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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파일럿 아카데미의 무한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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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0.09.1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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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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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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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520

작성
20.11.0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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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병문안 (1)

DUMMY

일이 정리되고 2일 뒤, 난 군병원의 침상 위에서 눈을 떴다.


처음에는 시뮬레이션이 실패한 줄 알고 벌떡 일어났지만 허리춤에서 아려오는 통증과 딱딱하게 느껴지는 코어 키의 감촉이 그것을 부정해주고 있었다.


환자한테까지 이런 걸 채워놔? 아무리 전쟁이 중요하다지만······.


난 코어 키를 옆으로 빼 논 다음 푹신한 베개에 떡진 머리를 눌렀다. 원래 집보다 더 편한 것 같네.


팔에 연결된 링거 덕에 배가 주리진 않은 것 같고.


깨어나고 하릴없이 천장을 쳐다보고 있자니 간호사가 병실 내로 들어왔고 난 내가 깨어났음을 알렸다.


그는 내게 앞으로 1주일 정도 입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는 내 상태를 점검했다.


설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그리고 결국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나갈 수 없으니.


난 습관적으로 목덜미에 손을 가져가 보았지만 멀티 기어는 그곳에 없었다. 코어 키는 굳이 가져다 두고 기어는 빼가는 건 무슨 심보인지 원······.


결국 조금 더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이 옆에 배달되어있는 병원식으로 손을 옮겼다.


*


그리고 다음날, 점심시간이 끝났을 때 병실의 문이 열리고, 군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문병인이 들어왔다.


“정신 차려서 다행이네요.”


그건 장교복을 차려입은 레아 앙뒤트였다. 그녀의 부상은 경미했다고 들었고, 겉보기로도 이마에 붙은 반창고 하나가 전부였다.


“뭐에요. 왜 웃어요.”


그녀가 조금 심술이 난 듯 날 째려봤고 난 내가 웃고 있었나 싶어 얼굴을 만졌다.


“아. 나 며칠 못 씻었는데.”


“상관없잖아요. 그런 거.”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탁상에 올려놓고 모자를 벗었다.


“이번 습격에서도 죽을 뻔 했다면서요? 정신 차리라고 주는 선물이에요.”


그녀가 가져온 것은 ‘내가 소중한 이유’라는 제목의, 익숙한 문자로 쓰인 책이었다.


“뭐야 이게? 자기계발서?”


난 생전 처음 보는 괴상한 제목의 책을 보곤 되물었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책을 뒤집어 표지를 아래로 내렸다.


“기껏 고생해서 그쪽 나라 언어로 된 걸 찾아왔으니 불평은 하지 마요.”


‘정말······. 본인이 죽을 뻔 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고 그녀는 칭얼댔고 난 뒤늦게 웃으며 고맙다고, 레아에게 인사했다.


내 인사를 받고 이상 말하기도 뭐했는지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침대 옆에 잠시 말없이 앉아 있다가 이불을 들췄다.


“어디 상처 좀 봐요.”


“야야! 잠깐만!”


“왜요~”


난 급하게 이불을 당기려고 했지만 레아는 웃으며 그걸 빼앗았지만, 이불 아래에 드러난 내 상처를 보고 그녀는 웃음을 거뒀다.


“이거. 누구 때문이라고 했죠?”


무표정을 넘어 조금 화난 것처럼까지 보이는 그녀, 난 어색하게 웃으며 날아간 이불 끝을 다시 당겨 덮었다.


“내가 과욕을 부려서 그런 거지.”


“아뇨. 엔도인가 하는 그 여자 때문이잖아요.”


“누가 그래?”


레아와 친하게 지내는 동기라면 레라레 인가? 그 여자는 본인을 구하려고 달려들어준 사람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닌 건가?


난 조금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레아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엔도 사키 본인이요. 매일 이야기하고 다녀요 자신 때문에 당신이 다쳤다고.”


“걔가?”


의외다. 그리고 당혹스럽다. 그때의 교착은 그저 서로간의 의사소통 문제로 일어난 불운에 가까운 사고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화를 내고 있는게 분명한 레아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사키는 너희 조 부조장을 지키려고 했고 내가 이렇게 된 건 상황이 꼬인 데다 내가 방심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대신 화낼 필요는 없어.”


“하지만······. 이미 몇 번 화냈는데요.”


멍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레아.


······아니 근데 왜 이제 와서 안 척 해?


난 황당해서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녀도 자신이 경솔했나 싶어 조금 불안해했다.


“결국 너네는 싸울 운명이구나.”


하긴 둘 간의 감정의 골은 결국 선대로 올라가게 되니, 짧은 시간에 해결됐을 거라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잘못된 추측인 것이다.


내 허탈한 말에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조금 옆으로 돌아앉았다.


“그래서. 퇴원은 언제래요? 다시 합류해야죠.”


물론이다. 난 계속 여기 남아있어야 했고 또 테트라와 싸워나갈 생각이었다. 지난 수백회의 루프를 지나면서 내 안에서 정신없이 흩어져있던 생각의 조각들이 하나로 뭉쳐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별로 떠올리고 싶진 않지만 단순계산으로 몇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젠 단순히 시뮬레이션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 더해 실제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억 기록의 정체 역시 알아내야만 했고 말이다.


앞으로 1주일 뒤면 퇴원을 할 테니까 그때 훈련에 합류하면······.


“아, 그러고 보니 너 훈련은? 이제 휴일도 끝났는데.” 설마 멋대로 이탈한 건 아니겠지?


내 눈을 보고 그녀는 무슨 의미인지를 눈치 챘는지 한쪽 볼을 부풀리며 대답했다.


“설마 훈련이 있는데 왔겠어요? 지금 부대 내부는 어떻게 테트라가 그렇게 잠입해 있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와 파괴된 시설들의 보수에 온 신경을 쏟고 있어요. 그 탓에 인원 운용에 잠시 공백이 생겼다는 거죠.”


“아하.”


······.


우리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슬 이제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내 속에 담아놓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녀에게 해도 되는 이야기는 없었다.


난 눈을 아래로 숙였고 그만 겉으로 튀어나와버린 내 침울한 표정을 보고 레아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야! 잠깐만!”


“왜요?”


난 반사적으로 그녀를 불러 세웠지만 할 이야기까지 생각해놓진 않았고 얼떨결에 그녀가 준 책을 들었다.


“이거 읽어볼게.”


“네. 그래야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등을 돌리려고 했고 난 머리를 마구 긁다가 하는 수 없이 내 본심을 말했다.


“나중에 시간나면 백화점에 갈래?”


아. 이건 아니지. 좀 더 말을 다듬었어야지.


난 내 실수에 스스로를 질책했지만 레아는 눈을 크게 뜨고는 입을 다문 채 날 쳐다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그렇게 해요.”


그리고 그녀는 병실을 나갔고 난 어느새 내 손에 들린 책을 몇 페이지 훑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지리멸렬하게 자기애를 강조하며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길게 늘여 써놓은 흔해빠진 자기계발서에 불과했고 솔직히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제목만 보고 골랐구만.”


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책을 덮고 그녀가 한국어 코너에서 종이책을 고르고 있는 광경을 상상하니 웃겼다.


번역되어있는 전자책으로 골랐어도 괜찮을 텐데 굳이 종이책을 선택한다는 점이 그녀답다고 해야 할까.


“환자분 무슨 일 있으셨어요?”


마침 간호사가 링거의 체크를 위해 병실로 들어왔고 난 고개를 저었다.


*


그리고 다다음날, 병문안을 온 것은 나와 친하게 지냈던 생도들 전원이었다. 아마도 인원을 모아서 온 듯 했다.


“왔습니다~”


가장 선두에 있던 미코가 두 손을 흔들며 말했고 차례대로 15조의 조원들에 더해 타냐와 메이가 들어와 넓었던 1인실을 가득 채웠다.


“좀 나눠서 와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물었지만 미코는 못들은 체 하며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내 상태를 물어왔다.


“좀 어때요? 사실 좀 더 일찍 와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스케줄을 맞추기 힘들었거든요.”


“훈련 없다며?”


“그렇다고 놀아요?”


내 생각없는 질문에 미코가 민감하게 반응했고 난 순간 당황해 이야기를 돌렸다.


“아니······그런가? 문안 받는 사람 입장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와 준 게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난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지만 타냐가 끼어들어 부연 설명을 했다.


“각자 피해 정비할 것도 있고 또 오늘 군병원 근처에서 위문공연이 있거든. 그곳으로 가는 걸 겸해서 시간을 맞춘 거지.”


“공연?”


내가 묻자 미코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 프린세스라고 유명한 가수인데 몰라요?”


“아.”


아이처럼 기뻐하는 미코의 말을 듣고 난 납득했다. 보통 콘서트는 한번 하고 마는 게 아니니까 그 뒤로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 전원이 다?


“아니. 메이는 나랑 돌아갈 거야.”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타냐가 말했고, 그럼 그렇지 싶었다.


결국 콘서트에 가고 싶은 건 미코와 피터 정도밖에 없는 모양이었고 사키는 미코가 가니 어쩔 수 없이 딸려가는 모양새인 듯 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야. 오랜만이다?”


난 사람들을 훑어보던 중 눈에 띤 피터에게 말했고 그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응? 그랬나? 오랜만인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먼 헛소리야. 그냥 체감 상 그렇다고.”


난 그를 구박했고 잠시 병실에는 웃음이 돌았다.


피터는 파일럿으로 선정되지 않아 지난 루프에서 배제되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메이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끌려와 멀뚱히 서있는 것 같은 그녀에게 다짜고짜 말을 꺼낼 수도 없었고. 난 그냥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끝냈다.


당연히 그녀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지만.


그리고 황대진은······. 그래 타냐가 데려왔나 보군. 둘이 꽤 친한 모양이니까.


난 솔직히 그를 대하기 꺼려졌지만 이런 때까지 티를 내고 싶지 않았고, 그도 이런 분위기에서 깝죽거릴 생각까진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들은 잠시 헛소리를 조금 더 하다가 내게 회복을 기원하며 물러갔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


엔도 사키는 여태껏 쥐 죽은 듯이 한마디 없이 멀뚱히 서 있다가 다른 이들이 나가고 나서야 병실에 남아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녀답지 않은 의기소침한 말투와 불안한 눈빛.


레아에게 얼핏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내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마도 강자로서 타인을 지켜야 한다는 고집이 잘못된 형태로 구현되는 것을 스스로의 눈으로 봤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건 순전히 불운이 겹쳐졌을 뿐인, 그녀의 가치관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굳이 잘못됐던 것을 찾자면 그녀가 다른 조원의 실력을 과소평가 했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도 반복된 루프를 통해 그들의 역량을 파악하고 있었던 나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을 뿐이고, 굳이 탓하자면 적절하게 조율해내지 못한 내 탓일 것이다.


그렇기에 난 고개를 저었다.


“조장답지 않게 왜 그래? 내가 방심한 탓이지.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었으면 받아치거나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얍! 하고 손날을 세워봤지만 사키의 기분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아니. 네 실력이 내가 알던 것에 비해 월등하다는 것은 이미 내 눈으로 봤다. 그때의 일은 순전히 내 자만에서 비롯된 팀킬이야. 당시 난 네게 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해버렸고 그게 조급한 행동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말할 건······.”


그녀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자조하며 스스로의 잘못을 호소했고 내가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해야 할 지는 알 수 없었다.


“상황만 허용된다면 내가 수발이라도 들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데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녀는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난 입맛을 다셨다.


이거.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은데.


*


“오늘은 선물이 잔뜩이네요?”


간호사가 동기들이 남기고 간 선물을 보고 말했고 난 기뻐할 수도 없어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서는 멀리, 작게 문 프린세스의 홀로그램이 비추고 있었다.


작가의말

숨은 설정: 엔도는 병문안 선물로 단도를 골랐다가 미코에게 한소리 듣고 내려놨다.


11월이 되었네요. 선작 10에 머물던 제 소설이 이렇게 매 화 댓글이 달리는 날이 왔다는 게 아직 꿈만 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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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땡땡이 (1) +14 20.11.26 1,138 7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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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1st=저울 (1) +9 20.11.21 1,395 6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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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서든 스트라이크 (4) +10 20.11.19 1,665 9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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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나의 지구를 지켜줘 (2) +28 20.11.13 2,211 133 12쪽
48 나의 지구를 지켜줘 (1) +12 20.11.12 2,225 110 12쪽
47 화성 침공 (5) +8 20.11.11 2,072 103 11쪽
46 화성 침공 (4) +19 20.11.09 2,137 111 13쪽
45 화성 침공 (3) +9 20.11.07 2,135 105 13쪽
44 화성 침공 (2) +11 20.11.05 2,202 105 12쪽
43 화성 침공 (1) +17 20.11.04 2,261 110 11쪽
42 병문안 (2) +8 20.11.02 2,180 124 12쪽
» 병문안 (1) +14 20.11.01 2,230 126 12쪽
40 439th=머나먼 길 (2) +12 20.10.31 2,187 110 13쪽
39 439th=머나먼 길 (1) +13 20.10.29 2,179 109 12쪽
38 438th=우주 아이돌 (4) +10 20.10.28 2,164 119 11쪽
37 438th=우주 아이돌 (3) +10 20.10.27 2,162 106 11쪽
36 438th=우주 아이돌 (2) +16 20.10.26 2,284 1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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