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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글 님의 서재입니다.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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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08.02.26 16:41
최근연재일 :
2007.12.28 18:32
연재수 :
3 회
조회수 :
4,588
추천수 :
18
글자수 :
15,322

작성
07.12.28 18:28
조회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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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텬하뎨일 퀴즈대회 1

DUMMY

빵빵…….

나는 경적을 길게 울렸다.

아무리 주말이라 해도 너무 막히는군. 내가 누른 경적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주변에서 역시 빵빵거렸다. 빵빵 빵빵빵!

이것들이……. 바빠 죽겠는데 장난하냐?

여섯 시 사십 분. 이십 분 남았다. 평소 같으면 여유 있는 시간이지만 지금 같은 속도로 간다면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식 따위에 따라가지 말고 일찌감치 도착해서는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며 기다렸을 것을…….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최선을 다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는 수밖에.

웃, 골목길이? 지름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서슴없이 그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역시 평소 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낯선 길이다. 낯설 뿐만 아니라 더럽고 좁고 위험하기까지 할 것이다. 다행히 차는 도시의 고층빌딩 사이 뒷골목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남동쪽, 대충 방향만 맞으면 일단 들어가고 본다. 그리고 조금만 공간이 생긴다 싶으면 냅다 달린다. 빌딩숲을 빠져나가면 주택가가 나오기도 하고 이름 모를 공원의 모퉁이를 돌기도 한다. 공장지대 같은 곳도 지나간다. 낯선 풍경들이다. 한 번 탐험해보고 싶은 우리나라 제1도시의 속내일지도 모른다.

골목이면 대개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정작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은 차 한 대 정도뿐이어서 두 대가 마주칠라 하면 빵빵과 번쩍번쩍을 신호로 비켜, 니가 비켜 하며 시간을 잡아먹게 만드는 일이 허다한데 이번에는 그런 경우도 거의 없다. 어쩌다 마주쳐도 상대가 먼저 빈자리로 비켜선다. 운이 좋은 모양이다.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싸!

하지만 그런 운도 다한 모양이다. 아직도 바깥의 대로는 거대한 주차장처럼 빡빡 밀려 있는데 다시 한 번 들어선 골목에서 나는 오도가도 못할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쑥쑥 들어가고 보니 윽, 막다른 길도 아닌 것이 막다른 길처럼 꽉 막혀 버렸다. 한쪽은 완전히 밀착된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마주보는 곳에는 내가 온 방향으로 가려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뒤에는…….

꼬리를 이어서 들어오려고 하는 다른 차들이 접근하는 중. 나는 아찔했다. 여기서 대치하고 있다간 꼼짝없이 발이 묶여 버린다. 나는 뒤로 후퇴하여 주차된 차들의 빈 공간으로 일단 들어섰다. 그래도 다른 차들은 서로 버티고 섰다.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차문을 열고 나와 잠근 다음 냅다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차를 대 놓은 곳이 어디쯤인지 확인해 두긴 했으나 건성으로 보아 넘기며 대로로 달렸다. 골목 밖 대로에는 얼핏 본 대로 지하철 역 표지판이 있다.

나는 냉큼 달려 내려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전광석화 같다. 남은 시간은? 약 7분쯤. 플랫폼까지 단숨에 뛰어 내려간 뒤 초조하게 열차를 기다린다. 오오, 아직 운이 다하진 않았다. 기다린 지 30초도 되지 않아 열차가 온다. 열차에 올라타고서도 머릿속은 계산으로 바쁘게 돌아간다. 수없이 불이 반짝거리는 전자회로처럼. 도착할 곳까지 거쳐야 할 역은 여섯 개. 하나의 역마다 1분에서 1분 30초면 토탈 6분에서 9분. 그 중간쯤 잡으면 7분 30초. 결국 역에 도착할 때 이미 일곱 시가 약간 넘는다는 얘기다. 늦은 것인가. 일곱 시에 시작한다고 해도 그대로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는 게 또 그 분야의 관행이다. 계속 프로가 밀리다 보면 저녁때쯤 되면 10분 이상 차이가 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광고까지 하면……. 아직 여유가 있다.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에 열차는 벌써 내릴 역에 도착하고, 나는 출입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서, 문이 열리는 순간 냅다 뛰었다. 필사의 작전이다. 탁탁탁탁. 나는 둥둥둥둥 하는, 트레인스포팅의 경쾌한 음악처럼 달렸지만 그렇게 멋있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나는 배우가 아니지 않은가.

플랫폼에서 개찰구를 향하는 계단을 뛰고, 표를 휙 던지면서 개찰구를 휙 건너뛰고, 숨이 턱턱 막히는 가운데서도 지상을 향해 또 뛰어 오르고, 다 올라 와서는 눈을 두리번거리기 무섭게 휘리릭 달려온 택시를 낚아채듯 잡아탔다.

"남방아파트요."

"급하게 달려오신 모양이군요."

내 헐떡거리는 모습을 보고 기사가 물었다.

"그래요. 빨리 좀 갑시다."

"예."

됐다. 이제 2, 3분이면 도착한다. 가는 길에 남은 건 사거리 하나, 건널목 두어 개뿐이므로. 그리고 일곱 시 십 분이 되기 전에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하아하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어 다시 계단을 뛰어 올랐다. 그리고 문 앞에 당도해서는 초인종을 누르고 문 열어주는 걸 기다릴 수 없어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내서는 달그락달그락 하며 문을 열었다.

"어, 아빠?"

누가 문을 열기 위해 달그락거리는지 확인하러 현관까지 나왔던 딸이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그, 그거 시작했냐?"

"그거? 아, 그거. 아직 안 했어."

"오케바리, 세입이다."

나는 옷을 제대로 갈아입지도 않은 채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아직 광고방송 중이다. 내가 이미지 어댑터라 부르는 헤드셋을 착용하자 광고는 끝나고, 나를 그토록 허벌나게 뛰도록 만든 프로가 시작되었다. 빰빠라 빰빰!!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텬하뎨일 퀴즈대회입니다."

유명한 사회자인 손석기의 우렁찬 목소리에 따라 짝짝짝 박수 소리가 요란하다. 나도 덩달아서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정상의 프로그램으로 질주하는 '텬하뎨일 퀴즈대회', 오늘도 다섯 분의 출연자가 나와 주셨습니다."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새롭고 충격적인 형식의 퀴즈 프로그램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도 이 시간만 되면 전국이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프로그림 명칭이 좀 구식이긴 하지만 일종의 서바이벌 퀴즈대회로 사상 최고의 상금과 역대 최고의 시청률로 충분히 이름값을 한다.

"먼저 파스텔 민주균 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정동쪽 씨입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무대 뒤편에서 30대의 남자가 두 팔을 들고 입장하자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다음은 딴나라 건설 강대박 대리입니다."

박수, 짝짝짝. 고객이 맡긴 돈을 다 날렸나?

"세 번째는 연예계 대표라 할 수 있겠군요. 가요계 최고의 아이큐, 박학다식의 천재 야맹중씨입니다."

윽, 이 친구는 노래가 안 팔리자 직접 큰돈을 벌려고 나섰군.

"그 다음, 인터넷 육박 사이트 'NO처녀'의 쥔장이군요. 홍식혜 양입니다. 오늘의 유일한 여성입니다."

짝짝짝 짝짝짝. 짝짜라 짝짝 짝짝짝.

근데 육박 사이트가 뭐지? 몸으로 치고받고 하는 덴가?

"마지막으로 썰대 미용대학원 20년차인 오언제씨입니다. 언제 대학원 과정을 마칠지는 아무도, 하느님도 모른다는군요. 하하. 좀 썰렁했죠?"

예의 바른 폭소와 함께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방청석 곳곳에선 플래카드를 들고 화이팅! 으쌰으쌰, 하는 소리가 장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무대의 가상참가석(버추얼 시트)에 앉은 나는 곧 있을 상황에 온몸이 짜릿해졌다. 가상참가석이란 텔레비전에 잭으로 연결된 이미지 어댑터라는 헤드셋을 착용하면 실제 무대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한 자리를 말한다. 이미지 어댑터는 컴퓨터에 능숙한 신세대뿐 아니라 컴퓨터의 ㅋ도 모르는 구닥다리 쉰세대까지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해 준 히트 상품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어댑터일 뿐 입력 장치는 없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진행을 모든 감각으로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만 있지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이번 '텬하뎨일 퀴즈대회' 같은 경우 대회 참가자와 같이 참가하고 퀴즈를 풀 수는 있고 맞았을 경우의 기쁨과 틀렸을 때의 엿 같은 기분을 몸소 느낄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점수를 얻거나 상품을 탈 수는 없다. 생각해 보라. 전국에서 수십, 수백만 명이 이 어댑터로 동시에 접속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에게 상품을 지급한다면 방송국을 다 팔아도 모자랄 것이다.

"…참가자 다섯 분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문제를 풀어보도록 할까요. 다 아시는 것처럼 오늘의 우승자에겐 이십억 원의 상금이 주어집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열심히 설명하는 사이에도 프로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의 진행 규칙을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다섯 분이 모두 참가하는 무차별 누르기에서 가장 먼저 100점에 도달하면 사강에 오르게 됩니다. 또는 먼저 사지가 절단된 참가자가 우선 탈락됩니다. 그리고 남은 네 분이 토너먼트 전으로 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토너먼트전은 1차전의 1위와 4위, 2위와 3위가 맞붙게 됩니다. 이 게임의 승자끼리 최종 결승전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순간 출연자들이 앉은 곳뿐만 아니라 방청석과 스튜디오 전체가 긴장했다. 이제 결전이다. 나도 역시 긴장했다.

"문제입니다."

스튜디오 어디선가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나라 이름을 맞추어 주세요.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섬나라……."

삐익! 부저 소리가 났다.

"1번 정동쪽씨? 정답은?"

"예. 일본입니다."

"맞았습니다. 정동쪽씨 10점을 얻어 앞서 나갑니다. 자, 다음 문제 주시죠."

"역사 문제입니다. 조선조 제 4대 왕으로……."

삐익!!

"이번엔 3번 야맹중씨?"

"세종대왕입니다."

"딩동댕, 맞았습니다. 역시 실력들이 대단하군요. 초반부터 불꽃이 막 튑니다. 다음 문제."

"다음은 누가 한 말인지 알아 맞춰 주세요. 투비 오어 낫 투 비, 댇 이스 퀘스……."

삐이익!!

"이번에도 3번 야맹중씨?"

"예 돈키호테입니다."

"돈…키호테……. 땡. 아깝습니다. 착각을 하신 것 같군요."

저런 바보 같으니. 그 유명한 말도 몰라. 나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사약을 받아든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잖아.

삐익!!

"2번 강대박씨?"

"햄릿입니다."

"예, 정답입니다."

윽, 나는 속으로 찔끔했다. 나야말로 착각했다. 실제로 출연했다가 이런 실수를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번 문제 틀린 야맹중씨, 벌칙이 뭔지 잘 아시겠죠?"

얼굴이 굳어진 3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해진 규칙에 따라 야맹중씨의 머리를 빡빡 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뒤편에서 준비하고 있었는지 흰옷을 입은 사람 둘이 등장해 3번을 스튜디오 한가운데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흰 천을 뒤집어씌운 후 바리깡으로 3번의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지 1분이 채 안 되어 빡빡머리가 되었다.

나는 가상의 부저를 누르지 않았기 때문에 3번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만일 가상의 부저를 누른 다음에 틀렸으면 머리가 빡빡 깎이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물론 가상으로.

3번 야맹중은 얼굴이 빨개진 채 제 자리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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