 에드워드의 얼굴이 파묻혔다. 열 살인 에드워드와 두린의 키는 별 차이가 없었다.


"요 꼬마 녀석, 내가 이럴 줄 알고 널 데리러 왔지."


에드워드가 귀찮다는 듯이 벗어나려했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두린 그만하고 내려줘요. 당장 나갈 준비를 해야한다고요."


거품기로 돌리던 미사가 고개를 돌려 두린을 다그쳤다. 두린은 에드워드를 내려놓고 에드워드의 얼굴만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휘저은 뒤 "당장 씻지 않으면 너희 엄마는 내가 만든 감옥에서 평생 지내야 해", 라며장난을 쳤다. 그 말을 믿진 않았지만 그들을 째려보는 엄마의 눈빛에 놀라 에드워드는 욕실로 향했다. 그가 사라진 뒤 두린과 헨리는 대화를 계속했다. 욕실의 열린 문으로 에드워드는 그 대화를 엿들었다.


"이번에 조사위원회(조사위)에서 꽤 값비싼 물건을 주문했다지?"


헨리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나?"


"다 루트가 있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주게"


"기밀인 걸 알면서 물으면 내가 대답해줄 줄 아나?"


"읏흠..."


헛기침을 한 헨리가 미사 쪽을 쳐다보자 두린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꾸 이런 식이면 내가 자네에게 약점만 잡히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약점을 이용한 적은 있고?"


"없지."


"그럼?"


두린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못이겨먹겠단 식으로 미소지었다.


"정글 탐사용 도구들일세" 두린이 계속 미사의 눈치를 봤다.


"그건 이미 1차 조사 때에서 구입하지 않았나?" 헨리가 물었다.


"그래. 문제는 갯수야. 약 삼천 개 정도를 주문했어. 이미 초도물량으로 1천개가 전달됐고 내주에 나머지도 지급될 거야."


"그 정도면..."


"그래 정부는 노르크하 접경 지역 정글 전체를 조사할 생각이야."


"왜 이제 와서..."


미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녀의 머리가 거칠게 찰랑였다. 그녀가 돌리고 있는 거품기는 요란스럽게 소리를 냈다.


"인두라 잉그렛 위원의 설득 때문이네. 안톤과 그의 동료가 사건을 보고 한 이후 줄곧 그랬지."


"그래. 그녀는 지원도 없이 안톤이 떠날 때조차 마중 나올 정도로 이 사건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녀 또한 아들과 동료 둘만 그곳으로 보냈죠."


미사가 말했다.


"결국 지원을 보내는 거 아니오."


"이제 와서죠. 이제 와서!"


미사가 거품기를 집어 던졌다.


헨리와 두린은 미사를 피해 조용히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욕실 가까이에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칫솔질을 하며 에드워드는 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근데 의회를 좀 이해해줘야하지 않은가. 증거가 부족했어. 수비대 대원이 데려왔던 오크 시체는 너무 심하게 훼손 됐었지. 거기다 안톤은 증인인 아이가 안개속으로 사라졌다고 이상한 소리를 하고...


두린이 말했다.


"자네도 내 아들의 이야기를 안 믿는가?"


"솔직히 그렇네. 다만 거짓이라고도 생각 않지. 난 증거와 사실만 믿을 뿐이네."


"자네나 의회의 태도도 충분히 이해해. 어쨌든 지원군이 간다니 다행이라고 해야지. 3개월 동안 내 아들이 어찌 지냈을지 궁금하구만."


"아들의 소식이 들어오면 바로 알려주겠네."


"그래... 그보다..."


헨리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고개를 돌려 욕실 쪽을 쳐다봤다.


"오늘의 주인공이 준비를 다 끝낸 거 같은데. 에드워드 사람들 말 엿들으면 못쓴다."


"네..."


에드워드가 얼굴을 붉히며 나왔다.


학교까지 두린이 에드워드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의사인 헨리는 예약 진료가 있었고 미사는 큰 아들 안톤에게 보낼 짐을 준비해야 했다. 지원부대편에 보내려는 시간이 부족했다. 미안한 얼굴로 미사가 에드워드를 껴안았다.


"미안해. 형이 3개월 동안 연락이 없는 거 보면 분명 바쁘게 일하는 걸 거야. 그럼 많은 게 필요한 거고... 네가 이해해주렴."


"상관없어요."


미사와 달리 에드워드는 태연했다. 가기도 싫은 곳에 아빠 엄마 모두가 달려오는 건 질색이었다. 차라리 두린과 가는 편이 나았다.


"건강해야 한다."


"어차피 방학 때 또 보는 걸요. 더이상 안 볼 것처럼 굴지 마세요. 그럼 더 짜쯩나요."


미사가 미소를 지으면 잉크를 했다.


"잘 부탁하네. 이 녀석 예술학교에 가기 싫어서 어디로 내뺄지도 몰라."


헨리가 두린에게 말했다.


"걱정마. 자네 아들이 그렇게 형편없는 놈은 아니니."


두린이 에드워드를 보고 웃자 에드워드는 답하듯 웃었다. 헨리가 무릎을 꿇고 앉아 에드워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넌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났다. 인간 중에서 서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부모가 능력이 없는데 자식이 능력을 가진 경우도 드물고. 네 형이 그랬듯이. 넌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어. 서를 통해 나와 네 할아버지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 수 있을 거다."


에드워드는 헨리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곤 별 말 없이 뒤돌아 걸었다. 그런 거 형이나 시켰어야지. 형이 안하니까 이젠 나야, 하고 생각했다. 멋쩍어하는 헨리에게 걱정말라고 말하고 두린 역시 그들과 작별했다.


그들 뒤로 2층짜리 에드워드의 참나무집이 멀어져갔다. 낡고 허름했지만 관리가 잘된 탓인지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부부는 에드워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집 앞에서 서성였다.


인간 마을인 휴마에서 수도 북스트릿까지는 하루를 꼬박 걸어가야 나올 거리였다. 두린이 서를 꺼내 그림을 그리자 그의 앞에 갈색점 하나가 보이더니 점점 커졌다. 에드워드와 두린이 함께 들어갈 정도로 커지자 원 안으로 길이 보였다.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텔레포트란다. 이걸 통해 가면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텔레포트를 통과한 뒤 그것이 사라지자 에드워드가 한숨을 푹 쉬었다.


"넌 정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예."


"어째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서를 선망하는데?"


"싫어요. 저는. 신은 어째서 능력을 모두에게 주지 않았을까요?"


두린이 한쪽 눈을 치켜올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신은 그다지 공평한 존재는 아니란다. 어째서 난장이를 작게 만들었까? 그런 생각은 안해봤지?"


풋, 하고 에드워드가 웃었다. 그는 두린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157cm 정도의 에드워드 만한 키를 가진 두린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가 키가 작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와인을 저장할 때 쓰는 오크 통나무 처럼 크고 두꺼운 몸에 머리며 턱에 난 반짝이고 거친 수염 때문에 그가 무척 커보였기 때문이다.


"저만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진 않네요."


"그래. 그리고 네 경우엔 불공평하단 말은 맞지 않는단다."


"왜요?"


"그걸 몰라서 묻니?"


에드워드는 알고 있었다. 불공평하다고 하기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축복이자 기적이었다. 서를 다룰줄 안다는 건 미래가 보장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진 게 많은 자가 가진 게 많다는 이유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알죠. 하지만..."


"세상이 평등해지길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구나. 모두가 서를 다룰 줄 알면 너의 특별함도 평범해질 테지. 넌 그걸 바라고 있고. 그치?"


"맞아요... 전 특별한 게 싫거든요."


"어째서?"


"귀찮잖아요. 특별한 거. 누군가는 특별함에 기대하고, 또 누군가는 많은 걸 요구해요. 그러다 자기가 자신한테 요구를 하기 시작하죠. 특별함에 걸맞은 일을 해라. 자기도 모른 새에 말이에요."


수도의 중심이 가까워질수록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도심 어디선가 폭죽도 쏘아올려졌다. 낮임에도 갖가지 색과 형태가 분명했다.


"형 때문이냐?"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재미없는 얘기가 되겠군."


에드워드가 두린을 노려봤다.


"어렸을 때부터 넌 균형을 잡으려고 애를 쓰곤 했다. 울음이 나오면 참길 바라고 참으려 하면 울려고 하는 듯이 보였지. 화를 내도 크게 내지 않으려 했고. 남들보다 빨리 수를 이해했는데도 뽐내기 보단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않게금 숨겼지. 그런 점은 아마 네 애비를 닮았을 게다."


"아빠요?"


"그래. 그녀석도 유별랄 만큼 튀는 걸 싫어했어. 형 때문이든 네가 아비를 닮아서든 상관없다. 어쨌든 넌 학교에 가야하고 네 재능은 절대 없어지지 않아. 받아들여야 해."


"재미없는 얘기가 되겠네요."


"그래. 네가 싫어하는 특별함은 더 커질 거야. 요정이나 오크, 드워프 종족은 몰라도 인간 종족에게 넌 엄청난 축복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너더러 특별하게 살란 말은 아니다."


"그럼요?"


"네가 원하는 꿈을 꾸면서 나아가라는 거지. 학교에 가서."


"역시 재미없는 얘기였네요."


"하하하. 재미있게 바꾸면 되잖니?"


"어떻게요?"


두린이 두툼한 용가죽 점퍼의 안주머니에서 기다란 물건 하나를 꺼냈다. 그러곤 햇빛에 비춰보더니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에드워드에게 건냈다.


"양식 그랜트리와 노아크 지방 흑연을 제련해 만든 연필이린다. 양식으로 재배한 그랜트리로 만들긴 했어도 연필심은 진짜 노아크 지방 흑연이란다. 이걸 구하는데 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래뵈도 쓸모 있는 장인이어서 내가 만든 물건은 값비싸게 팔리지"


두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에드워드는 연필을 햇빛에 비춰봤다.


"네 나이 때에 갖긴엔 좀 벅차긴 해도 내 선물이니 잘 받아두거라."


에드워드는 별로 반갑지 않다는 기색이었다.


"마음에 안 드니?"


"아뇨 그렇다기보단... 뭔가 학교에 간다는 게 실감이 나서요. 좀 불안해지네요. 그리고... 이게 왜 재밌다는 건지 모르겠고요."


"너희 집에선 아버지가 서를 쓰는 걸 엄격하게 금했었지. 게다가 그 마을에선 서를 다룰 줄 아는 게 네 형 밖에 없고 형마저도 자주 만나지 못했으니 실제로 서와 필기구가 만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다."


"정말 모르겠네요. 알고 싶지도 않고요."


"이거 섭섭한 걸... 어렵게 구한 선물인데 그 가치를 몰라주다니... 그정도면 창작물이 형편 없어도 꽤 다양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게다."


"그럼 이세상이 평등해지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싶네요."


여전히 시큰둥한 에드워드를 보며 두린이 온화하게 웃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쥐고 있는 연필이 어떤 물건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기엔 에드워드는 서나 능력, 필기구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수도의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들, 온갖짐을 싸들고 다니는 애들도 보였다. 다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전국에서 보인 것이었다. 대부분 요정과 난장이었고 개중에는 오크와 인간 아이도 보였다. 그들의 부모 양쪽 혹은 한 쪽은 어깨 위로 서를 달고 다녔다. 에드워드의 집에 몇 십 배는 되어 보이는 갈색 문으로 모두가 빨려들어가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에 다다를 때쯤 에드워드가 물었다.


"학교로 바로 가나요?"


"아니다. 뭘 좀 사야 하거든."


그때 한 남자가 두린을 보더니 외쳤다. 오크였다.


"두린 씨. 연필 제작기가 고장난 듯 한데 좀 봐주세요."


"잠깐 볼 일이 있으니 기다리시오."


"그건 그렇고 정부에서 대량 주문했다는 물건이 뭔가요?"


두린이 고개를 돌리며 뭐라고 거칠게 말했다. 에드워드는 두린이 욕하는 걸 종종 보곤했다. 두린은 좀 직설적이긴 해도 욕을 한다거나 거친 말을 하진 못했다. 그래서 짜증나는 사람들이 생기면 사람들 몰래 욕을 한단 사실을 에드워드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못마땅할 때 잠시 자리를 피해 욕하는 모습을 에드워드는 본 적이 있었다.


두린과 에드워드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필요한 옷가지며 생필품은 다 있잖아요."


에드워드가 두린의 서를 가리켰다. 그 안엔 미사가 준비해둔 에드워드의 물건이 담겨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게 빠졌잖니."


골똘히 생각하던 에드워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뒤로 져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딱 한 가지, 서를 사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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