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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1.10.23 03:08
최근연재일 :
2021.10.2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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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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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신의 나무가 만든 성역, 그랜트리아


10년 전쟁으로 대륙과 섬이 초토화된 가운데 이곳만은 온전했다. 직경이 100km에 달하는 그랜드트리아의 뿌리는 물 속으로 뻗어있었다. 그랜트리아의 크기만큼 넓고 깊고 호수였다. 신이 세상을 멸하기 위해 내리친 주먹으로 생겼다는 전설이 있었고 신이 움켜진 주먹이란 뜻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블로우포스트라 불렀다.

그랜트리아의 외곽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뿌리는 더 굵어지고 중심에 다다를 땐 높이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 신수 그랜트리를 목도하게 된다. 여기저기 갈라진 흑갈새의 나무 껕데기는 언제나 윤기가 났다. 햇빛과 물에 반사된 빛을 받아 신수의 외형은 찬란했다. 10m길이의 나뭇잎은 늘 푸르고 단단했고 바람이 불면 수만개의 나뭇잎이 흔들리며 저들끼리 나부끼는 소리를 냈다. 가치도 뜻도 의미도 없는 소리었다. 기쁨과 환희를 얻진 못했지만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 불인을 내던질 수 있었다. 나뭇잎이 선사하는 합창은 그랜트리아밖 수십키로까지 들렸고 사람들은 그것을 듣기 위해 그랜트리아 외곽으로 몰리곤 했다. 하늘 밖까지 뻗은 나무를 보며.

나뭇잎이 나부끼는 소리는 들렸지만 그것을 볼 수는 없었다. 옛부터 사람들은 그랜트리가 하늘을 넘어 우주에 도달했다 생각했고 그것이 신과 연결됐단 뜻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나무 안엔 신이 심은 나무란 증거로 보이는 모습이 있었다. 나무의 뿌리 틈새를 통해 나무 속으로 들어가면 중심에 다다를 수 있다. 그곳은 풀과 꽃이 무성한 평원이었다.밤이면 어두워지고 해가 뜨면 밝아지는. 나무 안임에도 그럴 수 있던 것은 수 키로 높이의 나무 기둥이 한가운데가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통해 빛과 어둠이 찾아왔다. 다만 특별한 것은 흐리고 구름 낀 날이어도 해가 지면 기둥의 공동 위로 별과 은하가 반짝이는 우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푸르른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평원의 존재를 말로 들었을 뿐 실제로보진 못했다. 모두가 그랜트리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진 않았고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라도 평원에 들어갈 순 없었다. 딱 한 사람, 그 자만이 그곳에 들어갔고 평원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의 이름은 플로네 플로빈. 사람들은 그를 최초의 발견자라고 불렀다.

그는 평생 평원에 두 번 발을 들여놨는데 두 번째 발을 들여놓은 날이 그가 죽은 날이었다.

평원은 섬처럼 물위에 떠있었다. 블로우포스트에서 흐른 신수, 그랜워터가 평원을 둘러쌌다. 뿌리가 만든 땅굴의 끝부터 물을 넘어 평원까지의 거리는 약 400m. 평원엔 그날 두 번째로 방문한 플로네가 있었고 그를 만나기 위해 한 여자가 신수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백발과 검은 머리가 뒤섞은 머리가 신수의 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녀의 검은 낡은 코트가 펄럭였다. 마르고 날씬한 몸에 길고 가는 팔다리처럼 얼굴 역시 가늘고 길었다. 가늘게 떠진 눈은 평원 어딘가를 주시했다. 전쟁을 겪고 그랜트리아를 관통해서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평원에 올라서서도 계속 날아갔고 얼마쯤 지나 땅 위에 발을 디뎠다. 갑자기 짐승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그녀에게 닿자 그녀의 털들이 쭈뼛쭈뼛 섰다. 땅이 진동했다.

그녀의 앞에 회색 빛깔 머리를 부스스 늘어뜨린 플로네가 서있었다. 크고 풍만한 체격에 망토가 달린 은색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의 주위로 책과 펜이 제자리를 맴돌며 둥둥 떠다녔다. 그 역시 매우 지쳐보였다.

"올슨 선생, 여행을 어떠셨는지."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다 하시네요."

"호호호."

"생각보단 오긴 쉬웠어요. 가시 때문에 고생을 좀 했지만요."

올슨 선생이 소매를 걷어 상처를 보여줬다. 길게 찢어진 붉은 상처 주위로 검은 혈관이 튀어나왔다.

"당신의 우렁찬 비명이 이곳까지 들렸어요. 호호호"

올슨 선생은 그를 노려봤다. 원망보다 슬픔이 담긴 눈빛이었다. 오늘 벌어질 일에 비해 플로네 선생은 여유롭고 평온했다. 그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아무 문제 없다는 의미처럼 느껴져 허탈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플로네는 눈을 감았다. 책에 손을 대자 연필이 움직이며 책 위에 글을 썼다. 올슨 선생이 헐떡였다.

"굳이 당신이 아니어도.... 남아있는 사람들만으로도.... 처리할 수 있어요. 제발 멈춰요."

플로네는 그녀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

"나는 이미 선택을 했어요. 이제 그걸 실행할 때요."

플로네가 잠깐 머뭇거렸다. 그가 책으로 손을 뻗자 책에서 금빛깔이 사방으로 갈라졌다.

"우린 너무 많은 걸 잃었소. 당신 말대로 그럴 수 있다해도 그자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너무 거대하고 강력한 것이오. 정리될 동안 많은 사람이 죽을 거고 그 긴 시간 동안 그자와 추종자가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남아있는 자들의 시간과 희망뿐이오."

그녀의 목소리는 계속 떨렸다.

"알지만... 힘들어요. 당신을 보내기가."

해가 천천히 저물고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시죠?" 그녀가 물었다.

"해가 지길 기다리죠."

그의 말을 끝으로 둘은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해가 어디로 지는지 모르게 노을이 평원을 둘러쌌다. 붉은 띠가 지평선 위에 드리웠다. 풀이며 듬성듬성 자리를 잡은 버드나무며 민들래며. 따쓰하고 아늑한 이불을 덮고 잠들 준비를 하는 듯했다. 그 고요를 깬 것이 올슨 선생이 도착할 때 들은 짐승 소리였다. 둘의 침묵 역시 그것으로 인해 깨졌다.

눈을 반쯤 감고 조는 듯하던 플로네 선생이 웃으며 올슨 선생의 등 뒤를 가리켰다. 그곳엔 방금 전까지 보잊지 않았던 거대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20미터는 족히 넘어보였다. 무언가를 가두기 위한 우리였다. 땅을 진동하는 포효는 그곳에서 나왔다.

"저 안엔 무엇을 가두셨죠?

"내 오랜 친구요." 플로네가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는 법을 영 모르는 것 같소"

자신의 책으로 플로네가 손을 뻐다 책 위를 떠다니던 필기구가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하늘 위에서 갑자기 황금색 종이 나타나더니 우리 위로 떨어져 그것을 집어삼켰다. 가르릉거리는 소리와 진동이 멎었다.

"어쩌실 셈이죠?"

"어쩌긴요. 옛친구를 진정시켰을 뿐이오. 내가 사라지면 봉인도 풀릴 거요."

사라진다는 단어가 그녀의 가슴을 다시 아프게 했지만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그보다 아이는 어찌 되었소?"

"당신의 말대로 아이를 그 집에 맡겼어요. 하지만... 정말 잘하는 일일까요? 그 채로 죽여도..."

"당신답지 않은 소리를 하시는 구려 호호호." 그가 수염을 살포시 쓰다듬었다.

"아이의 영혼을 희생시킨 것도 그 부부와 아이에게 송구스러운데 육신깢지 앗아가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소."

올슨 선생이 주먹을 쥐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주장을 밀어붙이기 전에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그 아이를 죽여야만 평화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미 당신은 아이의 영혼을 받치셨죠. 그건 그 아이의 생명이 다한 것과 같아요. 그런데도 그자의 영혼에 지배를 받는 그 몸을 살리시려하니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요."

자신을 원망하듯 노려보는 그녀를 폴로네는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그자'에게 갖고 있는 분노와 복수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존경했던 학생들, 학교의 동료들, 이웃들, 모험과 전쟁을 함께 치른 동료들, 그리고 그녀의 아이가 그자에 의해서 죽어갔다. 그녀는 지쳐있었고 승리는 눈 앞에 있었다. '그자'의 목숨이 그녀의 손에 달렸있단 사실을 그녀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플로네는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지금 그 자를 죽이면 다앙은 모든 게 완벽해 보일 것이오. 하지만 악의 죽음이 꼭 정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오. 더한 것도 그 뒤에 따라올 수 있는 법이지요."

"왜 그래야 하는지, 그의 죽음이 평화가 아니란 증거를 저한테 대주세요. 제발!"

플로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날 지식과 지혜의 현자라고 하지만 사실 난 그리 똑똑하지 않소. 내 머리를 채운 지식에 대해서 나는 아는 바가 없는 거요. 지식 안에서 직관과 느낌이 순간적으로 느껴지지만 그것이 왜 그런지 나는 알짖 못하기 때문이오. 잉그렛, 미안하오. 말해주고 싶어도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소. 늘 그랬듯 이번에도 날 한 번 믿어주실 수 없는 거요?"

도리어 애원하는 플로네의 태도에 올슨 선생은 당황스러웠다.

"그들 부부 또한 분명히 믿고 있었소." 플로네가 옷 속에서 둥근 팬던트를 꺼냈다. 그것을 열자 젊은 부부가 웃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그 위로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그가 코를 훌쩍였다. "그 아이의 영혼은 그자가 지배하는 몸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요. 우리도 믿어봅시다."

올슨 선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있었지만 고개를 떨군 채 어깨에 올려진 그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플로네에게 보이지 않게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더디 자랄 것이오. 보호자가 그 사실을 눈치챌 때쯤 아이를 옮겨야 할 것이오."

그를 쳐다보지 못하는 올슨 선생이 힘없이 말했다.

"알겠어요."


넓은 면으로 띠를 이루던 노을이 어느새 선이 됐고 잠시 뒤 점이 되었다. 순간 수직수평으로 십자가를 그리듯 무지개빛으로 반짝거리더니 명멸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바람이 풀들에 스치는 소리만 들릴 뿐 보이는 게 없었다. 책을 꺼내든 올슨 선생이 불을 켜려하자 플로네 선생은 그녀의 손을 잡고 제지했다.

"당신이 볼 수 있는 지상 최대의 쇼가 펼쳐질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유일한 불빛으로 어둠을 밝힌 그것은 별이었다. 별은 어둠 속에서 점점 자라더니 이내 올슨 선생 위에 다가와 그대로 물위로 날아갔다. 별의 꼬리가 잔상을 남기며 하늘을 갈랐다. 물위로 날아가던 별은 물 밑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물보라가 평원 위를 휩쓸었다. 물보라는 물먼지가 되고 그것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물안개를 만들어냈다. 올슨 선생이 물안개를 만지며 휘젓자 그녀의 손에 반응해 물먼지가 별빛으로 빛났다. 다시 어둠이 찾아오고 방금 전과 똑같이 단 하나의 불빛이 반짝였다. 그것은 전과 달리 자라지 않고 분열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었다. 계속 갈라지고 갈라져 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것들이 부딪히고 합쳐져 구름이 일었고 그 가운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일순간에 플로네 선생과 올슨 선생이 빛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었다. 잠시 뒤 올슨 선생이 눈을 떴을 때 눈앞엔 그녀가 보았던 가장 깊고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졌다. 우주였다. 보랏빛깔의 먼지 구름이 강을 따라 흐르듯 은하수 주위에 몰려들었다. 별들의 강, 은하수는 물론 우주 전체에 별들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어떤 곳에선 단 하나의 별이 빛났고 어떤 곳에선 별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올슨 선생은 그것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빛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보았다는 게 이것인가요?"

폴로네 선생은 말없이 웃었다. 이제야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한 친구가 생겼다는 듯. 올슨 선생은 자신의 책을 들고 무언가를 적었다. 그러자 감미로운 목소리로 요정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름답구려." 플로네 선생이 말했다. "사실 당신의 음악을 좋아한 이유는 이곳과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해서였소."

노래가 끝나자 플로네 선생이 말을 이었다.

"동료들과 떨어져 길을 잃고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이 광경을 처음 보았소. 너무 아름다워 이곳을 떠날 수 없었지. 땅 속에 숨은 틸라타 열매로 연명하며 이 광경을 보고 또 보았소. 내일 또 내일. 이것은 매일마다 반복됐던 거요. 별의 강줄기를 따라 걷고 있을 때 나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소. 탄생이었지. 우리가 생명을 얻고 존재하고 스스로를 느끼고 이 자리에 서게 된 시작. 이 작은 우주는 그것을 보여는 거요. 찬란하고 아름답지 않소?"

올슨 선생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기원과도 같은 우주에 정신을 빼꼈다. 그것은 거대하고 경이로워 모든 존재를 작고 보잘 것 없이 만들었다. 전쟁도, 악도, 평화와 정의도,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까지 잊게 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곳에 닿을 수 있다면 무엇이 어떻든 좋다고.

그 사이 플로네 선생은 자신의 책에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것이다.

"너무 오래 올려다 보시 마시오."

천천히 고개를 내린 올슨이 멍하니 그를 쳐보았다. 그를 보곤 있었지만 눈은 저 멀리 어딘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듯했다.

"우주란 본래 모든 존재와 선택을 품고 있는 공간이오. 계속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변해있을 거요. 그것이 꼭 좋으리란 보장이 없는 게 문제요."

올슨 선생의 정신은 여전히 우주 어딘가를 배회했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이제 가볼 때가 됐소."

올슨 선생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잠깐 이해하지 못했다. 정신이 되돌아오고 그 뜻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글썽였다.

"정말 가실 건가요?"

플로네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없이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호호호. 당신은 내가 하는 말만 대신하는 버릇이 있지요. 오히려 난 당신 없는 저 곳이 더 두려울 거요. 외로울 것이오. 당신 없이." 그는 지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 날 위해 마지막 음악을 들려주지 않겠소?"

올슨의 책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갖가지 악기가 어우러진 교향곡이었다. 라흐마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플로네 선생은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다. 음 높이를 달리한 저음의 두 음이 번갈아 울렸고 강도를 달리하며 장중하게 퍼졌다. 그것이 끝나자 빠르고 강렬한 선율이 이어졌다. 뒤따라 오케스트라의 합주가 어우러졌다. 플로네 선생은 언제나 1악장을 좋아했다. 어둡고 슬픈 멜로디에서 탄생를 향한 소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2악장, 3악장은 경쾌하고 감미로웠다. 그것은 탄생과 지속이었다. 죽음에 이어 존재하는 탄생. 그것은 희망은 계속되고 삶은 늘 이어진다는 뜻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을 예찬하는 3악장이 밝고 웅장하게 끝났을 때 그는 눈물을 흘렸다.

"폴린 사람들은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가졌음에도 이곡을 제대로 연주하진 못하지. 나만이 진정한 연주자를 알고 있을 거요. 호호호."

그가 웃자 올슨 선생도 따라 웃었다.

"시는 어떤가요?"

"내 생애 가장 어려운 시였소. 그럼 한 번 감상해보시오."

올슨 선생은 웃는 얼굴로 그의 시를 감상했다. 이미 그를 마음에서 떠난 보낸 상태였다. 그의 시는 약속에 대한 것이었다. 오래전 존재의 쓸모를 찾아 떠난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시의 마지막은 이랬다.


그 오랜 세월 내가 찾은 것이라곤 한줌의 먼지.

모두가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

거역하고 싶지만 거역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난 이 자리에서 작은 욕심과 오만으로 거부하네.


내 피는 먼지가 되어 바다로 돌아갈 것이요,

내 살은 땅이 될 것이다.

내 먼지가 머무는 한 그 무엇도 만나고 오갈 수 없다.


먼지가 되려는 자의 마지막 약속이다.

첫 약속에서 시작한 마지막 약속이다.


시가 끝나자 책이 불에 타 재로 변했다. 올슨 선생이 주저 앉아 흐느꼈다. 플로네 선생의 피부가 조금씩 갈라져 벗겨졌다. 그의 피부는 먼지가 되고 있었다. 검은 먼지로 흩어진 팔과 다리에 이어 소멸은 몸을 타고 올라가 얼굴로 이어졌다. 그의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 그는 고대어로 우주를 올려다보며 작게 속삭였다. 그 뜻은 이랬다.


선택이 함께 하길.


그날 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바다를 물들이고 땅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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