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어릴 적부터 중세풍 판타지물을 좋아했다.
게임과 소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내 선택은 항상 중세 판타지였다.
다른 취미가 그러하듯 내가 판타지를 좋아한 이유도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등장인물들의 모험을 바라보는 잠깐의 시간동안 나도 그들과 함께 모험을 할 수 있었기때문이다.
여행 도중 만난 인연들과의 우정과 사랑, 음모와 배신.
이야기 속에서 갖은 사건을 겪으며 수많은 업적을 쌓아나가는 주인공은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가끔 삶이 고단할 때면 지나가는 트럭을 멍하니 쳐다보며 그런 망상을 하기도했다.
만약 교통 사고로 죽게된다면 판타지 세상 속에서 환생하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서른 넘은 아저씨인 나는 망상 속에서 환생자가 으레 얻는 능력을 떠올리며 히죽거리곤했다.
단 한 칼에 어떤 괴물도 죽일 즉사기.
전설적 천재 마법사의 재능.
나 홀로 레벨업 할 수 있는 특전 등.
모두 하나만 가지고도 판타지 세상을 호령할만한 능력들이었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판타지 세계에서 환생하게된다면, 내가 고르고 싶은 건 그런 화려한 능력들이 아니었다.
무릇 낭만이란 큰 제약을 가진 주인공이 온갖 시련을 이겨낼 때 최대치로 느낄 수 있는 법 아니던가?
그런 이유로 내 선택은 야만전사였다.
극한으로 갈고 닦은 육신의 능력만으로 적의 머리를 시원하게 쪼개버리는 상남자 캐릭터.
강력한 마법이나 화려한 스킬 같은 건 허락되지 않은, 유행에 뒤쳐진 캐릭터.
그러나 내겐 그만한 재미와 감동도 없을 캐릭터.
언제나 같은 선택을 한 나는 상상 속에서 강력한 전사가 되어 괴물과 적들의 머리를 하나씩 쪼개나갔다.
그리고 어느날 횡단보도를 건너다 문득 눈을 떴을 때, 난 판타지 세상에 환생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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