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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5,381
추천수 :
138
글자수 :
133,679

작성
22.05.15 01:03
조회
253
추천
9
글자
11쪽

진술보다 정확한 그림

DUMMY

형사가 돌아가자 정수경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백설이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능한 차분한 목소리로 사고를 당한 정황과 현재의 상황을 간단하면서도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백설이의 아버지가 내일 일찍 이곳으로 오겠다고 대답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낯선 곳에서 사고를 당해 입원해 수술을 앞두고 있는 까닭에 두 사람은 병원에 같이 있기로 했다. 그녀가 깨어나면 물어볼 것도 많았다.

그 동안에 백설이는 잠시 눈을 떴고 곁에 있는 정수경과 김지후를 알아봤지만 얘기를 나눌 정도는 아니었다.

한쪽 눈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부분이 붕대에 감겨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녀 자신도 아직 그럴 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도대체 어떤 놈들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정수경은 백설이의 손을 잡고 안타깝게 말했고 설이는 그저 눈에 물기만 차오를 뿐이었다.

그런데 통화를 한 지 세 시간도 안 되어 백설이의 아버지 백종현이 달려왔다.

자정을 넘기기 전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십대 초반의 세련된 신사였다.

정수경이 잘생긴 중년 남자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가 다가오며 말했다.


“나 설이 아버지요.”

“아,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잘하지 못해서.”


김지후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같은 학과 졸업을 앞두고 같이 여행을 왔는데 한 명만 변을 당했으니 죄책감을 느낄 만했다. 최소한 남학생 한 명만이라도 같이 나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인데.


“일단 어떻게 된 사정인지 얘기나 듣고······.”


그러면서 그는 침대에 누워있는 백설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머리와 손을 어루만지며 전신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아빠······!”


백설이가 눈을 뜨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괜찮다. 이제 아무 걱정 마.”


손을 잡은 채 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자 깊은 마음을 담은 눈빛이 오고갔다.

얼마 후 그녀는 편안한 눈빛을 한 뒤 눈을 감고 잠들었다.

그 뒤에 백종현은 침착한 얼굴로 이야기를 들었다.


“저희도 자세한 건 아직 몰라요.”


정수경이 그 동안 자신이 알게 된 걸 최대한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졸업여행으로 온 펜션에 숙소를 마련한 후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까운 마트에 혼자 갔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안 되었고 나중에 병원에서 신고한 후에 출동한 형사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들.

형사에게 들은 사실은 그들 또래의 젊은 남자가 그녀를 들쳐 업고 병원에 왔는데 아직 신분을 알지 못하며 설이는 그 남자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확실한데 성폭행까지는 아니었다고······.

질문 없이 얘기를 다 들은 백종현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학생들은 숙소로 돌아가 봐요. 설이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게 됐군. 가능하면 우리 설이는 신경 쓰지 말고 원래 일정대로 놀러 다니라고 하고 싶은데 그건 무리겠지?”

“저희가 어떻게 그래요?”


정수경의 항의성 어투에 김지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친구들끼리 얘기해 보고 잘 알아서 해요. 설이 걱정은 말고.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해지니까.”


그리하여 두 친구는 백종현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 숙소로 돌아갔다.

가기 전에 담당 형사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설이가 깨어나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그에게 연락을 하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음 날 수술 일정을 잡은 뒤 골절 접합 수술을 했고 수술을 받은 다음 날 정신을 차린 설이가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그녀가 진술을 하는 자리에서는 담당 형사인 이덕준이 와서 같이 들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얘기한 대로 설이는 숙소를 나와 미리 알아본 마트로 향했다. 마트는 숙소로 잡은 펜션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5백 미터 정도는 2차선 도로였고 나머지는 비포장 도로였는데 지역 전체가 꽤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여행자들과 차들의 왕래가 잦았다.

다리를 건너 조금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는데 그녀보다 어린 듯한 남자가 나타나 길을 물었다. 자신도 이곳에 처음 와 잘 모른다고 대답하자 곤란한 얼굴로 핸드폰 좀 빌려달라고 했다. 친구들이 바닷가 바위와 암초가 있는 곳에서 놀다가 발을 헛디뎌 다쳤다는 것이었다.

119에 구조를 요청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대신 걸어 구조요청을 하겠다고 하자 정확하게 어디에 있으며 몇 명이 얼마나 다쳤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신고를 할 수 있느냐고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할 수 없이 휴대폰을 건네주자 남자는 그걸 받아들고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그런데 119에 거는 것 같지가 않았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도로를 벗어나 바닷가 쪽의 샛길로 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계속 통화를 하며 걸어가자 뭔가 불안했지만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 같아서는 휴대전화 하나만 잘못 넘겨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건 개나 소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그만 휴대폰을 돌려달라고 말하며 따라가는데 갑자기 양쪽에서 다른 남자 두 명이 나타나 그녀를 가로막았다.

미처 손쓸 틈도 없이 그녀는 두 남자에게 붙잡혀 더 외진 곳으로 끌려갔다.

소리를 지르려 하는 순간 한 남자가 손으로 입을 막았고 그들에게서 벗어나 달아나려 하자 두 남자가 강제로 그녀를 들고 여러 개의 바위가 박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뒤에는 강제로 쓰러뜨리고 옷을 벗기고 강간을 시도하려 했는데 그녀의 저항이 완강하자 주먹을 쥐고 머리와 가슴 등을 때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가슴을 가리는 브래지어를 강제로 잡아 뜯어서는 입을 틀어막았고 연속해서 머리를 맞자 머리가 멍해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었다.

매스꺼움과 어지러운 느낌이 계속 있었고 온 몸이 흔들리는 느낌도 간혹 있었으나 그게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백설이 씨를 폭행했던 남자들이 세 명이라고 했는데 기억할 수 있습니까?”

“처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했던 남자는 확실히 기억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정확히 기억하지 않아요. 갑자기 나타나 달려들었고 마스크까지 했으니까요.”

“그럼 기억나는 부분만이라도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예.”


백설이는 머리맡에 서 있는 아빠를 힐끗 보고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눈을 감은 후 자신이 본 남자의 모습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키는 180정도며 몸무게 70kg 가량의 호리호리한 체격이고 얼굴도 잘생긴 편이었는데 양쪽 눈초리가 아래로 휘어져 있어 얼핏 보면 착하게 보였고 이마를 반쯤 덮는 상고머리를 한 것 등.

그리고 나머지 두 남자에 대한 것도 마스크와 후드재킷의 후드를 뒤집어쓴 모습까지 상세히 이야기하자 그 이미지가 잘 그려졌다.

얼마나 잘 묘사했는지 당장이라도 밖에 나가 비슷한 모습을 한 삼인조라면 당장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사는 그걸 몽타주로 그리면 훨씬 쉽게 범인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제가 몽타주 전문가를 불러오면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시겠어요?”

“형사님! 제 딸이 그림을 좀 그리는데다가 눈썰미가 좋아 직접 그리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아 그런가요? 그럼 좀 부탁합니다.”


남의 말을 듣고 그리는 것보다 일을 겪은 본인이 그리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았다.

그는 필요한 걸 물어본 후 직접 스케치북과 펜, 파스텔 등을 사 왔다.

백설이가 자신을 폭행했던 남자들의 모습을 그리는 동안 백종현은 형사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제 딸을 업고 병원에 온 청년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습니까?”

“일단 CCTV에 찍힌 것만으로는 알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따님이 폭행범들의 모습을 확실하게 그린다면 간호사나 병원 직원들로 하여금 그 청년이 범인 중의 하나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터인데 범인이 아니고 도움을 준 사람이라면 강제로 수사를 할 명분이 없네요. 참고인으로 조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오는 데 차를 이용했을 터인데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은 아직 없는 상황이고 당시 응급실과 근처 주차장에 머물렀던 차량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어떻게든 찾았으면 좋겠는데······.”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기다리는 사이에 백설이는 세 장의 인물 그림을 완성했다.

그 그림을 본 이덕준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범인들의 이미지와 거의 같았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를 잘도 표현해 내는구나 싶었다.

그는 그 그림이 있는 스케치북을 들고 병원을 돌아다니며 간호사와 응급실 직원들에게 그날 백설이를 업고 왔던 청년과 같은 인물인지 확인했다.

하지만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 다음 그는 스케치북의 인물 그림을 카메라에 담아 경찰서의 수배전단 제작팀에 보냈다.

관광지에서 젊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을 하려 했고 실제 골절상을 입힌 폭행범들에 대한 뉴스는 지역방송뿐 아니라 전국 TV 뉴스에도 나갔는데 그건 병원에서 우연히 엉망이 된 백설희의 모습을 본 네티즌이 블로그와 SNS에 그 사실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신원과 원래 모습들은 밝혀지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이삼일 후에 실제 폭행범들의 모습까지 공개되자 수사는 급류처럼 빨라졌다.

곳곳에서 제보가 잇따랐고 상당수가 사실이었다.

공개 수배된 지 만 하루도 안 되어 성폭행 미수 및 폭행범들은 모두 잡혔다.

그들을 잡아 심문한 이덕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 세 명의 폭행범들도 한 인물의 돌팔매질에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둘은 폭력과 강간 전과가 있었고 하나는 지역 유지이자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었다.

당연히 쟁쟁한 변호인단을 배경으로 세우고 뻣뻣하게 심문에 응했다.

그들을 심문하면서 범인들 또한 백설이를 구해 병원에 데려다 준 이름 모를 청년을 이를 갈며 찾는다는 걸 알고 이덕준은 ‘이름 모를 흑기사’를 가능한 감추기로 했다.

그 사실을 백설이와 백종현 부녀에게도 이야기하자 두 사람 또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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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해 줘요 22.05.13 372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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