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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 님의 서재입니다.

헌터스쿨, 게임스킬, 아카샤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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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o220
작품등록일 :
2021.01.11 18:14
최근연재일 :
2021.01.25 07:0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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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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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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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제04장. 실기시험(3)

DUMMY

#06


모의던전의 내부 구조는 마치 개미굴 같았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을 인위적으로 깎아 만든 것처럼 넓어졌다 좁아졌다 했는데, 폭과 높이 때문에 허리를 숙여야 되는 구간이 많았다.


[갈림길이네요.]


얼마 들어가지 않아 길이 세 갈래로 나뉘었다. 벌써 몇 번이나 겪은 갈림길이었다. 이 던전은 구조 자체가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었고, 서로 나뉘었다 합쳐지는 부분이 매우 많았다.


"흐음."


보통의 응시자라면 여기에서 한참을 머물렀을 것이다. 기감(氣感)을 극대화하여, 던전하트에서 나오는 미약한 마기(魔氣)의 잔향을 추적해야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꽤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 상당한 정신집중을 필요로 했다. 심지어 그 틈을 노려 공격하는 몬스터까지 있었기 때문에 위험하기까지 했다.


물론 유성진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탐험(C랭크)]을 사용합니다. 숙련된 탐험가의 감각이 미궁의 구조를 파악합니다.


우웅.


수중 레이더처럼 동심원의 형태로 파장이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미니 맵 형태로 던전의 구조가 구체화되었다. 유성진은 그저 맵에 나와 있는 길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됐다.


-경고! 전방 15미터 앞에, 마법 함정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벽면에 미세한 요철이 튀어나와 있었다. 인간의 기척을 느끼는 순간 작동하는 감지기인 듯했다. 유성진은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은신(D랭크)]를 사용합니다. 기척이 줄어들어 감지하기 어렵게 됩니다.


유성진의 몸 윤곽이 흐릿해졌다. 투명해진 정도는 아니지만, 자칫하면 모르고 지나갈 정도였다. 그는 천천히 함정이 설치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위잉.


희미한 광선이 유성진의 몸에 와 닿았다. 하지만, 기관장치가 작동할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은신]이란 단순히 몸을 보이지 않게 하는 '투명화'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갖춘 총체적인 '기척' 자체를 줄이는 스킬이었다. 마법으로 제작된 감지기로서는 유성진의 기척을 인간으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유성진은 결국 아무렇지도 않게 마법함정을 걸어 지나갈 수 있었다.


-경고! 코너 뒤에 고블린 병사 2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고블린은 중학생 정도의 덩치와 신체능력을 가진 몬스터였다. 랭크는 E로 전투력은 높지 않아 일반인도 쓰러뜨릴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교활한 지능을 갖고 있어 프로들도 제법 까다롭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고블린의 가장 큰 문제는 기척을 읽기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녀석들은 은신해 있다가 헌터를 기습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 공격이 너무 은밀하고 교묘하여 뛰어난 헌터도 방심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성진은 이번에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투척(C랭크)]이 적용됩니다. 명중률, 사거리, 속도 보정.

-[곡사]가 적용됩니다.


[곡사]는 [투척]이 C랭크에 도달하며 얻은 능력이었다. 이로 인해 유성진은 직각으로 휘는 듯한 기묘한 투척을 할 수 있게 됐다. 스킬이 본격적으로 물리법칙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쉬잇, 콰직!


유성진이 던진 돌멩이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꺾여 모서리 안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잘 익은 수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미니 맵에 있던 두 개의 회색 점 중 하나가 사라졌다. 고블린의 머리통이 깨지며 사망한 것이다.


"키이이익!"


동료의 죽음에 격분한 고블린이 죽창을 들고 뛰쳐나왔다. 하지만 유성진의 손에는 이미 또 하나의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이어진 돌팔매에 녀석은 변변찮은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경고! 100미터 전방에서 오거를 발견했습니다!


유성진이 오거와 맞닥뜨린 것은 모의던전에 진입하고 한 시간이 될 무렵이었다. 그는 [탐험]을 통해 오거를 감지하자 처음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에디가 말을 걸었다.


"뭔 입학시험에서 오거를 던져 놓냐, 이러니까 인터넷에서 수신기관은 새디스트들만 가득한 미친 학교라고 욕하지."

[[은신]을 쓰면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은신]이라고 만능은 아니야. 아직 랭크가 낮기도 하고. 고블린이나 놀 정도라면 모를까, 오거라면 감지할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요?]

"기다려야지."


유성진은 그 말대로 오거가 인식하지 못할 만한 거리에서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니 맵에서 한 무리의 흰색 점들이 나타났다. 흰색은 게임 속에서는 NPC를 나타냈는데, 현실에서는 다른 인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현실의 인간도 NPC로 취급되는 것이다.


유성진의 바로 다음이니, 응시자들 중 꽤나 선두인 듯했다. 유성진은 숨을 죽인 채 모서리에서 대기를 했다. 그러다 그들이 충분히 접근하자 유성진은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투척(C랭크)]를 사용합니다. 명중률, 사거리, 속도 보정.


후웅!


"크헝?"


유성진이 집어던진 돌멩이는 정확히 입구를 지키던 오거의 이마에 명중했다. 물론 큰 대미지는 아니었다. 오거의 가죽은 전차의 주포조차 멍 드는 정도로 끝낼 만큼 질겼기 때문이다.


"그르르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오거의 화를 돋우기에는 충분했다. 녀석의 흰자위가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멩이를 던진 적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유성진은 곧장 숨을 멈추고 코너에 몸을 숨겼다.


-[은신(D랭크)]를 사용합니다. 기척이 줄어들어 감지하기 어렵게 됩니다.


쿵! 쿵! 쿵!


분노한 오거는 유성진 근처로 달려왔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은신]으로 몸을 감춘 상태였다. 오거는 높은 랭크의 몬스터이기 때문에, 감각을 집중하면 유성진을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은신]의 랭크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기가 가까워지는 거 느껴지지? 벌써 반 이상 온 거 같아."

"이 정도면 우리가 선두 아니야?"

"운이 좋았어, 거의 헤매지 않은 거 같아."


하지만, 그 순간 동굴 너머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유성진이 감지했던 흰색 점들이 근처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멀리서 인기척을 느낀 오거는 지금 다가오는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한 장본인이라 착각했다.


녀석은 몸을 숨긴 유성진을 방치한 채 다가오는 응시자 쪽으로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뭐, 뭐야! 오거잖아!"

"미친, 오거가 여기서 왜 나와?!"


다른 응시자들과 오거가 부딪치자, 유성진은 비로소 [은신]을 해제했다. 그리곤 당당한 발걸음으로 오거가 지키고 있던 입구로 진입했다. 한참 응시자들과 싸우는 중인 오거는 그런 유성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에디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쉽네요.]

"말했잖아, 걱정할 거 없다고."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아직 스킬 랭크도 별로 안 높잖아요. 근데 이 정도의 효과라니...]


에디가 의문을 느낄 만큼 [탐험] 스킬의 성능은 비상식적으로 뛰어났다. 단순히 미니 맵을 보는 수준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숨겨진 지형과 함정, 숨은 적들의 위치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최상위 정보계 초상능력(超常能力)에 비견될 위력이었다. 심지어 [탐험]은 아직 C랭크에 불과하지 않던가.


"원래 발할라 온라인에서 C랭크 [탐험]은 이 정도는 아니야. 지금 발휘되는 효과는, 범위를 제외하면 보통 A랭크 정도의 숙련도에서 쓸 정도야."

[진짜요? 하긴, 너무 말이 안 된다 싶긴 했어요. 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효과가 좋은 건가요?]

"그건 여기가 모의던전이라 그래."

[네?]


에디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성진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자 유성진은 구덩이에 숨어있는 고블린에게 돌팔매질을 하면서 설명했다.


"[탐험]은 던전의 랭크와 스킬의 랭크에 상대적인 차이에 따라서 효력이 정해지거든. 똑같은 C랭크 [탐험]이라 해도 E랭크 던전에서 쓸 때에 비해 A랭크 던전에서 쓸 때 효과가 떨어지는 식이지."

[던전과 스킬 랭크의 상대적 차이에 따라 효력이 달라지는 거군요.]

"중요한 건 여기서 던전의 랭크가 어떤 식으로 매겨지냐는 거지. 던전도 출현하는 몬스터나 함정, 구조가 다양하니 함부로 매기기 어려워. 그래서 일반적으로 던전 랭크는 생존률을 기준으로 매겨지거든. 그런데 모의던전의 생존률은 어떻지?"

[아...]


그제야 에디도 이해한 듯했다.


[모의던전이 훈련시설로서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실제 던전에 비할 바는 아니죠. 생존률로 따지면 99퍼센트는 넘겠네요. 그래서, 생존률에 따라 난이도를 평가하는 발할라 온라인의 시스템으로는 굉장히 낮게 평가되는 거군요.]

"맞아. 출제자들은 모의던전 자체의 난이도를 A랭크 이상으로 지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한들 실제로 사망하는 건 아니니까 평가는 달라지지 않지. 실제로 [탐험]으로 나타나는 설명은 이렇게 돼있어."


유성진의 말과 함께 눈앞에 메시지 창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탐험]을 통해 알 수 있는 던전의 개괄적인 정보였다.


-모의던전 훈련장

과학과 무학, 마학을 복합해서 만든 헌터를 위한 훈련시설. 폴란드 실라시아에서 발생했던 D+랭크 던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외부의 간섭으로 난이도가 C+랭크로 상승한 상태다.

지형: 지하 미로

식생: 고블린, 놀, 오거.

난이도: F-


원래 출제자들이 생각한 모의던전의 난이도는 D+. 이후 오거를 추가하면서 C+ 정도로 정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탐험]으로 인식된 모의던전의 난이도는 F-였다. 발할라 온라인에서는 최저치가 E랭크이니, 말도 안 될 정도로 낮게 평가되는 것이었다. 모의던전의 설정을 바꾼다고 해서, 실제로 사망률이 올라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철저하게 게임 시스템에 따라서 일어난 빈틈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던전 중에선 미로 형태가 아닌 평원이나 일직선 형태의 던전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할 셈이셨어요? [탐험]은 별 의미가 없을 텐데 말이죠.]

"그럴 가능성은 없어. 이건 시험이잖아."

[네?]


유성진은 눈만 껌뻑거리는 에디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평원 구조라고 생각해봐. 거기에 수천 명의 지원자가 무리지어 들어가겠지. 뿔뿔이 흩어놓는다고 해도 서로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고. 그렇게 수백 명이 함께 모인다면 어지간한 몬스터는 간단하게 박살낼 수 있지 않겠어?"

[...아.]

"이게 현실의 던전이 아니라, 시험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상. 모의던전이 취할 수 있는 구조는 한정되어 있어. 그 중 미로 형태는 대규모의 시험을 위해 가장 특화된 형태지. 실제로 출제경향을 살펴보면 95퍼센트는 이런 형태로 나왔고 말이야."


유성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탐험], [은신], [투척]. 게다가 미로 형태의 던전 구조. 세 가지 스킬을 습득한 시점에서, 내가 모의던전에서 탈락할 확률은 없었어."


교수들이 예상한 이번 시험의 평균적인 공략시간은 4시간 정도였다. 이것은 교전과 도주, 우회하거나 헤매는 시간을 모두 고려한 수치였다. 게다가 오거가 투입되며 예상 평균공략시간은 5시간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유성진은 [탐험]과 [은신]을 통해 교전을 대부분 회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길을 헤매는 일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딱히 경신술을 발휘하며 이동한 한 것도 아닌데 다른 응시자와 비교를 불허하는 속도로 모의던전을 공략하는 중이었다.


"여기가 보스룸인가."


보스룸은 제의(祭儀)를 수행하는 신전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성당이나 절 같은 신성한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없이 불길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감돌았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묘한 건축양식은, 마치 인간의 내장(內臟)으로 건물을 장식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심지어 묘하게 비뚤비뚤한 지형 탓인지 똑바로 걷고 있는데도 비뚤어지게 걷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곳곳에 세워진 기괴한 석상은 이질감을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유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소름이 돋는데."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계의 건축기술,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이종족의 황금비로 조성된 건축물이라 그래요. 다른 세계를 점령하며 번식하는 침략종의 미학은, 호모 사피엔스 같은 선주종의 심미관(審美觀)과는 공존할 수 없거든요.]


그렇게 말한 에디는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올랐다. 녀석은 신전의 벽면과 문양을 천천히 살폈다.


[이 모의던전은 아마 고블린 던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모양이네요. 고블린이 선호하는 미학적 특성이 전부 드러나 있어요.]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다른 마족들은 잘 모르지만, 고블린은 이야기가 다르죠. 고블린은 72위의 만마전 가운데 제 71위, 위험도로 최하위이기는 하지만 매우 끈질겨서 우주 곳곳에 널리 퍼져 있거든요. 5백 년 동안 수백 번도 넘게 봐왔으니, 모를 수가 없죠. 바퀴벌레 같은 녀석들...]


유성진은 신전의 내부로 들어가자, 이 건물이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 1차 테스트를 치렀던 신성웅체육관과 비슷한 수준의 면적을 갖고 있는 듯했다.


기괴한 석상들이 스톤헨지처럼 둘러싼 가운데에는 피라미드를 닮은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또한 제단과 석상 사이에는 깊은 해자가 파져 있었는데 안을 살펴보자 셀 수도 없는 해골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우징! 고블린의 불길한 인신공양의 제단을 발견했습니다!


"실제 던전이 이런 구조인 건가."

[던전의 주인마다 다르지만 대충 비슷해요. 종교적, 마법적인 의미를 갖춘 건축물과 불길한 인신공양의 흔적들. 뭐, 스펙터나 서큐버스 같은 예외도 있지만 말이죠.]


제단과 외부를 잇는 별도의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유성진은 [탐험]을 써서 뼈 무더기에는 아무런 함정이나 몬스터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뼈다귀로 가득한 해자 속에 뛰어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해자 안에 있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뼈만이 아니었다. 고블린이나 오거와 같은 몬스터는 물론, 개나 고양잇과 동물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심지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생물체의 골격도 드물지 않았다.


"후우... 이것도 제법 지치네."

[...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 말이죠.]

"어렸을 때 고무공 잔뜩 들어있는 놀이터에서 놀던 기분이었어."


유성진은 뼈다귀의 바다를 건너 위로 올라갔다. 세워진 제단의 꼭대기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녹색 보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시험의 목표이자 던전의 핵심인 던전하트였다.


[여기에 손을 대면 끝나는 건가요?]

"그러겠지?"


유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워치를 살폈다.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 쓰라고 받은 물건이었다. 물론, 시계인 만큼 시간을 표시하는 기능도 있었다.


'입장하고 이제 57분인가? 10등 안팎으로 유지하려고 했는데... 내 예상보다 쉬워서 너무 빠르게 통과했네. 이거... 자칫 잘못하면 부정행위라고 의심받을 수도 있겠는데.'


지금은 증강현실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탐험]으로 나타난 정보에 따르면, 모의던전 곳곳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마 응시자들의 실력을 채점하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멍하니 시간을 때우고 있으면 더 크게 의심을 받겠지. ...뭐 어쩔 수 없나. 따지고 보면 무공을 평가하는 시험에서 가공유희를 쓴 것도 부정행위라면 부정행위일 테니. 일단은 합격하고 생각하자.'


잠시 고민을 한 유성진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 탄 격이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피라미드 한 가운데에 박혀 있는 보석 위에 손을 올렸다.


파앗!


그러자 유성진을 둘러싼 던전의 풍경이 폴리곤 덩어리로 변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괴한 양식의 신전과 석상들, 동굴의 내벽은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스러졌다. 어느새 유성진은 무기질적인 콘크리트 방 안에 서있었다.


-축하합니다, 유성진 수험생님! 모의던전을 통과하셨습니다!

-소모시간 57분. 당신의 순위는 전체 1위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07


쿠웅!


땅이 크게 흔들리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신장 5미터, 체중은 1톤에 달하는 오거의 몸이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폭군이라 불리는 몬스터의 최후치고는 허무했다.


오거의 앞에 서있는 건 인형같이 생긴 단발머리의 여자아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하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는 누가 봐도 미인이라 할만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딘가 아이돌이나 배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소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기세는, 그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야 말로 이번 실기시험의 유력한 우승후보인 주복자였다.


'입학시험이라고 만만하게 봤는데 설마 오거가 나올 줄은...'


주복자는 비틀거리며 동굴에 등을 기댔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얼굴도 파리하게 질려 자칫하면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후우..."


주복자가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던 칼을 주워들었다. 그것은 칼날부터 자루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순백의 금속으로 된 장검이었다.


검은 길이만 2미터에 가까워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주복자는 비틀거리면서도 칼집에 장검을 집어넣었다. 특이하게도 칼집의 전면이 아니라 측면을 통해 수납하는 방식이었다.


철컥.


칼을 칼집에 돌려놓자 주복자는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사실 좀 무시했지. 몬스터라 해봤자 고블린 정도. 대단한 녀석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저 단순한 미로와 함정들만이 지루하게 계속되었으니 상당히 싱겁다는 생각까지 했어. 미로는 제법 짜증났지만, 기감(氣感)을 극대화하면 던전하트의 위치를 추적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까.'


칼을 수납한 주복자는 비틀거리며 벽에 기댔다. 그리고 즉각 운기행공(運氣行功)을 개시했다. 전투를 통해서 소모된 체력과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들숨과 날숨을 통해 허공을 맴돌던 기(氣)가 흘러들었다. 흡기(吸氣)의 과정을 거친 기력은 체내의 경락을 칠성공(七星功)의 요결에 따라 회전했다. 내상(內傷)을 입었던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결코 지구에서 만든 것이 아닌, 다른 세계의 양식으로 축조된 것이 분명한 구조물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을 때는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지. 모의던전이라 하면 결국 진짜 던전 데이터를 재현한 것일 테니, 그 기괴한 양식의 건축물은 분명 실제 던전에 있던 것일 터. 지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천, 수만 년을 발전시킨 섬뜩한 미학이란...'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주복자는 다시 눈을 떴다. 그녀의 발치에는 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는 오거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장 당황했던 건 오거였나. 다른 때도 아니고, 하필이면 함정이 나를 구속해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될 줄은... 이게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오거의 계략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함정을 역이용해서 오거를 빠뜨린 건 스스로가 생각해도 제법 대담한 작전이었어.'


오거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주복자는 곧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10미터에 가까운 해자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절정의 경신술을 이용한 어기충소(御氣衝遡)의 기예였다. 하늘을 날 듯 뛰어오른 주복자는 해자의 반대편에 가볍게 착지했다.


'하지만 역시 B랭크 몬스터라고 해야 될까. 사람이라면 믹서에 넣은 분쇄육처럼 될 법한 함정 속에서, 피칠갑을 한 채로 나를 추격하던 그 모습은... 솔직히 오늘 밤에 자기 글렀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만약, 그 순간에 내가 은하검의 오의(奧義)를 발휘하지 못했더라면... 자칫 탈락했을지도 모르겠어.'


주복자는 던전하트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던전의 풍경이 폴리곤 덩어리로 변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폐부에 타르처럼 달라붙던 마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새 콘크리트로 된 방 안에 서있었다.


주복자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것이 던전. 아무리 내가 무공이 뛰어나다고 한들, 자만했다면 충분히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시험이었어. 그래, 어쩌면 주변에서 천재라고 자꾸 치켜세우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태만했을 수도 있어.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신기관에 온 가치가 있는 거겠지.'


어려서부터 천재, 기재 소리를 들으며 자만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녀의 적은 같은 또래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인 것을. 고작해야 또래들 사이에서 압도적으로 실력이 뛰어나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는가?


-축하합니다, 주복자 수험생님! 모의던전을 통과하셨습니다!

-소모시간 2시간 15분. 당신의 순위는 전체 2위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주복자는 새로이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수석으로 통과했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지. 헌터스쿨이란 단지 시작일 뿐이니까. 내 진정한 적... 주시호에게 대적하기 위해서는 수신기관 따위에 만족해선 안 돼. 이럴 때일수록 더욱 수련에 전념해야겠어. 일단은, 은하검의 오의를 조금 더 완벽하게 가다듬고, 그 다음에는 백설령을 완벽하게 다루...'


우뚝.


모의던전 훈련장을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주복자는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섰다. 어금니 틈에 낀 시금치처럼,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불편한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잘못 들었나.'


주복자는 눈을 벅벅 비볐다. 그리고 기록이 표시된 전광판을 확인했다.


-소모시간 2시간 15분. 당신의 순위는 전체 2위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2등.


잘못 들은 것도, 착각도 아니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전광판에는 여전히 2등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2등."


주복자는 다시 한 번 그 단어를 되새기며 읊조렸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어휘일 것이다. 하지만, 2등이란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오니 제법 생경한 울림이었다. 지금까지, 십구 년의 삶에서, 주복자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기 때문이다.


'괜찮아, 뭐, 살다 보면 2등을 할 수도 있는 거지, 나라고 뭐 항상 1등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좋은 거야, 같은 학교에 나보다 뛰어난 학생이 있다는 것은, 뭐 그렇다고 해서 시험 성적이 전부인 건 아니니까 반드시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지만...'


파르르...


어떻게든 스스로를 설득하려 노력하는 속마음과 달리, 주복자의 눈꺼풀은 사정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심각한 마그네슘 결핍으로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주복자는 인생역정이 제법 험난한 탓에 스스로는 제법 성숙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숙하다고 해봤자 어쩔 수 없는 십구 세 소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그나저나 대체 누구야? 역시 조르주인가? 하지만 그 녀석이 나보다 빨리 왔을 리는.'


주복자는 옆의 전광판을 살폈다. 그곳은 개인 기록이 아닌 전체 기록이 나타나는 곳이었다. 아직 도착한 응시자가 별로 없어서 여백이 가득한 전광판에는 딱 두 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1위 유성진(0시간 57분.)

-2위 주복자(2시간 15분.)


주복자는 한참동안 침묵하다, 문득 입을 열었다.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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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제07장. 또 하나의 메사이어(1) 21.01.25 49 1 12쪽
25 제06장. 게임은 질병이다(5) 21.01.24 54 2 14쪽
24 제06장. 게임은 질병이다(4) 21.01.24 58 3 19쪽
23 제06장. 게임은 질병이다(3) 21.01.24 120 1 17쪽
22 제06장. 게임은 질병이다(2) 21.01.24 73 0 16쪽
21 제06장. 게임은 질병이다(1) 21.01.24 66 1 20쪽
20 제05장. 아카샤마켓(5) 21.01.23 73 1 26쪽
19 제05장. 아카샤마켓(4) 21.01.22 71 2 15쪽
18 제05장. 아카샤마켓(3) 21.01.21 83 1 18쪽
17 제05장. 아카샤마켓(2) 21.01.20 79 1 21쪽
16 제05장. 아카샤마켓(1) 21.01.20 103 0 15쪽
» 제04장. 실기시험(3) 21.01.19 99 1 24쪽
14 제04장. 실기시험(2) 21.01.19 89 0 30쪽
13 제04장. 실기시험(1) 21.01.18 90 0 26쪽
12 제03장. 아카샤넷(5) 21.01.15 103 2 29쪽
11 제03장. 아카샤넷(4) 21.01.14 96 0 33쪽
10 제03장. 아카샤넷(3) +1 21.01.14 103 1 23쪽
9 제03장. 아카샤넷(2) 21.01.13 146 1 16쪽
8 제03장. 아카샤넷(1) 21.01.12 118 1 17쪽
7 제02장. 헌터스쿨(3) 21.01.11 113 2 16쪽
6 제02장. 헌터스쿨(2) 21.01.11 118 2 14쪽
5 제02장. 헌터스쿨(1) 21.01.11 123 1 15쪽
4 제01장. 게임스킬(4) 21.01.11 129 2 27쪽
3 제01장. 게임스킬(3) 21.01.11 154 2 20쪽
2 제01장. 게임스킬(2) 21.01.11 204 2 12쪽
1 제01장. 게임스킬(1) 21.01.11 269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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