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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기적 님의 서재입니다.

꺼지지 않는 야나르베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래기적
작품등록일 :
2020.04.18 07:23
최근연재일 :
2021.09.08 00:07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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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8,690

작성
21.08.0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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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조사대

DUMMY

살짝 앞에서 뛰어가는 건장한 청년.

등에 맨 화살통과 어깨에 걸친 활.

옷으로도 감출 수 없는 다부진 몸을 가진 이놈은 질긴 악연의 친구, 제니치다.


“피에르님이 날 부르셨다고? 왜?”

“낸들 알아? 그 아저씨가 너랑 나 둘 다 불렀어.”

“야, 너두?”

“어, 나두.”


제니치는 3대 500 칠 거 같은 몸 때문에 종종 전사로 오해받지만 이놈의 직업은 사냥꾼이다.

등에 맨 활과 화살통은 놀랍게도 장식이 아니다.

처음 이놈을 만났을 때는 활대로 때려잡는 변태 같은 놈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제대로 화살을 쏘는 거에 놀랐었다.


‘그나저나 왜 사냥꾼인 이놈과 자경단인 나를 동시에 부르시는 거지? 딱히 접점이 없는데···.’


마을의 밖을 경계하고 안을 지키는 자경단과 마물숲에 들어가 짐승을 사냥하고 갖가지 재료를 캐는 사냥꾼은 활동 반경이 다르다.

협력을 할 때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대개 그런 일들은 일손이 모자라서 잠깐 도와주는 정도의 일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부르시는 걸까?


“아무튼 가보면 알겠지.”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은 알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에이든, 어제는 큰일이라 들었다.”

“···응, 그렇지.”

“미안하다, 마을에서 그렇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도와주러 가지 못 해서···.”

“신경 쓰지 마, 네 탓이 아니야.”


나쁜 것은 마물.

습격을 해온 것은 마물들이다. 그리고 습격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분투했다.

그 과정에서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분한 점은 내가 약하다는 것.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머리 한 구석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때 내가 복통 버섯만 안 먹었더라도···크으, 내 활과 몽둥이로 다 패죽였을 텐데!”

“···뭐?”

“내 활과 불빠따로 다 죽였을 거라고.”

“아니, 그전에.”

“복통 버섯만 안 먹었더라도?”


복통 버섯은 마물숲에서 나는 버섯으로 먹으면 엄청난 복통과 설사를 유발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걸 왜 먹어?


“복통 버섯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먹어본 사람은 없지 않냐. 그럼 우리 마을 중에서 이걸 먹어보는 사람은 아직 없다는 거지.”

“그래서?”

“아직 개척되지 않은 걸 개척해나가는 것. 미지를 탐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모험.”

“그래서 네가 항상 떠들어대던 모험심 때문에 복통 버섯을 먹었다는 거?”

끄덕.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이는 질긴 악연의 바보.

평소에도 모험이라는 사족을 못 쓰는 놈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바보일 줄은 몰랐다.


“이야~ 복통 버섯이란 거는 진짜였어. 먹고나서 1시간 지나니까 바로 신호가 오더라고. 화장실에서 반나절이나 못 나왔다니까?”


은퇴한 전직 용병 어르신이 자기 무용담을 자랑스레 얘기할 때 같은 표정으로 복통 버섯 모험담을 얘기한다.


“제니치.”

“어, 왜? 너도 먹어볼래?”

“배에 힘 줘라.”

“뭐?”


퍼억!


복통 버섯과 비교했을 때 뭐가 더 아픈지 자경단 본부에 도착하기 전에 물어봐야겠다.



* * *



딸랑━소리와 함께 자경단 본부의 문이 열린다.

들어오는 사람은 에이든과 제니치.

두 사람을 카운터에 앉아있던 히피가 반겨줬다.


“오, 왔구나.”

“안녕하세요, 히피 아저씨.”

“안녕하세요, 대머리 아저씨.”

“나를 대머리라 부르는 것은 용서할 수 있어. 하지만 나를 대머리라 놀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히피는 제니치의 인사를 듣고 벌떡 일어나 몸을 날려 제니치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제니치보다 키가 한참 더 작은 히피가 헤드락을 걸고 있는 우스꽝스런 모습.

에이든은 티격태격하는 둘을 신경 쓰지 않고 히피에게 말했다.


“아저씨도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너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어제 북서쪽 방벽에 있던 놈에게 들었는데 위험한 놈이 마을로 들어간 걸 네가 쫓아갔다며?”

“예, 그 놈이 사람들을 찾아내기 전에 잡았어요.”

“오, 듣기로는 엄청 위험한 놈이었던 거 같았다는데, 역시 우리 차기 에이스구만.”


아주 재빠른 움직임과 괴물 같은 반응 속도를 지녔던 다이어 울프.

내 검을 박살낸 마물.


“···아뇨, 제가 잡은 게 아니에요. 어떤 기사가 잡았어요.”

“기사? 아, 그러고보니 마을에 황금사자 기사단이 왔다고 들었다. 그 기사단의 기사인가 보구나.”


왕국 최고의 기사단.

그 재수 없는 놈은 자신을 단장이라고 말했었다.


“아무튼 잘 됐구나. 마을 사람들도 무사하고, 너도 무사하고.”


무사하다는 말에 쓰러져간 자경단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지금 본부에도 기사가 한명 와있단다. 나중에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렴.”

“기사가요? 진짜?”

“어어? 이, 이놈아! 갑자기 머리를 들면 어떡해!”


기사라는 말에 헤드락이 걸린 채로 머리를 든 제니치.

그리고 헤드락을 걸고 있던 히피는 미처 기술을 풀지 못 한 채로 제니치의 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신세가 돼버렸다.


“제니치랑 에이든, 왔으면 빨리 안으로 들어와라.”


안쪽 회의실에서 들려온 거친 목소리.

회의실쪽을 보니 안대를 한 야수 같은 남자가 못마땅한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피에르 베르세르.

우리 마을에 머물고 있는 가장 강한 검사.

대륙에서 어딜 가나 대우받는다는 검의 달인.

소드 마스터.


“뭐해? 빨리 들어오라니까?”


대륙의 인정을 받은 검사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우리를 째려보고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간다.


“에, 예! 지금 가겠습니다!”


언제나 모험을 외치며 밝고 호탕한 제니치조차 피에르님의 앞에서는 긴장한다.

히피를 머리에서 떼어놓고 호다닥 피에르가 있는 회의실로 달려가는 제니치.

히피에게 목례를 하고 악우를 뒤따라 에이든도 회의실로 들어갔다.


조용한 회의실 안.

그 안에는 이미 몇 사람이 모여 있었다.

방금 들어간 피에르를 시작으로 자경단의 장 테리 단장, 성당의 프리먼 대사제, 어제 봤던 재수 없는 기사단장, 그리고 용사 엘레타.

우리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초호화 맴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구나. 어제는 잘 돌아갔니?”


가장 먼저 반겨준 사람은 테리 단장님.

아버지를 잃고 난 뒤 가장 잘 챙겨주시는 삼촌 같은 분이시다.


“네, 집까지 잘 돌아가서 푹 쉬었어요.”

“어제는 큰일을 겪었는데 푹 쉬었다니 다행이구나. 방벽 쪽은 걱정하지 마렴. 어제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인원들이 뒷정리하고 근무하고 있단다.”


어제 마을로 향한 늑대 마물이 죽고 난 후, 방벽으로 복귀하니 전투는 이미 끝나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방벽에 기대어 쉬고 있던 조장에게 물어보니, 수많은 마물의 군세는 엘레타와 난입한 황금사자 기사단의 활약으로 전부 쓸어버렸다고 말해줬다.


그리고서 얼마 뒤, 남동과 남쪽 방벽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 달려와 뒷정리를 하기 시작.

지옥 같던 전투를 마친 병사들은 테리 단장님의 지시로 바로 휴식에 취할 수 있었다.


“단장님 덕분에 마음 놓고 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방벽을 잘 막아준 단원들에게 내가 감사해야지.”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예의를 표한다.

그 속에는 가버린 이들의 애도도 포함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더 강했더라면 묘비가 더 적었을 테지.”


냉소적이면서 도발적인 말.

그 말을 내뱉은 은색의 기사는 정확히 에이든을 보고 있었다.


“그 말은 제게 하는 말인가요, 카를로스경?”


하지만 그 도발에 걸린 것은 에이든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맞아요, 제가 좀 더 강하고 빨랐다면 희생되는 사람들을 줄일 수 있었겠죠.”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용사님.”

“아뇨, 제가 약한 건 맞는 말이니까요. 그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레타답지 않게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는 말.

카를로스라 불린 기사는 엘레타의 격한 반응에 살짝 당황했지만 곧바로 고개 숙여 사과했다.


“아니에요, 제가 너무 격하게 반응한 거 같네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조심해주길 바라요.”


엘레타는 기사의 정중한 사과를 받고 기다렸다는 듯 바로 사과를 받아들였다.

사과를 받고 다시 바른 자세로 앉은 엘레타.

엘레타는 나 대신 기사의 도발을 받아준 건가···?


“두 사람이 왔으니 다시 설명해야겠지?”


잠깐의 언쟁이 끝나자 바톤을 이어받듯 프리먼 대사제가 입을 열었다.

제니치와 에이든을 번갈아본 프리먼이 손가락으로 회의실 테이블의 중앙을 가리켰다.

테이블에 올려져있는 것은 새하얀 천.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이었지만 무언가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건 임시로 만든 간이 성해포일세. 안에 있는 사악한 것을 봉인하는 장치지.”

“성해포···가 뭐죠?”

“자세한 건 몰라도 된다네, 제니치. 그냥 나쁜 걸 막아주는 천이라 생각하면 되네.”

“아하.”


찌푸려졌던 제니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 안에 든 것이 아마 이 사태의 원흉이자 단서일 거 같네. 이···.”


말을 하며 간이 성해포에 손을 뻗는 프리먼.

성해포의 한 면을 손으로 쥔 뒤 천천히 들어올렸다.


“나뭇가지가 말일세.”


성해포가 들리면서 보인 것은 검은색 나뭇가지.

어제 습격한 마물들 중 일부에게 보였던 검은 아지랑이. 그런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검은 나뭇가지가 발산하고 있었다.


“이런, 성해포가 벌써 오염되기 시작했군. 간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오염되다니···.”


침음을 흘리며 성해포로 손을 가져다대는 프리먼.

그 손에서 신성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검은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검게 변질되던 천이 다시 하얀색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요점은 이거다. 저 나뭇가지가 있던 곳을 다시 조사해야한다.”


성해포를 정화하고 있는 프리먼 대신 에이든의 뒤에 있던 피에르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 나뭇가지는 저번 조사대의 수확이다. 마물숲의 이상 현상은 발생하고 있었어. 그리고 저 기물이 심상치 않은 것은 너희들도 알 수 있겠지.”

“그런데요?”


눈가에 힘줄이 솟은 피에르.

순진하게 말대답을 한 제니치는 피에르의 힘줄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심상치 않은 물건이 마물숲 안쪽에서 나온 이상 조사를 속행해야한다. 영주성에 파발을 이미 보냈다.”

“영주님께 보고해야 할 정도로 큰일인 겁니까?”


이 마을은 영지 내에서도 특수한 위치다.

마물숲과 가장 인접한 마을로 아주 특수한 일이 아니면 마을 내에서 해결하는 것을 영주님도 허락하고 있었다.


“그래, 그 정도로 큰일이다. 하루라도 빨리 알아내야해. 어쩌면 마을단위가 아니라 국가단위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단호한 피에르의 말.

거짓 없는 말이 눈앞의 검은 나뭇가지가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느끼게 해준다.


“와! 그럼 마물숲 안으로 저거 비슷한 걸 찾으러 간다는 거군요!? 모험이네!”

“···모험이 아니야, 천둥벌거숭이야!”


심각한 분위기를 깨버린 심각한 바보한테 피에르가 분노의 꿀밤을 먹였다.

도저히 주먹과 머리가 부딪혔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회의실에 울리고, 피에르가 마저 설명했다.


“그래서 너와 제니치가 필요해서 부른 것이다. 조사대의 일원으로.”

“무, 무슨 역할인데요?”


꿀밤 맞은 자리를 비비며 찔끔 눈물을 흘리는 제니치가 물었다.


“제니치, 너는 길잡이 역할이다.”

“길잡이요? 근데 마물숲의 심층은 잘 모르는데요? 제가 몇 번 들락날락하긴 했는데 길을 잘 아는 정도는 아니라서···.”

“괜찮아, 심층의 길은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너는 우리의 길잡이가 아니야.”

“예? 그럼 누구 길잡이인데요?”


피에르는 제니치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에이든을 보더니━


“에이든, 미끼가 좀 되어줘야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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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악마 현신 (2) 21.09.08 9 0 13쪽
23 악마 현신 21.09.02 8 0 14쪽
22 침공 (5) 21.09.01 9 0 14쪽
21 침공 (4) 21.08.31 10 0 17쪽
20 침공 (3) 21.08.27 10 0 17쪽
19 침공 (2) 21.08.26 10 0 13쪽
18 침공 21.08.25 10 0 14쪽
17 대마녀 케르케 (3) 21.08.24 10 0 17쪽
16 대마녀 케르케 (2) 21.08.23 10 0 11쪽
15 대마녀 케르케 21.08.20 11 0 13쪽
14 케르케의 실험 (5) 21.08.19 12 0 17쪽
13 케르케의 실험 (4) 21.08.18 11 0 17쪽
12 케르케의 실험 (3) 21.08.17 14 0 13쪽
11 케르케의 실험 (2) 21.08.17 12 0 12쪽
10 케르케의 실험 21.08.14 12 0 16쪽
9 베누 (2) 21.08.12 11 0 11쪽
8 베누 21.08.11 13 0 12쪽
7 마물숲의 패자 (2) 21.08.10 10 0 18쪽
6 마물숲의 패자 21.08.09 16 0 12쪽
5 조사대 (2) 21.08.06 17 0 16쪽
» 조사대 21.08.05 22 0 12쪽
3 황금 사자 기사단의 단장 21.08.04 24 0 17쪽
2 마을의 용사 (2) 21.08.03 30 0 19쪽
1 마을의 용사 21.08.02 7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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