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인, 아니 사형! 내가 화산에 돌아왔소이다.” ㅇㅇㅇ(58.127)
화산의 장문인 화천은 참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전각들은 불타고 있었고 화산의 제자들은 시체가 되어 널부러져 있었다.
“너··· 40년 전 파문 당한 화선이냐?”
“아직 사제는 알아볼 나이이지 않소? 그렇소. 그 화선이오.”
화경의 경지에 올라 이미 한 번의 환골탈태를 겪어 70의 나이에도 서른 후반으로 보이는 장문인보다 더 어려보이는 모습.
그의 기억에 화선은 고작 자신보다 2살 어렸다. 그런데도 20살 때 그 모습 그대로라니.
“내가 좀 동안이요.”
참상을 저지른 장본인답지 않은 쾌활한 미소.
“아무리 파문 당했다해도 너 또한 한 때는 화산의 제자 아니었느냐. 스승님과 내가 힘써 단전을 폐하지도 무공을 빼앗지도 않았거늘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화산은 거짓된 존재입니다. 그걸 깨닫지 못한다면 화산은 어차피 쇠락할 것. 그 전에 맥을 끊어주는게 내 도리라 생각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헛소리 집어치워라.”
장문인은 검을 뽑아 그를 향해 겨누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천천히 그 주변에 매화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빠르고 화려하며 효율적이기 이를데 없는 검격. 초식들이 물처럼 이어진다. 그 공격을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막아내는 화선이 비상식의 영역에 걸쳐있는 것이었다.
“매화라 그립구려. 그 매화가 사형을 화경에 붙잡아두고 있는것이지만.”
“무슨 소리냐.”
“내 검을 보여주겠소.”
원래 사이하고 살기가 짙다고 꺼려졌던 화선의 검이 움직인다. 그의 초식은 황량했다. 분명 그가 펼친 이십사수 매화검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의 검에서는 매화가 아닌 황량한 사막의 바람이 느껴졌다.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삭풍이 베어낸듯 모래바락이 할퀴고 지나간듯 모든것이 깎여내려갔다.
“옛부터 궁금했소. 매화 따위 없는 이 돌산에 세워진 화산은 왜 매화에 집착하는지. 알고 보니 화산의 초기에는 매화검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오. 어느 순간 한 천재가 자신의 검에 매화의 심상을 담은 뒤 줄줄이 그를 따라한 것이지.”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왜 쫒겨났다 생각하오. 화산의 비사가 얽힌 서책을 발견했기 때문이지. 화산은 매화를 담는 곳이 아니였단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화산의 검은 무엇을 담느냐!”
“심상을 담는 것이요. 매화는 옛 고수가 도달했단 그만의 심상. 그걸 따라 모두 매화만을 담으려하니 거짓된 검을 펼치게 되는거지. 지금의 화산의 검은 모두 거짓을 담은 사라져야할 것이요.”
“거짓을 담다니. 화산은 매화의 산이다. 네가 틀린 것이다.”
“매화가 없는 돌산에서 말이 된다 생각합니까? 서책에 한 장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지. 화산을 활화산이라 착각하고 들어온 한 제자는 결국 검에 불의 의지를 담아냈다고. 어떤 남색을 탐하던 제자는 밤꽃향을 담았고. 즉, 화산의 이십사수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요.”
“그러면 넌 무얼 담은 것이냐”
그는 천천히 답했다.
“파문 이후 난 사막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끝없는 모래와 황량함을 마주했지. 폐허, 허망, 공허, 황량. 모든 걸 잃은 나와 닮은 심상이 거기 펼쳐져있었고 난 그걸 담아냈소. 그랬기에 현경에 도달했습니다. 이게 진짜 화산의 검이자 내 검인 이십사수 폐허신검이요.”
검 끝에 모래와 바람이 몰아쳤다.
“거짓된 화산은 오늘 사라지고 그 위에는 폐허만 남을 것이니. 이게 진실이고 참이로다.”
본질을 되찾은 화산의 검이 화산을 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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