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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연 님의 서재입니다.

다크판타지 속 야만전사로 살아가기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조필연
작품등록일 :
2024.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4.06.01 23:54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488
추천수 :
97
글자수 :
80,952

작성
24.05.30 18:20
조회
75
추천
7
글자
11쪽

11화. 좋은 요정은 없다(2)

DUMMY

길리엇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저게 뭐야?”


약물을 정도 이상으로 쏟아부어 급조하긴 했지만 방금 만든 괴인은 분명 강력한 시체 괴인이었다.

자신이 도망칠동안 야만인의 발목을 충분히 잡아줄 수 있을 괴인.

비싼 재료들을 잔뜩 갈아 넣어야 겨우 몇 방울 뽑아낼 수 있는 약물을 한 병이나 처바른 괴인.


그런데 저 야만인놈은 그런 노력과 비용이 무색하게도 단지 뚜벅뚜벅 걸어가 괴인의 허리를 갈라버렸다.

그것이 길리엇이 목격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전말이었다.


“이런 시발. 어디서 저런 괴물새끼가 튀어나온 건데···.”


결국 입에서 터져 나온 욕설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그 야만인이었다.

어깨까지 자란 검은 머리카락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

커다란 키와 덩치, 셔츠를 입어도 가릴 수 없을, 꿈틀거리는 크고 작은 근육.


그 야만인은 덜컥 굳은 길리엇을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어이구, 요정이네?”


길리엇은 뭐라 답해줄까 하다가 삐질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답했다.


“···그, 안녕하쇼? 나, 난 길리엇이라고 하는데. 그쪽은?”

“지랄 말고. 우리 구면이지?”

“어··· 아닌데. 사람 잘못 봤소. 난 당신 처음 봐.”


엄밀히 말하면 직접 대면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긴 했다.

길리엇은 입을 끌어당겨 웃었다.

그러나 눈은 웃어지지 않아서 그대로 겁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그걸 본 아슬란도 같이 웃어주었다.

이를 드러내고 웃는 환한 미소였으나 요정에겐 살해 위협, 그 외에 다른 의미로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길리엇은 슬슬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웃는 얼굴 그대로 아슬란이 말했다.


“어디 가냐?”

“어, 그, 내가 뭘 깜빡하고 놓고 왔는데 금방 좀···.”

“좋은 말로 할 때 여기 와서 서라.”


그때 우뚝 멈췄다가 안 되겠는지 비척비척 다시 걸어오던 길리엇이 순간적으로 칼을 휙 들이밀었다.

요정답게 아주 민첩한 동작이어서 웬만한 사람은 그냥 한 칼 맞고 죽을 게 분명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그가 뽑아든 것은 팔뚝 길이에도 못 미치는 단검이었고, 그래서 아슬란은 배에 구멍이 나기도 전에 그냥 요정의 손을 잡아채 으스러트려주었다.

빠드득 소리 너머로 야만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미소 지은 아슬란은 거기서 끝내줄 생각이 없었다.

고통을 참으려는 듯 이를 악물고 부들거리는 요정에게 그럴 필요 없다며 배에 한 주먹 더 꽂아준 것이다.


덕분에 손이 붙잡힌 요정은 발이 땅에서 거의 떨어질만큼 들렸다가 다리가 풀려서는 주저 앉았다.

방금 먹었던 음식들을 우웩 토해낸 그가 꺽꺽대며 비명질렀다.

끄억꺽, 어헝, 하는 복합적인 비명 아래로 본인이 토해놓은 자리를 뒹구는 요정의 모습이 볼썽사나웠다.


아슬란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를 걷어찼다.

길리엇이 두어바퀴 굴러 벽에 쿵 부딪히며 소리쳤다.


“끄아아아악!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몰라서 묻나.”

“내가 뭘 어쨌다고? 방금 날 위협한 건 그쪽이 먼저였어!”


아슬란은 잠시 자신이 착각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물론 고민은 거의 찰나에 불과했고 생각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좋은 요정은 없다는 게 왕국에 널린 인식이었고, 아슬란 역시 왕국에 적을 둔 사람인지라 그 말이 타당하다 믿는 쪽 중에 하나였다.

물론 거기엔 전생의 선입견도 한 몫 했다.


“대답 똑바로 안 하면 그 위협이란 걸 다시 받게 될 거다. 아까 그 시체는 뭐냐? 어떻게 한 거야?”


침을 질질 흘리던 길리엇은 분하다는듯 입가를 훔쳤다.

그러나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걸 알아서인지 고분고분하게 답했다.


“어느 쪽을 말하는 거야?”

“먼저 번 거. 그리고 방금 거. 둘 다.”

“그런게 왜 궁금한 거지. 그쪽도 혹시 마법사인가?”

“신체 절단 마법이라고 들어봤나? 유명한 건데.”


길리엇은 무릎 꿇은 채 위를 올려다보며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검고 깊은 눈은 야만인이든 마법사든 자신의 인내심이 그리 후하지 않다 말하고 있었다.

그가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하기 시작했다.


“···둘은 같은 방식이다. 죽은 지 오래되지 않은 시체엔 영혼의 잔재가 남아있는데, 영혼 지배 주문이 유효한 건 죽은 지 두어 시간이 안 된 시체 뿐이야. 그렇게 주문을 외운 다음 약물을 발라 쉽게 짓무르는 살갗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거지. 물론 방금 시체는 거기 특수한 약물 처리를 한 번 더 해서 몸집을 키우는···.”


길리엇은 하던 말을 멈추고 어처구니 없다는 식으로 아슬란을 바라보았다.

그가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는듯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슬란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뭘 쳐다봐. 듣고 있으니까 계속해.”

“···큼, 어디까지 말했, 아, 그렇게 몸집을 키우는 방식인데, 그건 무려 세 가지 비기가 조합된 고급 기술이자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만 할 줄 아는 기술 융합 마법이지.”

“그리고?”

“그리고 뭐? 이게 전부야.”


아슬란은 창 밖에서 다시 고개 돌려 집 안을 향했다.

약간의 의혹, 혹은 의심이 깃든 얼굴이었다.

그걸 본 길리엇은 다시 덜컥 굳어서는 자신이 방금 말을 잘 못 했었나 싶은 마음에 방금 했던 말을 되짚어 보았다.

그럴만한 것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그가 말했다.


“···난 아는 걸 전부 말 했다. 뭘 더 원하는데?”

“자세히 말해봐라. 영혼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거.”

“나도 그렇다고만 알고 있다. 책에서 본 거라.”

“책?”


길리엇의 시선이 향한 곳에 활짝 열린 그의 가방이 있었다.

아슬란은 몇 걸음 걸어가 가방을 휙 뒤집어 엎고는 쭈그려 앉아 쏟아져 나온 내용물을 살폈다.

어렵지 않게 두꺼운 책을 발견한 그가 책장을 대충 넘기더니 다시 고개 돌렸다.


“못 읽겠는데. 이게 무슨 글자냐?”

“···그거야 말로 내 비기 중의 비기인-”


길리엇은 순간 잘난체 하려다가 아슬란의 감정없는 표정을 보고는 올라간 입꼬리를 끌어내렸다.


“···고대 용족 문자다. 지금은 읽을 줄 아는 사람도 몇 없는.”


아슬란은 침묵했다.

고블린부터 용까지 온갖 괴물이 살고 있는 땅이란 건 알았지만 누구 입에서 용이란 얘기를 들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가 아는 것은 용이 모든 주문의 대가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조상이 그 모든 주문의 시초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야만인의 침묵을 어떤 식의 질문으로 받아들인 길리엇이 말을 이었다.


“마법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는 모양이지? 좋아, 내가 뭐든 다 알려줄 테니 내 조건을 하나 들어주면-”

“네가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은 입을 놀려서 목숨을 연장하는 것 뿐이다.”


존재 그 자체로 살해 위협이 되는 아슬란의 표정엔 조금의 빈틈도 없어 보였다.

세상이 무너져도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눈빛.

마른 침을 꿀꺽 삼킨 길리엇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계속 말했다.


“···계속 하자면, 용은 신이 만들지 않은 유일한 피조물이며 신을 제외하면 우주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생겨난 창조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용이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주문의 완성이 될 수 있는 거지. 그 책은 용들과 교류했던 어느 마녀가 그들의 언어를 빌어 쓴 책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그들의 말을 받아적을 수 없었으니까.”


대답에 만족한 것인지 아닌지 길리엇은 알지 못 했다.

아슬란이 계속 뚱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였다.

그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뭐라도 하기 위해 입을 놀렸다.


“그, 물론 나도 그 책을 전부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몇 있긴 했어. 거기서 알아낸 것이 바로 어떤 존재가 죽으면 영혼의 잔재가 남는다는 것과 영혼의 잔재가 남은 시체를 지배하는 주문이었지. 그리고 영혼 자체를 지배하는 마법도 찾아 냈는데, 그건 아직 해석이 불분명해서 사용해보지 못 했어. 이게 전부다. 내가 아는 건 정말로 전부 다 말했어. 그러니 이제-”

“조엘. 누군지 아나?”

“조엘? 조르엘은 알아도 조엘은··· 그게 누군데? 난 진짜 모르는-”


길리엇은 그렇게 영원히 입을 벌린 모습으로 머리를 떨궜다.

열심히 돌아가던 두뇌를 잃자 그 지독한 상실감 때문인지 몸이 움찔 떨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아슬란의 감상이었다.


다음 순간 요정 길리엇의 잘린 머리에서도 검푸른 빛무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슬란은 자연스레 거기 손을 가져다댔다.

처음 얻는 마법사의 영혼이자 지금껏 몇 없던 요정의 영혼이었다.


아슬란은 여전히 전부 이해했다 자부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왔군.”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소리쳤다.


“이 씹새, 무기 버리고 손 들어! 지금 부터 셋 센다!”


아직 고개도 돌리지 않은 아슬란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푹 한숨 쉬었다.

도무지 이놈의 중세 랜드엔 예의 바르고 멀쩡한 놈이 없었다.

특히 초면에 욕부터 하는 요정 애새끼라면 그 인성, 아니 요성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손에 들어올 영혼이 또 하나 늘겠군.

아슬란은 그런 예감에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들고 천천히 일어서서 뒤로 돌았다.

점점 커지는 덩치에 놀라 눈이 동그래진 것은 불량 청소년 요정이 아닌 머리가 긴 요정이었다.

얇고 가벼운 갑옷 차림에 활을 겨누고 있는 정석 그대로의 요정.


“여자 요정? 이런 건 또 처음 보네.”

“웬 시발놈이 이렇게 커···? 넌 또 뭐야, 거인족이야?”

“야만족인데.”


자신을 야만족이라 소개한 전사를 본 요정이 뒷걸음질 쳤다.

듣기로 백여 년 전 날뛰었다던 아무아 야만인들은 화살 몇 발 맞고도 그냥 달려들어 도끼로 사람 머리를 찍어버리는 광기의 전사들이자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화살 한 발로 그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다면 다음 찰나에 죽는 건 자신이 될 것이 분명해보였다.


“이런 시발··· 거기 그대로 서 있어.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쏜다.”


그녀는 그렇게 긴장된 모습으로 계속 뒷걸음질 쳐 문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어느 순간 휙 돌아선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뭔데?”


황당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 아슬란은 입에 걸레 문 여자 요정을 쫓아가 예의를 주입해줄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그 머리통을 쪼개줌으로써 얻는 만족감과 영혼보다 길리엇이 말했던 용언 주문서에 대해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용의 언어로 쓰인 주문서?

딱 봐도 금화를 몇 궤짝은 벌어다줄 물건 아닌가.

어쩌면 어떤 부유한 마법사 단체에게 팔아넘기고 성을 하나 사버릴 수도 있을지 몰랐다.

왕에게 항복하고 얻은 조그만 땅에서 빌빌대는 변방 귀족 아홉째 아들에서 어엿한 성주가 되는 야만인.

비록 실행하진 않겠지만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요정을 쫓아가지 않은 이유는 또 있었다.

어차피 그대로 두어도 그녀는 다시 찾아올 게 분명했다.

얼뜨기 주제에 가는 곳마다 시체밭을 만드는 요정 마법사, 무려 용과 교류했다는 마녀가 남긴 용언 주문서, 뜬금 없이 나타나 활을 겨눈 욕쟁이 요정.

그녀의 목적은 여기 있는 게 분명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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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중단에 대한 사과 말씀 24.06.02 23 0 -
14 13화. 용살자 오크(1) 24.06.01 55 2 13쪽
13 12화. 좋은 요정은 없다(3) 24.05.31 66 4 12쪽
» 11화. 좋은 요정은 없다(2) 24.05.30 76 7 11쪽
11 10화. 좋은 요정은 없다(1) +1 24.05.29 92 5 12쪽
10 9화. 모루의 주인(7) +1 24.05.28 87 10 14쪽
9 8화. 모루의 주인(6) 24.05.27 88 6 14쪽
8 7화. 모루의 주인(5) 24.05.26 88 5 13쪽
7 6화. 모루의 주인(4) 24.05.26 97 7 14쪽
6 5화. 모루의 주인(3) +1 24.05.24 110 9 18쪽
5 4화. 모루의 주인(2) +1 24.05.23 114 9 14쪽
4 3화. 모루의 주인(1) +1 24.05.22 120 8 14쪽
3 2화. 흑(화한)마법사 24.05.21 138 10 13쪽
2 1화. 환생자 24.05.20 164 8 14쪽
1 프롤로그 24.05.20 193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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