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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세라턴
작품등록일 :
2018.08.14 16:26
최근연재일 :
2018.11.11 04:03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2,024
추천수 :
5
글자수 :
85,765

작성
18.08.14 18:54
조회
273
추천
1
글자
10쪽

무녀 루리

DUMMY

웃기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래의 모든 상황에서 나는 진지하다.


슈우우우욱. 엄청난 속도로 지금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다. 땅을 바라보면 어림잡아도 63빌딩의 세 배 이상 높아보이는 위치다.


아마 이대로 추락한다면 그대로 사망하고 이세계 인생 끝···이 되려나?


"이거··· 농담이지?"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내려와 턱끝에 맺혔다. 뭐야, 이 상황은 뭐지? 뭔가 설명이라도 필요한 거 아니야?


당황해서 급히 어디선가 본 마법 주문을 외워본다.


"시··· 실피드!"


물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문이 잘못된 건가? 그럼 이런 종류의 주문인가?


"바람의 정령이여 내 몸을 떠오르게 하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남은 일은 허공에 꼴사납게 팔을 허우적대는 것 뿐이려나.


"부탁해! 뭐든 좋으니까 좀 도와아아···


풀썩. 그 사이에 이미 지상에 가까워져 그대로 추락.


이렇게 용사는 죽었다···일리가 없지.


"푸하!"


다행히 시작하자마자 사망하는 전개는 피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잠깐 몸이 붕 뜬걸로 보아 바람의 정령이 응답해준 걸까?


아니면 운 좋게 떨어진 장소가 어느 과일 가게 3층 천막이어서 그랬던 거려나.


무언가 쪽지 같은게 머리 위로 떨어져서 읽어보면 "서비스야, 서비스."라고 적혀있다.


여신이 마법을 써 준 건가. 그럴 바엔 차라리 처음부터 지상으로 전송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충격이 없는 건 절대로 아니라, 나는 바닥에 처박힌 채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 곧 웅성이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이변을 관찰하러 모여든다.


인파 속에 파묻혀서 곤란해하고 있는데 사람들을 헤치고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나 섰다.


이 전개라면··· 나를 도와줄 누군가?


"자네."


그런 편의주의적인 전개는 없었다.


"네?"

"천막을 망가뜨렸으면 보상을 해야지."

"아··· 저기 제가 가진 돈이 없는데요."


눈 앞의 남자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겁을 먹은 나는 앞으로 있을 일을 예감하며 굳세게 마음 먹었다.


이 세계에 떨어지자마자 마을 주민들에게 집단 린치라니, 그다지 반가운 사태는 아닌걸.


하지만 다행히 남자는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다. 대신에 종이 하나를 내 눈 앞에 들이대고서 이렇게 말한다.


"그럼 여기에 사인해."


남자가 건넨 종이를 받아들었더니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다.


'한 달간 무임으로 식당에서 노동한다. 숙식제공.'


숙식제공? 이거 의외로 괜찮은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잠···시···만···요!"


어디선가 소리를 지르면서 푸른 머리를 휘날리며 돌진해오는 소녀가 있다.


"잠시만··· 헉··· 헉···."


소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식당 주인을 가로막아 내 앞에 섰다.


"그 돈! 제가 대신 지불하겠습니다."


사람들 사이로 빠르게 웅성이는 소리가 퍼져나간다. 나 역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기울일 뿐이다.


"아가씨, 얼마인지는 알고서 하는 말이야?"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섬주섬 품을 뒤적거리더니 소녀는 금화 한 닢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아발론 금화 1닢이라면 충분하겠죠?"


식당 주인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다. 이로써 금화 1닢의 가치가 대단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추측한다.


"뭐··· 상관 없지만."

"여기 확실히 건네드렸어요."


눈 앞의, 옆이 트인 상당히 요란한 옷을 입은 소녀가 정성스럽게 식당 주인 손바닥 위에 금화 한 닢을 놓았다. 그리고나서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내게 손을 뻗으면서 인사를 건네온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루리라고 해요."


밝은 햇빛을 받아 빛나는 미소가 상당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추락한 과일 가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어느 낡은 오두막이 루리의 집이라고 했다.


외관은 낡았지만 내부는 매일 청소한 것인지 비교적 깨끗하다. 루리 외에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데, 그럼 루리 혼자서 이 넓은 오두막을 관리해온걸까?


"용사님의 파티가 편히 머물 수 있도록 관리한거에요."


2층 가장 안쪽 넓은 방 침대에 나란히 앉아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 이제 슬슬 물어봐도 될까?"

"뭐든지 물어보세요, 용사님."


나는 루리의 눈치를 좀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넌 누구야?"


루리는 방긋 웃으면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 이름은 루리. 여신님의 신탁을 받고 용사님을 도우러 온 무녀랍니다."

"나를?"

"용사님은 지상이 처음이시니까 여러모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런 설정인 건가. 하긴 다른 세계에서 날아왔다고 하면 혼란만 가중되니 그편이 현명할지도 몰라.


"그럼 궁금한게 꽤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뭐든지 물어봐주세요."

"음··· 일단 레벨에 대한 건데, 이 세계의 레벨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어?"

"그건 간단해요."


루리는 양쪽 손가락 열개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내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 세계에는 숙련 레벨이란 게 있는데, 1부터 10까지 존재하고 있어요."

"레벨이 높을 수록 당연히 직능이 뛰어난 거겠지?"

"그래요. 하지만 단순히 레벨이 높다고 그 사람이 강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루리가 오른쪽 손가락을 세 개 펼치고, 왼쪽 손가락을 다섯 개 펼치고 내게 물었다.


"검술 레벨이 3인 사람과 요리 레벨이 5인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그야 검술 레벨이 높은 사람이 이기지 않을까?"

"맞아요. 그러니까 레벨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에요."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설정이네.


"다만 레벨이 높은 사람은 다른 레벨도 올리기 쉬워요."

"그건 어째서?"

"레벨을 올리려면 일정량 경험이 필요한데, 요리 레벨이 10이라면 검술 레벨은 금방 3~4레벨 정도는 만들 수 있거든요."


이건 좀 특이한 시스템이군.


"그럼 어지간한 마을 사람들은 다 어느정도 전투가 가능하다고 보면 되나?"

"예, 그렇답니다."

"이해됐어. 하나 더 묻자면 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레벨을 올리는 방법은 퀘스트인가?"


루리는 굉장히 놀란 표정을 하면서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아까 과일 가게 주인은 내게 퀘스트를 의뢰해왔지. 그건 이 세계에서 퀘스트란 것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라 그런 게 아닐까, 짐작했을 뿐이다.


꼬르륵. 갑자기 때아닌 배곯는 소리가 천장까지 울려퍼졌다.


"배고프세요?"


루리는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거리가 꽤 가까운걸··· 이렇게 있으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더군다나 이 좁은 방에서 남녀 둘이니까. 덕분에 좀 바보 같은 대답을 했다.


"어? 어어···."

"그럼 제가 식사를 준비해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루리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침대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휘잉. 열린 창 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걸어가 섰다. 창틀 바깥의 네모난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바삐 거리를 걷고 있다.


하지만 그 외형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짐승 귀를 가진 사람, 뾰족한 귀를 가진 사람, 인간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크고 작은 사람들에 붉거나 푸른 피부를 가진 사람들까지.


그들은 온몸으로 이 세계가 정말로 이세계라고 내게 주장하고 있었다.


끼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루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그릇이 세 개 정도 얹혀있었다.


"식사하세요, 용사님."


루리는 자신만만하게 그릇을 내려놓았지만,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식사?"

"왜 그러신가요?"


진정하자. 일단 진정하자, 나. 할 수 있어.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 번 눈 앞의 무언가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 검게 타서 형태도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는 여전히 불길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루리는 정말로 이게 식사라고 할 셈인가? 슬쩍 곁눈질로 루리의 표정을 살폈더니 그보다 더 순진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방긋 웃고 있었다.


아니, 아니지. 여기는 이세계고, 이 검은 무언가가 이 세계의 보편적인 식사일 수도 있잖아?


꼭 탄 것 같은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내가 선입견을 가져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


맞아. 일단 먹어보고 평가하자. 한 입 먹어보면 분명히···


···. 한 조각 목에 넘기자 마자 사고가 막혀버렸다.


이 맛-맛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입천장에 닿는 순간 달군 숯으로 피부를 지지는 충격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안전을 위해 그것을 삼킨다.


그러면 목구멍부터 위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모든 살갗을 천천히 불로 지지면서 그것은 자신의 맛을 뽐낸다.


하지만 위로 넘어갔다고 안심할 수 없다. 이내 그것은 위액을 만나 점차 팽창하더니 이내 숨이 쉬기 괴로울 정도로 커져버린다.


너무 순진했어. 루리라는 이 소녀의 외모가 너무 곱상해서 의심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암살자였던 거야.


내가 이렇게 판단하더라도 누구도 나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여신조차도.


"물을···."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깝게 물을 찾아 절규했다. 하지만 루리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언어로서 루리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건 힘들어보였다. 나는 죽기 직전의 무인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물컵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제서야 루리는 황급히 내게 물을 건넸다.


손에 물컵이 쥐어지기 무섭게 한 방울도 남김 없이 전부 들이켰다. 그걸로도 모자라 아예 물통 째로 들이부어서 배가 빵빵하게 부른 뒤에야 겨우 충격적인 맛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용사님, 혹시 요리가 맛이 없으셨나요?"

"맛이 없었냐고?"


나는 찔끔 눈물을 흘리면서 강하게 항변했다.


"독극물은 몇 초 내로 죽으니까 자비롭지만, 이 요리는 죽지도 못하니까 정말 자비가 없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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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숫자하나
    작성일
    19.09.12 02:05
    No. 1

    너무 옛날설정같은데요. 혼자사는 여자가 요리를 못할수는 있지만 탄다는건 있을 수 없죠. 현대처럼 식량이 사료로 쓰일정도로 대량생산되는 기술력을 가진게 아니라면요. 맛은 적당히 없더라도 태우는건 안되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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