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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두목이 주인공을 먹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언늘
작품등록일 :
2024.03.20 00:36
최근연재일 :
2024.04.17 18:5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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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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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
글자수 :
176,134

작성
24.03.2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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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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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프롤로그

DUMMY

갑자기 눈앞에 이런 화면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곧 죽습니다.>


나는 뜯고 있던 뼈 갈비를 툭 떨어뜨렸다.


“어라? 형님, 왜 그러십니까.”

“새끼가 두목님께 무슨 말버릇이냐.”

“내가 니한테 말했어? 딴지 걸지 마라.”

“뭐? 야 너 이리 나와.”

“오냐 오늘 누가 위인지 확실히 알려주마.”


나는 수족 둘이 다투는 광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저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진정시켰겠지만, 지금은 내가 진정해야 할 판이라 여유가 없다.


‘나는 누구인가.’


철학적인 주제가 아니다.

지금 나는 진심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찰하고 있었다.

내 이름은 아크릴 데이그.

이 근방에서는 끗발 조금 날리는 산적들의 두목을 역임(?)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김명철이다.

군대 제대 후 복학 전까지 편의점 알바와 집필 활동을 번갈아하던 평범한 20대 남자.

군 생활 동안 부풀어 오른 망상을 소설에 쏟아 붓던 민간인이다.

내가 쓴 소설은 그럭저럭 인기를 얻어서 꽤 많은 독자풀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끈기가 부족함’ 이라고 기록된 나답게, 완결이 가까이 다가오자 집필이 귀찮고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온갖 변명과 핑계로 휴재에 휴재를 거듭...... 이러다 연중하겠는데 라고 스스로 인지하던 차였다.


그래, 분명 마지막 날도 ‘내일은 무슨 변명으로 휴재할까.’를 생각하며 침대에 몸을 뉘였었지.

그리고 눈떠보니 산적 두목이다.

이 무슨 개똥같은 개연성이냐.


‘일단 산적 두목으로서의 기억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타고난 덩치와 완력으로 어려서부터 힘깨나 쓰는 마을의 일꾼.

그러나 영지전에 휘말려 마을 사람들은 전멸.

나를 따르던 동생들과 함께 산으로 숨어들어갔었지.

그리고 거기서 행상인들 삥 좀 뜯는 것으로 산적 생활을 시작했었다.

지금은 이 산맥을 본거지로 삼아, 꽤 큰 상단으로부터도 통행료를 받아내는 거물이 된 상태다.


“허허허.”

“형님이 웃으신다. 니 미친 짓이 어이가 없으신 거겠지.”

“네 얼굴이 웃기신 거다. 아직도 거울 안 보고 살아?”

“너 이리 나와.”

“오냐 오늘 누가 위인지......”


나는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김명철이 아닌 산적 두목, 아크릴 데이그로서.


“닥쳐라. 이것들아.”

“넵. 형님.”

“죄송합니다. 두목.”


부하들이 입을 다물자 조금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하나씩 차분히 생각해 보자.


‘우선 아크릴 데이그라는 내 이름. 이건 분명 기억에 있어.’


김명철로서 집필한 소설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이름이었다.

직업(?)이 산적 두목인 것도 똑같아.

2미터에 육박하는 덩치도, 전신에 꿈틀거리는 근육도 내가 묘사한 그대로다.

......가만있자. 내가 분명.


스윽.

나는 왼쪽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군.’


이 눈가에 그려진 상처.

이것도 내가 만들어놓은 설정 그대로다.

아크릴 데이그는 주인공의 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리는 장치로서 마련된 첫 악역이었다.

물론 송사리라고 부르면 송사리에게 미안할 정도로 비중 없는...... 프롤로그에서 생사를 달리하는 악역이었지만.


본래는 이름도 지어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첫 작품의 첫 악역을 무명으로 두기 뭐해서 급히 지은 게 아크릴 데이그였지.

참고로 이름은 앞에 코시국 때 유행(?)했던 아크릴 가림막이 있어서 아크릴로 지었더랬다.

편의점 야간 알바 도중에 프롤로그를 썼던지라.


‘어...... 그럼 나 지금 뭐된 거 아님?’


프롤로그에서 죽는 악역이라니까?

주인공이 시니컬하게 웃으며 단칼에 목을 베어버리는 게 나라고.

어떡하지? 뭐부터 해야 돼.

그때였다.


“두목!”


쾅 하고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온다.

그 녀석은 왼팔에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러자 좀 전까지 다투던 수족 둘이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뭐, 뭐냐. 어디서 그렇게 다치고 온 거야?”

“피하십시오. 두목. 웬 미친 괴물 녀석이......”


시발! 왔다!

주인공이 온 거야. 나 잡아 족치려고!

지금이 프롤로그의 순간이었던 거지.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내가 작업한 소설의 주인공은 미친 새끼란 말이야.

군대에서 열심히 키워온 망상과 때늦은 중2병의 환장할 조합의 탄생물이란 말이다.


“당장 도망......”


스윽.

철퍼덕.

그때 위험을 알리던 녀석의 목이 뚝 하고 떨어졌다.

촤아악 피가 천장까지 닿을 만큼 뿜어져 나왔다.


그 피분수와 무너져가는 부하의 신체 뒤에 검은 인영이 보였다.

내 소설 ‘전능한 주인공이 너무 강함’ 의 주인공 페이드 아우트였다.

영상에서 말하는 페이드 아웃 기법에서 고안한 이름이고, 당연하지만 아무 의미 없다.


척.


페이드 녀석은 피 묻는 검을 제 어깨에 걸치고 말했다.


“여어. 댁이 이 머저리들의 대가리요?”


나는 나도 모르게 외칠 뻔했다.


-웬놈이냐!


라고.

동시에 옆에 놓인 검을 차앙 뽑을 뻔했다.

그건 무의식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흔한 악역 엑스트라가 보일 법한 지극히 정석적인 반응.

하지만.


<담담하고 차분한 반응을 보이길 권합니다.>

<당신에 대한 여론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돌리도록 하세요.>


여론?

어떤 여론? 무슨 여론?


‘아니, 잠깐.’


첫 작품을 연재하는 모든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댓글의 중독자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새로 고침을 통해 댓글들의 반응을 살피곤 했다.

특히 프롤로그의 댓글은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잘 가라. 전형적인 주인공 무력 테스트용 악역아.

-ㅋㅋㅋ 아직도 산적 두목을 첫 악역으로 삼는 작가가 있네.

-무려 이름까지 붙은 녀석이라 좀 치는 줄 알았는데... 하차합니다.

-요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 썰고만 다님. 얘기로 풀어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죠?

-이럴 거면 산적 두목 외견 묘사를 왤케 공들여 하셨대 ㅋㅋ 어차피 한 칼에 죽을 걸.



어째 기억 속 댓글이 하나같이 악플이긴 한데, 어쨌건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설마 여론이라는 게 저러한 댓글 반응을 얘기하는 걸까?


‘분명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일회용 악당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너무 전형적이었다.

이번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여 보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어깨를 쭉 폈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공 앞에 다가갔다.


척척.

내가 설정한 주인공 페이드는 180센티의 키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 내 키에서 ??센티 정도 올린, 내가 선망하던 키.

하지만 지금의 나는 2미터가량인지라 주인공이 올려다보는 처지였다.

그러한 덩치 차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공은 여유롭게 씩 웃었다.


“그래도 두목 노릇하는 놈이라 그런지 다른 녀석들과는 분위기가 다르군.”


......!

이건 내 ‘원작’ 에는 없던 대사였다!

주인공 놈은 별 생각 없이 읊은 말이겠지만, 내게는 하늘의 계시와도 같았다.


‘원작은 바꿀 수 있다!’


그럼 나도 살 수 있을지 몰라.

그러려면 아까 전 화면창의 조언대로 여론을...... 댓글 반응을 내게 호의적으로 돌려야 한다.

여기선 어떻게 운을 띄우는 게 유효할까?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 말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십니까.”


험악한 산적 두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정중한 말투.

그리고 덩치와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

주인공이 제법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나 곧 무심하게 말했다.


“댁은 너무 설쳐댔어. 거의 5년 째 이곳에서 통행세랍시고 상단들의 삥을 뜯었다며?”

“예. 솔직히 인정합니다.”

“......점점 볼수록 의외로군. 네 녀석은.”

“......”

“어쨌건 영주가 네게 현상금을 걸었다. 생사불문이긴 하지만, 살려서 데려가는 게 값을 좀 더 쳐주더라고.”


그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다짜고짜 검을 뽑고 덤볐다면 바로 목을 베어줄 거였다만...... 지금 네 공손한 태도를 보고 마음을 바꿨어. 나도 한 푼이나마 더 버는 게 좋으니까.”

“......”

“잠자코 따라와.”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살았다, 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바로 반응을 보이려 한 것이다.

그때 화면창이 다시 떠올랐다.


<여론이 의외라고 느낄 만한 반응을 보이십시오.>


의외라고 느끼게 하라고?

지금까지도 충분히 의외이지 않아?

누가 봐도 한칼에 죽을 엑스트라가 목숨을 건졌잖아.

아, 가만. 혹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하, 조건?”


순간 주인공 놈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나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애써 태연히 입을 열었다.


“이 뒤의 두 놈도 함께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엉?”

“저도 제 목에 꽤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것을 압니다. 하지만 뒤의 두 놈에게는 동전 몇 푼 정도만 걸려있을 테죠.”

“......”

“저는 살려가는 게 더 큰 이득이시겠지만, 뒤의 것들은 죽이나 살리나 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


주인공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걸린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그러니 죽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닌가요?”

“누굴 미치광이 살인마로 아는 거냐.”


맞잖아.

넌 내가 만든 캐릭터라고.

초반에는 망나니처럼 온갖 사건에 피를 뿌리며 다니는, 악당과 별반 차이가 없는 스타일로 조형했단 말이다.


그러다 독자 반응이 안 좋아서 ‘정신적 성장을 이뤘다.’ 라는 컨셉으로 조금씩 캐릭터성을 고쳐나갔지.

그게 잘 먹혀서 나중에는 꽤 인기가 올라 흐뭇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 얘기고, 지금의 주인공은 ‘귀찮게’ 살려서 데려가느니 그냥 죽이고 목만 챙겨갈 거란 게 내 생각이다.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아니, 정확해. 너 꽤 재미있는 놈이네. 이런 산골짜기에서 썩을 싹수로는 안 보이는 걸.”

“......”

“뭐,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몸이겠지만. 아무튼 좋다. 세 놈 다 따라와라.”


됐다.

나는 확인을 위해 화면창을 살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축하합니다. 여론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습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뒤에서 두 부하 놈들이 아우성을 쳤다.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불한당에게 왜 그리 저자세냐고요.”

“두목! 제게 맡겨주십시오. 당장 한 칼에 처리하겠습니다.”


이 미친놈들아. 제발 닥쳐.

나는 휙 몸을 돌려 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득.

악력을 발휘하자 나조차도 놀랄 힘이 두 놈을 옥죈다.


“둘 다 닥치고 내 말을 들어라. 언제 내 말대로 해서 손해 본 적 있더냐.”

“끄으윽. 아픕니다. 형님.”

“죄, 죄송합니다. 두목.”


나는 휙 다시 몸을 돌렸다.

주인공 놈은 칼을 집어넣은 채 하품을 하고 있었다.


“집안 정리는 끝났냐?”

“네.”

“그럼 따라와. 굳이 밧줄로 묶을 필요는 없겠지? 넌 내 눈을 피해 도주를 시도할 만큼 멍청이 같진 않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큭큭. 진짜 특이한 놈이로군. 가자.”


척척.

주인공 놈이 먼저 몸을 움직인다.

당연히 우리가 따라올 것이라 믿는 것처럼.

나는 부하들과 함께 녀석의 등 뒤를 따라 걸었다.

그때 화면창이 떠올랐다.


<여론 반응을 확인하십시오.>

-산적 놈 살았네 ㄷㄷㄷ

-산적치고는 머리가 꽤 잘 돌아가는 듯.

-주인공이 고구마네요. 하차합니다.

-뭐 좀 있어 보이는 산적인데? 영락없이 무력 측정기인 줄 알았음.

-왠지 저 산적 계속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ㅋㅋㅋ

-왕도를 비트는 전개네. 하긴 요새 이런 게 고프긴 했음.



전반적으로 좋은 반응이었다.

그때 화면창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좋은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살아남으세요.>

<주인공과 헤어지면 여론은 당신에게서 시선을 거둘 것입니다.>

<다시 여론이 당신을 주시하게 만들려면 ‘활약상’을 확보하시면 됩니다.>

<다음 여론의 시선을 얻기까지 필요한 활약상 : 0/100>

<필요한 활약상을 전부 채운 뒤 여론의 시선을 얻으면, 당신의 그간의 행적이 전부 드러나며 ‘호감도’ 를 보상으로 얻습니다.>

<튜토리얼 클리어 보상으로 ‘엑스트라 최강’ 고유능력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 문장이 적혔다.


<목표는 당신이 ‘주인공이 되는 것’ 입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새 작품으로 찾아뵙습니다.

공지에도 말씀드렸지만, 오늘은 신작 기념 3연참 예정입니다.
이따 잊지 말고 또 찾아와 주세요! :)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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