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수라의 눈
참으로 길디 긴 설명이었지만, 마치 게임에 나오는 것과 비슷했다.
우선 능력을 체크하기 위해, 상태창에서 [스테이터스]라고 표시된 부분을 클릭했다.
힘, 체력, 순발력, 유연성...이런 부분 말고도 특수능력이라던가, 이상한 이름의 것들이 가득했다.
우선 읽을 수 있는 것부터 읽자.
이렇게 설명했었지...
[패시브: 당신의 기본 능력치입니다.
해당 능력치는 흰색 바로 표시되며, 트레이닝이나 경험을 쌓지 않는 이상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히.
...그런데.
실시간으로 흰색 바가 피스톤질 하는 기계마냥 위아래로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였다.
...내가 이해를 제대로 못한 건가?
우선 내 몸에는 아무 감각 없는데.
"미르-6. 이 움직이는 하얀색 바는 뭐야?"
"당신의 기본 능력치인 패시브 입니다."
"지금 상태가 엄청 변화하고 있는데, 정상인 거야?"
"...기계에는 이상이 없음. 혹시 모르니, 관리자에게 연락하여 문제를 해결하시겠습니까?"
"..."
나는 잠깐 미르-6의 질문에 고민하다, 답했다.
"연락하지 마."
"알겠습니다."
난 아직 이곳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른다.
김한길의 기억이 있긴 하지만...선명하지 않은 데다가ㅡ
그의 기억에도 미르-6의 [관리자]라는 자와 연락한 적이 없었다.
"...뭐, 여하튼. 흰색 바에 붙은 검은 바는 버프나 디버프, 상태이상에 따라 증감하는 힘의 양이다...라."
버프...디버프...상태이상.
난 다 걸린 건가?
...이것도 흰색 바와 경쟁하듯이 엄청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바뀔 수 있다고 적혀 있네. 음..."
이 요동치는 막대그래프는 능력치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스킬창 같은 건, 어떠려나.
이세계에 왔으니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지 않겠어ㅡ?
...그렇게, 면밀히 살펴본 결과.
....
.....
.....김한길의 기억과 달라진 건.
없었다.
유일하게 알아낸 건, 이 녀석의 팔이 창이 될 수 있다는 정보였는데....
그, 실험결과로 몸이 바뀐 결과, 몸의 탄소를 보아 공업용 다이아몬드 결정 구조로 만들어 절대 깨지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게 [결정화] 스킬이었고,
팔에만 쓸 수 있게 해 두었다.
"왜 팔에만 한 거지..."
미르-6이 대답해 주었다
"결정화 통제는 개인의 정신으로 하기 힘들기 때문에, 컴퓨터에 스킬을 정해두고 제어를 하게 도와줍니다. 당신의 경우, 오른팔이 가장 안정적인 부위입니다."
스킬은 레벨이 있었는데, [포인트]라는 것으로 올리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의미없었다.
수치가 다 [봉인]이란 문구로 막혀있었으니까.
또한 레벨도....계속 바뀌고 있었다.
"봉인이 뭐지?"
미르-6이 이상한 대답을 했다.
"답변 불가. 더 높은 관리자의 허가를 받으십시오."
...뭐야.
'상태창은 자세히 본 적 없는 듯 하네. 기억이 선명하지가 않아. 하지만 확실한 건, 이렇게 움직이지는 않았다는 거야.'
호...혹시. 이런 건가?
그, 능력치가 너무 강하거나 측정불가라 오류가 난...!
바로 미르-6에게 물어보았다.
"능력치가 강하거나 측정불가라 오류가 나는 경우가 있어?"
"네. 그 경우, 측정불가라 표시가 됩니다.
측정이 불가한 경우도 간혹 가다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오류가 나는 매커니즘을 연구, [측정불가]라고 뜨는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
쳇.
아니라는 거네.
*
애가 얼마나 강한지는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고, 내가 알아낸 건 고작ㅡ
내 팔을 창으로 바꿔 싸울 수 있단 것이었다.
한번 써 볼까?
"....[스킬: 결정화]."
오...!
팔이 꿈틀대며 새로운 조직을 형성했다.
아주 길게, 하지만 날카롭게.
시간이 좀 더 지나자, 검은색 칼날로 변한 내 팔이 반짝이고 있었다.
손이 창이 된 것이다. 정말로.
새삼스레 내가 인간이 아닌 존재에 빙의했다는 사실도 자각하게 되었다.
"...진짜 다르구나."
난...분명. 방금 전까지 과제에 치이던 대학생이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다이아몬드랬지. 설명에서..."
공업용 검은색 다이아몬드 창은 방금 전까지 내 손가락이었던 것들이었다.
그걸 빤히 보고 있자니,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나도 모르게, 변신한 채로 3번 출구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내 뇌가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이 몸이 움직이는 거였다.
'전투능력은 몸에 기억으로 남아 있었나 보군. 다행이다...'
처치해 본 경험들이 머릿속에서 차르르 떠올랐다.
"[공지: 1차 웨이브가 끝나갑니다...]"
*
"...제길. 대장이란 아저씨는 언제 오는 거야?"
"조금 멀리 있나 보죠. 김한길이란 분."
3번 출구 앞.
교복을 입고 있는 남자 고등학생 한 명과,
2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뭐. 벌써 1차 웨이브는 끝났지만요."
"주변에 헌터가 왜 이렇게 없는 거냐고요! 팀이고 나발이고, 나랑 그 아저씨 두 명 뿐이잖아요."
"내가 다른 헌터들에게 오지 말라고 했으니까."
"...왜요?"
"고작 정예급 아수라들인데, 뭐 어때?
C급인 너랑, A급 한 명으로도 처치 가능해."
"아니 좀 그래도 불러오지!"
"...참나."
여자는 과학자처럼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안경쓰고, 화장기 하나 없고, 립밥 하나 바른 게 다지만...상당히 고운 편이었다.
하지만 고운 꽃은 독이나 가시가 있는 법.
"여기로 오는 헌터들은 대부분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러 오는 거야.
너처럼 학교에서 애들을 패서 징계받으러 온 게 아니라."
"일진들이었어요."
"신인류는 아니지."
그녀는 태연하게 서류뭉치를 들고, 무언가를 관찰하러 나왔다.
"거기다 나도 이 정도 레벨의 아수라는 나도 사냥 가능한 걸."
"그럼 누나가 다 처리해 주세요."
"그럼 죽어. 잘됐네. 시체가 된 헌터들은 좋은 연구자료거든."
"...사납기는."
"...아. 이제 김한길 씨가 오네."
3번 출구 밑에서, 뚜벅거리며 무언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한 많은 것처럼 생긴 거대한 남자가 사나운 눈을 하고
"...에. 저 아저씨...왜 결정화를 하고 있지?"
"...준비성은 좋네. 저 사람 보고 방송 연결하라고 알려줘. 위치 계산과 분석은 끝냈어.
후방 지원으로 들어갈게.
미르-0, 나와서 내 정보를 특수 방송에 연결해줘."
"네, 알겠습니다."
"알았다고요. 미르-379도 방송 연결해 줘!
거기 아저씨!
미르를 방송에 연결하세요!"
*
팔을 질질 끌면서 빠르게 올라왔다.
...별로 무겁지 않았다.
도착하니, 웬 남고생이 소리를 쳤다.
'재가 헌터구나. 진짜 어린애도 쓰네...'
세계관이 많이 힘든 가 보네.
"미르를 방송에 연결하세요!"
"...알았어!
미르-6, 방송 연결해!"
"2차 웨이브 24초 전.
전방 100m에서 아수라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정보 습득 완료.
동료 목록입니다.
인한수: C급 헌터, 당산고등학교 재학중, 17살.
이서원: S급 보안시설, 신인류연구원 인공생물학부서 소속 관리자, 20살.
...관리자?
....그, 연락하라고 한?
...인공지능부서..
맞지?
*
김한길.
과거에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날 기억 못하겠지만...아마도.
"한길 씨. 도대체 왜 이렇게 늦게 오신 겁니까?"
"...길을. 좀 헤매서."
"꽤나 자주 연구소에 오셨는걸요."
"...절 아십니까?"
"그럼요.
하지만 당신은 절 기억 못할 거예요.
우선 작전을 설명할게요..."
미르의 안내에 따라, 나는 아수라들을 처음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
아수라...
그것은.
붉은 눈을 가진 검은 안개 같았다.
밟을 때마다 아스팔트가 지지직 탔다.
아주 기분나빴으며, 교회에서 말하는 악마가 저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정신 차려. 초보 헌터처럼 왜 그래?"
"...아, 응."
나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팔을 움직여야 하는데...
세상에.
두려움이, 내 몸을 잠식했다.
'이진영. 할 수 있어.'
안 움직여...몸이.
꿈쩍도 안해.
어째서...?
그렇게 잠깐 떨떠름하게 있을 때, 앞에 공격이 날아왔다.
검은 안개가 칼날이 되어, 빠른 속도로 날 덮쳤다.
...이상한 괴성도 들렸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떠한 의성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리고 표현하기도 싫은 끔찍한 소리였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도 저 소리보다는 기분 안 나쁠 거다...
"아수라의 눈을 보지 않는 건 기본 상식이잖아요!"
"...응?"
그 고등학생이 앞에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주었다.
녀석은, 팔 일부를 방패처럼 만들 수 있는 모양이었다.
"왜 그래?"
'...눈을 모면 안 되는 건가?'
"ㅡ아수라의 눈은."
뒤에서 여자가, 미르를 통해 말을 전달해주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하지. 실수하지 말아주십시오."
'아하.'
그러면 나도 눈을 피해서...
'이때야말로 팔을!'
휘둘러 보았다.
내 그...팔.
내가 휘두르고 있었지만, 내가 아닌 느낌이었다.
나는 이 몸에 남은 감각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으니까.
검은 창으로 쓱싹, 아수라의 목을 쳤다.
"좋았어! 아저씨, 다음 웨이브 준비하자고요!"
"그래! 저거 말하는 거지?"
"...흠."
하지만 별 준비는 안 해도 되었다.
'아수라가 뒤로 물러나고 있어.'
왜지...?
이 녀석들, 겁이 많은 종류는 아닌 듯한데...
아니, 오히려....
"...눈 보지 말라니까요?"
"...재네들..."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뭐예요, 아수라의 눈은 인간에게 공포심을 심어준다고요."
'아수라가 지금까지 전멸을 당하면 당했지, 물러난 일은 처음이다.
저 사람...흥미롭네.'
뒤에, 여자는 남자를 조금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았다.
그렇지만 그 시선은, 아주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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