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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굴종의 폴리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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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스토마
작품등록일 :
2024.05.08 11:12
최근연재일 :
2024.05.10 10:46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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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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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23,086

작성
24.05.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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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마법사의 제자

DUMMY



명장(名匠)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사실 거짓이다. 명장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의 장인이라면 고객을 실망 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도구를 골라 쓰는 법이다. 그게 프로 아니겠는가?


명장(名將)도 마찬가지.


머릿속에 그려진 전략과 전술을 완벽하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지휘관의 말을 믿고 신속하게 움직여줄 군대가 필요하다. 오합지졸 군대로는 장군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요컨대, 재능이나 능력에는 그에 걸맞은 도구나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마법사의 제자 그레고리는 지금 실시간으로 재능을 절찬리에 낭비하는 중이라 할 수 있다.


그레고리는 마법사에게 필요하다 여겨지는 세 가지 재능을 모두 타고 났다.


마법을 이해하는 능력. 방대한 마력. 그리고 마력의 세밀한 조작 능력까지.


문제는 그 세 가지 재능 위에 두 가지 불운이 엉덩이를 내리깔고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불운은 스승이다.


그레고리의 스승인 로스타는 무능하고 탐욕적이며 게으른 남자였다.


그는 그레고리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기초 마법만 가르친 뒤 자신의 일에 조수로 동원했다.


덕분에 그레고리는 스승이 술에 취하거나 창부를 안고 잠든 날, 몰래 스승의 서재를 뒤져 독학으로 마법을 공부해야 했다.


이대로면 젊은 날을 스승을 위해 낭비해야 할 처지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스승이 속한 범세계적 단체인 마법사 협회. 세계 모든 마법사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고 자격을 관리하는 그 단체는 한 번 섬긴 스승을 함부로 떠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제자가 스승을 떠날 수 있는 건 파문 혹은 졸업. 두 가지뿐이다.


파문당하거나 제 스스로 스승에게서 도망친다면 다시는 마법사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없다. 그 누구도 그를 제자로 받지 않을 것이며, 협회의 인증과 검수를 받은 마법서를 구매할 수 없으며, 당연히 협회에서 주는 마법사 자격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인내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불운은 마법을 이해하는 능력은 높은 데 반해, 그의 사회적 지능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조금만 더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승을 잘 구슬려 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로스타는 무능하지만 자존심은 강한 남자다. 그는 거짓말일 게 뻔한 창부의 칭찬과 환호에도 불쑥불쑥 은화를 꺼내 들곤 했다. 그러니 제자인 그레고리가 그 반만 따라갔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재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두 가지의 불운 속에서 그레고리는 오늘도 스승의 말도 안 되는 명령에 따라 잡일을 하고 있다.


오늘의 일은 협회 본부의 마법사들이 발굴한 유적의 뒷정리다. 안에 묻힌 유물은 모두 발굴했고, 남은 장소를 깨끗이 정리하고 치장해 관광명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외부 업자를 고용하면 지출이 늘어나니, 평소 협회의 이름을 달고 그다지 활동은 보이지 않는 자를 뽑아 청소 업무를 할당했다.


그렇게 해서 청소의 업무를 이들 사제가 맡게 된 것이다. 그다지 큰 유적은 아니었다. 두 명이서 한나절 동안 열심히 일한다면 어떻게든 마무리될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만 하루를 투자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적당히 빗자루질을 잠깐 하다가 허리가 아프다며 의자에 앉아 무기한 휴식에 들어간 스승을 대신해 그레고리는 오늘의 입을 전부 도맡았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로 닦고. 먼지와 쓰레기를 모아 유적 밖에 버린 뒤, 폐부에 스며든 것들도 기침과 함께 토해내고. 그것을 반복했다.


몇 시간 정도 청소를 반복하다 스승을 보았다.


그는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술병을 입에 물고 있었다.


‘빌어먹을 뚱땡이 새끼.’


속으로 욕을 하며 유적 안쪽으로 들어갔다.


스승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대충 바닥에 몸을 던지듯 주저앉았다.


“망할.”


이대로면 밤이 늦어서야 일이 끝날 거다. 제 몸 바쳐 청소를 끝낸 뒤에는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한 스승을 부축해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고. 그 뒤로는 취한 스승을 재우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나면 오늘은 책을 읽을 시간도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쾅-!


생각보다 소리가 컸다. 아차 싶은 마음에 그레고리는 얼른 일어나 스승이 있는 쪽을 살폈다. 다행히 술에 취한 스승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휴우.”


안도한 그레고리는 다시 자세를 낮춰 자신이 주먹으로 내려쳤던 바닥을 살폈다.


이 유적의 벽과 바닥, 천장이 대개 그렇듯, 여기에도 알아보기 힘든 고대 언어가 음각되어 있었다.


“음?”


혹시 깨진 건 아닌가 살피던 중, 그의 눈에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기분 탓인가? 그는 다시 눈에 힘을 주었다.


‘아냐!’


아주 희미하지만 무언가 보였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이 집중했다.


‘마력.’


음각된 글자 밑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것은 마력의 흔적이었다.


그레고리의 눈이 흔적을 좇았다. 흔적은 일정한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그레고리는 그 패턴을 바탕으로 구조를 분석했다.


‘문? 아니, 자물쇠?’


그것은 일종의 잠금장치처럼 보였다. 열쇠 대신 마력을 주입해서 잠금을 푸는 장치.


“스──.”


스승을 부르려고 하던 그레고리가 다급히 제 입을 막았다.


‘일단 나 혼자 살펴보자.’


게으르고 겁이 많은 로스타는 분명 손도 대지 않은 채 협회에 연락을 넣을 것이다. 그레고리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고대 유적에는 그 시절 마법에 관한 많은 것들이 잠들어 있다. 그것을 직접 경험할 절호의 기회다.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일단 저지르면 스승도 어떻게든 말을 맞춰줄 것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귀속되는 만큼, 스승에게도 책임이라는 게 주어지는 법이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그레고리는 바닥에 양손을 짚고 마력을 주입했다. 머릿속으로 분석한 패턴을 통해 마력을 움직였다.


그의 마력 컨트롤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그는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단번에 패턴에 따라 마력을 움직였고, 이내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그그긍-!


바닥이 양쪽으로 밀려나며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난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그레고리는 얼른 몸을 들어 스승을 살폈다. 다행히 스승은 술에 잔뜩 취해 곯아떨어져 있었다.


“후.”


저 정도면 한동안은 깨지 않을 것이다.


그레고리는 손가락을 작게 튕겼다.


“밝혀라.”


작은 광구(光球)가 만들어져 그의 주변을 멤돌았다. 빛을 밝힌 그는 광구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다시 그그긍,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닫혔다.


좁고 어두운 복도가 이어졌다.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가 그는 잔뜩 긴장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는 복도의 끝에 있는 작은 방에 다다랐다.


중앙에 있는 성인 남성의 가슴까지 오는 단상 하나와 그 위에 올려진 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그레고리는 단상으로 다가가 책을 살폈다.


그가 본 어떤 마법서보다도 크고 두꺼운 책이다. 게다가 다른 고대 마법서에라면 응당 달려 있어야 할 봉인장치도 없다.


그는 고대로어 쓰인 책의 표지를 읽었다.


‘■■■ 폴리모프.’


앞의 글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뒤의 글자는 읽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의미도 알고 있었다.


‘폴리모프!’


언젠가 스승에게 들은 적 있다.


고대의 마법 중에는 폴리모프라는 마법이 있다고. 그것은 자신의 형체를 다른 존재로 바꾸어버리는 마법. 그저 그렇게 비추는 환영 마법과는 달리 정말로 실체가 바뀌는 가공할 마법이라고 말이다.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스승이 말했었다.



「드래곤. 콜로서스. 크라켄. 폴리모프 마법은 시전자를 어떤 것으로든 변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마법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기록에 따르면 그래. 애초에 고대 시대의 마법사들은 지금의 우리와는 격이 다른 존재들이다. 그 시절의 마법사들은 세계의 이치를 뒤트는 자들이라고들 하니까.」



“꿀꺽.”


원칙대로라면 스승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면 스승은 곧장 협회 사람을 불러 자신의 공을 인정받으려고 할 것이다. 마법사 협회의 손에 들어간 고대 마법서는 아마도 봉인되지 않을까? 이유는 모르나, 스승의 말에 따르면 고대 마법서는 항상 협회에서 봉인해 누구도 익히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내가.’


평생을 바쳐도 얻지 못할 기회다.


이걸 익힐 수만 있다면 상상조차 못 할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대신, 마법사 협회가 관리해야 할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댄 죄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대로 스승에게 보고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스승의 미적지근한 가르침을 받으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 뿐이다. 그렇게 다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은 무엇인가?


때로, 인생에 행운처럼 보이는 것이 반짝일 때가 있다.


잡기 전에는 그것이 행운인지 아니면 불행을 불러올 씨앗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모습을 드러내기에, 심사숙고할 시간 따위 주어지지 않는다.


잡는다면 큰 변화가 일어난다. 잡지 않는다면 그저 이대로의 삶이 계속될 뿐이다.


안정인과 변화인가.


만약 변화를 바라다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두 가지.


“용기와 각오.”


그레고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두 가지를 소리 내어 말한 뒤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



마법사 협회에 겨우 이름만 올리고 있을 뿐인 한 마법사의 제자가 도망쳤다. 그 이야기는 세간의 주목을 전혀 끌지 못했다.


그렇게 잦은 건 아니지만, 스승의 무능함과 횡포 때문에 마법사로서의 미래를 포기하고 도망치는 이들이 나오는 건 그리 드문 일만은 아니었다. 마법사를 향한 길은 영영 막히게 되겠지만, 삶에는 오직 하나의 길만이 펼쳐지는 게 아니니 말이다.


이번 사건은 제자를 잃은 마법사에 대한 약한 징계로 끝이 났다. 징계 사유는 업무 태만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조용히 막을 내렸다.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도망쳤던 제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모두가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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