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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禎福) 입니다.

먼치킨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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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禎福)
작품등록일 :
2019.02.16 23:49
최근연재일 :
2020.03.08 06:00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784,215
추천수 :
14,561
글자수 :
598,512

작성
19.02.27 07:00
조회
12,659
추천
175
글자
12쪽

4. 용을 죽여야 한다.

DUMMY

그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시운이었다.

보통 사극에서 보면, 높은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게 되면, 당연하게도 선물을 내려주지 않던가.

그런데 이 네가지 없는 용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 받기만 하고 끝이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다른 존재들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이다.

그 모습에 슬쩍 한숨으로 포기한 시운이 그에게 다가가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몸을 쓰는 일에는 전문이라는 기사들도 처음에는 힘들어했었다.

그런데 용이라 그런지, 설명해 준 것만으로도 처음부터 능숙하게 물건들을 다루는 크라시리우스였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으며 ‘무지막지한 존재 같으니라고.’ 속으로만 짓씹어 삼키는 말이었다.


그렇게 삼 일을 동굴에서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비행기를 타고 놀던 크라시리우스.

사 일째 되는 날에는 그것들을 자신의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다시 사라져버리려고 했다.

그 모습에 기겁한 시운이 화들짝 놀라며 크라시리우스를 불렀다.


“위, 위대한 주인이시여!”

“으응? 왜? 또 할 말이 남았느냐?”


살짝 짜증이 섞인 그의 눈빛만으로도 오금이 저린 시운이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용기를 내야만 할 시간이었다.


“드, 릴 말씀이 있습니다. 혹시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실지요.”

“그래. 뭐 나도 바쁘긴 하지만 잠시라면 네 얘기를 못들어 줄 것도 없다. 그래, 말하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빛만으로도 숨이 턱하고 막히는 시운이었다.


“정말 죄송한 말씀이옵니다만, 전에 주인님의 아름다운 본체를 본 후에 잠시도 그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사옵니다.”


그 말에는 기분이 좀 풀어졌는지, 약간의 미소를 얼굴에 머금는 크라시리우스였다.

그를 본 시운이 약간은 더 용기를 내었다.


“하지만 딱 한 군데가 다른 곳보다는 약해 보이는 것이 무척 안타까...”

“뭐라! 약해 보이는 곳이 있었다고!”


갑자기 큰소리로 따지고 드는 크라시리우스의 말과 표정에 잔뜩 용기를 북돋았던 시운도 바로 오줌을 갈겨버리고 말았다.

비록 반쯤 엎어져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서 있기라도 했던 시운이었다.

그것도 이제는 끝이었는지, 저도 모르게 바닥에 바짝 엎어져 버렸다.

그것도 오줌을 시원하게 갈겨버려 흥건해진 바닥에 그대로.

그런 시운을 구해주는 목소리가 옆에서 울려왔다.


“위대한 주인이시여.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방금 시운이 한 말은 주인님이 약해 보인다는 말이 아닌 것으로 아옵니다. 그저 다른 부분은 다 위엄이 가득해 보였는데, 오직 한 곳만 다른 곳과 비교해 볼 때, 조금은 약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에서 올린 말씀인 것으로 아옵니다. 넓으신 아량을 베푸시어, 시운의 말을 끝까지 들어봐 주신다면, 위대한 존체를 더욱 아름다이 꾸밀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잘 아시다시피, 시운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좋은 생각들이 많이 있지 않았사옵니까. 살펴주시옵소서.”

“살펴주시옵소서.”

“살펴...”


한목소리로 살펴달라고 하니, 조금은 마음이 풀어지는 크라시리우스였다.

그래서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잔뜩 끌어올렸던 노기를 가라앉혔다.

그러나 여전히 시운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심지어 호흡마저 멈춰 있었다.

얼굴은 창백해졌고, 눈도 뒤집어져 있었다.

거기에 엎어져 있는 바닥에는 시운의 입에서 흘렀을 법한 하얀 거품들이 흥건해 있었다.

크라시리우스의 노가 가라앉자마자, 시모나가 손을 휘저었다.

잠시 옅은 은백색의 기류가 시운을 감싸고 사라졌다.

그제야 시운이 숨을 다시 쉬기 시작했고, 눈도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입가에는 여전히 거품이 묻어있었지만, 이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시운은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형님들과 누님들 덕분에 너무 편하게 살아왔다고 자책도 했다.

이 둥지의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기기도 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도와주는 형님들과 누님들을 배신할 수도 없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다시 다짐을 확인한 시운이 더욱 조심스러워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위대한 주인이시여. 제발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는 저희 세계에서 보았던 아주 조그만 용이 어떻게 자신을 더욱 아름답게 포장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어서 위대한 주인님께 도움이 될까 하고...”


시운은 용들 앞에서 도마뱀이라는 단어를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쪽 세계에서 기어 다니는 도마뱀에 대한 예를 들면서도 단어를 ‘조그만 용’으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끝까지 이어갈 수가 없었다.

자신을 가장 위대하다고 믿고 있는 존재가 비록 세계는 다를지라도 조그만 용과 비교하는 것에 대해 또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더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관심을 끌게 되었는지, 목소리에서 호기심이 느껴졌다.


“오호. 그랬더냐? 그래, 그럼 어디 계속해 보아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토해낸 시운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주변에 있던 모두도 이 순간 그 어떤 기척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시운뿐만 아니라 모두가 긴장하고 있다.

시운이 그런 분위기를 확인하고는 더욱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가 본 그 작은 용은 자신이 더욱 돋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머리 아래, 윗목 부분을 크게 부풀리는 특기가 있었사옵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존재들조차 그 용을 두려워하여 몸을 피하게 되었사옵니다. 하온데 위대한 주인님께서는 그 부분이 오히려 다른 부분보다 얇아 보여서...”


시운이 말끝을 흐리자, 크라시리우스는 거기까지 듣고도 이해한 것인지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내 윗목 부분을 부풀려서 더 위엄을 높여보자는 말이냐?”

“그, 렇사옵니다, 위대한 주인이시여.”


그때부터 시운은 크라시리우스가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목욕탕에 갔을 때, 등과 몸에 문신한 사람들이 고추에 구슬을 박아서 크게 만든 것을 떠올렸다.

물론 그런 것을 직접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시운도 그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그렇게 크라시리우스로 하여금 다시 본체로 돌아가도록 유도했다.

시운의 말을 들은 크라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쓸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드디어 고개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흐음... 그래, 한번 해 보자꾸나. 내가 더 위대해 보일 수 있게 꾸며보겠다는데 그걸 말릴 수는 없지.”


다시 본체로 돌아온 크라시리우스가 자기 목 앞부분에 거울 비추기 마법을 사용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가 웅혼한 목소리를 내었다.


“확실히 그 말을 듣고 보니까, 그 부분만 약해 보이는구나. 그럼 네 뜻대로 한번 해 보아라.”

“위대하신 주인님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무한한 영광이옵나이다.”


그때부터 시운은 리치들의 도움으로 하늘을 날면서 크라시리우스의 목 부분을 재기 시작했다.

둘레를 재고, 비늘을 들추어 그 속까지 일일이 확인해 갔다.

간지럽다고 잠깐씩 크라시리우스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에게는 잠깐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었지만, 그 주변에 붙어 있던 시운과 리치들은 자연재해를 만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래도 시운의 생각대로 목 부분에 있는 비늘들을 하나씩 들춰보며 속살도 확인해 나갔다.

비늘 안에도 두꺼운 가죽이 보였다.

살짝, 아니 엄청나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운은 관찰을 계속해 나갔다.

심지어 미스릴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던 끌과 송곳, 칼을 가지고 비늘 안쪽에 있는 가죽을 찔러 보기도 했다.

다시 크게 실망했다.

흠도 나지 않았다.


모든 확인을 마친 시운이 다른 리치들에게 눈짓했다.

인제 그만 끝내도 된다는 뜻이었다.

시운을 도와 크라시리우스의 목 주변을 날던 리치들이 서로를 확인하고는 시운과 함께 바닥으로 내려섰다.

모두 끝났다고 알리자, 크라시리우스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바로 사라져버렸다.


케로마가 주변의 원로들에게 눈짓한 후에 시운을 데리고 반대쪽 구석으로 움직였다.

이어서 주변을 엷은 막으로 감싸버렸다.

모두를 둘러본 케로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더냐.”


짧은 질문이었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시운은 생각했다.

한참 동안 궁리한 시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운 입장에서는 저들의 제한된 상황을 이해하고 최대한 잘 활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시운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전 자료들을 보다 보니까, 용잡이 전설에 대한 얘기들이 종종 나오던데, 그 용들은 어떻게 잡은 겁니까?”


시운이 원하는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질문을 해 왔지만, 그들도 이해하는 부분이었기에 케로마가 바로 대답해 주었다.


“일단 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할 것 같구나. 용들이란...”


그의 설명에 의하면, 용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진다고 했다.

그 강해진다는 의미가 그저 몸이 커지고, 마나가 많아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흔히 피부라고 할 수 있는 속 가죽도 더 질기고 두꺼워진다.

그 속 가죽을 감싸고 있는 비늘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전설에 등장하는 용잡이에 대한 내용도 모두가 어린 용, 최고 오래된 용이라고 해도 채 2천 살이 되지 않은 용이었다고.

그에 반해 이 둥지의 주인은 자그마치 1만 5천 살이 넘어간다고 했다.

그 말은 그 가죽도 중간에 변태를 하긴 했지만, 거의 1만 년 동안 두꺼워지고, 질겨진 것이라고 했다.

입이 떡 벌어진 시운이 말까지 더듬었다.


“그, 그럼 도저히 방법이 없는 겁니까?”


무엇에 대한 방법인지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해 케로마는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는 않다. 기사들의 온전한 오러에는 가죽이 잘리기도 한다. 마법도 7써클 이상의 마법이면 찢어지기도 하고.”


시운은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머리 좋은 저 주인이 받아 들일만 한 이유도 필요했다.

자기 몸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폭탄을 가까이할 만큼 매력적인 이유여야 했다.

물론 이 리치나 기사들이 자기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믿음은 있다고 했다.

자기의 마법에 대한 자만심이라고 해야 할까.

시운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혹시 미스릴에 마법진을 그려서 7써클의 마법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허어.”


이번에는 리치들이 고심에 빠져들었다.

물론 이들은 모두 9써클에 다다른 마법사들이기에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마법을 바쳐줄 마나석을 그 미스릴에 박아 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몸에 해를 줄 수도 있는, 비록 그에게는 우스운 정도겠지만, 마법을 몸 가까이에 붙이는 것을 허용할 리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고민에 빠진 그들에게 시운은 일단 자기 생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시운의 말에 깊이 빠져든 원로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흔들어대기도 했다.


그때부터 시운과 리치들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기사 중에서도 원로급이 참여한 회의가 매일 벌어졌다.

조별로 따로 연구하던 과제도 버려두고 크게 두가지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하나는 차원 소환 마법진의 재해석과 역소환 마법 연구.

두 번째는 가장 두꺼운 용의 가죽을 찢는 연구.

처음에는 이들이 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시운이었다.

그 이유는 이들에게는 결코 풀 수 없는 금제가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접 죽이려는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어서 금제가 발동하지 않았다.

시운이 계속 ‘주인님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이라고 세뇌하듯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용의 가죽을 찢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말장난 같지만, 용을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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