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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바리 님의 서재입니다.

와룡과 봉추의 궤변학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말뚝이.
작품등록일 :
2019.11.03 04:56
최근연재일 :
2019.11.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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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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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담 서서걷는 갓난 아기 16화

DUMMY

문약선배와 내가 도착한 곳은 학교 건물에 조금 떨어진 체육창고 였다.

“체, 체육 창고요? 선생님에게 쉽게 걸릴 것 같은데?”

“원이의 말에 따르면, 의외로 잘 안걸린다고 해.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이유로 학교 뒤뜰은 잘 모이는 모양이야.”

다른 이유도 있긴 하지만······.

문약 선배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애써 그 중얼거림을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건 원혜 선배를 구하는 것이니까.

체육 창고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사람의 소리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극도의 침묵.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 같았다.

인기척은 들리지 않는다. 나는 혹시나 우릴 막아서는 일진들이 있을 까 싶어 주변을 경계했지만. 어째선지 체육창고로 다가갈수록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경계를 풀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장감은 오히려 더 조여들었다.

“선배, 여기 진짜 맞아요?”

“이상하네······. 보통 이 시간에 애들이 담배를 피우려고 여기에 모이던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장소가 바뀌었나?”

문약 선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무나도 고요한 공기의 움직임. 나는 조심스레 체육창고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다. 자물쇠로 잠긴 문고리는 어느사이엔가 열려져 있었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체육 창고를 벌컥 열었다.

그곳에서 본건.

손에 접이식 칼을 든채 달려드는 한 남학생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원혜 선배였다.

선배 위험해요!

극도의 위험한 상황. 하지만 내 하려는 말보다 더 빠른 것이 내 뒤에서 터져나왔다.

“원아! 안돼!!”

짧은 비명과도 외침. 달려들던 남학생의 움직임이 그 순간에 멈췄다.

“무, 문약아······.”

떨리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 나는 그 틈을 타 곧바로 원혜 선배에게 달려나갔다.

“원혜 선배!!”

다친데는 없으셨습니까?

오늘 하루종일 어디에 계셨어요.

여기서 대체 뭐하셨던 거에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원혜 선배는 이런 내 궁금증들을 한 마디로 일축시켰다.

“너무 늦었잖아. 빌어먹을 꼬봉.”

원혜 선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꿇고 바닥에 거의 주저 앉아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온 몸이 성한 구석이 없었다.

군데 군데 찢어진 교복들과 상처들이 그녀의 왜소한 몸에 아로이 새겨져 있었다. 곳곳에 시퍼렇게 물든 멍들 또한 상처의 숫자 못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때릴 수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 연약한 여성에게 말이다.

나는 원혜 선배의 얼굴에 시퍼렇게 멍든 멍자국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런 나를 제지하는 손이 있었다.

“이제 거의 끝났으니까, 나대지 마라 꼬봉. 네가 할 일은 나를 부축해주는 것 뿐이야.”

원혜 선배는 씨익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거부 할 수 없는 그녀의 손짓에 나는 결국 욕하는 대신 원혜 선배를 부축해주었다.

그제야 주변의 정경이 눈에 보였다.

주변은 내 상상보다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남학생들.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봐선 전부 기절한 것 같았다.

설마 선배가 이걸 전부······?

나는 선배를 힐끗 보았다.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저 늠름한 표정이, 지금 내가 상상했던 상황이 진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함부로 개겼으면 나도 저 꼴이 났을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문득 들었다.

원혜 선배는 나에게 손짓하더니, 멍하니 문약 선배를 쳐다보는 남학생, 문원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위험해요. 저 자식 아직 칼을 들고 있다구요.”

“시끄러. 잔말 말고 시키는데로 해.”

날카로운 눈초리에 나는 결국 그녀가 시키는데로 앞으로 데려갈 수 밖에 없었다.

“네가, 왜. 네가 왜 여기에·······.”

그는 문약선배를 멍하니 보며 알 수 없는 말들만 중얼거렸다. 문약은 그런 그를 보며 말없이 무릎을 꿇었다.

“부탁이야. 이제 이런 짓 하지마.”

“아냐. 그게 아냐. 그런게 아냐.”

원혜 선배는 그런 그들을 보며 입술을 비죽 올렸다.

“전 여친에게는 말도 하지 않은건가? 참 보기 좋은 사랑이군 그래.”

“너, 이 괴물같은 년······!”

문원이 손에 든 접이식 칼을 원혜 선배에게 겨눴다. 나는 그런 그의 앞을 막으려고 했지만, 원혜 선배는 손을 들어 나를 제지 시켰다.

“흥! 마지막까지 추해지지 마. 난 여기서 너에게 너의 죄를 실토시킬 임무가 있어.”

원혜는 나를 보았다.

“너도 이제 진실을 알아야 되. 네가 만났던 귀신은 귀신이 아닌 네 착각일 뿐이었고, 그게 이 녀석이 벌인 일 중 하나였다는 것을.”

가녀린 검지 손가락이 문원 선배를 가리키며 외쳤다. 문원은 입술을 깨물며, 원혜 선배의 말을 막으려고 했다.

“안돼! 더 이상 그러지마!”

하지만 옆에 있던 문약이 문원을 감싸 안으며 그의 행동을 막았다.

“그래, 그렇게 말 잘듣는 강아지처럼 가만히 앉아 있어.”

원혜 선배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서서 걷는 갓난아기 괴담은 생각외로 조사하기 힘들었어. 소문을 거슬러 올라가니 입을 다무는 애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 그래서 학교 출석부부터 조사해야만 했지.”

문득 의문이 들어 반문해 보았다.

“그거, 학생신분으로 열 권한이 있었나요?”

“사실 정식 절차를 밟진 않았어. 주임선생님이 워낙 깐깐한 분이라 고작 괴담 때문에 출석부나, 기록부 같은 중요한 서류를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거짓말 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래서 와룡에게 부탁해서 해킹해 버렸지.”

거짓말이나 해킹이나 둘 다 잘못된게 아니었나? 아니, 그것보다 와룡이 해킹이라니. 그 분 해킹도 할 줄 알았나?

나는 그제야 와룡이 만날 때마다 노트북을 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해서 알게 된건, 괴담에 나온 남자 선생님은 없었다는 거야. 물론 실종되어서 결석한 여학생따위는 더더욱 없었고.”

그렇다면 조사할 가치는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정도 까지만 조사해도 괴담이 실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최근 기록 중에 재밌는게 하나 있더라고.”

원혜 선배의 입술이 비틀린다. 한쪽 꼬리가 위로 오르는 그 모습.

“약 3개월 정도 병가넣은 학생 둘이 있었어. 거의 동시의 시간대에 있었던 일이라 눈에 굉장히 띄더라고.”

문약 선배의 몸이 떨린다.

문원도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얼굴의 주름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원혜 선배는 그 모습을 즐기는 듯이 비웃으며,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하문약. 강문원. 너희 둘의 이름이었지.”

“그만, 더 이상 말하지마. 더 말하면 죽여버릴거야.”

마치 협박처럼 말하는 문원의 말. 하지만 목소리는 이미 죽어 있어, 더 이상의 카리스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너희 둘은 우리 학교에서도 미녀와 야수라는 유치한 이름으로도 유명한 커플이었지. 하지만 출석부 시간이 지난 후,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너희 둘은 곧바로 헤어졌어. 이정도 이야기까지 들어보면 무엇 때문에 헤어졌는지는 세 살먹은 어린아이도 쉽게 추론 할 수 있을거야.”

서로 죽고 못사는 우리 학교의 유명한 커플. 하지만 병가로 낸 결석일을 기준으로 갑작스레 헤어졌다.

누가 들어도 왜 헤어졌는지는 쉽게 추론이 가능했다.

“닥쳐! 닥치라고!!”

문원의 얼굴이 화로 인해 붉게 물든다. 진짜로 죽여버릴 듯, 그런 그를 애써 막아서는 문약 선배이지만, 고통스러운 듯 떠는 몸을 더는 감추지 못했다.

원혜 선배는 손가락으로 문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도 괴담을 뿌린 사람은 너일거라고 생각해, 문원.”

문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원혜 선배는 그런 문원을 한차례 비웃었다.

“네 전 여친인 문약을 어떻게든 소문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였지. 일부러 네 꼬봉들을 시켜서 수다를 잘 떠는 학생들을 이용했지. 물론 서서 걷는 갓난아기괴담도 네가 만든 게 아니라 이야기를 잘 만드는 학생에게 시켰겠지. 너 따위로는 이런 글을 짓는 거 자체가 불가능 했으니까.”

“증거 있어? 모든 건 네 상상일 뿐이잖아! 증거를 대!”

증거를 대라는 문원의 말.

“증거?”

원혜 선배의 비웃음이 깊어진다. 마치 조롱하고 싶어 참을 수 없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원혜 선배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제스쳐. 나도 눈치라는 게 있는 놈이었기에 원혜 선배가 내놓으라는 게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주머니를 뒤져 반지 하나를 원혜 선배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바로 증거다!”

그녀가 문원에게 반지를 던지며 말했다. 경악스러운 듯 눈을 크게 뜬 문원앞에 반지가 바닥에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냈다.

“네거 맞지?”

“이, 이건······.”

문원이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멍하니 바닥에 뒹구는 누런색 반지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네 녀석이 괴담을 제대로 알릴려고 만든 그곳에서 네 반지가 떨어져 있었어! 왜, 괴담이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실재하지 않는다고 떠들어댈까봐? 엉터리 소문이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을까봐? 그것도 아니면 누가 소문을 들춰서 네 소중한 여친이 다칠까봐?”

문원은 엎드려 천천히 반지를 주웠다.

“이, 이건 내게 아니야······.”

“거짓말 하지마!”

원혜가 내 손을 뿌리치고, 문원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나를 가리켰다.

“이 녀석을 봐! 네 녀석의 거짓말에 놀아나서 매일 밤 잠도 자지 못하고 괴담이 주는 공포에 떨고 있어! 이제 그만 인정해 그 괴담은 거짓말이라고! 떳떳하게 발설하라고!”

·문원의 인상이 일그러진다. 위험해 보이는 그의 눈동자. 칼을 쥐고 부들부들 떠는 문원의 모습은 마치 폭발하기 전의 화산처럼 보였다.

“나, 나는, 나느은!!!”

쥐고 있던 칼이 위험하게 번뜩인다.

선배 위험해요!

말보다 행동이 우선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멱살을 잡고 있던 원혜를 밀쳤다.

-팟!

번뜩이던 칼이 위험한 소리를 내며 내 팔뚝을 사저없이 그었다. 섬뜩한 느낌과 함께 곧 불 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크으윽!”

“야! 꼬봉!!”

길게 그어진 상처. 쉽게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나는 팔을 움켜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지키려고 했어. 지켜주고 싶었다고!! 평생 사랑하면서 지켜주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화가 난 듯, 또는 슬퍼하는 듯한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가득 일그러져 있었다.

“너희들만 없었으면··· 너희들이 괜히 파고들지만 않았으면··· 우리는 행복하게 잊을 수 있었어. 이대로 조용히 묻혀서 잊을 수 있었다고!”

그것은 절규였다.

어째서 파고들었냐고.

어째서 상처를 헤집었냐고.

어째서 아문 딱지를 다시 손톱으로 긁어냈냐고.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오는, 손에 든 칼이 섬뜩하게 빛났다.

“너희들만 없으면 아무도 모를거야. 그렇지 않아?”

“큭. 머, 멈춰!”

원혜 선배가 급하게 제지하려 하지만, 싸운 피로도가 누적되었던 모양인지 제대로 일어서지 못한다. 나도 팔에 일어나는 고통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질 못했다.

체육 창고는 이미 문원의 광기로 가득차 있었다.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는 공간에, 오로지 그의 살의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살의는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만해!”

째지는 소리와 함께, 문원을 껴안는 두 개의 가녀린 팔.

문약이었다.

“원아 이제 그만해! 그만하라고!”

“아냐. 문약아 우리는 잊어야 해. 학교에서 잊어야 네 인생이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고.”

“아냐.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었어. 이게 아니었다구······.”

오열하는 문약 선배. 문원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말을 잇지 못하고 우두커니 그 자세에서 멈추어 있었다. 하지만 그 행동도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다.

광기는 멈출 수 없었다.

“놔!”

마치 산 아래로 굴러가는 작은 눈덩이처럼.

점점 더 크고,

점점 더 빠르게.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것들만 죽이면 되! 이것들만 죽이면, 우리 소문을 기억하는 사람도, 이 괴담에 대한것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야!”

그가 칼을 치켜들었다.

이젠 그를 막을 수 없는 걸까?

나는 나를 향해 쇄도해오는 날카로운 날붙이를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응애~!

체육 창고안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른 한줄기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체육창고를 밝혀주는 불이 꺼졌다. 순식간에 공간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빛이라고는 창문가에서 비치는 한 줄기의 황혼을 닮은 붉은 빛뿐. 체육 창고는 금세 새카만 그늘의 장막에 가려졌다.

공기가 삽시간에 돌변했다.

-응애.

미약하면서도 힘찬 울음소리가 광기를 누르고 그 대신 어마어마한 공포가 이 공간 안에 들이밀었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문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비이상적으로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에 혼이 나간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것은 원혜 선배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야. 이럴리 없어. 귀신은 없다고. 귀신은 없다고······.”

넋이 나간듯 귀를 막고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원혜 선배. 아까의 문원을 압박하는 늠름한 모습따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체육창고는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응애.

오직 들리는 건 오로지 갓난아기의 울음 소리뿐.

-응애.

귀를 막았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내 착각일 뿐이야.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공포일 뿐이야.

세상에 귀신은 없어. 없었다고.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훑어 보는 존재가 조용히 반문 했다.

‘그럼 대체 이 소린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한층 더 싸늘해진 공기.

‘갓난 아기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심장이 급속도로 얼어 붙는다.

‘날 잡으러 온게 아닐까’

누군가가 허파를 움켜 잡는 듯 숨쉬기가 곤란해졌다.

‘나를 데려가려고······.’

“누구야! 대체, 누가 장난치는거야. 나와! 나오라고!!”

문원이라고 생각되는 검은 그림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 질렀다. 그의 손에 든 칼이, 창문가에서 내리 쬐는 주황빛에 섬뜩한 빛을 흘렸다.

모두가 공황상태였다.

단 한사람만 빼고는,

“원아. 괜찮아. 떨지 않아도 돼.”

“뭐······?”

모두가 공포속에서 떨고 있을 때, 가녀린 목소리의 누군가 말했다. 문약 선배의 목소리였다. 겨우 고개를 들어보니 문약선배가 거칠게 팔을 휘두르는 문원에게 다가가 껴안았다.

“원아. 그러지마. 거부하지마······.”

문원의 팔이 우뚝 멈췄다.

문약 선배는 그런 문원을 있는 껴안은 채로 있는 힘껏 소리쳤다.

“내 아기의 목소리잖아. 너와 내가 탄생시킨 우리 아기잖아!”

삽시간에 정적이 흘렀다. 여기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 문약아······?”

문원이 신음처럼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문약 선배는 이제 문원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야 성공한거야. 내가, 내가 드디어 우리 아기를 다시 부활시켰어.”

“너, 그게 무슨······.”

-응애. 응애.

아기의 울음소리가 다시금 체육창고를 메아리친다. 어디서 들려오는 지도 모를 그 목소리에.

“울지마, 아가야. 엄마가 갈게.”

광기어린 상냥하고도 여린 목소리가 겹쳐졌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서, 선배. 선배······!”

나는 그녀를 향해 외쳤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아기를 다시 부활시켰다니요.

하지만 입은 이미 공포로 인해 말라붙어 있었다. 어떻게든 해답을 찾으러 물어보려 했지만, 짓눌린 입은 제 목소리를 다하지 못하고 억눌린 중얼거림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더욱 더 커진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원혜 선배는 이미 공포로 인해 실신 직전까지 몰렸고, 문원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문약 선배를 보고만 있었다.

이건 진짜였다.

나는 그날, 진짜 귀신을 본게 맞았다.

문약 선배가 불러들인 서서걷는 갓난 아기.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일어서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짓눌러진 다리는 더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아. 나는 이제 여기서 끌려가는 구나. 갓난 아기각 주는 저주에 의해 끌려가게 되는구나.

절망했다.

차라리 이럴줄 알았으면, 굿이나 한 번 더 볼걸. 비싼 부적이라도 살 걸

이것이 진짜라는 걸 알았으면, 이사라도 갈걸.

내가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선택지들을 후회했다.

그러니 누가 나 좀 구해줘.

나를 살려줘.


“예전에 우리 학교에는 한 남자 선생님이 계셨다.”


조용하고도 어두운, 쇠를 긁는 듯한 이질적인 목소리.

“너무나도 멋있어서 따르는 여학생이 많은 죄많은 선생님이셨지.”

황혼이 닿지 않는 어두운 그늘진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툭 튀어나왔다.

내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한 그림자가 시커먼 무언가를 안고 천천히 한걸음씩 이쪽으로 다가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녀가 한걸음씩 다가올 수록 그녀의 모습은 더욱더 분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열렬하게 사랑했던 한 어리석은 소녀가 있었다.”

창가로 스며드는, 황혼의 물든 주황 빛이 어둠속에서 걸어나오는 그녀를 차츰 차츰 비추어주기 시작했다.

여학생의 교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움직일때마다 마치 물고기가 유영하듯 하늘거리며 움직이는 하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그리고,

어둠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붉은 눈동자가 확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둘은 서로를 너무나 좋아해서 결국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질렀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다.”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밤 6시에만 등교하는 환상의 학생.

모든 괴담들을 먹는 다는 불가사의한 학생.

“누구···세요?”

문약 선배가 갑작스레 나타난 여학생을 보고 물었다.

“내가 누구냐고?”

여학생은 가만히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문약 선배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양쪽으로 찢어진다.

그것은 마치 웃는 것 같기도, 또는 우는 것 같기도한 기묘한 표정이었다. 문약 선배가 그런 여학생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을때,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여학생이 입술을 열었다.

“나는 괴담을 먹는 환상의 학생 와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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