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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 검은머리 검은머리 주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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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박
작품등록일 :
2023.05.10 13:34
최근연재일 :
2023.05.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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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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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벌레

DUMMY

가방을 꺼내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정리했다.


사람 하나는 너끈히 납치할 수 있을 것 같은 망태기에서는 네 통의 편지와 만 이천 두캇 정도의 수표, 기다란 날짐승의 깃털을 장식해 만든 모자와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전통 가면이 나왔다.


여기까지는 잡템. 모두 돈으로 치환하거나 쓰레기통에 보관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튀어나온 이 수정구슬은 조금 귀했다.


[세이건 일족의 수정구]

[D 등급, 89%]


[별을 보고 목초지를 찾아 떠도는 세이건 일족의 수정구다.]

[스킬 천기누설에 보너스를 추가한다.]

[천기누설로 인한 역천의 패널티를 15% 경감시킨다.]


내구도도 89% 정도면 거의 새거나 다름없고 이 정도면 초반 천문술사가 가지고 있기엔 나쁘지 않았다.


최소한 다른 주술사 트리를 타다가 다시 천문술사로 되돌아올 때까진 그대로 써도 나쁘지 않은 정도. 나는 혹시나 싶어 불러봤다.


“인벤토리.”


그러나 상태창을 외쳤을 때와는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멀쩡한 지푸라기와 천을 모아 수정구슬을 지킬 수 있는 원시 에어캡을 만들었다. 뽁뽁거리지 않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으그극, 이제야 좀 정리가 끝났나.”


여관의 종업원에게 숙박 체크아웃 시간을 물어본 뒤 방에 돌아왔다. 남은 시간을 딱딱 칼같이 말해주진 않았고, 도시의 중앙에 있는 대성당에서 종이 울리면 연장을 하거나 나가라는 소리만 들었다.


나도 만 이천 두캇짜리 전표가 있긴 했으나 이 만 이천 두캇이라는 돈이 게임상으로는 적잖은 돈이었단 것만 기억하지 실제로 이 도시에서 얼마나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인지는 몰랐기에 일단 연장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 대충 정리는 끝났고... 남은 건 이거뿐인데. 상태창.”


[노엘]


....


[특성: 상속, 합성]


...


주술사의 유일한 특전, 유산 상속 기능과 합성 기능이었다.


본래 PC용 게임이었던 미드나이트 래거시에서는 설정을 누르거나 귀걸이를 누르면 가능했던 것과는 달리 현실판으로 변해버렸으니 이렇게 특성에 편입된 듯했다.


보통 특성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모두 가리지 않고, 캐릭터에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다면 모두 적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그 외의 특성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상속과 합성만이 있는 건 그 자체로 특기할 만한 상황이었다.


“뭐, 따로 부정적인 특성을 빼겠다고 난리를 칠 필요는 없으니 다행인가.”


나는 상태창을 눌러 두 특성에 더 자세한 설명을 살폈다.


[상속]

[이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의 유산을 상속받습니다.]


[합성]

[이 캐릭터는 여러 가지 재료를 하나로 합칩니다.]


간단명료하게 올라온 문구들, 그러나 어디에도 유산 기능이나 합성 기능을 활성화하는 창은 뜨지 않았다.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게 맞겠지.”


일단 합성은 나중에 게임에서처럼 거대한 솥을 구한 뒤 다시금 생각해보고, 유산은... 캐릭터를 키울 수도 없는 지금, 진짜 없는 기능이 돼버렸으니 괜히 신 포도를 쳐다보지 말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편하리라.


‘부모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상속이라는 특성이 있으니 뭐라도 가져갈 수는 있을 텐데, 스토리 상 주술사 캐릭터에겐 부모가 없었다.


땅에 버려진 고아를 부족의 어머니, 부족의 유일한 주술사가 가엽게 여겨 데려왔으니 양엄마는 있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실질적으로 아이의 육아는 부족의 모두가 공동으로 했기에 부족의 사람들은 입양이란 제도를 몰랐다.


완전히 상속이란 특성에 대해서 기대를 버린 나는 손을 털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일단 현 상황에 대한 정리는 이것으로 끝났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여관 방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낡은 겹 쇠에서 나는 비명도, 저 멀리선가 올라오는 썩은 내도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진 못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리고 생경한 마음으로 여관을 떠나 거대한 도시에 몸을 맡겼다.


댕- 댕- 댕- 댕-


저 멀리 어딘가에서 울리는 종도 이방인의 새로운 시작을 환영하듯 울려 퍼졌다.






*****






내가 지금 거닐고 있는 도시, 위겐도르프는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향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도시였다.


중세의 악명 높은 오·폐수를 잘 관리해주는 상하수도 덕분에 거리에는 오물과 악취가 적었으며, 대포와 화약의 발달로 인해 성벽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게 되자 남은 공간에 세운 공원은 현대 유럽의 그것과 크게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위겐도르프에 이웃에는 대륙의 유명한 명물, 칼 마사드라 아카데미까지 있었다.


우수한 칼 마사드라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자주 들리기에 자연스레 도시의 상업이 발달했고, 곧게 뻗은 대로변에는 노점상과 배곯는 예술가들이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거지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다양한 종족과 인종의 신입생들이 해마다 들어오기에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가 뒤섞였고, 온갖 종족의 사람들이 모였기에 괴인들도 즐비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치안이 유지되는 도시에는 긍정적인 열기로 가득했기에 도시의 사람들도 다양한 종족의 괴인들도 그저 도시의 일부분으로 여겼고, 어지간한 일에는 무관심해졌다.


그랬으니, 지금 내가 받는 시선은 내가 얼마나 괴상한 몰골을 하고 있는지 반증해주는 증거가 되리라.


맴- 맴- 맴- 맴-


“엄마, 저게 뭐야?”

“쉿, 조용히 지나가렴.”


나는 무더운 여름날, 미친놈처럼 로브에 꿀을 덕지덕지 바른 채 두 팔을 쭉 펴고 공원을 나돌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 너무나 따갑다.


나도 수치심은 알았기에 얼굴에는 가방에 있던 전통 가면을 썼다. 도시의 외곽에 조성된 공원을 돌아다니는 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어지간한 골목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점차 꼬여가는 벌레와 모여드는 시선이 내게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냥 이 시간에 다른 히든 피스나 찾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오를 때쯤.


“....상태창.”


[선택한 축복: 어머니 대지]


다시금 열정이 불타올랐다. 나는 품속에서 꿀통을 꺼내 헤진 곳에 덕지덕지 이어 발랐다.


‘꿀을 좀 더 발라야 하나?’


수중에 있는 돈으로 온몸에 잔뜩 바를 수 있는 양의 꿀을 살 수 있었다. 노엘의 가방 속에 있던 전표에 돈이 많았던 건지, 아니면 그저 꿀값이 좀 싼 건지는 모르겠다.


‘상점에서 금속이나 포션 외에 다른 걸 사봤어야 말이지.’


아무튼 나는 덕지덕지 꿀을 바른 채로 기다란 검정 로브와 전통 가면을 쓰고 팔을 대자로 벌린 뒤 걷고 있었다.


이세계 전생 이후 스트레스 장애로 미쳐버린 건 아니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위이이이이잉...


내 주위에는 벌써 온갖 벌레가 꼬이고 있었으니까.


날파리, 모기, 벌, 개미...


아무리 근대라지만 이곳도 어엿한 도시인데 이렇게나 벌레가 많은 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꼬이기 시작하자, 점차 온몸이 가려워졌다.


“아야...!”


개중 몇몇 벌레들은 로브와 옷차림 속으로 기어들어 와 온몸에 소름이 돋게도 했고, 어떤 놈들은 날카로운 이빨이나 침으로 찌르기도 했다.


벌레를 극히 싫어했던 원래의 몸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


그러나 다행히도 노엘의 몸은 징그럽거나 역한 것에 대한 역치가 낮은 모양인지, 여관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그것을 맨손으로 잡아 가방에 넣을 정도로 비위가 좋았다.


충술사로써의 재능도 확실히 있단 것이겠지.


아무튼 나는 점차 부정적으로 바뀌는 시선을 살피며 조용히 공원에 난 길을 벗어나 샛길로, 수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부스럭, 부스럭...


그동안에도 벌레는 조금씩 더 모였지만 이전처럼 확 모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한계치에 달한 것 같으니 빨리 봐둔 곳으로 가야만 했다.


몇 분 정도 수풀을 해치고 걷자 작은 공터가 나왔다. 바위에 꽂힌 검이나 히든 피스 같은 특별한 무언가는 없었지만, 그곳에는 다름 아닌 벌집이 있었다.


벌.


충술사에게 60억 마리의 권속이 있다면 벌은 그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 1억 마리의 권속이 있대도 벌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천만 마리, 십만 마리, 천 마리... 세상에 한 마리의 권속도 없어진다면 벌은 그제야 세상에 없는 것이다.


벌은 충술사의 알파이자 오메가요,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을 제외한다면 전천후 만능 일꾼이다. 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충술사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주가 달라질 정도다.


멀쩡한 축복도 받지 못하고, 일종의 ‘꼼수’를 통해 오직 한 군체만 종속시킬 수 있는 내게 벌 이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읏차.”


나는 그대로 잡화점에서 산 중고 가방을 꺼내고 로브를 벗어 그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몸 주위에 있는 벌레들도 모두 털어 중고 가방 안으로 넣었다.


어느 정도 주변에서 날아다니는 벌레들에게서 벗어난 뒤에는 주위의 모래를 주워 몸에 묻은 꿀과 비볐다. 그러자 꿀은 흙 묻은 꿀이 되어 더 쉽게 떨어졌다.


온몸의 꿀을 다 털어내는 동안 벌집 주위의 꿀벌들은 먹이를 들고 온 이방인에게 흥미가 생긴 듯 내 주위를 빙빙 맴돌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가방에서 새 로브를 꺼내 입었다.


얼굴은 가면으로, 나머지 몸은 로브로 막겠다는 허술한 계획.


잠시 숨을 고르고,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킨 뒤 나는 뛰어나가 중고 가방을 잠자리채처럼 이용해 나뭇가지 위에 매달린 벌집을 통째로 뜯어냈다.


위이이이이잉!


졸지에 좁은 단칸방에 이주당한 벌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중고 가방에 생명이라도 깃든 것처럼 꿈틀거리며 요동쳤고, 나는 그럴수록 밖에서 벌집으로 추정되는 것을 후려쳤다.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것 같은 소음이 가방 속에서 울려 퍼졌지만 벌들의 행진은 물소 가죽 가방을 뚫지 못할 테고, 분기탱천한 벌들의 행진은 가방 안에 미리 입주했던 세입자들에게 향하리라.


나는 입구를 단단히 막고는 졸지에 실향민이 되어버린 정찰벌들의 벌침 세례를 무시한 채 입에 천을 쑤셔 박고, 작은 단도를 들어, 내 왼팔을 죽- 그었다.


“으그극...!”


날카로운 날붙이로 제 살을 가르는 것은 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약하게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피가 안 나왔고, 그렇다고 더 깊게 하자니 마땅한 항생제 하나 없는 이 시대에 큰 부상을 입을까 걱정이었으니까.


나는 팔뚝을 파고드는 차가우면서도 화끈한 감촉을 그대로 느끼며 칼날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아껴 써야겠네...!”


나는 팔뚝을 타고 흐른 피를 가방 주위에 뿌리고, 가방을 중심으로 빙빙 돌며 핏방울을 뿌려 어중간한 원을 그렸다. 게임에서 봤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게임에서 봤던 묘사와는 일치했다.


그 뒤에는 흐르는 피를 가방에 스며들도록 하면서 주문을 외웠다.


“양은 목자를 따르라, 양은 목자를 따르라. 벌들은 피 먹은 자의 양떼요 가축이니, 나는 목자로서 네게 풀을 먹인다...”


피를 흘리고 주문을 외우는 일은 금방 끝나지 않았다. 목표하는 것은 이 가방 안의 벌들이 모두 내 피를 먹는 것. 나는 가방 안의 벌들이 점차 조용해질 때까지 날붙이가 베어낸 상처에서 피를 짜내며 주문을 외웠다.


‘제발, 제발...!’


게임 속에서 첫 시작을 충술사로 하지 못하고 다른 트리를 탄 이들은 절망에 빠진다. 부두술사건 천문술사건 저주술사건, 주술사의 초반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정말 지독하게도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주술사는 게임 초반 무조건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선택지도 가지고 있었다.


나약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주술사에게는 가혹하다고 할 수 있는 설계 때문에라도 주술사는 초반에 잘못된 축복을 골랐더라도 무조건 벌레를 사역해야만 했다,


그러한 연유로 초반에 다른 축복을 받았거나, 꼭 편하게 가라는 길을 거부하고 이상한 길을 개척하려는 변태들은 초반 마을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충술사, 기괴한 까마귀에게 집중했다.


가라는 아카데미는 안 가고 마을에 박혀서 그의 비위를 맞추고 아부를 떨며 구해오라는 기화요초(琪花瑤草)들을 구해오는 등, 당시의 나는 그와 복숭아나무 대신 야자나무 아래서 의형제를 맺었다.


그리고, 내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기괴한 까마귀는 나와 의형제가 된 그 날밤, 내 배를 찔러 피를 취한 뒤 의형제의 피로 주문을 외워 벌레를 사역했다.


‘개새끼. 지금은 천문술사 루트를 탔으니 아직 부족에 살아있겠지?’


나중에 주술사를 육성할 만큼 육성한 뒤에야 알았던 사실이지만, 기괴한 까마귀는 사실 충술사의 재능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스승을 죽이고 얻은 금단의 비술로 충술사 흉내를 내고 있던 것이었다.


대지의 어머니에게 축복받은 이상, 벌레를 부리고 충술사의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밖에 없었다.


‘그나마 알고 있는 것 중에선 이게 제일 시전자에겐 위험 부담이 적으니까...!’


비술의 원리는 간단했다.


사람의 피는 주술적으로 가장 강력한 매개체 중 하나다. 그러므로 사람의 피를 먹은 곤충 군집에게 주문을 외우며 계속해서 피를 먹이면 곤충 집단은 3할의 확률로 그 사람에게 종속되거나, 죽는다.


사실상 주술의 재능이 없는 사람도 벌레를 사역할 수 있게 해주는 비술, 이것까지만 있었더라면 그 비술은 주술사들에게 없어선 안 될 비전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금단이라는 멸칭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점차 중고 가방 안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줄어들고, 공터는 귀뚜라미의 날개짓 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다음 주문을 외웠다.


“목자는 양을 치는 이요, 양은 풀을 뜯는 이라. 목자는 양에게 가장 귀한 풀을 주었으매, 양은 만족을 모르느니라.”


그러자, 점차 가방 주위에 그려놨던 둥근 핏자국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빠져나간 피의 양으로 볼 때, 이번 기회가 실패하면 최소 1주일간은 빈혈이나 걱정해야 했기에 나는 속사포처럼 주문을 내뱉었다.


“허나 양이 탐욕스러운 것을 누구를 탓하리? 탐욕은 번영의 상징이요, 모든 생명의 본질이니, 양이여, 풀을 뜯으라. 피를 핥으라. 목자를 따르라. 가장 고귀한 계약을 맺으라. 피로 맺어진 계약을 통해 목자는 해가 삼백 번 떠오르고, 달이 삼백 한 번 질 때마다 그대에게 새로운 목초지를 주리라...”


우우우웅...!


가방 속의 벌들의 날개짓이 점차 거세졌다. 나는 간절히 바라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읊었다.


“양은 목자를 따르라! 양은 목자를 따르라! 목자는 네게 가장 귀한 목초지를, 누구의 손때도 닿지 않은 처녀지를 네게 주겠노라!”


빠드드득...!


주위의 피는 이미 말라비틀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이미 말라버린 핏조각마저도 부족하다는 듯 가죽 가방은 탐욕스럽게 내 피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뿌린 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팔뚝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고, 등 뒤는 창백해졌으며 얼굴은 새빨개졌다.


“양은 목자를 따른다! 그 외에 양이 살 도리는 없다! 탐욕스러운 양이여, 목자를 따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지이이이잉...!


가죽 가방 안에서 들려오는 날개짓 소리가 점차 기이해졌다. 높고 쨍-한 벌의 날개짓에 점차 둔중하고 무거운 소리가 실렸다.


본디 벌의 높고 가는 날개짓 소리는 서로가 서로의 중저음들을 상쇄시켜주기에, 그리고 벌이 미친 듯이 빠르게 날개짓을 하기에 발생하는 소리다.


그러나 저 낡은 가죽 가방 안에서 들리는 중저음은 뭐란 말인가. 그것은 불쾌한 골짜기에서 나는 냄새와 같았다. 나는 더 이상 피도 빨아가지 않는 벌들에게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우웅...! 두두두두둥...


마치 수천 명의 지휘자가 지휘라도 하는 듯이, 저 가죽 가방 안의 벌들은 각자 순서를 맞추어가며 무언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둥... 두두두둥 두둥!


얼핏 들어보면 거대한 교향곡 같고, 또 얼핏 듣자 하니 무언가를 축하하는 축가와도 같았다. 나는 어디선가 그 소리를 들어본 것 같았다. 익숙한 소리. 그것은...


이 [목자의 의식]이 성공했을 때 들리던 효과음이었다.


“벌이여! 가장 온순하고 탐욕스러운 양이여! 너의 목자에게 네 충성을 증명하라!”


꽉 묶어 놓은 줄을 풀자 가방 안에 있던 벌들은 쏜살처럼 튀어나와 내 주변을 돌았다. 그리고 가방 안에 들어있지 못했던 옛 동료들을 모두 쏘아 죽였다. 갑작스러운 배신에 가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나를 계속 쏘아대려 하던 벌들은 모두 죽어버렸다.


나는 그 놀라운 광경을 보며 비술이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당신은 고대의 비술을 성공시켰습니다!]

[영성을 얻은 벌 무리가 당신을 목자로 따릅니다!]

[스킬, 벌레들의 목자(F)를 획득하였습니다]

[상태이상, 목자의 의무(D*)를 획득하였습니다]


[벌들과 영성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스텟 영성이 개방됩니다]

[벌들의 상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하하!”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통쾌한 웃음을 지었다.


위이이잉...!


나는 오늘 초반 주술사가 가질 수 있는 제일 유연한 창을 얻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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