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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집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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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laa
그림/삽화
리건
작품등록일 :
2020.11.17 09:21
최근연재일 :
2021.02.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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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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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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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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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12쪽

길은 멀고 사람은 더 멀고 (3)

판타지 소설로 송나라 역사를 배우다!




DUMMY

태조와 관료들 사이에 그런 일화들이 많아 문관들은 문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뒤에서 원망을 많이 했다는데 한강은 오히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조광윤은 말 위에 앉아 수십 년 세월을 보낸 사람이었다. 온통 배반과 전쟁의 시대였던 오대를 거쳐서 마침내 황포를 입고 태조의 자리에 올랐으니 본래 문을 그다지 존중할 것 같지 않았다. 허나 나라를 통치하려면 문관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려면 무장을 눌러야 했다. 그 후 태종 조 이래의 백 년 동안 사대부들은 역대 최고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대부가 ‘지고무상(至高無上)’을 누렸단 말은 비유에 불과했다. 근래 추밀사 문언박이 천자에게 ‘천하는 사대부와 함께 다스리는 것이지 백성과 함께 다스리는 게 아닙니다.’라고 했다는데 사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사대부의 권력은 황권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시대 지고무상의 지위를 누렸던 사람은 어가 정 중앙에 홀로 다닐 수 있던 한 사람이었다.


노면이 이백 보로 광장처럼 넓은 어가는 한 줄기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었다. 그 어가의 중앙에 대략 육십 보 넓이로 천자의 출행에만 쓰였던 어도(御道)가 있었다. 어도 양쪽에는 수로가 나 있어서 일반 백성들이 다니는 길과 분리해 놓았다. 다시 말해 어가는 어도를 중심으로 양옆에 수로가 있었고 그 수로 바깥에 일반인이 다니는 길, 그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수로 바깥으로 행인이 실수로 물에 빠지지 않도록 검은색의 목책을 둘러놓았고, 목책은 황궁의 남문에서 외성의 남문까지 주욱 이어져 있었다.


어도를 보고 있으면 후세 고속도로의 중심에 만들어놓은 안전지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녹색으로 덮여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 두었던 것은 아니고 천자가 성 밖 교외로 제사 드리러 나갈 때 쓰는 용도였다. 어가는 함부로 밟고 다니지 못하도록 경비가 삼엄했다. 허나 어가가 경성 중심부를 관통하는 중심선이긴 했으나 동쪽이나 서쪽과 완전히 분리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매 백 보 간격으로 어가를 가로지를 수 있는 건널목을 만들어 놓았다. 그곳만은 검은 목책으로 막아 놓지 않았고 수로 위에는 석판을 걸쳐 놓아 통행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한강 일행은 어가를 가로지른 후 다시 말에 올라 성 서쪽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그곳을 지나던 채경(蔡京)이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한강 일행이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세째 형, 무슨 일이야?”


채경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던 젊은이가 채경이 걸음을 멈추자 따라서 고개를 돌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채경의 시선은 한강 일행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잘못 본 것 같아······.”


“뭘 잘못 봤다는 거야?”


젊은 선비는 궁금해서 계속 물었다. 그의 생김새는 채경과 무척 닮았고 준수한 모습이 채경 못지 않아 아주 가까운 혈육 같아 보였다. 사실 그가 바로 채경의 동생인 채변(蔡卞)으로 자가 원도였다. 인물이 출중하게 생긴 젊은 선비 두 사람이 길에 서 있자 지나가던 여자들이 계속 쳐다보았다. 아예 대놓고 뚫어지게 보는 사람도 있었고 안 보는 것처럼 흘끗거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두 사람을 관찰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채경은 정신을 차리고 채변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서태일궁에서 만났던 두 사람이 조금 전 말을 타고 간 일행 중에 있었던 것 같았어. 생긴 게 무척 닮았더라고.”


채경의 말을 듣고 채변은 아,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서태일궁의 두 사람이란 이미 경성 안에 퍼져서 불리고 있는 그 노랫말을 지었다는 작가와 그 동료였다. 그날 채변은 그 모임에 나가지 못했으나 그 일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맞기는 한 거야?”


그도 고개를 돌리고 서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들은 조금 전 국자감 문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태일궁의 벽에 노랫말을 써놓았다는 그 선비들이라면 일부러 백방으로 찾으려 해도 어려웠을 텐데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으니 이렇게 신기한 일도 있을까? 채경은 이미 인파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쫓으며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 아마 잘못 봤을지도 모르지. 이제 돌아가자. 내일 시험 보러 가려면 오늘은 푹 쉬어야 하니까, 시험이 끝나고 알아봐도 늦지 않을 거야.”


* * *


주남은 멍한 표정으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로 잘 광을 낸 동경이 반짝거리며 눈을 찔렀다. 거울의 한 가운데 꽃처럼 예쁜 얼굴이 반사되고 있었다. 눈썹은 그리지 않아도 갸름했고 입술은 연지를 바르지 않아도 붉었으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끌고 갈 듯한 맑고 고운 눈동자 아래로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에는 분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다만 오늘은 달도 꽃도 시기 질투할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 넋을 잃고 멍하게 있었다.


“주남, 이 바보야! 그 사람이 뭐가 좋다고······.”


주남은 거울을 보고 앉아 웅얼거렸다. 잠에서 깬 후 빗질을 하려고 얇은 속옷만 입은 채 거울 앞에 앉아 끊임없이 혼잣말을 늘어놓는 것이 마치 주술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주남은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느꼈던 따뜻함을 간직하려고 오른손은 꽉 쥐고 있었고 그대로 펴고 싶지 않았다.


겉옷을 두르지 않아 한 겹 얇은 속옷은 남달리 발육이 좋은 가슴을 완전히 가려주지 못해 봉긋해 보였다. 워낙 얇게 짠 천으로 만든 속옷이라 그 밑에 받쳐 입고 있는 가슴 두렁이의 감청색 색깔이 훤히 비쳤다. 속옷 깃을 여미는 곳에는 뽀얀 속살이 뽀얀 살빛을 띠고 있었다.


방안에 화롯불이 활활 타고 있어 봄날처럼 따뜻했으므로 주남은 옷을 그렇게 얇게 입고 있어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시중을 들던 주남의 하녀만 옆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언니, 옷을 하나 더 가져다드릴까요?”


주남은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어려서 교방사에 들어갔고 억지로 악기와 글, 그림과 가무 거기에 시부까지 배웠다. 열한 살이 채 못 돼 아름답고 유명한 언니들을 따라 주점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좀 더 나이가 들자 혼자서도 술자리에 들어갔고 요사이는 최고의 행수라 불리며 차츰 유명해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녀가 찡그리면 찡그리는 대로 웃으면 웃는 대로 마음을 빼앗겼던가. 진지한 척하는 사람들도 그녀를 자꾸만 훔쳐보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한 사람만이 비록 자기의 춤을 보고 웃고 떠들기는 했어도 눈으로만 볼뿐 마음을 두지 않았고 빈정거릴 때는 또 얼마나 야속하게 굴었던가.


주남은 갑자기 입술을 꼭 물었다. 한강이 번루에서 했던 몇 마디 말 때문에 얼마나 비웃음을 받았던가. 그래서 반드시 복수를 해주리라 마음 먹었는데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건네준 차 한 잔으로 그런 마음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냥 차 한 잔뿐이었잖아······.내가 차를 마시자고 하면 놀라 자빠질 사람이 어디 한두 명뿐이겠어. 고마워서 까무러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작자잖아.”


가늘고 보드라운 손가락으로 거울에 비치고 있는 자기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요 몇 년간 관직이 높거나 귀한 사람도 많이 보았고 박식하다는 명사들에게도 술 시중을 들었다. 그들은 자기 앞에서는 모두 마치 공작이 꼬리를 펼쳐 보이며 자랑하려고 하듯이 다투어 재능을 뽐내려고만 들었지 누구 하나 자기에게 관심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한 번도 술을 많이 마시면 몸을 버린다고 자기에게 차를 따라준 사람이 있었던가? 그들은 구토가 일 것 같은 자기들의 욕망을 채우려고 자신을 취하게 하지 못해 안달했다.


다만······.그 사람은 자기 때문에 그렇게 부드러웠던 것인지 아니면 늘 행해오던 습관이었을 뿐인지 그것을 모르겠다.


주남은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인 줄 몰랐다. 게다가 그는 오늘 떠난다고 했다. 경성에 다시 온다고 해도 그게 몇 년 몇 월일지 알 수도 없었다. 그 사람이 오더라도 그때는 자기가 동경성에 남아 있게 될지 어떨지도 몰랐고 다시 만날 기약도 없었다.


그렇지. 그를 배웅하러 가는 거야.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그 사람이 어떻게 겨우 두어 번 만난 가기를 기억이나 하겠어?


주남은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풍만한 가슴이 덩달아 떨렸다. 갑작스럽게 일어나자 느슨하게 꼽아 놓았던 비녀가 떨어지자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윤기가 반들반들한 머리가 최상품의 비단 같았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가 다시 망설였다.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데 허둥지둥 배웅하러 간다고 하면 자기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얼굴에 일었던 홍조가 사라지고 입술마저 새하얗게 변했다.


‘두 번 만난 것 뿐인데 어떻게 그 원수를 좋아할 수 있는 거야!’


“묵문, 너 빨리 가서······. 이 손수건을······.아니지. 마차를 준비하라고 해, 빨리!”


주남의 마음은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최후에는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 원수를 만나야만 했다. 하녀는 네, 대답하고는 급히 뛰어나갔다.


묵문이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 주남은 갑자기 또 펄쩍 뛰었다. 맨발로 방안에서 맴맴 돌기만 했다. 하녀를 내보내고 난 후 머리를 단장도 하지 않아 산발 상태였고 옷도 아직 갈아입지 않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시중을 들던 묵문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하얀 맨발로 관서 지방 강족들이 만들었다는 양모 양탄자 위를 허둥지둥하며 왔다 갔다 했다. 동경성에서 가무가 절색이라는 명기는 같은 소리를 계속 되뇌기만 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 * *


신정문의 3중 누각이 점점 크게 다가왔다. 마차와 행인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성문에는 들어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당연히 이곳은 항상 붐빌 수밖에 없는 곳이기도 했다.


루중무는 얼따말은 타지 않았다. 애마의 발은 많이 회복되었으나 다시 타기가 아까웠던 탓이다. 무엇보다 류중무도 지금은 관원이 되었으며 본관 품계는 한강보다 한 급이 더 높은 삼반봉직이 되었다. 진주 변경 지역에 있는 보의 보주 신분이라 역참의 말을 이용할 자격이 있었다.


잿빛 거세마에 올라앉아 진주에 가지고 갈 토산품들을 얼따말 위에 실었다. 류중무는 안장 위에 몸을 곧추 세우고 바로 앉아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채 정면만 똑바로 주시했다. 표정은 평상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득의만면이란 네 글자가 지금 그의 자세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자세만 보면 과거에 급제한 진사가 말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류중무가 위, 소리로 말을 세우더니 손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한강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노인 한 사람과 몇 명의 노복이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유였다.


류중무는 말을 몰아 앞으로 갔고 한강은 두 선배에게 미리 말을 한 후 장유 앞으로 다가갔다. 류중무와 한강은 사람은 장유 앞에서 말에서 내려서서 예를 갖추었다.


“장사장께서 이렇게 수고스럽게 나오셨습니까?”


한강의 말을 듣자 장유는 일부러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옥곤은 왜 남에게 하듯 그리 말하는가. 우리 사이의 우정이 얼마인데 배웅하러도 못 와야 하는가?”


장전과 정호는 말을 타고 가까이 다가와서 먼저 장유를 보고 난 후 한강에게 말했다.


“옥곤, 우리에게 소개해주지 않을 텐가?”


“아! 네.”


한강은 서둘러 두 선배에게 장유를 소개했다.


“이분은 학생이 두 분 선생님께 말씀드렸던 장사장이십니다.”


“장?······.장!”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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